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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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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골 3:1-4절
제목 : 위의 것을 찾으라!
찬 257장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찬 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늘은 “위의 것을 찾으라!”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추석명절은 어떻게 잘 보내셨습니까? 코로나 때문에 보지 못한 가족들도 많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2020년 남은 날들을 주님을 바라보시고 붙드시는 우리 모두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주님을 붙들어야 한다.’ 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배웠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골로새 성도들을 율법을 가지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비판 받을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죠. 왜냐하면 율법은 그림자이며 실체이신 그리스도가 이미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받은 구원은 완전했으며 더 이상 보태거나 짐 지울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또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천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환상을 본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자신들의 영적 수준을 보여준다고 착각했죠. 하지만 신앙의 본질은 이런 신비한 체험이 아니라 바로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것임을 강력하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고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은 율법의 준수나 신비한 체험을 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모든 삶의 자리에서 붙들며 의지하는 삶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붙드는 삶은 실제적으로 어떤 삶을 말할까요?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드는 삶은 추상적인 삶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 우리의 삶에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버립니다. 그 실질적인 권면이 바로 오늘 본문인 3장부터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은 3장 1-4절인데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붙드는 삶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권면하고 그 이유들을 진술합니다. 1절 말씀 한 번 더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골 3:1, 개정)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그리스도를 붙드는 삶은 한마디로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왜 우리가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소속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는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어디에 계십니까? 네 오늘 본문 말씀처럼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앞서 살펴봤던 2장 12절 말씀을 보면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에베소서 2:4-6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제 우리의 소속은 이 땅이 아닌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속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하늘에 속한 자로서 위의 것, 즉 하늘에 속한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위의 것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요? 하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소속이 어디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어디에 속한, 즉 소속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는 크게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부터 회사, 학교, 직업, 가족, 정치적 이념, 마을 등 여러 가지 소속 가운데 우리는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소속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하며 그 가치를 위해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에는 많은 집단과 소속들이 존재하지만 성경에서는 신기하게도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을 두 부류의 소속으로 분류합니다.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 사탄의 권세 아래 있는 자와 하나님 권세 아래 있는 자, 사탄의 자식들과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속한 사람들입니까? 바로 이 땅이 아닌 하늘, 즉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이 추구하는 가치가 아닌 하늘의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분명히 기억하라. 너희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하늘에 속한 자이다. 그러므로 “위의 것을 찾으라” 라고 말하는 것이죠.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위의 것을 찾는 것에 대해 두 부분의 명령문으로 우리에게 말합니다. 1절에서는 “위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십시오”, 2절에서 “땅에 있는 것들이 아닌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집중하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은 위에 있는 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해야 하며 땅의 것이 아닌 위에 있는 것에 마음을 집중해야 합니다.
1절에서는 위의 것들을 찾으라 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찾으라 라는 말은 원래는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여기서 찾다라는 말이 의미가 똑같습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위의 것을 찾으라 할때는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찾다는 의미보다는 알려진 무엇인가를 얻기 위하여 의지를 가지고 계속해서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과는 완전하게 구분된 신자의 삶의 방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소속되냐에 따라 그 집단의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 이며 하늘에 속한 자는 반드시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죠.
여러분들은 어디에 있는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십니까? 하늘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땅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그리스도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위의 것, 즉 하늘의 것인데 이것이 무엇일까요?
하늘의 것이란 바로 하나님 나라에 속한 가치들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14:17-18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절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즉 위의 것을 추구한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의와 평강과 희락을 이 땅 가운데 이뤄내는 것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거에요. 의는 무엇이죠? 옳은 것, 하나님께서 옳게 여기시는 것,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의를 추구하는 삶이에요. 또 하나님의 평화를 이 땅 가운데 이뤄내는 것, 하나님이 베푸신 것에 대해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 이것이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이에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나 또는 세상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 기뻐하시는 뜻을 우리가 추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2절에 이 위의 것이 철저하게 땅의 것과 비교되고 있습니다. 2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여기서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생각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생각하다라는 단어는 “열망하다”, “마음을 집중하다”, “마음을 두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것을 소유하려고 하는 갈망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 위의 것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생각, 즉 마음으로부터 이것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마음을 쏟고 있고 열망하는 것을 실제로 삶에서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은 반드시 먼저 마음 자체를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위의 것을 추구하고 갈망하고 생각하는데 몰두해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위의 것을 열망하고 추구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2절에서는 위의 것과 대조되는 땅의 것은 생각하지 말라라고 합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라.
그렇다면 땅의 것은 무엇입니까? 위의 것과 대조되는 영원하지 않은 사라질 것들을 의미합니다.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사탄과 함께 멸망할 즉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들 즉 음란, 더러운 것, 정욕, 악한 욕망과 탐욕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땅의 것으로부터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얼마나 땅의 것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그것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것들이 세상의 풍조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땅의 것들을 추구하며 그것들을 위해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집니다.
