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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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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251장 /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기도

성경봉독

Isaiah 5:1–7 NKRV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서론

지난 주부터 우리는 이사야서를 살펴보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 왕 웃시야부터 히스기야까지 활동했다.
그는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예언했다.
1-4장의 내용이 그러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5장에서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며,
이사야는 노래 하나를 부른다.
흔히 ‘포도원의 노래'라 일컫는다.
어찌보면 생뚱맞아 보이고 맥락에 맞지 않아 보이는 장면 전개이다.
이 노래 속에 놀라운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 노래 속에 담겨진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본론

1-2절

Isaiah 5:1–2 NKRV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나는 노래한다’로 시작.
나는 누구인가 - 이사야 선지자
이사야 선지자는 지금 노래한다.
무슨 노래인가?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한 노래'
자신이 아는 어떤 사람에 대한 이야기.
그가 누구인지 이사야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이사야는 그 사람을 ‘내가 사랑하는 자'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친구처럼 친밀하고 가까운 사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무엇을 노래하는가?
포도원.
어떤 한 사람이 소유한 포도원,
내가 사랑하는 자가 갖고 있는 포도원을 노래.
지금 이사야 선지자는 이 노래를 당시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유다 사람들에게 하고 있다.
이 시간 그 노래를, 그 이야기를 우리도 같이 한번 들어보자.
1-2절.
Isaiah 5:1–2 NKRV
1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이런 이야기다.
나에게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다.
내가 진짜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의 이야기다.
그에게 포도원 하나가 있다.
그가 그 포도원을 얼마나 아끼고 정성을 쏟았는지 아는가.
그는 그 포도원을 위해 땅을 하나 마련했다.
보통 땅이 아니라 고르고 골라 아주 기름지고 좋은 산에다 포도원 땅을 마련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그 땅을 일구었다.
땅도 갈아엎고 거기에 있는 돌들도 다 치워 아주 좋은 옥토로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포도나무를 고르고 골라 그곳에 심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망대도 세웠다.
들짐승들이 와서 포도나무를 망가뜨리고 포도를 따먹지 않을까,
혹여나 누가 포도원을 망가뜨리지 않을까 하며 밤낮으로 포도원을 지켰다.
그리고 그 포도원에 술틀도 미리 만들어 놓았다.
가을에 싱그런 포도가 주렁주렁 열리면,
그 포도를 술틀에 넣고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 생각에 그는 가슴설레었다.
때에 따라 물도 주고 거름도 주면서 포도가 맺히길 손꼽아 기다렸다.
드디어 때가 왔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포도나무에 열린 포도를 따서 그 맛을 보았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그가 맛본 포도는 씁쓸하고 맛도 없는 들포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
이 이야기를 듣는 여러분의 심정은 어떤가?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가?
안타까움을 넘어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분노가 생기지는 않는가?
그렇게 좋은 땅에다,
그렇게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포도원을 가꾸며 돌보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품가치가 전혀 없는 포도가 맺혔다면,
그 주인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
아마도 이 이야기를, 이 노래를 듣고 있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사람들도
동일한 안타까움을 느꼈을 것이다.
이렇게 이사야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나타난다.
노래하는 이사야와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든다.
바로 이사야의 노래에 등장하는 바로 그 사람,
이사야가 ‘내가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던 그 사람이 등장한 것이다.
이사야의 노래를 이어받아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호소한다.
3-4절 말씀.
Isaiah 5:3–4 NKRV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지금 내 이야기를 하고 있소?
잘 됐소.
내가 직접 말하리다.
예루살렘 주민들이여, 유다 사람들이여.
잘 판단해 보시오.
나와 내 포도원 둘 중에 누가 잘못했는지 잘 판단해 보시오.
이사야가 한 이야기를 잘 들었소?
들은 바대로,
내가 진짜 포도원을 아끼고 사랑하고 지극정성으로 포도원을 가꾸었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정성을 다했소.
그 이상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소?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대한 게 잘못이요?
그만큼 수고했으면 좋은 포도가 맺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요?
그런데 맺힌 거라곤 아무짝에도 쓸 데 없는 들포도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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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하던 이 사람은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간다.
5-6절 말씀.
Isaiah 5:5–6 NKRV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이 사람은 이렇게 이어서 말한다.
나는 할만큼 했고, 기다릴만큼 기다렸소.
이제는 더 이상 포도원을 그대로 둘 이유가 없소.
포도원을 둘렀던 울타리를 걷어 내겠소.
담도 헐어버리겠소.
이제 들짐승들이 포도원에 들어와 포도를 먹어버리게 하고,
포도를 탐하는 사람들이 들어와 그 포도원을 짓밟아도 그냥 내버려 두겠소.
이제는 그 포도원을 황폐하게 하겠소.
그동안 포도가 잘 맺히길 바라며,
가지치기도 하고 흙을 모아 북을 돋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포도나무를 돌보지 않겠소.
