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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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 예루살렘으로 가기전 하는 바울의 마지막 인사이자 권면.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길 20:23-24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의 마지막 권면
첫번째, 말씀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든든히 세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기업을 얻게 하신다.
다른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업을 주실 것이다.
이 기업이라는 것은 소유, 재산, 유산을 뜻한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는 자를 축복하신다는 뜻이다.
바울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는 것뿐이다. 3년의 가르침이 있었지만, 이제는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바울이 권면한것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라는 말씀이다.
바울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로서 3년이나 에베소교회에 머물면서 사역을 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받지 않았다.
왜 그렇게 했을까?
에베소는 상업의 중심지다. 돈과 관련된 것이 엄청나게 발달했을 것이다. 당연히 모든 삶의 중심이 돈버는 것일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런 물질적인 면에서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판단했을거라 추측되다.
그리고 바울의 출신지, 랍비학교자체가 자비량을 가르치는 학교다.
거기서 소위 랍비를 하면서도 먹고 살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한다. 바울의 텐트메이킹 기술역시 거기서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텐트메이킹은 메우 애매한 기술이다. 소도시규모에서는 남이 만든 텐트를 살 정도의 인프라가 되지 않는다.
대도시에서는 이미 텐트메이킹은 레드오션이다. 그래서 바울은 혼자서 일한 것이 아니라 고린도에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함께 일하기도 한다.
그리고 타지방으로 선교를 떠날 때는 지원을 받기도 한다.
바울이 이렇게 한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쓴 것이다.
다른 사도들은 사역을 하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하지만 바울은 이미 ‘기술’을 배웠기 때문에 그 기술도 하나님을 위해 바친 것이다. 즉,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래서 그 텐트메이킹이라는 기술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는 사례금을 받지 않았고, 선교여행을 하거나 해서 일을 할 수 없거나 온전히 복음전파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교회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을 위해 활용했다는 것이다.
텐트메이킹은 앞서 말했지만 좋은 기술은 아니다. 그저 기술일 뿐이지, ‘전문직’은 절대 될수 없다.
더욱이 텐트메이킹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바울이 그분야의 대가가 되기는 ㄷ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있는 것을 활용해서 바울을 권면했다.
에베소를 권면했고 고린도를 권면했다. 에베소도 고린도도 무역의 요충지였다. 충분히 일할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기술까지 활용해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바울은 자신의 기술까지 하나님을 위해서 바친 것이다.
어찌보면 별것 아닌 것일수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조그만 손짓까지도 기쁘게 받으셨고, 그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일을 이루는데 쓴 것이다.
우리는 줄 것이 없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예수님도 바울도 공통적으로 말씀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얻으려고 애쓴다.
스펙을 쌓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일하는 것도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들은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웰빙도 욜로도 공부든 노는 것이든 사귀는 것이든 결혼이든 우리는 얻으려고 한다. 그것이 행복이든지 물질이든지 명예이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다른 무엇인가로부터 가져와서 나를 채우려 한다.
그런데 왜 주는 것이받는 것보다 복된가.
나는 세상의 논리를 말하지 않는다. 한가지만 말한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엇을 주어서 비게 된다면, 그 자리를 누가 채우실 것같은가. 무엇으로 채울 것같은가.
성령께서 그 자리를 채우실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다시 채워넣으실 것이다.
눅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예배가 무엇인가. 영어로 예배를 worship service라고 부른다.
누구한테 서비스하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께 서비스를 드리는 것이다. 섬김을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서로 섬기는 것이다. 왜냐면 서로의 속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필요를 줄 때, 우리안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바울이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며 마지막으로 했던 말씀 35절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기 바란다.
예수님도 승천직전, 복음을 나누어 줄 것을 말씀하셨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저 되는 것이 아니다.
왜이렇게 교회가 욕을 먹고 있나. 왜 이렇게 교회에서만 코로나가 이렇게 터지고 있는 건가.
혹시 우리 교회는 혹시 우리 고등부는 혹시 우리 한명한명은 받는 것에, 내가 얻을 것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진짜 하나님을 만나러 온 것일까. 하나님과 교제하며 어려운 말로 지복을 누리러 온 것인가. 아니면 습관적으로 온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를 드릴 때, 진정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이다.
줄 것이 없다 생각되는가? 그렇다면 사랑과 인내와 관용을 나눠주라.
누구에게? 바로 가족에게. 부모님에게 형제자매에게 나눠주라.
사랑을 준다라고 라는 말은 많이 들었을 거이다.
용서도 주는 것이다. 인내도 주는 것이다.
받는 사람은 모르지만 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사랑받아도 받는줄 모르는가 용서받아도 모르는가. 인내을 받아도 모르는가. 괜찮다.
하나님은 아신다. 그리고 우리가 줘서 빈자리를 더욱 큰 축복으로 채워주시다.
그러니 주라.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 드려라 하나님은 결코 잊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빚지우는 자가 되길.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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