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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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고전 10:23-33
제목 : 삶의 목적
찬송가 216장
찬송가 352장
오늘은 ‘삶의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삼위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온 우주와 하늘과 땅, 그리고 그곳에 있는 모든 피조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시고 뭐라고 표현하시죠? 보시기에 좋았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째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사 43:7, 개정)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시 19:1, 개정)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것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이 목적에 따라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통치의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결국 창조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대요리 문답 제 1문에는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질문하는데 그 답은 ”사람의 첫째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창조의 목적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이러한 목적을 알지도 못하며 행하지도 못합니다. 그러기에 스스로 자신만의 목적을 따라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과연 사람이 참된 만족과 기쁨이 올까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따라 살지 않는다면 아무리 돈이 많아도, 권세가 높아도, 이 땅의 자신의 목적을 이룬 삶을 살아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런 목적으로 창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만드신 하나님만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정확히 아십니다.
여러분 모두다 핸드폰 있으시죠? 요즘 핸드폰에 참 많은 기능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핸드폰을 잘 알고 사용하려면 뭘 봐야 합니까? 설명서를 봐야 합니다. 설명서는 핸드폰을 만든 개발자들이 이런이런 기능이 있다고 알려주는 방법입니다. 이처럼 핸드폰에 대해 잘 알려면 개발자들이 만든 설명서를 봐야하듯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면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사람을 만드셨는지 알고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정말로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님들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입니다.라고 딱 대답해야지요. 맞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었고, 이제 우리는 창조하시고 이 땅에 보내신 목적까지도 바르게 깨달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그렇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삶이고 우리가 가장 복되게 살 수 있는 삶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 31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네 오늘 말씀에도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고린도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여러 문제도 있었지만 이 본문에서는 8장부터 시작 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과 우상 숭배에 대한 내용의 결론으로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당시 고린도의 상황을 조금 알아야 하는데, 그 당시는 대부분의 모든 사람이 신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당시에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을 보고 미개하다거나 무식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상황은 오히려 반대이지만 말이지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도시의 수호신 즉 우상을 섬깁니다. 그 당시 사회가 이렇다보니 시장에서 파는 고기의 대부분이 바로 신전에서 신에게 바치는 의식을 거친 후 도축되고 시장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바로 그런 우상들이 허락해 줬다는 것이죠. 그래서 신전에서 의식을 치룬 후 고기가 도축되고 그런 도축된 고기들이 시장에 나왔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것도 가끔은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게 도축된 고기들이 시장에 나와서 판매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사먹어야 합니까? 아니면 우상에게 바쳐졌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먹지 않아야 합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런 질문이 충분히 생길 수 있잖습니까.
그러한 질문에 바울의 답변은 10장 25절에 보면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답을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죠? 26절 말씀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입니다. 그러기에 그것들은 다 좋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은 그 자체로 깨끗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아무 거리낌 없이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먹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8장 7절에 보면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도 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고전 8:7, 개정)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그들은 아직도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믿음이 약해 우상이 영적인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도 부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우리가 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믿지만 믿음의 초보를 벗어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잘 알지 못하며, 여전히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세상적 가치와 우상적인 생각을 하나님께 대입하려는 시도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그 분이 누구인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고 행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계속해서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알아가길 힘써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오늘 사도 바울은 지식이 있는 자에게도 권면하고 있습니다. 8장 9절 10절 말씀입니다.
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아무리 지식이 있는 사람이고 할지라도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을 조심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에 보면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이라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그 당시에는 매년 정기적으로 그들의 수호신들에게 제사하는 축제를 합니다. 그때 길드에 속한 모든 사람들과 가족들이 함께 축제에 참여하면서 신전에서 먹고 마십니다. 당시에 길드는 쉽게 말하면 뭐 함평지역에 축산조합, 농업조합, 산림조합 뭐 이런 것들입니다. 그런 조합마다 섬기는 수호신이 있고 매년 신전에 가서 축제를 하는거지요. 조합 즉 길드는 자신의 사업, 생계유지와 관련이 있으며 이런 축제를 가서 참석해야 사람들에게 알리고 친분도 가지고 사업도 더 잘되고 하는거지요. 그리고 당시에도 이런 축제가 되어야 잔치자리에서 고기를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고기도 마음껏 먹는 잔치자리인 것이죠. 그런데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심지어 이런 자리까지 참여해서 아무것도 아니니깐 그런 신전 축제까지 참여하며 먹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까지 참여하는 것은 결국 믿음이 약한 자들이 넘어지게 하는 일이며 본인까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될 위험이 있음을 경고합니다.
