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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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몬 1:1-7절
제목 : 믿음과 사랑
찬 70장 피난처 있으니
찬 336장 환난과 핍박 중에도
오늘은 ‘믿음과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 전하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여러분 제가 질문하나 하겠습니다. 성도님들은 닮고 싶은 신앙의 선배가 있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인물도 좋고 아닌 사람도 상관 없습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닮아야 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신앙 선배들은 모습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교훈과 감동을 줍니다.
저는 얼마 전에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의 일생에 대한 글을 간략하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일제 치하 가운데서도 신앙 가운데 자라셨고 바른 신앙으로 일본의 황제를 숭배하는 신사참배도 끝까지 반대하신 우리의 신앙의 선배입니다. 무엇보다 참 하나님을 믿는 그의 믿음은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잘 알 듯 그는 여수 애양원 교회에서 1000여명의 한센병자들과 함께 하셨고 그들에게 복음과 사랑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두 아들을 죽인 사람마저 입양하여 아들로 삼는 놀라운 사랑을 보여주셨죠. 그리고 그는 1950년에 6.25, 한국전쟁 당시 피난가지 않고 교회를 지키다가 48세의 젊은 나이에 공산군에 의해 총에 맞아 순교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 어려운 시기에 믿음과 사랑을 겸비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손목사님처럼 위대한 신앙의 선배들을 따라 그리스도를 더욱 더 닮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골로새서 말씀을 다 살펴보고 오늘은 빌레몬서로 넘어왔습니다. 빌레몬서는 골로새서와 연관이 많은 서신입니다. 지난 시간에 골로새서를 로마의 가택 연금되어 있던 사도 바울에게서 받아 전달할 사람이 누구였죠? 바로 두기고와 오네시모였습니다. 두기고와 오네시모는 골로새서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총 3개의 서신을 교회에 전달해야 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에베소 교회에 전달했고 골로새서는 골로새 교회에게, 빌레몬서는 골로새 교회에 빌레몬에게 전달한 편지입니다. 빌레몬서는 특이하게 1차 수신자가 교회가 아닌 빌레몬이라는 골로새 교회에 속한 한 개인에게 쓴 편지입니다. 물론 이 편지는 빌레몬이 읽었겠지만 결국 골로새 교회 전체가 읽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빌레몬이라는 인물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빌레몬은 골로새 도시에 사는 사람이며 골로새 교회에서 존경받는 교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절에 보면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 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즉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인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는 모임의 장소로 자신의 집을 제공할 만큼 큰집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은 사업을 위해 에베소로 갔다가 거기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만났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에 보면 에베소에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복음을 전파했었습니다. 빌레몬은 거기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로 돌아와 바울의 파송을 받고 에바브라와 협력했을 것이고 자신의 집을 교인들의 예배와 교제를 위한 장소로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은 교인들을 돌아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하였습니다. 물론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에바브라가 감당했을 것입니다. 에바브라가 사도 바울을 만나기 위해 로마로 떠난 뒤 아킵보가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 역할을 이어받았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에서 에바브라와 아킵보의 사역을 돕고 교인들을 돌아보고 믿음과 선행을 격려하는 장로와 같은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지난번에 골로새서 마지막을 살펴볼 때 잠깐 언급했었는데 바로 오네시모 때문이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종의 생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했고 주인이었던 빌레몬의 재산을 얼마 훔쳐 로마로 도망갔습니다. 오네시모는 로마에서 생활하다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택 연금되어 있던 사도 바울을 만났을 것입니다.
