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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확장

출애굽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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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의 말씀에서는 모세의 가족상봉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성경은 어느 시점에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미디안으로 돌려보내졌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종교개혁자 칼빈은 모세가 가족들이 하나님의 기적을 목격하길 원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애굽의 손에서 구원 받은 직후에 미디안으로 보냈다고 해석하였고, 또한 유대 미드라쉬에서는 아론이 처음 모세와 만났을 때 애굽은 너무 위험하므로 아내와 아들들을 돌려보내라고 설득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어쨋든, 분명한 사실은 모세가 아내와 아들들을 이드로에게 돌려보냈었고 이제 이드로는 십보라와 두 아들을 남편 모세에게 데리고 온 것이다.
이드로는 모세의 아내 십보라와 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을 데리고 왔다. 게르솜은 ‘나그네’란 의미이고, 엘리에셀은 ‘하나님이 도우셨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두 아들의 이름의 의미는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나아가는 나그네와 같았고, 또한 4절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이런 내용으로 볼 때 본문은 마치 모세가 아내 십보라와 두 아들의 재회를 핵심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 같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아주 부분적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오히려 본문은 모세와 이드로의 만나는 장면에 더 집중하고 있다.
그의 장인 이드로는 누구인가? 출18:1 말씀을 보면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창25:2-4 의 말씀을 보면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의 후손이므로 사실 모세와 이드로는 먼 친척관계라 할 수 있다. 그는 미디안에서 엘로힘, 곧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브라함을 포함한 족장들도 그러했지만 엘로힘, 곧 하나님을 여호와로 알지 못했다. 모세가 소명을 받던 출6:2-3 의 말씀에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라고 말씀하셨다. 히브리어 엘로힘 이라는 단어는 고대근동 사회에서는 그냥 일반적인 신을 가리키던 단어였고, 성경 안에서 엘로힘은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켰다.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창조주 엘로힘에 대해서는 알았지만, 그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신 것은 알지 못했다. 미디안에서 엘로힘을 섬기던 이드로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디안에서 하나님을 여러 신들 중 하나로 섬겼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저 조상들과 같이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았을 것이다.
출18:8 말씀에서 모세는 그간 여호와께서 행하신 구원에 대해 장인에게 다 전달한다. 여기서 ‘말하다’라는 히브리어의 의미대로 하나도 빠짐없이 정확하게 말한 것을 의미한다. 즉 장인이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소상하고도 세밀하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었다는 것이다. 모세가 전한 내용이 무엇인가? 이스라엘에 여러 고난의 상황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구원하셨는가’ 이다. 한글 성경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8절 말미에 ‘구원하신 일’, 9절에 ‘구원하심’, 10절에서 애굽사람의 손에서와 바로의 손에서 ‘건져내시고’, 애굽 사람의 손 아래에서 ‘건지셨도다’ 여기서 이 4군대 사용된 단어는 모두 동일한 한개의 단어, 히브리어 ‘나찰(נצל)’ 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 단어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건져내다’ 라는 의미와 동시에 ‘낚아채다’이다. 마치 독수리가 사냥감을 순식간에 확 낚아채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위기와 고난 가운데 있던 이스라엘을 이와 같이 낚아채사 모든 위험으로부터 건져내셨다는 것이다. 이 ‘나찰’, ‘건져내다, 구원하다’ 라는 단어가 8-10절 그 짧은 구절에서 4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이 말인즉 모세가 이드로에게 전하는 내용의 핵심이 바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위기 속에서, 고난 속에서, 역경 속에서, 죽음 속에서,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사 그 백성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가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 상세히 전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교회가 세상 가운데 던져야 할 메시지가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 보게 만든다. 교회가 세상 가운데 선포해야 할 메시지는 세상의 윤리 도덕적인 메시지가 되어서는 안된다. 번영신학과 물질만능주의가 교회 강단에서 선포되어서는 안된다. 교회가 전해야 할 그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죄인들을 그 강하신 손으로 낚아채사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삼위하나님만을 바르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드로에게 아주 상세하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전하였을 때에 이드로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그의 첫번째 반응으로 9절 말씀에 ‘기뻐하였다’ 라고 말씀한다. 여기서 기뻐하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이하드’ 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딱 3회밖에 사용되지 않은 단어인데, 그 사용된 용례를 보면 전부 하나님의 구원하심에서 비롯한 즐거움, 기뻐함과 관련되어 있다. 즉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대해 소상히 들은 이드로의 반응은 세속적인 즐거움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전해들은 자로서의 신령한 기쁨, 영적 즐거움에 사로잡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접한 자,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체험한 자, 하나님의 성령에 감동된 자들이 이러한 신령한 기쁨을 맛본다. 하박국3:18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벧전1:8-9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성도 여러분, 이러한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계시는가? 우리의 구원으로 인하여 이러한 거룩한 즐거움에 사로잡혀 사시기를 축복한다.
이드로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상세히 전해듣고, 그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사로잡힌 후에 드디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로 개종한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는 하나님을 희미하게 알고 섬기던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모세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무이한 엘로힘이요, 그분만이 구원하시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듣게 된 후, 그의 두 번째 반응은 10절처럼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찬송하리로다’ 라는 단어의 의미는 오늘날의 찬송과 의미가 조금 다르다. 구약에서 이 단어는 먼저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은혜로운 일들 안에서 기쁨을 표현하고, 뿐만 아니라 그 은혜로우신 행위를 세상에 선포하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이드로의 세번째 반응은 그 하나님을 영접한 것이다. 출18:11 에 ‘이제 내가 알았도다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 이스라엘에게 교만하게 행하는 그들을 이기셨도다’ 라고 고백하며 여호와 하나님께 드릴 번제물과 희생제물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제물들을 모세와 아론,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함께 나눠 먹게 된다.
처음으로 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이방인이 여호와를 믿는 자로 개종한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드로 혼자만이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여호와와 같으신 분이 또 없음을 선포하겠다까지 한다. 바로 이러한 이드로의 고백이 본문의 핵심이다. 그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었지만 그간 희미하게만 알고 있던 하나님의 절대성에 대하여 이제는 확고한 깨달음을 얻었다.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친히 행하신 일들을 상세히 전해 듣고 이로 인하여 희미한 믿음이 아니라 분명한 믿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희미한 신앙이 아니라 분명하고도 확고한 신앙으로 자리새김하게 되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본문의 말씀들은 주의 몸된 교회가 점점 확장되어가는 과정들을 보여준다. 먼저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어떤 놀라운 일들을 베푸셨는지를 분명하고도 상세하게 가르쳐야 한다. 분명하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하고 그것이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전해들은 자들이 이드로처럼 이와 같이 놀라운 일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 하나님을 영접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교회의 확장이다. 이를 위해서 교회의 지체인 성도는 먼저 경험한 구원의 은혜를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교회를 찾아오는 자들과 교회 안에서 자라가는 어린 영혼들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가르쳐야 한다. 바라옵기는 우리 교회가 이러한 일들이 풍성하게 일어나는 교회되기를 축복한다. 여러분의 삶이 이와 같이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선포가 풍성히 일어나길 축복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을 통하여, 그리고 우리 교회를 통하여 제2, 제3의 이드로와 같은 자들이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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