그 땅에 찔레와 가시 같은 잡초가 자라게 그냥 둘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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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을 갖게 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사람들도 맞장구를 칠 것이다.
나도 저런 상황이라면 저 사람처럼 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잘 생각했다.
쓸모없는 그 포도원을 더 이상 보살필 필요가 있겠느냐.
속 시원하다.
차라리 포도원에서 포도나무를 다 뽑아내고 다른 걸 심어라.
이런 반응을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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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이 포도원의 주인, 이사야가 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는 그저 돈 많은 부자가 아닌 것 같다.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6절 마지막에 이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단순히 이제 포도원에 물을 더 이상 주지 않겠다는 말이 아니다.
하늘에 명하여, 구름에 명하여 포도원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한다.
구름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성경은 드디어 숨겨왔던 이 이야기를 실체를 드러낸다.
7절 말씀.
Isaiah 5:7 NKRV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포도원의 주인은 다름 아닌 하나님이다.
이사야가 말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 -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가리킨다.
구름을 명하여 비를 내리게도 하고, 비를 내리지 못하게도 할 수 있는 분.
창조주 만군의 주 하나님.
이 이야기는 비유였던 것이다.
이 노래의 청중인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대 백성들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바로 그들을 향한 이야기다.
그 노래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다.
그리고 지금 우리를 향한 이야기다.
포도원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스라엘 족속
그 포도원에 심겨진 포도나무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유다 사람들
포도원 주인은 심히 기름진 땅에 포도원을 만들었다.
땅을 파고 돌을 제하여 그 땅을 개간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인 가나안을 주셨다.
그들이 수고하지 않은 집과 우물과 밭과 과수원을 차지하게 하셨다.
포도원 주인은 그곳에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 삼으셨다.
율법을 주시고, 제사 제도를 세우시고, 성막과 성전을 주셨다.
포도원 주인이 포도나무에게 기대했던 좋은 열매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 유다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게 무엇인가?
바로 ‘정의와 공의’였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정의와 공의, 사랑과 긍휼을 베풀기 원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율법의 정신을 실천하기 원하셨다.
그런데 결과는 무엇인가?
들포도를 맺고 말았다.
‘포악과 부르짖음'이다.
부와 권력을 가진 이들의 ‘포악함’과 ‘강포',
그로 인해 고통받는 이들의 ‘부르짖음’과 ‘비명소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퍼졌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의 울타리를 걷어 버리고 담을 헐어버리겠다고 선언한다.
더 이상 포도원을 지키고 돌보지 않겠다고 말한다.
무슨 말인가?
이방민족이 예루살렘과 유다를 공격하더라도 내버려두겠다는 말이다.
망하도록 그냥 두겠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노래한 이 ‘포도원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바라보는 대서사시이다.
이사야를 통해 들려 준 노래 속에 그 모든 것을 응축하여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어지는 8절 이하의 말씀에서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사람들의 포악과 부르짖음이 어떠한지 이야기한다.
이 부분은 내일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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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는 1-2절의 ‘포도원 노래'를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이 노래는 일종의 ‘낯설게 하기'이다.
익숙하고 잘 알아 무디어진 어떤 것들에 대해,
다른 관점과 시각에서 조명함으로 신선하고 새롭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나와 너’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들려줌으로,
망각하고 있는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대 백성들을 향하여 ‘포도원의 노래'를 부르셨을까?
그 이유는 바로 우리 인간 본성의 악함을 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타락한 우리의 자화상이다.
다른 사람을 향하여는 정의와 공의의 칼날을 날카롭게 들이대면서도,
정작 자신의 부정과 불의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침묵하는 것이 우리의 악한 본성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내가 하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이지만,
같은 것을 다른 사람이 하면 그것은 불법적이고 비난받을만한 부끄러운 이야기라 말한다.
아니 사실은 내가 하는 것도 엄연한 불륜이지만 그것을 미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사소한 잘못에 대해서는 하나하나 다 지적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큰 죄악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이사야 선지자 당시 예루살렘 주민들과 유다 사람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께 택함받은 백성, 성민이라 여겼다.
자신들에게는 제사와 율법이 있다 말했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며 다른 이들을 정죄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죄를 지적해도 남의 이야기로 들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한 경고도 가벼이 여겼다.