얼마 전에 추석 명절을 보냈죠. 뭐 명절이 되면 가족들도 만나고 친구들도 만나게 됩니다. 보통 만나면 무슨 이야기 하십니까? 대부분 학생들은 뭐 게임이야기, 어른들은 직장 뭐 자식이야기 부동산, 제테크, 주식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실거라 생각합니다. 최근에 뉴스를 보니깐 주식에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유투브에 보니깐 주식에 관한, 제테크에 관한 것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올라오고 사람들이 관심도 많이 갖습니다. 주식을 통해 재산을 증식하고 그것으로 뭐 노후를 준비하는 그런 것들을 사람들이 많이 생각하고 투자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는 것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십시오.
주식에 투자를 합니다. 적은 돈이든 많은 돈이든 재산은 소중하잖아요. 그것을 투자한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에너지와 마음과 시간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매일 마다 얼마가 올랐는지 떨어졌는지 할 수밖에 없고요. 어떻게 하면 주식 투자를 잘할 수 있을지 연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그것에 자연스럽게 매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주식을 통해 재산을 증식했다고 해요. 그럼 그것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줍니까? 세상에서는 재산이 우리의 노후를 보장해준다고 말하지요. 물론 자본주의 나라에서 이 자본이 갖는 힘을 우리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본이 결코 우리의 노후를 평안하게 기쁘고 행복하게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돈 많은 사람이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이 아닌 것을 우리는 이미 보고 있고 알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없어질 땅의 것에 모든 것을 쏟을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거기에는 없다는 것이죠. 왜요? 그것은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곧 망해 사라질 기업에 투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투자로 비유해서 죄송한데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에 대한 비유를 하시면서 아주 재밌는 비유를 하십니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성도는 바로 이 천국의 가치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그 가치를 발견한 사람은 어떻게 하죠?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라도 훨씬 더 가치 있는 그 하나님 나라를 소유하려고 하죠 그리고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죠.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에서 이렇게 고백하죠. 7-8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세상적인 것들이 그리스도를 알고 난후 그것들의 가치가 똥처럼 여겨졌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라는 너무나 값진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위의 것을 추구하고 그런 가치 있는 일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잠깐 있다 없어질 안개와 같이 짧은 것이죠. 여러분 이러한 가치를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셨습니까? 세상이 주는 거짓에 속지 마십시오. 땅의 것들을 그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서 무엇을 기뻐하실지 그것을 생각하고 고민하고 갈망하시고 선택하시고 순종하시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를 한 가지 더 말합니다. 3,4절 말씀입니다.
(골 3:3, 개정)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 3:4, 개정)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것들에 마음을 집중해야 할 이유를 계속해서 제시합니다. 앞 절에서는 골로새 성도들의 과거의 초점에 맞췄다면 3-4절은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현재 우리는 3절 말씀처럼 하나님께 살아 있는 생명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지금 어디 있다고요?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다” 여기서 감추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생명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감추어진다는 것은 안전과 보호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장막이나 은밀한 곳에 감추심으로써 그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 안에 안전하게 감추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이 생명이 완전히 나타날 때까지 누구도 그 생명을 빼앗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심지어 죽음조차도 우리의 생명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 안에 우리의 생명이 감추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의 것을 마음껏 추구하는 삶을 살아도 됩니다.
더 나아가 4절에서는 현재뿐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우리가 위의 것을 찾아야 할 이유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바로 장차 임하실 그리스도의 재림 때문에 우리는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의 이유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서 모든 시간 속에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핑계할 수 없고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이 땅에서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은 미련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땅의 것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땅의 것을 추구하는 인생이 지혜롭다고 평가 받는 곳입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하고 나면 누가 미련했고 누가 지혜로운 삶은 살았는지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앞에 담대함을 갖을 것이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모르며 그분을 대적하며 땅의 것을 추구했던 인생들은 동굴들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서 두려움으로 몸을 떨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위의 것을 추구하는 인생은 결코 미련한 인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진짜 보물, 참된 가치를 발견한 인생이지요. 우리가 위의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해서 이 땅에서의 삶이 비참한 것도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먹이시고 입히시고 안전하게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능력이 없거나 팔이 짧은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아버지는 만물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손으로 힘으로 돈으로 명예로 지위로 자신들의 안위와 미래를 보장받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되지 않는 것이 이 땅에서의 삶입니다. 세상이 주는 가치에 속지 마십시오. 위의 것을 찾으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참된 가치인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우리의 마음, 생각, 시간, 에너지 모든 것을 드리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드리시길 소망합니다.
(빌 3:18, 개정)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 3:19, 개정)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빌 3:20, 개정)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1, 개정)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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