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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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지난 주, 우리는 나오미와, 룻, 보아스의 헤세드를 보았다. 가장 초라한 모습과 초라한 신분이었지만, 서로 사랑한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 사랑은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의 모습과는 달랐다. 서로의 조건도 아픔도 끌어안는 사랑이었었다. 그리고 보아스는 스스로 낮은 자리에 있어 보았기에 룻과 나오미를 이해하고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사랑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셨다. 그저 그들의 개인사, 생활, 삶만을 축복하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어둡기만 했던 시대를 밝힐 하나님의 사람을 오게하는 통로로 삼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언약의 사랑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일까? 한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더 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이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기도 하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가진 두 번째 특징, 기도를 알아보자.
개인적으로 오늘의 설교가 우리 모두에게 가장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왜냐면 지금은 무엇보다 기도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것보다, 모이지 못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교회나오는 것이 정말로 부끄러워진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면 왜 이때 가야하냐고 비난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첫째는 지난 시간 나누었던 사랑이었다. 둘째는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간절한 기도라 생각한다. 그러니 본문을 나누며 우리 모두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본론
사무엘을 낳은 한나의 이야기
한나의 아픔 : 임신하지 못함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 : “내가 열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그냥 속담같은 관용구. 드립같은 말.
남편의 철없는(미련한) 행태 : 두배를 줌, 가장 좋은 것을 준다는 뜻도 됨. 소로 따지면 등심, 안심처럼 가장 맛있고 귀중한 부위만 골라서 줬다는 뜻이 됨. 그 결과 한나는 더 괴롭게 됨.
함께 기도하지 못하는 남편. 가장 사랑받는 것같지만 가장 멀어져 있는 한나.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해.” 그누구도 의지하지 못하는 상황.
그 결과 가족들끼리 식사자리 후, 혼자서 성전에 기도하러 온 한나.
남편조차 오지 않음.
적용 :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선생님. 친구가 좋은 이유? 함께 공감대를 나눌수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깊은 고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앞에서 친구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때가 많음.
상처받고 답답한 한나의 선택 : 기도
우리는 이럴 때, 기도를 선택하는가? 처음부터 기도를 선택하지는 않는다. 한나도 아마 처음에는 별에별 방법을 쓰지 않았을까?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 기도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기도하는 한나와 의자에 앉아있는 엘리
절규, 너무나 비통해서 새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비통한 절규, 한나의 절규
성전 문설주 곁,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엘리.
이둘의 현실은 극과 극이다.
한나는 애도 못낳는 여인이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 버림받아도 당연한 존재이다.
엘리는 사사이다. 가장 높은 곳에 앉아 있다.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자식,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렇게 패악을 저질리도 아무도 말 못할 정도 였다.
그러나 상처받고 버림받을 것같은 한나는 하나님께 절규한다. 피를 토하며, 너무나 아픈 마음이라 비명소리조차 제대로 못지를 정도로 간절하게 기도한다.(너무 크게 간절하게 소리지르며 기도하다보면 소리도 안나올 때가 있다, 목이 쉰 것이랑은 다르다)
11절 한나의 고백 : “주의 여종”, 여종은 말그대로 노예다. 한나는 자신을 가장 낮게 표현한다. 그 결과 하나님을 가장 높이고 있다. 한나는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려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높이려고 찬송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자신의 한을 진심으로 하나님께 내어보이는 것뿐이다. 간절하게 기도할 뿐이다. 그런데 그 간절함은 자연스럽게 겸손함으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그 겸손함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었다.
11절 한나의 서원 : 자식을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cf. 삿 13:2-5 임신하지 못하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임재, 나실인으로 바치라 하는 하나님.
여기서 한나는 자신이 먼저 기도하고 서원한다. 그 결과 사무엘이 태어난다.
마누아는 하나님이 먼저 나실인으로 바치라 말한다. 그 결과 삼손이 태어난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을 왕정으로 이끌었다. 다윗을 세웠다.
삼손의 결말을 우리 모두 잘 안다.
본문 12-14절의 엘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은 기도하지 않는다. 한나에게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서 한나가 하는 것을 건성으로 보다가 꾸중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크게 부르짖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셨다.
높은 자리에 앉아서 권력을 가지고 떵떵거리든 엘리를 그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죽게 하셨다.
삼상 4:18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그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사십 년이었더라
이것이 기도의 능력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를 찾으신다.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를 찾으신다.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기도하는 자를 높이신다. 절규하는 자,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초라하게 있는 자를 가장 높이신다.
한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2장 1-10에서 한나의 기도가 나온다.
신대원 교수님의 말: 신기하게도 한나는 선지자도 아무것도 아닌데, 2장의 한나의 기도가 이후 구약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기준이 된다. 2장의 기도대로 행한 자는 높임을 받고 스스로 높인 자는 낮춤을 받는다.
천년이 넘는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역사를 결정짓는 기도, 그 기도를 드린 여인이 되었다. 일개 여인,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이 이런 통찰력을 가진다.
이것이 기도의 힘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도하는 자를 찾으신다.
시대를 놓고 기도하지 못해도 괜찮다. 북한을 위해, 세계를 위해, 나라를 위해? 아니 기도 못해도 괜찮다.
하나님께 나와 모든 것을 쏟으며 기도하면 된다. 한나같이 비통하게, 주님, 전 아무 힘이 없습니다. 주님 제발 도와주세요. 아니 주님 제발 주님이 해결해주세요.라고 기도하자.
다들 많이 힘들 것이다. 수능. 공부, 코로나, 친구들, 학교, 가족, 진로..
이 모든 걸 하나님께 가져가자. 우리의 아픈 마음, 답답한 마음 그대로 하나님께 가져가자.
죄를 저질렀어도 괜찮다.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자.
기도시간을 갖자. 진심으로 온맘다해, 내 모든 것으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그리고 그런 기도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신다.
우리 모두가 한나같은 기도의 사람 되길.
“찬송가 539장 1절 4절” 찬양후 기도
헌금 “내게 있는 향유옥합” 후 기도
축도
지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함께 있을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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