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설교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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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이 말씀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멀게는 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가깝게는 우리 한명 한명이 영상으로 나마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도 바로 이 믿음 때문입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는 말씀의 뜻은
‘의인의 삶이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라는 뜻입니다.
좀더 쉽게 말씀드리자면, 믿는 자가 하는 행동과 말뿐만 아니라
마음과 환경까지도 믿음이라는 기반위에서 행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는 대로 생각하게 되며,
믿는 대로 말하게 되고 믿는 대로 선택하게 되며,
그 선택들이 모여서 ‘믿음의 삶’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믿는 자의 삶이란
자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기준이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 한결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항상 흔들리고 불안한 것이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행동입니다.
오늘은 이 말했지만 내일은 저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흔들리지는 않아도, 몇 년전에 나는 이렇게 살았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뀐 나의 모습을 볼 때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따라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본문에서 나타나는 사도 바울의 모습을 통해
믿음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몇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려고 수없이 시도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의 교인들도 다른 지역의 교인들처럼
복음에 대해 듣고 열매 맺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이
얼굴도 모르는 로마교인들을 향한 마음을 가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14절에 나오듯이 ‘빚진 자’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누구에게 빚진 자입니까.
다들 알다시피
이 빚은 은행의 대출같은 돈에 대한 채무관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성령께 진
구원과 생명의 빚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만 이 빚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는
생명의 빚을 가진 자입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은 롬8:12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이 말씀은 결국 사람은 빚진 자로 살아간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 빚을 육신에게 져서 육신에게 매여 살아가든지,
아니면 하나님께 져서 하나님에게 매여 살든지
둘중 하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삶은 이런 모습이 나타납니다.
우리말 속담에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일을 하고 먹는다는 뜻입니다.
물론 요즘은 먹고 사는 것을 넘어
인생을 즐기기 위해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이 땅에서의 삶을 더욱 즐겁고 행복하게 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8:12을 통해
우리의 삶이 빚진 자의 삶이라고 말씀합니다.
내가 의식하든지 의식하지 않든지
우리는 빚진 자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앞서 말했듯
우리가 육체에 빚진 자로 사는 것은
자연스럽게 되는 일입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배고프면 먹고 추우면 입고,
피곤하면 쉬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배고픔을 느끼는 것도, 추움을 느끼는 것도,
어려워서 스트레스받고 아파하는 것도
우리가 살아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살게 하시려 목숨을 버리신
우리의 구주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우리는 연약하기에 흔들립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어떻게 빚진 자로 살 수 있었습니까.
딤전 1:13-15에서 우리는 그 비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자였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원수인 사도 바울 자신을 먼저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사도 바울에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구주의 은혜를 잊지 못했습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위해 생명을 주신 구주의 은혜를 생각하니,
자신이 결코 갚을 수 없는
생명과 사랑의 빚을 진 자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는 것은 내가 어렵고 힘들 때,
심지어 내가 하나님의 뜻과는 완전히 다르게 살았음에도,
내게 생명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삶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과 힘듬에만 몰두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언제나 새 생명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찬양의 가사처럼
‘나의 등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 언제나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볼 때,
우리는 빚진 자로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주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기억 할 때,
우리는 그 한량없는 사랑에 보답하는 자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코로나가 길어짐에 따라 분명 흐트러지는 모습이 있을 것입니다.
예배나 삶에 있어서
주님이 멀리 느껴지는 부분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구주의 은혜를 기억하며,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살 때,
사도 바울과 같이 믿음에 우뚝 서는 자가 될 줄 믿습니다.
2. 믿음으로 사는 것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가 부끄러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믿는 자의 악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코로나의 온상이 된 교회부터 시작해서 정인이 사건까지,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외치기에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해 그렇게 조롱하는 자들에게
담대히 할 말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16절 중반의 말씀입니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분명한 것은 그 당시의 교회도
아름다운 모습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로마교회는 온갖 인종들이 다 모여 있었고
그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누구는 아볼로에게, 누구는 베드로에게 세례받았다하며 싸웠고,
거기다 더해 세상 법정에 서로 고소하여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또 아버지의 아내를 아들이 취하는 등,
세상에서도 벌어지지 않을 죄악들이 행해졌던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다면서
생업과 가정의 일을 내팽개치고 재림의 시기만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2000년도가 되기 전에 유행했던 이단들처럼 말입니다.
다른 성경을 볼 것없이
요한 계시록의 일곱교회만 봐도
칭찬받은 교회가 얼마나 됩니까.
우리는 우리의 잘못과 부끄러운 모습을 회개하고
주님이 바라는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런 모습을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
복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우리의 그런 부끄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했던 대로,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여도,
주님은 한계가 없으시며, 사랑과 능력이 넘치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셨고,
영생의 그날까지 인도할 하나님의 능력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의 당시,
복음이란 유대인이란 별종이나 믿는 희한한 말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로마 정부 입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방의 민심을 흐트러뜨린 선동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은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요즘 코로나 전과 후로 시대가 바뀔거라 이야기합니다.
A.D.가 아니라 A.C.라고 코로나 이후 1년으로 말할거라 합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도 르네상스도, 산업혁명도, 세계대전도, 그 무엇도
복음,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큼 세상을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이 코로나도 복음에 비하면 하찮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분명 우리가 자중하고 침묵해야 할 때는 맞지만,
그것이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교회를 부끄러워하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이렇게 맛을 잃어버리는 소금같은 자가 많아지는 시대에
더욱 밝게 빛나는 빛이 되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묵상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 것은 우리,
믿는 자의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경험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피상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해야 합니다.
롬3:22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여기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없이 미치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조차 차별해서 줍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 하지만,
특별히 아픈 손가락은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속에서 재능의 정도, 삶의 질도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차별이 없음을
우리는 알고 믿고 따를 수 있습니까.
말씀에 보듯이
하나님의 의가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은 차별없이 모든 믿는 자에게
풍성하게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찬양인 ‘나 가진 재물 없으나’를 지은
송명희 시인이 뇌성마비 장애인임을 우리 모두 잘 알 것입니다.
그 찬양에서 시인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찬양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악하여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거라는 사실을
믿고 의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의로우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의지함을 넘어서 나의 삶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나기를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요일3:10 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보듯이,
의를 행하지 않는 자와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같은 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공의를 의지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더욱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듯이
우리 역시 의로움을 품고 살기를 바랍니다.
결론
처음에 이야기했듯이
의인의 삶은 믿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산다함은
먼저는 빚진 자의 마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내게 생명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그 은혜를 언제나 감사하며 소망하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나는 연약해도 한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으며,
내 삶을 기쁨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에서 닥치는 장애물들을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이 코로나 때,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이 믿음의 삶을 살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의와 사랑이 우리에게 언제나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다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실 때,
우리가 빚진자의 심정으로 주님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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