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로 향하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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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향하기 하루전 마지막 밤 주님의 기도하는 모습과 기도내용

Notes
Transcript
제목 : 겟세마네로 향하신 주님
본문 : 막14:34

도입

우리는 예수님에대한 큰 주제로 앞서서 두 가지를 살펴봤습니다.
한 가지는 광야에서 시험 받으신 예수님에 관한 모습니다.
지극히 인간의 모습으로 광야에서 시험을 받은신 모습을 성경을 통해
살펴봤습니다.
그리도 두 번째로 변형산에서 주님이 보여주셨던 모습을
살펴봤습니다.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이 잠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
보여주셨던 장면입니다.
결국 변형산에서 모세와 엘리야가 주님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주님의 죽음을 앞둔 바로 직전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안에 오르셔서 죽음을 향한 마지막
밤을 기도로 보내시는 모습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내용이 한 번에 다루기에 양이 조금 많아서 두 번에 거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 주변상황을 위로로 먼저 살펴보고
다음 주에는 주님께서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에 관한 주제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막14:34)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 이유가 이 구절에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너무 슬퍼서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정말 감당하기 힘든 일로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상태가 되어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슬픈 심정이 되셨는지,
그런 슬픔으로 겟세마네에서 올라가서 뭘 어떻게 하시고자
하시는지 두 주에 거져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막14:26) ¶ 그들이 찬송 하나를 부른 뒤 올리브 산으로 나가니라.
(막14:2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밤에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막14:28) 그러나 내가 일어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시거늘
(막14:29)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모두가 실족할지라도 나는 그렇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막14:3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날 곧 이 밤에 수탉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막14:31) 그러나 그가 더욱 열렬히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그들도 다 그와 같이 말하니라.
(막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니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막14: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시면서 비로소 심히 놀라고 몹시 괴로워하시며
(막14:34)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막14:35) 조금 앞으로 나아가사 땅에 엎드려 가능하면 그 시간이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막14:36) 이르시되,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
(막14:37) 돌아오사 그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시몬아, 네가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었느냐?
(막14:38)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준비되어 있으나 육이 약하도다, 하시니라.
(막14:39) 다시 그분께서 나가사 기도하시며 같은 말씀들을 말하시고
(막14:40) 돌아와 보시니 그들이 다시 자더라. (이는 그들의 눈이 무거웠기 때문이더라.) 그들이 그분께 무어라 대답할지 알지 못하더라.
(막14:41) 그분께서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족하도다. 그 시각이 왔도다. 보라, 사람의 아들이 배반을 당해 죄인들의 손에 넘겨졌느니라.
(막14:42) 일어나라. 우리가 가자.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좀더 다른 정보와 다른 관점을 얻기 위해서
요한 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요18:1)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너머로 나아가셔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있던 동산으로 들어가시니라.
(요18:2)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자주 가셨으므로 그분을 배반한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겟세마네는 제자들과 자주 갔던 곳입니다.
마태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마26:36) ¶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 너머에 가서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마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시면서 비로소 슬퍼하시며 몹시 괴로워하시더라.
(마26:38)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마26:39) 조금 멀리 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
(마26:40)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도대체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었느냐?
(마26:41)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참으로 영은 원하되 육이 약하도다, 하시니라.
누가복음 22장으로 가보겠습니다.
(눅22:39) ¶ 그분께서 나가사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매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더니
(눅22:40) 그분께서 그곳에 계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눅22:41) 그들에게서 물러나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눅22:43) 하늘로부터 한 천사가 그분께 나타나 그분을 강건하게 하더라.
(눅22:44)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
(눅22:45)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자기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이 슬픔에 지쳐 잠든 것을 보시고
<본론>
슬픔의 사람 예수님
이사야에서 메이아는 슬픔의 사람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사53: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거부되었으며 슬픔의 사람이요, 고통을 잘 아는 자라. 우리는 그를 피하려는 것 같이 우리의 얼굴을 감추었으며 그는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는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신약의 기록을 보면 주님의 삶이
이사야의 말씀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구절의 모습처럼 예수님이 슬픔의 사람이라는 것을
겟세마네 동산에 계신 주님의 모습에서 또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슬프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입으로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장면이 바로 겟세마네 동산에 계실때 입니다. (막14:34)
(막14:34)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아마도 이 순간이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고통과
고비를 맞고 있는 모습일 것입니다.
세상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할지 아시는 주님
세상이 자신에게 어떤 일을 할지를 알고 계신 주님으로서
인간의 모습으로는 견디기 힘든 순간을 앞에 두고 계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에게 조차 마주하기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을 앞두고 계신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을 입고 계신 예수님으로서 가장 연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가장 심각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기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인지
우리로서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외치고 계십니다.
