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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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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312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고대 그리스에서는 큰 도시마다 정기적으로 대대적인 운동경기를 열었다. 고린도에서는 이스무스, 에베소에서는 판이오니아가 있었고, 가장 큰 것은 그리스 아테네에서 4년마다 열리던 우리가 잘 아는 바, 바로 올림픽이었다. 모든 선수들은 우승자가 되기 위하여 혹독한 훈련을 했고, 때로는 그 혹독한 훈련으로 인해 죽는 사람들도 허다했다고 한다.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본문 15절을 통해서 ‘전심 전력하라’ 라고 말한다. 헬라어로는 ‘멜레타오’ 라는 단어인데, 반복하고 열심히 노력하여 배우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들을 가리킨다. 즉 바울은 디모데에게 지금 뭔가를 요구하면서 그 일에 대하여 경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선수만큼의 피땀나는 훈련의 각오로 임할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딤전4:6 에서 볼 수 있듯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는가? 그냥 아무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는가? 물론 성경 속에서 아주 특별한 경우 준비되지 않은 자 일지라도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는 경우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이는 매우 특별하게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를 보편화시킬 수는 없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에서도 오직 준비된 자만이 쓰임을 받으니 이를 위해 훈련하라고 말씀한다. 마치 올림픽에 임하는 운동선수들이 그 경기에 최선을 다하여 준비하듯이, 그 경기에 목숨을 걸고 준비하듯이, 그 한번의 경기를 위하여 사력을 다하여 준비하는 것처럼, 이와 같이 준비된 자들만이 주님의 일에 쓰임을 받으니 그 순간을 위해 연습하고 훈련하라고 말씀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훈련해야 할까? 이 새벽의 시간에 두 가지를 살펴보길 원한다.
경건에 이르도록 자신을 연단해야 한다.
딤전4:7 중후반부를 보면 ‘네 자신을 연단하라’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연단하다' 라는 헬라어는 ‘짐나조(γυμνάζω)’ 이며 이 단어에서 오늘날 체육관을 의미하는 '짐네이지움' 이라는 단어가 파생된다. 여러분, 체육관 하면 어떤 광경이 연상되시는가? 저는 가장 먼저 시합을 준비하는 선수들이 떠오른다. 시합을 앞둔 선수들은 그 한번의 경기에서 최고의 결과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비한다. 마찬가지로 '연단하다' 라는 헬라어 '짐나조' 라는 단어는 일종의 체육용어로서 선수가 경기에 출전하기에 앞서 몸을 만들고 훈련에 임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 유행하던 체육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 비유하여 디모데에게 경건에 이르는 영적 훈련에 대해 강조한다. 왜일까? 참된 경건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디모데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이 땅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해당된다. 만일 여러분들이 끊임없이 계속해서 경건의 훈련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악된 습성 상 다시 넘어질 수 밖에 없다. 다시 죄악된 삶으로 돌아가기 쉽다. 그만큼 죄가 우리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를 부패시켰기 때문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셨고 새 사람으로 만드셨으나 경건에 이르는 참된 훈련이 없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결코 될 수 없다. 마치 운동선수가 이전의 잘못된 운동 습관이 남아있던 것을 끊어내고 새롭게 고치기 위해 피땀을 흘려 노력하지 않는가? 세상의 운동선수들도 그러하건데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 역시도 이 땅을 살아가며 내 안에 여전히 남아있는 죄악된 습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끊어내기 위해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에 대하여 딤전4:12 에서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될’ 정도로 훈련하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본이 될 정도에 이르기까지 훈련하라 말씀하신다. 이러한 과정만이, 이러한 연단과 연습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딤전4:11 에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라고 말씀한다. 무엇을 명하고 가르치라는 것인가? 딤전4:8 중후반부에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4:10 에 ‘이를(경건)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라고 말씀한다. 모든 신자들의 구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소망을 두어 범사에 유익한 이 참된 경건을 위해 수고할 것을 명하고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13절에서는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 이라고 구체적인 설명까지 제시한다. 즉, 참된 경건에 이르는 것은 우리의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만 소망을 두며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대로 권하고, 또한 그 말씀대로 가르치는 것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행위들에 대해 ‘전념하라’ 라고 말씀한다. 원어로 보면 그 의미가 더 풍성하게 다가오는데, ‘전념하다’ 라는 헬라어의 의미는 ‘주의하며 몰두하는 것’, ‘매우 신중한 태도로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단어의 시제를 보면 현재 명령법이다. 헬라어에서의 현재형은 끊임없이 계속 반복하는 것을 가리킨다. 즉 이 명령은 단회적인 명령이 아니라 거듭,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따라야 할 명령이라는 것이다. 