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비결

사무엘하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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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승리의 비결
말씀 : 삼하 5:17-25절
찬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찬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오늘은 “승리의 비결”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는데, 건강 조심하시고 더 나아가 이 시간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잘 듣고 순종함으로 승리하는 한 주 되길 소망합니다.
지난 주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왕이 되고 처음 한 일은 바로 예루살렘을 점령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통해 평화의 참된 터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400년간 누구도 점령하지 못한 예루살렘, 다윗은 여부스 족속을 몰아내고 그곳에 다윗의 성을 건축했습니다. 너무나도 안정된 왕국의 모습을 갖추어갑니다. 하지만 이런 기분 좋은 상황에 또 다른 문제가 그에게 아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삼하 5:17, 개정) 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블레셋 이름만 들어도 지긋지긋하지 않습니까?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블레셋이 그를 찾아옵니다. 다윗 왕의 전 왕이었던 사울, 블레셋 군대에게 패배하며 그들의 손에 처참히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렇다면 블레셋에게 다윗이라는 사람은 어떤 존재입니까? 얼마 전까지 자신들의 수하들 중 한명 이었습니다. 다윗은 도망자 시절 블레셋으로 망명한 후 아기스 밑에 들어가서 시글락 성에서 조공을 바쳤던 사람입니다. 블레셋은 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됐다는 소식을 듣자 군대를 이끌고 찾아옵니다. 지금 블레셋은 결코 다윗이 왕 되었음을 축하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를 찾아 죽이기 위해 이스라엘을 자신들의 종 삼고자 군사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 블레셋 군사들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 다윗은 어떤 선택을 합니까? 19절 말씀입니다.
(삼하 5:19, 개정)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다윗의 선택은 이 위기에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다윗 왕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무기를 주로 사용하는지,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을 것입니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자신의 판단을 의지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각과 뜻을 따라 먼저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사울 왕처럼 신접한 여인도 그는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이 문제의 해결이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으며, 그에게 물어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요?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다윗은 이 말씀을 듣고 그들이 진치고 있던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그들을 치고 대적을 무찌릅니다.
여기서 문제는 끝나지 않습니다. 이미 한 번 패했던 블레셋, 그들은 이 패배에 결코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수하에 있던 다윗에게 자신들을 졌다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다시 블레셋은 군대를 이끌고 다윗에게 찾아옵니다. 지금 블레셋이 쳐들어온 상황은 이전과 똑같습니다. 22절에 그들이 진을 친 곳이 어디입니까? 르바임 골짜기입니다. 바로 전에 일어났던 전투와 똑같이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히 진을 쳤습니다. 지금 첫 번째 전투와 같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굳이 하나님께 물을 필요가 있습니까? 없잖아요. 그냥 똑같이 치면 이길거라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문제 상황이 전과 같다고 해서 묻지 않고 전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만약 묻지 않았다면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똑같은 상황에서 다윗의 물음에 전혀 다르게 대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대답하셨죠? “올라가라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이번에 하나님께서 주신 응답은 어떻게 하라? 기습 공격에 관해 지시하셨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삼하 5:23, 개정) 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다윗의 물음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상황은 똑같았지만 블레셋의 후미로 군대를 이동시켜 그들을 기습 공격하라 응답하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그 강력한 블레셋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이 두 번의 전투 다윗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그의 승리의 비결은 ‘순종’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은 결코 다윗의 전략이나, 군사력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순종이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이 무엇입니까? 순종의 의미를 잘 알 수 있는 구절은 바로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했던 말입니다. 사무엘 상 15:22절 말씀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여기서 순종이라고 번역 된 원어는 ‘솨마’ “듣다”라는 의미이고 ‘듣는 것’이라고 번역 된 단어는 ‘카샤브’ ‘귀를 기울이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즉 순종은 듣는 것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전쟁을 앞둔 다윗 왕은 여호와께 묻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함입니다. 순종의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목소리를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 순종의 시작입니다.
신약에서 순종이라는 말을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하는데, 휘파쿠오, 휘포(밑에서) 아쿠오(듣다) 그 뜻은 “아래에서 듣다”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불순종이라는 어떻게 되냐면 파라코에, 파라(옆에), 아쿠오(듣다). 바로 “옆에서 듣다”라는 말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은 미세한 차이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이 내 위에 있음을 인정하고 나는 그분의 아래에 서서 듣는 것입니다. 반대로 불순종은 하나님의 뜻이 내 옆에 있습니다. 내 옆에 있다는 것은 나와 동등한 권위라는 것입니다. 그 뜻은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내가 판단해서 좋으면 듣고 아니면 듣지 않아도 되는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여러분은 순종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불순종하고 계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듣는 것을 싫어합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더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내가 인생의 전문가가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경험하고 살아온 인생이 길기 때문에 이미 전문가가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듣지 않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살아온 인생이 자신에게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선배의 말이 중요합니까? 중요하지 않습니까? 왜요? 이미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은 어떻게 하지요? 선배의 충고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대로 하다가 실패합니다. 그 때 가서 후회합니다. 그 때 선배말대로 할 걸하고 말이지요.