이것이 겟세마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주님과 아버지가 서로 긴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십자가를 향해 한 발 더 다가 가기 위해서 입니다.
이 장면은 우리가 말할 필요도 없이
아주 장엄하고 성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지극히 성스러운 장면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장엄해 보이는 예수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경험하고 계시는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마음과 심중의 생각과 혼에 담긴 모든 것을
읽고 볼수 있게 해주는 이 성경기록은
참으로 장엄한 장면을 보게 해 주는 것입니다.
죄를 가볍게 보지 않는 하나님
겟세마네는 정말 다른 곳에서 드러내지 않는
우리의 죄를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겟세마네 기도장면에 와서 보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불하신 댓가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는데
이 보다 더 좋은 장면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장면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계시는지를 보면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다잡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 곳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24시간
여기 기록된 사건을 보게 되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24시간 이내에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은 대중을 향한 사역을 마치신 상태입니다.
마지막 설교를 마치셨고 보여줄 마지막 기적과 표적을 마치셨습니다.
큰 다락 방에서 마지막 만찬을 마치셨고,
지금 동산에서 십자가를 향한 마지막 일을 하고 계신 장면입니다.
잠시 후면 재판이 벌어지고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한 준비가 겟세마네에서 진행되는 것을 우리가 읽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배신하는 일과 체포되는 일이
배후에서 계획되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마귀가 준비하는
마귀는 구원자이신 주님을 공격하기 위해서 바쁘게 일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가룟 유다에게 들어가서 갈보리 사건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과 삶 속에 들어가서 일을 꾸미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예수님을 잡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습니다.
군사까지 동원되서 예수님을 체포하지만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수제사장들은 유다에게 팔아넘기는 값으로
은 서른개를 주기로 주기로 합의한 상태입니다.
수제사장들은 주님을 죽일 방법을 찾고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마귀는 갈보리 사건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준비하는
반면에 예수님도 갈보리 동산에서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서
자신이 준비해야할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아버니께 맡기는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했고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서도 기도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앉아서 유월절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주의 만찬을 했습니다.
주님은 세상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시고 지금 겟세마네에 와 계신 것입니다.
이곳에서 주님은 열정적으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맡기고 계십니다.
아버지 뜻에 맡기는 기도를 하는 것 또한 주님의 준비 과정입니다.
오늘 주님이 기도하는 내용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생각해 보고자 하는 것은 주님이 기도하는 장소에 관한 것입니다.
바로 겟세마네 입니다.
주님이 기도하는 장소
요한 복음에서 보면 겟세마네는 예루살렘 바깥 쪽에 있는 동산입니다.
(요18:1)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시고 자기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너머로 나아가셔서 자기 제자들과 함께 거기에 있던 동산으로 들어가시니라.
(막14:26) ¶ 그들이 찬송 하나를 부른 뒤 올리브 산으로 나가니라.
겟세마네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서 가야하는 곳입니다.
(막14: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니 그분께서 자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2절에서 보면 올리브 산을 오르다 보면 낮은 산 기슭에 있는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곳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장소는 제자들과 자주 들러서 기도하던 곳이었습니다.
이 장소는 주님께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주님의 백성들에겐 이와 같은 장소가 있습니다.
그들이 가서 기도할 소중한 장소가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외칠 수 있는 장소 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특별한 장소가 없다해도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장소입니다.
동산에 계신 주심
우리는 지금 주님이 성전에 계신 모습이 아니고 회당에 계신 모습도 아니고
동산에 계신 모습으로 등장하고 계십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깊게 생각해 보면
매우 상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문제가 시작된 곳은 바로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아담과 이브를 동산에 두셨고
모든 축복을 그들에게 주셨습니다.
이들 남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이 동산에 채워주셨습니다.
그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께 주님이 원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했습니다.
그 동산에서 아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뭔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아담에게 명확히 전달되었습니다.
동산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어도 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간단하고 명확하게 하나님이 직접적으로 아담에게 전달했습니다.
나의 뜻을 이룬 아담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을 이루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 동산에서 아담은 죄를 짓고 난 후에
하나님이 제공해 주신 모든 것을 잃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완전한 행복과 모든 특권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모든 것을 망쳐버렸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가 되고 말은 것입니다.
지금 마지막 아담은 동산에 와 계십니다.
그분이 자신을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리고자 준비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인간의 구속을 위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중재자가 되시고자하는 주님
주님은 죄인들의 위대한 중재자 이자 구원자가 되시기 위해서
자신을 드릴 준비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 동산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요구했던 것과
아주 다른 것을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룬 주님
주님의 기도는 아담과는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께 자신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그분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동산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창3:9) 주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시니
(창3:10) 그가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거늘
음성을 듣고 도망친 아담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네가 어디 있냐고 물을셨습니다. 그랬더니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서 나무들 속으로 숨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두 번째 사람을 부르고 있습니다.