주의 말씀을 읽는 것, 원어로는 낭독하는 것, 주의 말씀대로 권하는 것, 원어의 의미로는 권면하는 것, 또한 주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원어의 의미로는 주의 말씀대로 교훈하고 가르치는 것, 이 일을 쉬지 말고 주의 깊게, 신중한 태도로 계속해서 멈추지말고 거듭해서 행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이제 말씀의 조각들을 한번 맞추어 보자.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되기 위하여 경건에 이르도록 자기 자신을 연단하라고 권면했다. 마치 운동선수가 죽기살기로 훈련에 임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연단하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전념하라고 했다. 우리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어 이 땅에서 참된 경건을 위해 수고하고 힘쓰라고 권면했다. 이는 계속해서 주의 말씀을 낭독하고, 끊임없이 그 말씀으로 권면하며, 거듭해서 그 말씀을 가르치는 것으로 지키는 것이다. 이렇게 훈련되고 준비되어야 참된 경건에 이를 수 있으며, 마침내 적재적소에 쓰임받을 수 있는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1년 넘는 시간동안 코로나는 전세계적으로 큰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물론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외부활동들이 멈춰졌고, 모든 모임들이 중단되었다. 이것이 한 두달 지속되다가 사라질 줄 알았는데 1년 넘게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코로나가 한국에서 막 기승을 부릴 때만 하더라도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모임이 중단되고, 예배가 비대면으로 전환되고, 모든 외부활동들이 중단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모임이 재개 되면, 다시 예배가 재개되면, 다시 외부활동들이 재개되면, 그때 다시 경건의 훈련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상황이 좀 더 나아지면 열심히 해야지 하는 다짐들을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1년이 지났다. 혹시 코로나를 핑계삼아 게으름, 방종, 나태함, 불순종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나쁜 일꾼으로 자리잡아 가지는 않은지 돌아보시길 바란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동안 작은 교회들의 경우 주일예배가 아예 중단된 교회들도 많고, 온라인 시설을 갖추지 못한 어느 교회는 그냥 기독교tv를 시청하는 것으로 주일예배를 대체한 경우들도 있었으며, 새벽기도회나 수요기도회 역시 모두 중단되었다. 결국 아예 폐쇄한 교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중단된 적이 없다. 생각해보면 코로나가 오기 전이나, 오고 나서나, 주님의 말씀은 계속해서 변함없이 강단에서 읽혀지고 있고, 예배당에서는 주의 말씀대로 권면하는 말씀들이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도 주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런데 혹시 여러분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는가? 변했다면 그 변한 이유가 정말 코로나의 전염성 때문인가, 아니면 코로나를 핑계삼아 나태함과 방종의 시간으로 삼기 위함인가? 잠시 제 얘기를 하자면, 저는 2021년 시작하면서 제 스스로에게 다짐한 것이 있다. 매월 5권 이상의 책을 읽자는 것이다. 작년 12월부터 시작해서 지난 달에 7권을 읽었고, 이제 1월 마지막 주인 오늘 5권을 거의 달성했다. 제가 왜 이런 다짐을 했느냐면, 성도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먹이는 자로서 부지런히 말씀연구를 하기 위함도 있겠고, 또 스스로 게으른 목사, 나태한 목사가 되지 말자고 채찍질을 하기 위함도 있다. 그래서 폭넓게 신학서적들을 탐독하며 그것을 소화시키고 다시 성도 여러분들께 쏟아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목표를 잡았고 지금도 이 일에 부지런히 감당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담임목사님도 여러분들에게 게으른 목사가 되지 않기 위해 목이 상해감에도 불구하고 주일날 몇 시간씩 예배를 인도하신다. 코로나와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교역자들은 여러분들에게 가장 최고의 말씀을 먹이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가? 코로나 핑계 삼아 모든 모임들이 취소되고 집밖에 돌아다니는 것이 신경쓰이는 이 때에 그저 이렇게 된 현실만 탓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로 손 놓고 계실 건가? 그렇게 벌써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주님께서는 '세월을 아끼라 시대가 악하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다. 그러므로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여러분 자신을 연습하라. 훈련하라. 요즘 기독교 출판업계마다 난리다. 아주 좋은 책을 출판해도 팔리지가 않는단다. 얼마나 성도들이 경건서적들을 안 사보면 그럴까 싶다. 집에서 잠잠이 기도의 시간도 늘려 보시고, 경건 서적들이나 성경도 깊이 묵상해보라.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난 이 때에 성경다독도 해 보시고, 성경필사도 한번 해 보라. 경건서적들 찾기 어려우시다면 저에게 빌려달라 하셔도 되고, 물어보신다면 얼마든지 추천해 드릴 수도 있다. 올해 시작하라. 지금이라도 시작하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읽혀지고, 권면되며, 가르쳐지는 예배의 자리에 참석하라. 담임목사님도 마찬가지이시겠지만, 저 역시도 말씀을 맡은 봉사자로서 성도 여러분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양질의 말씀을 먹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매번 하나님께 그 말씀을 가장 먼저 받아먹고, 소화시킨 그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바르게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자리에 계셔달라. 주의 충성된 일꾼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말씀의 자리에 계셔 달라.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 자신을 훈련시키라. 그래서 딤전4:15 의 말씀처럼, 이 일에 전심전력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으로 자라 가시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기를 간절히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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