결국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첫 번째는 내 자유로 인해서 다른 약한 사람이 넘어질 수 있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지식의 교만으로 자기 자신이 우상숭배에 빠질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10장 23-24절 말씀읽어보겠습니다.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그리스도께서 자유를 주셨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자유는 모든 것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자유는 오로지 남의 유익을 구할 때 교회를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결론이 31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은 결국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가지고 방종이나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사용하지 말고 교회를 위해 약한 자들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은 삶의 목적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교회를 세우며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삶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한국의 상황에 그 유비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음식(술, 담배 등)이나 문화적 표현들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기독교적 윤리의 대원칙들, 즉 사랑의 이중계명(막 12:28~34 / 마 22:35~40 / 눅 10:25~28)에 전혀 어긋나지 않음에도 통념상 그런 것들을 터부로 보고 율법주의적으로 피하는 사람들을 흔히 믿음이 좋은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이 사랑의 이중계명에 대한 순종이 걸린 큰 윤리적 문제들(예 맘몬 우상숭배에 빠져 이웃을 착취해서라도 과도한 부를 쌓으려는 행위, 투기, 세금 포탈, 뇌물 받기, 나쁜 물건이나 서비스 제공, 사기)은 소홀히 하면서, 기독교 윤리를 기껏 해야 술 담배 안 하는 것으로 축소하여 생각하고 그런 것들에만 율법적으로 집착합니다.
그러나 술이나 담배 같은 음식이나 기호품도 철저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원칙들에 의거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담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몸의 건강을 해칩니다. 또 옆에 있는 이웃의 건강까지도 해치니 삼가야 할 것입니다. 하루 한 잔 정도의 술은 건강에 좋다고 의학은 말하고 있고, 이웃과의 관계 증진에도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정도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술을 많이 마시면 정신이 혼미해져 죄를 짓기 쉽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신 몸이 건강치 못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드리지 못하고 가족에게 부담만 지우고, 이웃과 다투고, 심지어는 처자식에게 폭력을 휘둘러 우리가 사랑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해악만 끼치니 아주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8~10장의 바울의 가르침에서 유비를 도출하여, 한 잔 정도의 술을 즐기는 것을 그리스도인의 자유임을 깨달은 사람들도, 절대로 술 마시면 안 된다는 “약한”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있을 때는 그들의 연약한 양심을 손상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 자유를 자제하는 것이 이웃 사랑의 원칙이 요구하는 바입니다.
이런 연약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을 바울은 믿음이 좋은 자들이라거나 “강한 자들”이라 하지 않고 “약한 자들”이라 합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터득해야 하고, 그 지식이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그리고 자신의 좁은 식견에서 나오는 맹목적인 율법주의로 이웃을 비판함 (이웃 사랑 원칙에 위반)을 자제하도록 성숙해져야 합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리려는 강한 자들은 자신의 행동이 과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원칙들에 합당한가를 잘 헤아려 그 자유를 책임감 있게 누려야 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무너뜨리며 많은 약한 사람들을 걸려 넘어뜨리게 하는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통합측의 명성교회 세습이 총회에서 허용으로 수습안이 결정됐다고 합니다. 총대 1204명 중 920명이 찬성에 투표를해서 76.4퍼센트로 이런 수습안이 통과되었다고 합니다. 어느정도 교단재판국을 인정해 부자세습이 불법이라는 것을 부분 수용했다면서 2021년에 아들이 위임목사로 청빙된다고 합니다. 불법인데 명성교회만 허용이 된다? 말이 안되지요 백번 양보에서 합법이라고 합시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저는 이런 결정이 합법이냐 불법이냐라는 사실을 떠나,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며 연약한 많은 사람,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웠으며 오히려 그 영광이라는 이름을 이용하며 자신의 세습을 이루어냈다는 것입니다.
(고전 10:32, 개정)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고전 10:33, 개정)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여러분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의 목적,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거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세우며 이웃을 위해 자유를 사용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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