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

누가복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3 views
Notes
Transcript
말씀 : 누가복음 18:9-14
제목 :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
찬 180장, 310장
오늘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요즘 부쩍 추워진 것 같은데 함평에는 첫눈이 왔습니까? 저는 월요일날 천안에 올라가서 첫눈을 맞이했습니다. 추운 날씨에 건강관리 잘하시고 이제 2019년도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새해를 준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는 사람을 판단하는 여러 기준들이 있습니다. 2019년 신랑감 1위의 직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생각에는 변호사, 의사 일 것 같잖아요. 공무원이라고 합니다. 신부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결혼상대를 안정성이라는 기준으로 고르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직업은 공무원이지만 배우자로 가장 중요한 점의 1위는 바로 성격이었습니다. 성격이 배우자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성도님들은 동의하십니까?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자신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라 다른 사람을 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따라 어떤 사람을 존경하거나 높게 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낮게 혹은 하찮게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인로서 중요한 것은 나의 기준이나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사람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옳게 여기실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에만 등장하는 우리가 한번쯤을 들어 봤을만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중요한 진리를 교훈하고 계십니다. 이 비유를 듣는 대상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9절 말씀 읽어볼게요.
(눅 18: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이 비유의 대상이 누굽니까?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의 대상이 됩니까? 안됩니까? 안되어야겠지만 누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우리는 있습니다. 여기서 의로움은 결코 하나님께서 의롭다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 생각에 의해 확신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스스로 의롭다고 믿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멸시하게 되어있습니다. 스스로의 의로움은 반드시 형제 위에 자신을 놓게 됩니다.
오늘 본문 전에 보면 과부와 재판장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1절에 제자들을 향해 기도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지금 이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있는 청중들은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17장 20절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있었으니 몇몇 바리새인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청중들은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몇몇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교훈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교훈을 주고 계십니다.
오늘 비유에서는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바로 바리새인과 세리입니다. 이 두사람은 기도하기 위해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바리새인과 세리는 어떤 인물입니까?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책망이나 평가 때문에 바리새인은 나쁜놈, 세리는 착한놈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당시 바리새인은 대부분의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주 경건한 율법의 선생입니다. 그들을 말로만 율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으로 행동으로 율법에 순종하며 철저하게 삶으로 가르친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이에요.
이와 반대로 세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세리라는 말만 들어도 그 당시 사람들에게 혀를 차게 되는 인물입니다. 매국노죠 매국노 쉽게 말하면 우리나라 이완용과 같습니다. 이완용 이름만 들어도 우리의 마음이 어떻죠?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 천하의 죄인 이렇게 생각합니다. 세리도 똑같습니다. 세리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입니다. 그들은 로마를 위해 일했으며 상인과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으면서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하고 그 남은 백성들의 혈세를 통해 이윤을 챙기는 아주 천하의 죄인입니다. 이런 사람이 세리입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는 비유를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그 당시 두 인물을 통해 교훈하고 계십니다.
이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올라갔습니다. 헤롯 대왕이 지은 헤롯 성전이라고 불리는 성전입니다. 성전에 올라갔다는 표현은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곳은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 바리새인과 세리는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 올라갔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공적인 시간은 오전 9시와 오후 3시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도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기 위해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사람을 고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니깐 기도하러 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당시 유대인들이, 청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상적인 모습을 소재로 교훈하셨습니다.
먼저는 바리새인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11-12절 말씀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눅 18: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눅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바리새인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그 감사의 이유는 자신이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들 그리고 저기 기도하고 있는 세리와 같지 않음입니다. 여기서 토색이란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토색은 사기꾼, 강도 짓,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의는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모든 죄를 가리키구요, 간음은 특별히 성적인 죄를 의미합니다. 자신이 그런 사람들과 같지 않음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기도하러 온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어떻게 한다고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한다. 바리새인은 금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레는 며칠입니까? 일주일입니다.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바리새인은 금식했습니다. 혹시 여러분 한 주에 몇 번이나 금식하십니까? 한 주에 두 번을 금식했다는 것은 율법이 명한 것보다 초과해서 율법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금식을 명하고 있을까요? 아닐까요? 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이 금식할 것을 명합니다. 또 뭐 에스더서에 부림절을 기념하는 금식도 나오구요 이런 연례적인 금식 외에 개인적으로 애도, 회개, 탄원에 대한 금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바리새인은 한 주에 2번은 꼭 금식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모세가 월요일에 시내 산에 올라가서 목요일에 내려왔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날은 꼭 금식했다고 합니다. 또 바리새인은 무엇을 했지요? 십일조를 했습니다.
