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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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신앙고백함으로 고등부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 304장
기도
성경봉독 롬 15:14-21 (신.260)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14. 너희역시 스스로 그 상황을 떨쳐나갈 힘이 있다. 왜냐면 선함이 가득 있고 지식도 가득하니까(예수님이 있으니까)
15. 하지만, 때로 리마인드도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용기내어서 너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이 용기는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거다. 즉, 내가 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시키신 거다.
16 왜냐면 하나님은 은혜, 사명을 내게 주셨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 삶의 이유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야. 그래서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산제물이 되게 하는거야. 물론 내가 하는건 아냐. 성령님안에 있어야지 가능하지. 하지만 이것이 내 사명이니 내 이야기를 들어줘. 내가 적는 글들을 왜 참견이냐고 기분나빠하지 말아줘.
바울의 상처와 아픔. 그가 복음을 전하며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이 그로하여금 이런 자기방어, 자기변호의 말씀을 적게 만들었다.
또한 로마교회와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기에, 바울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편지로 공격을 당한다하더라도 그래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다하더라도, 나는 이 글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는 말씀을 전할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도 상처받고 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다. 누군들 상처없고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7 그래도 난 너희에게 이런 부분은 알게 하고 싶어. 나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도 당당히 드러낼수 있는 일이야.
18 그 자랑거리는 이거야. 구원과 영생을 위한 말과 행동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건 진짜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복음과 영생의 축복을 위한 거야.
19 그리고 내가 오직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니, 기적이 일어났고 성령이 임재하심이 나타났어. 그래서 내가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할수 있었어. 그냥 전한게 아니라 복음으로 그 지역들을 가득 채울수 있었어. 기적이지.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고 생각해.
20 한가지 더 말할게. 난 혹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거나 교회를 세웠거나 하면 그 권한을 침범하지 않았어. 그 사람의 방식과 뜻대로 따랐어. 그건 질서도 하나님의 기뻐하심도 아니니까. 이 말을 하는건 내가 이렇게 편지 적는것도 너희의 권한을 침범하거나 내가 먼저 믿고 교회의 어른이니 따르라고 적은게 아니야. 정말 하나님의 말씀과 뜻만을 적고 있는거야. 그러니 나 정말 믿을만 사람이야.
21 이 모든 것,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기분나쁠수도 있겠지만 너희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 “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라는 이사야 52:15의 말씀의 일부라 생각해. 너희의 갈등도 내 편지도 좋은 일도 나쁜일도 하나님께서는 모두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거룩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루시는 거지.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하는 있는 본문이다. 왜 갑자기 사도바울은 자기변호, 다른 말로 자기방어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아보고 그 속에 담긴 바울의 심정,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함께 나누자.
본론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변론하는 이유를 알기위해서는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도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예수 그리스도 즉 십자가의 죽음 전에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았던 분들을 사도라고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많은 공격을 받았다. 왜냐면 바울은 살아계신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 이유를 들어서 공격했다.
여기서 우리가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변론할 필요는 없다. 우리뿐 아니라 2000년이 넘는 교회역사상 모든 사람들이 바울이 사도임을 알았고, 그무엇보다 하나님께서 바울이 사도임을 바울서신을 통해 증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바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했다. 어떤 사람은 말투가 어눌하고 외모도 보잘것없다라고 인신공격까지 서슴없이 했다.
우리로 따지면 학교에서 조별과제를 하는데, 넌 못생겼으니 발표는 하지 마 라고 말한 격이다.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걸 들으면 기분이 어떨거같은가.
더욱이 바울이 그저 고난없이 평탄하고 쉬운길로 전도했나. 우리가 요즘하듯이 쉽고 간단하게 전도했나. 바울이 어떤 고난과 죽을위기를 넘겨가며 복음을 전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 모른다면 인터넷에 바울의 고난이라고 한번 쳐봐라.
1분이면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이렇게 인신공격을 당하고, 몸에 병도 가져서 그것부터 먼저 치유함에도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로마서도 15장까지 쭉~ 기록해온 것이다. 글을 적는게 쉽나? 그것도 로마서같이 긴 글을 적으려면 쉽겠나. 그러나 바울은 기쁨으로 이 사역을 감당했다.
그러다가, 혹시 자신이 적은 글이 이 편지를 받아서 읽을 사람들의 마음을 혹시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할까봐. 그리고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편견을 가지고 이 편지를 읽어서 혹시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잘 전달되지 못할까봐 자신의 사도권에 대해 방어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은 본문을 색다르게 살펴보자. 내가 내 말로 본문을 다르게 적어봤다. 참고로 이 것은 이해를 돕기위해 말을 바꾼 것이다. 내 식으로 해석한 것이니 참고삼아 듣기 바란다.