오전 예배 시간에 계속해서 선지자 요나에 대해 살펴보고 있습니다. 요나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 말씀을 받은대로 말하는 것이 선지자의 직무입니다. 그런데요 요나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을 해도 도무지 들어먹질 않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 고집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 아래에서 순종함으로 들으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듣고 말씀을 옆에 두고, 그래 어디 한번 들어보자 들어보고 내 생각에 맞으면 순종하겠다. 이것은 명백한 불순종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인생 후배 취급합니다. 하나님 그렇게 행하면 아무것도 안됩니다. 세상 내가 살아보니깐 그렇게는 안 되던데요. 제 일은 제가 더 잘 압니다. 아니 목사님 영 세상물정 영 모르시는 소리 하십니다. 이런 생각 해보신적 없으신가요? 이것은 뭡니까? 바로 불순종입니다.
그럼 다시 다윗의 상황으로 돌아와봅시다. 블레셋이 쳐들어왔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대처할지 몰라서 하나님께 물었을까요? 다윗은 20년간 도망자 생활을 하면서 오만가지 일을 다 겪었을 것입니다. 도망다니면서 블레셋의 수하로 있으면서 자신의 부하들과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뤘습니다. 그의 나이는 젊지만 전쟁에 있어서 베테랑이었습니다. 20년정도 됐으면 굳이 하나님께 물어야 할까요? 부하들과 손발 잘맞으니깐 전쟁준비를 하고 싸우면 되지 않습니까? 두 번째 전투가 일어납니다. 전과 똑같이 그냥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굳이 두 번이나 하나님께 물어야할까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 묻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듣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 아래서 듣습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께서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새벽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들으셨습니다. 그분이 뭐가 모자라서요? 아무것도 모르셨기 물으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순종하신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를 지시기전에도 하나님의 뜻을 묻고 듣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청종했습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그의 순종은 무엇을 가지고 왔냐?
롬 5: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다윗의 순종은 블레셋 군사들을 이기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순종은 세상의 권세 잡은 사탄을 물리치며 믿는 모든 사람들이 의인되는 능력이었습니다. 순종은 능력입니다. 이번 한주 하나님의 말씀 아래서 들을 수 있는 순종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순종의 모습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본문 두 번째 전투에는 아주 인상적인 모습이 등장합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삼하 5:24, 개정) 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똑같은 상황의 두 번째 전투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 즉 뒤를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여기서 뽕나무라고 번역된 단어는 ‘베카임’을 번역했는데 이 뜻을 눈물, 울다라는 어근에서 나온 발삼 나무라고 하는 나무입니다. 즉 이 발삼나무는 울다라는 어근에서 파생된 것처럼 바람이 불 때 요란한 소리를 내는 나무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변의 산은 오늘날보다 더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다고 합니다. 바람이 불 때 발삼 나무숲이 내는 요란한 소리를 냅니다. 그래서 그곳을 통해 지나가는 다윗 군대의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이 발삼 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공격하라 합니다. 바람이 불 때 발삼나무의 잎과 가지들이 서로 마찰하면서 내는 소리가 마치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이 발자국 소리는 하나님께서 바로 이스라엘 군대보다 앞서 행하신다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 발삼나무의 발자국 소리는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의 군대에 앞장 서서 가시며 그때 돌격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 이것은 순종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순종은 하나님께서 앞서 가신 길을 뒤 따라 가는 것입니다. 내가 개척하고 알아낸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아닌 앞서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누가 앞서가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앞서가셨습니다. 본문 5장 10절에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셨다’ 대장되신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스라엘 군대의 선봉에 서서 진격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군대는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것이 바로 순종입니다. 이 땅에 진정한 왕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선봉에 스셔서 믿음의 삶을 앞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백성은 그의 뒤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여러분 제자는요 반드시 스승의 가르침과 그의 삶을 따르는 사람이 제자입니다.
누가복음 14:26-27절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우리의 왕이시며 참된 스승되신 예수님께서 가신 길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순종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며 십자가를 지고 따라는 삶 그것이 바로 참된 순종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갑시다. 믿음의 선진들이 갔던 그 길을 따라갑시다. 이번 한주의 삶이 예수님만을 쫓아가는 순종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마지막입니다. 따라해보겠습니다. ‘순종은 합당한 길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일은 결코 상식적이지 않거나 이성적이지 않은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순종은 가장 합당한 길입니다. 두 번째 전투에서 하나님은 다윗의 물음 앞에 뒤에서 기습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순종요구는 항상 우리가 이해하지도 못할 비상식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필요에 따라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독자 이삭을 바치라던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7바퀴 돌으라고 명령하시는 것,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이성과 반대되는 일이 아니라 이성을 뛰어넘는 기적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항상 이런 방법을 사용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명령하신 기습 작전은 다윗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합당한 전투 전략이었습니다. 우리는 믿음, 순종을 이성, 상식과 반대되는 말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비상식적이고 이성적이지 않는 분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자연에 법칙을 만드셨습니다. 모든 만물의 질서도 이성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순종과 이성은 대립적인 것이고 반대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순종이 가장 합당하고, 이상적인 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미친 짓, 말도 안 되는 행위를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순종은 아들이 부모님의 뜻을 받는 것과 유사합니다. 여러분들은 부모의 입장으로서 자식에게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순종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자식에게 가장 좋은 길을 알려주며 그것에 순종하길 원하십니까?
아버지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우리에게 가장 합당하며 좋은 길임을 알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자식들이 불행하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길보다 좋은 길로 가길 원하십니다.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그러한 삶을 경험해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을 듣고 순종하면 불행해집니까? 아니잖아요. 오히려 평안하잖아요. 기쁨이 넘치잖아요. 오히려 내 뜻대로 내 판단대로 살았던 삶을 돌아보면 얼마나 불행했으며, 불안했으며 불편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하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행하십시오.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우리 삶 가운데 넘칠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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