자신의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한글 번역으로는 소득의 십일조 인데, 원어로는 소득 앞에 ‘모든’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그러니깐 자신의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십일조를 분명히 명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7:30-32, 민수기 18:21-24절, 신명기 14:22-27절에 나옵니다. 보통 어떤 특정한 농산물에 대해 십일조를 바치라 명합니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서 소득의 모든 것, 박하와 운향과 채소에 대한 것도 심지어 자신들이 먹는 음식까지도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얼마나 경건합니까?
여러분은 이 바리새인의 기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교만한 기도입니까? 아니면 아주 경건하고 이상적인 기도입니까? 이것은 우리의 평가는 부차적인 문제이고 그 당시 듣는 청중들은 경건한 바리새인이 하는 이 기도를 너무나 이상적이고 모범적인 기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음 13절에는 세리의 기도가 등장합니다.
(눅 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그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며 죄인으로 낙인찍힌 사람입니다. 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그는 성전에 올라갔지만 멀리 떨어져 서있습니다. 그곳에 서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눈과 손을 하나님을 향해 올리고 기도하는 것이 기도의 자세인데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자신의 가슴을 칩니다.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그의 기도의 내용은 사실 많은 것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주 수려하고 멋진 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부끄럽고 죄인인 모습을 그대로 고하며 애통해하며 가슴을 치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철저하게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14절에 예수님께서 평가를 내리십니다.
(눅 18: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저 바리새인이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말을 청중들에게 너무나 충격적인 결론이었습니다. 모두가 다 경건하다고 생각하고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고 모범적인 바리새인이 아니라 저런 매국노, 천하의 죄인, 몹쓸 쓰레기 같은 인간이 하나님께 옳다하심을 받고 내려갔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기준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그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만 그 감사 기도의 내용에는 결코 하나님께서 하신일이 없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내가 저런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나는 금식과 십일조를 잘했다는 것입니다. 이게 기도의 내용 전부였습니다. 나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 그의 기도의 전부입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하찮게 여기거나 깔보았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세리의 기도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했습니다. 자신의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죄인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임을 고백했습니다. 이 세리가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갔습니다.
이 예수님의 교훈은 하나님의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옳게 여기시는가? 어떤 사람을 의롭다고 생각하시는가?
우리가 생각하기에도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나름대로의 의인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아주 선한 인품을 갖은 사람, 부모님께 효도를 잘하는 사람,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는 사람,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사람, 십일조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사람이겠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이런 행위로 우리를 옳다 여기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바리새인처럼 이 모든 행위가 나를 자랑하거나 내 공로가 되거나 내 공로를 통해 은근슬쩍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깔보고, 정죄하는 마음으로 자리 잡았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내가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은혜를 간절히 구하는 사람, 그 은혜 때문에 정말로 감사하며 봉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옳게 여기십니다.
사람이 볼 때 바리새인과 세리는 한명은 의인이고 한명은 죄인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 바리새인과 세리는 둘 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자비가 아닌 자신의 공로를 자랑했으며 세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철저히 자신의 죄인 됨을 인정함으로 시작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너무 먹고 살만해서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립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도 인지하지 못하구요. 하나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도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해도 조금만 이따 오시라는 생각을 하구요. 내 일상 삶에서는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지만 죽음 이후 혹시 모를 지옥 때문에 천국을 보장 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자신의 죄인 됨을 철저히 깨닫게 됨으로 회심이 시작됩니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끔찍한 삶을 살았으며, 더러우며, 비참하며, 부끄러우며, 내가 하나님이 아니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믿음으로 의롭다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이것은 믿고 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시다. 지금도 여전히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 내 마음을 빼앗기는 것과 죄악에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자비를 간절히 구하는 자를 옳게 여기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런 자를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우리는 결코 바리새인처럼 자신의 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간절히 구하며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남은 한 주간의 삶이되길 소망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