숨지 않은 주님
이 동산에서 두 번째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동산에서 나무 사이나 덤불 속으로 숨지 않았습니다.
이 동산에서 마지막 아담은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라 하신 모든 일을 내가 당당히 맞서서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가올 고난을 피하지 않은 예수님
내 앞에 준비된 모든 고통과 고난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지금 사람들이 자신을 잡기위해
계획하고 있는 일들을 잘 알고 계십니다.
지금 일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유다가 자신이 있는 곳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가룟유다가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숨을 생각이 없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부터도 숨을 생각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물로 드리기 위해서 그 동산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 드리고 죽기 위해서
그 동산으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의 생명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주님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자주 가셨던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 기도하셨는가?
이번에는 주님이 기도하는 때(시간)에 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막14:2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밤에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목자가 되어 공격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거부되고
장로들과 수제사장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날 때가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이 밤은 어쩌면 이 땅에서 마지막 밤이 될것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오시겠지만
이 밤이 죽기전 마지막 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22:14) 나는 물같이 쏟아졌고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심장은 밀초같이 되어 내장 한가운데서 녹았나이다.
주님의 몸은 물같이 쏟아져 내릴 것이고
그분의 모든 뼈는 어그러질 것이라고 시편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자신의 마지막 원수를 직면해서 죽음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고전15:26) 멸망 받을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니라.
죽기전 마지막 밤을 기도로 보낼 수 있다면
오늘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알고 계신 주님은
지금 그 마지막 밤에 무엇을 하고 계신가요?
주님은 동산에 들어가서 아버지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가 마지막 밤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것만 알 고 있습니다.
만약에 언제 인지 알 수 있다면,
우리가 그 마지막 밤을 주님께 기도하며 보낼 수 있다면
정말 축복이지 않을까요?
주님을 만날 소망가운데 기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축복이겠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보살핌과 보호하심에 맡기고 있는 모습으로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면 축복이기 않을까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복음을 붙잡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신을 주님의 돌보심에 맡기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그리스도의 의가 있는 상태로
그리고 주님을 향한 생각으로 가득찬 모습으로 발견될 수 있다면
그 얼마나 축복이 될 수 있을까요?
제자들에게 기도를 독려하는 주님
주님은 제자들이 기도하도록 격려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밤에 주님에게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주님은 지금 하나님께 기도하러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닫지 않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기도할 수 있다면 너무 늦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라도 기도만 한다면 하나님은 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입장은 항상 들어줄 준비가 되어 계십니다.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든,
어둠에 놓여 있는 사람의 기도든
하나님은 항상 들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어둡고 늦은 시간에 하나님께 부르짖고 계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주님께서 어떻게 기도하시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진행하기 전에
우리에 관해서 살펴볼 구절들이 있습니다.
모든 삶에는 시련이 있습니다.
모든 인생에는 위기가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시련과 위기는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문제는 우리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생깁니다.
모든 압박과 고통이 너무 커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는다고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포기해야 하는 경우를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련을 너무 쉽게 이야기 하면 안됨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다른 사람의 문제에 대해서 너무 쉽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말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니 걱정하지 마!
그냥 편하게 생각해!
우리는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이잖아!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슬퍼하고 근심하면 안돼!
그런걸 뭘 두려워해!
가며 쉽게 반문하고 말해 버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는 근심하게 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근심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이상의 문제를 직면했을때
느끼는 두려움과 근심이 무엇인지를 알고계십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조금 이상해 보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많은 이적과 표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많이 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또한 사람으로 이땅에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인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전적으로 인간으로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서 죽으셔야 하는 문제는
주님이 인간의 모습으로만 감당하셔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주님이 마셔야 하는 잔
그래서 우리가 읽은 구절은 주님이 잔을 바라보시고
그 잔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시고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그 잔을 마셔야만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그 잔을 마셔야만 하는
순간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포기하고 싶었을 겁니다.
예수님도 자신의 마주한 일을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닥친 시험을 해결하는 방법은
피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험과 위기를 다루는 방법
예수님은 시험과 위기를 다루기 위해서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과 위기를 포기하지 않고 마주하기 위해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우리에게도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이 선택한 방법은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서도 기도를 통해 은혜와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
그 방법을 안다는 것 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안다는 것만으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구해야 하고
그리고 간절하게 기도로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을 하나님께 보여드려야 합니다.