14절부터 시작하겠다.
14. 너희역시 스스로 그 상황을 떨쳐나갈 힘이 있어. 왜냐면 너희 안에는 선함이 가득 하고 지식도 가득하니까(예수님이 있으니까)
15. 하지만, 때로 리마인드도 필요하지 않겠나? 그래서 내가 용기내어서 너희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이 용기는 내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거다. 즉, 내가 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시키신 거다.
16 왜냐면 하나님은 은혜, 사명을 내게 주셨기 때문이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사명, 삶의 이유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거야. 그래서 이방인이라도 하나님께 드릴 거룩한 산제물이 되게 하는거야. 물론 내가 하는건 아냐. 성령님안에 있어야지 가능하지. 하지만 이것이 내 사명이니 내 이야기를 들어줘. 내가 적는 글들을 왜 참견이냐고 기분나빠하지 말아줘.
바울의 상처와 아픔. 그가 복음을 전하며 받았던 수많은 상처들이 그로하여금 이런 자기방어, 자기변호의 말씀을 적게 만들었다.
또한 로마교회와는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기에, 바울은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 편지로 공격을 당한다하더라도 그래서 또 다른 상처를 입는다하더라도, 나는 이 글을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는 말씀을 전할수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도 상처받고 약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했다. 누군들 상처없고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17 그래도 난 너희에게 이런 부분은 알게 하고 싶어. 나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께도 당당히 드러낼수 있는 일이야.
18 그 자랑거리는 이거야. 난 구원과 영생을 위한 말과 행동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이건 진짜야.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모두 하나님의 복음과 영생의 축복을 위한 거야.
19 그리고 내가 오직 하나님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니, 기적이 일어났고 성령이 임재하심이 나타났어. 그래서 내가 예루살렘부터 일루리곤까지 복음을 전할수 있었어. 그냥 전한게 아니라 복음으로 그 지역들을 가득 채울수 있었어. 기적이지.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은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다고 생각해.
여기서 예루살렘과 일리루곤을 한번 보자.
일루리곤 지도1 2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은 약 1400마일, 2300km정도 된다.
부산에서 서울까지가 400km정도다.
20 한가지 더 말할게. 난 혹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먼저 와서 복음을 전하고 있거나 교회를 세웠거나 하면 그 권한을 침범하지 않았어. 그 사람의 방식과 뜻대로 따랐어. 그건 질서도 하나님의 기뻐하심도 아니니까. 이 말을 하는건 내가 이렇게 편지 적는것도 너희의 권한을 침범하거나 내가 먼저 믿고 교회의 어른이니 따르라고 적은게 아니야. 정말 하나님의 말씀과 뜻만을 적고 있는거야. 그러니 나 정말 믿을만 사람이야.
21 이 모든 것,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기분나쁠수도 있겠지만 너희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 “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라는 이사야 52:15의 말씀의 일부라 생각해. 너희의 갈등도 내 편지도 좋은 일도 나쁜일도 하나님께서는 모두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시고 거룩하시고 기쁘신 뜻을 이루시는 거지.
이렇듯, 바울의 편지는 그들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복음에 대한 열정뿐이다. 그 과정에서 바울의 인간으로서 연약함을 드러내고 있다. 너무 많은 공ㄱ겨을 당했기 때문에 노파심이 생긴 모습을 드러내고도 있다.
우리역시 모두 상처가 있고 연약한 부분이 있다ㅏ.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화를 내고 상처를 주고 받을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믿자. 요즘 교회다닌다고 말하기 창피할 것이다.
근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그리스도 예수님을믿는다라고 하지 않고 교회다닌다라고 신앙을 표현한다.
우리의 중심이 어디있는지 보라. 바울처럼 하나님께 있는가.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침을 확신하는가. 아니면 우리의 신앙은 건물이고 시간이고 장소일뿐인가.
이 코로나때, 다시한번 우리의 신아응ㄹ 점검하자. 바울은 그 모든 공격을 아프게 받아들였다. 그도 아파하고 상처받았다.
그러나 그의 신앙은 교회다닌다가 아니라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였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파할만한가?
나는 부담감을 가지고 죄책감을 느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 이렇게 살면안되는데 라고 심리적인 답답함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 삶이 있다고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동일하게 우리 모두를 인도하고 계신다는 것을 소개하고 싶은 것이다.
연약하고 아프고 상처받은 삶이지만, 바울은 21절에서 그 모든 것이 말씀을 성취하는 과정임을 고백한다.
우리도 이 코로나도 코로나를 기회삼아 공격하는 모든 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과정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 조금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자. 분명 우리에게 새날을 주실 것이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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