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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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본문은 지난번에 이어서 감옥에 갇힌 사람이 다시 나온다. 지난번에 나온 베드로와 이번에 나온 바울과 실라를 한번 비교해보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알자.
본론
시작은
귀신들린 여인(소녀)의 외침
지극히 높은 신의 종 -
구원의 길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진짜? 우리가 전도하는데, 절에서 나와서 여기 좋아요. 이런식으로 계속 따라다닌다고 생각해보라. 좋나?
그리고 지극히 높은 신의 종이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보통 유대인이 하나님을 가리킬때, 지극히 높은 하나님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리스인들은 그 표현을 자신의 신에 적용시켰다.
이 신이 유대인의 하나님인지 자신들이 표현하는 신인지 헷갈렸을것이다.
이 여인의 외침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것은 귀신이 쫓긴 후, 주인이 바울과 실라에게 해꼬지를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영적인, 미신적인 관념이 가득한 자들인데 지극히 높은 신의 종이자 구원의 길을 전하는 자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고발하고 매질하고 수감시켰기 때문이다.
18절에 귀신이 내쫓긴 것은 그 소녀에게는 구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주인에게는 나쁜 일이었다.
19절처럼 그들은 그 소녀의 괴로움으로 자신의 이득을 얻었다.
복음은 세상에 부딛힐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삶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 변화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더욱 큰 저항에 부딛힌다.
우리는 복음에 의한 변화에 손해를 보는 자인가. 이득을 얻는 자인가.
복음에 의해 손해를 본 자에 의해 바울과 실라는 핍박받았다. 이것은 베드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복음에 의해 손해를 본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헤롯때문에 야고보가 죽고 베드로가 수감되었다.
여종의 주인은 21절에 보듯이 로마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 권리로 바울과 실라를 수감시킨다. 바울도 로마시민이었는데 소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이른 질문이지만, 왜 베드로는 탈출하고 베드로를 지키던 군인 16명은 모두 죽었는데, 바울과 실라는 그러지 않았을까.
하나님을 믿던 유대인들은 베드로를 죽이려고 했고, 이방인들은 때리고 수감시키는 선에서 끝났기 때문이 아닐까?
하나님을 믿는다하면서 더욱 잔인하게 행했던 유대인들과 헤롯때문에 억울한 16명이 죽었다
그러나 믿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해를 가했지만,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던 자들은 생명을 얻었다.
생명을 빼앗으려 했기에 생명을 빼앗겼고, 생명은 보존하려 했기에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복이라는 증거다. 해를 가했지만, 끝까지 가하지 않은 자들에게, 우리가 찬양과 기도로 준비된다면, 그들에게도 복이 될 것이다.
다만, 우리는 찬양과 기도로 준비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준비되지 못했다. 좌절하고 실의에 차 있었다. 그래서 찬양은 커녕, 기도도 하지 못했다.
바울과 실라는 매맞고 상처받고 갇힘에도 찬양하고 기ㄷ도했다.
나라면,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전도하다 이런꼴을 당했다면, 다시는 전도할 수있을까?
하지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쳤기에, 그리스도를 위해 받는 고난도 복락으로 여겼다.
그래서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었다.
베드로와의 차이는 함께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바울과 실라는 둘이었다.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이것이 함께하는 힘, 연합의 힘이다. 바울이 만약 혼자 있었다면 기도와 찬양을 할 수있었을까?
베드로처럼 옆에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 사이에 쇠사슬에 매여 있었다면, 혼자서 이러고 있었다면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이렇게 역사하신다.
만약 베드로처럼 우리가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고난과 아픔속에 있는가. 분명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인 역사, 생각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임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전에 형제 자매와 ㅗ교제하자. 그래서 그 아픔의 순간에 함께 기도하고 찬양할 자들이 되자.
베드로의 수감도, 바울과 실라의 수감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가 나타났다.
홀로 있을 때, 그 기적의 역사는 베드로 혼자만의 구원, 나머지 핍박자들에게는 죽음이라는 저주로 나타났다.
함께 찬양과 기도할 때, 그 기적의 역사는 모두의 구원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함께 찬양과 기도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함게 예배드림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예배드린 것이다. 예배가 무엇인가. 말씀과 찬양과 기도가 있는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을 교회로 만들었다.
그리고 새생명이 탄생하는 자리로 바꾸었다. 감옥은 죽음의 자리다. 그러나 이때, 감옥에서 간수는 구원받았고, 그의 가족들도 새 생명을 얻었다.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지고 집과 학원 어디서도 편한 자리가 없어질 수있다.
그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만들수 있기를 바란다.
그 자리를 함께 예배의 자리로 바꿀, 너와 나가 바로 우리, 한명 한명이 되길 바란다.
그렇다면, 34절처럼 우리에게 좋은 교제와 큰 기쁨이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 함께 할 수 있는 우리 고등부 되길 소망한다.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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