자신들의 죄를 지적함에도 정작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그들을 깨우치기 위해 ‘포도원의 노래'를 들려주신 것이다.
또다른 대표적인 예가 사무엘하 12장에서 나단 선지자가 다윗 왕에게 들려준 이야기다.
삼하 12:1-4 말씀.
2 Samuel 12:1–4 NKRV
1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그가 다윗에게 가서 그에게 이르되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부하고 한 사람은 가난하니 2 그 부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으나 3 가난한 사람은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뿐이라 그 암양 새끼는 그와 그의 자식과 함께 자라며 그가 먹는 것을 먹으며 그의 잔으로 마시며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거늘 4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매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나이다 하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윗 왕은 분노한다.
가난한 사람의 암양 새끼를 빼앗은 그 부자를 향하여 심히 분노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5-6절.
2 Samuel 12:5–6 NKRV
5 다윗이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6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한지라
다윗은 나단 선지자가 들려준 이야기에 나온 부자를 향하여,
정의의 칼날을 들이대며 심판하며 정죄한다.
그런 나쁜 놈은 죄값을 받아야 한다. 내가 심판하겠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나단 선지자의 대답은 다윗을 큰 충격에 빠뜨린다.
2 Samuel 12:7 NKRV
7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왕으로 기름 붓기 위하여 너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고
다윗은 아마 큰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충신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빼앗아 동침하고,
그것도 모자라 우리아까지 교사살인한 다윗의 죄를 들추어 내셨다.
간음을 범하고,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기는 커녕
그 죄를 숨기기에 급급했던 다윗이었다.
경건한 척 의로운 척 했던 다윗이었다.
당시 다윗은 성령충만하지 못했고 육신에 매여 있었다.
아마 나단 선지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다윗의 죄를 지적했다면
그 죄를 바로 깨닫고 뉘우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상태임을 아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신 것이다.
----------
예수님도 이러한 방식을 이용해 많은 가르침을 주셨다.
여러 비유를 통해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죄악을 깨닫게 하셨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포도원 농부 비유'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오자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셨다.
마 21장 33-40절 말씀.
Matthew 21:33–40 NKRV
33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34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35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하나는 심히 때리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쳤거늘 36 다시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많이 보내니 그들에게도 그렇게 하였는지라 37 후에 자기 아들을 보내며 이르되 그들이 내 아들은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38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39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40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이 이야기를 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은 그 악한 농부들에 대해 분노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Matthew 21:41 NKRV
41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그들은 외친다.
그런 악한 자들은 진멸해야 한다,
다 죽여야 한다,
죄값을 치루게 해야 한다.
그들의 대답은 정답이었다.
공의와 정의를 따른다면 그 악한 농부들은 진멸당해 마땅하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티끌은 너무나도 잘 찾아내었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악한 농부란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회개하며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예수님을 잡고자 한다.

결론

하나님은 ‘포도원의 노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원하셨다.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깨닫고 인정하며 회개하길 원하셨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에게도 원하신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기를 원하신다.
이 말씀을 들으며
이사야 선지자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악함을 손가락질 하지 말자.
이 ‘포도원의 노래'는 지금 우리를 향한 노래이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심으신 포도나무이다.
우리는 어떤 포도를 맺고 있는가?
좋은 포도인가? 들포도인가?
내가 맺고 있는 열매가 어떠한지는 돌아보지 못한 채,
다른 이들의 열매를 보며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자.
우리는 오늘 하루도 죄악된 세상에서 죄를 지으며 하루를 살아왔다.
성령충만하지 못했고
때때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가운데 마음을 빼앗기며 살아왔다.
그것을 인정하자.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성령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한다면
죄에 넘어지는 우리 자신을 인정하자.
나는 죄인입니다.
온전히 예수 안에 있을 때,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우리는 비로소 좋은 열매를 맺게 된다.
요 15:5 말씀.
John 15:5 NKRV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 안에서 좋은 열매를 많이 맺는 우리들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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