(행 28:30, 개정)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행 28:31, 개정)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그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함께 지내면서 그를 도왔고 복음의 사역에 동참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과 함께 지내며 자신이 어떻게 로마까지 왔는지 자신의 상황에 대해 바울에게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었던 사도 바울은 때가 되자 다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그냥 돌려보내면 되지 왜 편지를 써야 했을까요? 왜냐하면 당시 도망한 종이 붙잡힌다면 그 종은 죽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돌아간다면 세상의 법으로 하면 그는 사형에 해당하는 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 당시 도망한 종들에게는 십자가형 같은 무거운 사형죄가 선고되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네시모는 더 이상 무익한 종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유익한 종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골로새로 돌아가 자신이 빌레몬에게 피해를 끼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해야 했고 이 관계는 주님 안에서 회복되어야 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그를 용서하고 오네시모를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들이기를 겸손한 태도로 그에게 간곡히 요청합니다. 그 내용을 담은 서신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1-7절로 사도 바울의 인사와 기도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1절 말씀 함께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몬 1:1, 개정)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사도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습니까? 바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부분을 원어 그대로 직역한다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라는 말입니다. ‘갇힌 자’라는 말은 헬라어 “데스미오스”로 감옥에 죄 때문에 갇힌 죄수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다른 편지를 살펴보면 서두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빌레몬서에서 유일하게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에 가택 연금되어 있었습니다. 그가 왜 갇히게 되었습니까? 바울은 자신이 무슨 불법이나 잘못을 저질러 감옥에 갇힌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3차 선교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억울하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부당하게 감옥에 갇혀있다가 황제에게 상소하기 위해 로마까지 왔습니다. 그는 지금 가택에 연금된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잘못이 없었음에도 지금 죄수로 갇혀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울의 상황이라면 어떠했겠습니까? 너무나 억울했겠죠. 자신이 잘못도 없는데 머나먼 로마까지 와서 지금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재판은 자신의 미래가 달린 재판이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바울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을 걱정할 처지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코가 석자입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의 관심사는 자신의 억울한 상황이나, 앞으로 황제를 만나야 하는 일에 급급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세상에서 죄인의 신분으로 계속해서 갇힌 상황에서도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영혼들을 사랑으로 품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들려오는 교회의 문제, 소식을 들었고 그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며 필요한 내용을 편지를 적어 전달합니다. 그는 오네시모와 빌레몬과의 관계가 회복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형제로 받아들이길 간곡히 원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자신의 안위가 아닌 하나님 나라와 교회에 있었습니다.
서두에 설교를 시작하며 손양원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마지막을 맞이하신지 아십니까? 손목사님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고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38선을 넘어 서울로 쳐들어왔습니다. 순식간에 한강을 넘어 수원을 점령하고 대전을 빼앗고 대구로 진격했습니다. 그 중 일부는 호남으로 넘어와 호남 일대도 점령했습니다. 이 때 손목사님이 담임하던 애양원 교회도 문을 닫고 피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손목사님은 피난하지 않고 교회에 남아 계속 교회 종을 치게 했습니다. 특별 집회를 열었고 그 집회의 주요 내용은 ‘잘 죽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애양원 교회 성도들은 손목사를 어떻게든 피난시키려고 노력을 했고 결국 그들의 사정에 못이겨 제직들과 교역자들이 함께 피난 배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손목사는 배에 올라가 마지막 찬송을 부른 후 가방을 들고 뛰어 내려왔습니다. 결국 그는 제직들과 다른 교역자들만 배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남은 성도들과 애양원 교회를 지켰습니다. 그는 배에 내려 제직들과 교역자들과 이별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죽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럽겠는가. 내가 만일 피신하면 여기에 남은 일천명이나 되는 양떼는 어떻게 합니까? 결국 그는 교회를 지키다 48세의 젊은 나이로 순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우선순위는 자신의 목숨과 자신의 안위에 있지 않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하여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6:33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시구요, 복음을 위해 교회를 위해 살아가시는 모든 정산교회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두 번째입니다. 오늘 본문 4-5절 말씀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몬 1:4, 개정)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몬 1:5, 개정)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편지하며 그를 위해 항상 기도하고 있음을 말합니다. 특별히 5절에서 바울은 빌레몬이 어떤 사람인지 에바브라를 통해 들었습니다. 빌레몬은 주 예수님과 성도들에 대해 사랑과 믿음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레몬이 가지고 있는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성도들을 향한 사랑으로 드러났습니다. 그가 가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우리와 동일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셨다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정하고 신뢰하는 것이 그가 가진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로 죽어버린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부터 끊임없이 우리를 위하여 은혜와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나님을 끊임없이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은혜를 베푸셔서 자신의 사람을 부르시고 언약을 세우십니다. 끝까지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며 믿음의 자손들을 보존하시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해야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포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시간 속에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셔서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죽음의 권세를 끊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시고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 되셨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세상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게됩니다. 그리고 이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은 흘러념쳐 이웃을 향하게 되지요.