은혜를 구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우리에게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은혜를 구하는데
우리에게 장애가 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은혜가 필요하다는 사실 조차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련과 위기가 곧바로 우리에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위기는 우리를 향해 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온다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아직 닥친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오는 위기의 심각성을 모르고
위기에 대한 준비를 뒤로 미루게 됩니다.
26절-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의 필요성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님은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제자들과의 대화에서도 보여주십니다.
(막14:2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 밤에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7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다 나로 인하여 실족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위기가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몰랐지만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곧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곧 시험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모든 일 뒤에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입니다.
27절의 말씀은 스가랴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슥13:7) ¶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곧 내 동료인 그 남자를 치라. 목자를 치라. 그리하면 양들이 흩어지리니 내가 내 손을 돌이켜 작은 자들 위에 두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시고 이 일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입니다.
우리를 구원 하시고자 하는 구원 계획의 일부인 것입니다.
제자들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예수님은 자신이 공격을 받으면
자신의 제자들이 흩어지게 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달아나게 될 것이고
어디론가 숨어버리게 될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연약한 인간임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사건이 자신의 제자들을 시험하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험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밖이라는 것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이 또 한가지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이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11명의 제자들과 그곳에 같이 있었지만
11명중 어느 누구도 기도하지 않았고 누구도 하나님께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강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결국 도망치고 흩어지게 될것입니다.
자신의 승리를 알고 계시는 주님
(막14:28) 그러나 내가 일어난 뒤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하시거늘
예수님은 승리가 있을 것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나 그 승리는 예수님의 부활 뒤에 주어집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에게 먼저 일어날 일은
치명적 공격을 받은 상태가 되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27절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 뒤를 말씀하심
십자가 사건이 마지막이고 모든 것이 끝나는 지점이 아니기 때문에
그 뒤의 일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후에 그들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제자들 보다 앞서 갈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실족하겠지만,
내가 그들을 다시 사용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엄청난 하나님의 복된 사역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이루어 나갈 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이 실패했다고 느꼈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아래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게 됩니다.
베드로의 자신감
베드로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막14:29) 베드로가 그분께 이르되, 모두가 실족할지라도 나는 그렇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너희가 실족할 것이라고 했더니
베드로는 자신은 안그럴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은 그럴지 몰라도 자신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지켜보시면 알게 될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뭔가 잘 해낼 수 있을것 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근거없는 자신감
베드로가 이렇게 생각한 근거는 뭘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은 스스로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고
거기다 그들은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지 않고 몇날 몇일을 보낸적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고
주님의 도움을 구하지도 않고, 그렇게 시간을 보낸적이 많을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까요?
나는 아무 문제 없습니다.
나는 실력이 좋아서 하나님의 도움이 아직 필요없습니다.
여러분이 복음 전도지를 전달할때 받는 사람이
저는 필요없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들까요?
우리도 전도지를 거부한 사람과 같은 자세로
하나님을 매번 대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나는 잘 지내고 있고 그렇게 큰 문제가 나에게 일어날것 같지도 않습니다.
내가 감당못할 일이 벌어질 것 같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그때 하나님을 찾겠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자신감에 대해서 이야기 하십니다.
(막14:3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이 날 곧 이 밤에 수탉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지금 베드로에게 일어날 일은 그냥 흩어지는 양때의 모습보다
더 못한 것입니다.
흩어지는 것도 안좋은 것이지만
예수님을 부인까지 하는 것은 더 안좋은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철저히 세 번씩이나 부인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여전히 할 말이 있습니다.
베드로에 편승하는 다른 제자들
(막14:31) 그러나 그가 더욱 열렬히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를 부인하지 아니하리이다, 하매 그들도 다 그와 같이 말하니라.
베드로가 강하게 말하고 있고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가 하는 말을 듣고만 있다가
베드로의 주장에 끼어 들어서 올라 탑니다.
베드로의 나쁜 방향으로 흐르는 주장에
다른 사람들까지 합류하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은 모습을 한 우리
우리도 베드로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삶의 자세를 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100층에서 떨어지고 있는데
50층을 지나면서 아직까지는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이 그 끝이 어떤 것인지를 이미 알려주었는데
우리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르고
스스로 방심하고 자만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잘 해결할 것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괜찮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우리에게 앞으로 닥칠 시험과 유혹을 준비하고 실패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다음 몇 구절에서 예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시연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
오늘 우리는 지금까지
주님은 어디에서 기도하셨는가? “where” 겟세마네 동산
주님은 언제 기도하셨는가? ”when" 늦은 한 밤중에
다음 시간에는
-주님은 어떤 모습으로 기도하셨는가?
”How prayed alone?” 연약함과 고통가운데 기도하고 계신다는 주제로 살펴봤습니다.
- 주님은 무엇을 기도하시는가? 라는 주제로 넘어가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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