골로새 교회에 빌레몬은 이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알아 다른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7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은 그가 많은 성도들을 사랑함을 통해 자신이 기쁨과 위로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가 이런 믿음과 사랑이 있는 사람으로 들었고 그의 진실한 사랑으로 노예였던 오네시모도 용서하고 형제로 받아들이길 원했습니다.
빌레몬의 모습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깨닫구요 그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또한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처럼 믿음과 사랑은 참된 그리스도인의 중요한 표지입니다. 믿음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으며 항상 함께 있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과 사랑을 분리하여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믿음과 사랑이 함께 가는 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마지막으로 손양원 목사님의 삶의 모습은 참 믿음과 사랑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하나님만 믿으며 섬기는 참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애양원에 있는 수많은 한센병자들을 사랑하셨고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자들까지도 품고 사랑한 참 사랑의 사람이셨습니다. 그는 갓 신학교를 졸업한 후 36세의 나이의 젊은 나이로 애양원교회에 와서 순교할 때까지 목회를 했습니다. 그는 환우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으며 잠자리도 같이할 만큼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곳에는 약 천여명의 한센병자가 있었습니다. 총 1부터 14호의 병실이 있었는데 1-10호까지의 병실은 비교적 건강한 사람들이 지냈고 11호실부터 13호실까지는 경환자실 14호실은 중환자실로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14호에는 애양원에서 가장 상태가 심한 중환자들이 모여 있었고 온 방안에 진물과 핏자국, 땀자국이 섞여 같은 환우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곳이었다고 합니다. 간호사들도 이들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둘이 매달려 두 세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심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손 목사는 그곳에 들어가 맨손으로 바닥을 치우고 그들을 껴안고 이마에 대고 기도하며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그곳에서 지내신 참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는 1948년 10월 19일에 공산주의 사상에 사로잡힌 군인 일부가 반란하며 순천과 여수 일대를 점령했을 때 사랑하는 두 아들을 군인에 의해 잃게 됩니다. 반란군이 어느 정도 제압된 일주일이 지난 26일에 두 아들의 시신을 거두어 교회 앞에 시신을 안치한 후 다음날 27일 애양원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장례식을 치뤘습니다. 손목사는 장례 절차를 다 마친 후 마지막 인사를 올리며 9가지의 감사의 내용으로 인사를 대신했습니다.
그의 9가지 감사의 내용 중 3가지만 읽어드리겠습니다.
다섯째,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 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일곱째,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로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러분 오늘날 교회를 생각하면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면 참 부끄럽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요. 주님의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회복하는 이번 한주 되시길 소망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고 믿음과 사랑을 가진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살아가시는 우리 정산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길 소망합니다.
기도제목
3가지 기도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먼저 이 나라와 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수많은 고통과 죄악 가운데 있는 이 나라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이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합시다. 한국교회가 더 이상 세상 앞에서도 부끄러운 자들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돌이키게 하시며 다시금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 부흥이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우리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2021년 한해를 주님의 향한 믿음과 사랑 가운데 살게 하시고 연약한 지체, 영적으로 궁핍한 자들이 있다면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이 다시금 일어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가 우리 교회를 통해 일어날 수 있도록 은혜 내려 달라고 기도합시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가정과 자신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 땅 가운데 참 믿음과 사랑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을 주로 섬기며 주님 말씀 가운데 서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달라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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