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절

출애굽기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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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징

일주일동안 진행됨 - 무교병(발효되지 않은 빵)
일주일 :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한 기간.
거듭남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것, 애굽의 것을 끊고 하나님께만 집중하는시간.
가장 큰 자극인 음식을 끊는 것.
누룩을 끊는 것.
오염되지 않은 순수로 돌아가 흠없는 제물이 되는것.
비록 양이 제물로 바쳐지지만 본질은 이스라엘이 제물이 되어야 함.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끊지 않으면 하나님에게서 끊어진다. ->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
또한 그정도로 급하게 준비하란 뜻이다.
빠르게 준비하란 뜻은, 하나님만 보란 뜻이다.
일주일간,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라.
애굽에서 인도해낸,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나니믈 바라보라.
거긴 댓가가 따른다.
누룩을 집에서 없앤다음, 무교절이 지나고 누룩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는 여러 수고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수고를 요구하신다.
무교병은 단순히 깨끗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을 돌아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에겐 이런 하나님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필요하다.
무교병의 단조롭고 텁텁한 맛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다.
우리는 우리 삶에 이런 리마인더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삶이 언제든 무교병을 먹으며 떠나야 하는 나그네임을 상기시키는 것을 가지고 있는가.
16절
첫날과 마지막 날 -> 성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 각자 먹을 것만 갖추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갖추라.
17절 : 중심
18-19절 :15절의 반복 -> 좀더 디테일하게.
20절 : 무교병의 강조-> 결론
왜 하나님께서는 지키지 못할 무교절을 말씀하실까?
유월절도 광야동안은 지킬 수 없다. -> 만나가 주된 식량이다. 누룩자체가 없다.
무교절은 더하다.
그나마 최초의 유월절은 열번째 재앙과 더불어지킬수 ㅇ있었다.
지금 무교절을 명받은 세대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한번도 무교절을 지킨 적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무교절을 말씀하신다.
바로 ‘reminder’이기 때문읻.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코로나에,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는 것이있는가.
그것이 시간이든, 장소이든, 물건이든,
내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을 떠올릴만한 것이 있는가.
없으면 만들기 바란다.
설교
서론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유월절을 선포하신 후, 무교절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오늘은 무교절을 선포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며, 그 뜻을 따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론
본문은 마지막 재앙, 장자의 죽음이 있기전 하나님께서 최초의 유월절을 선포하시면서 다음으로 말씀하시는 무교절의 규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무교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무교절을 선포하고 계실까요? 한번쯤 생각해볼 주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만 무교절을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다. 13장 1-10절에 보면 다시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유월절은 매우 인상적인 사건과 함께 지키게 되었지만, 무교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무교절을 지켰다는 추측을 할 수 있는 부분은 출12:33-34뿐입니다.
33 애굽 사람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다 죽은 자가 되도다 하고 그 백성을 재촉하여 그 땅에서 속히 내보내려 하므로
34 그 백성이 발교되지 못한 반죽 담은 그릇을 옷에 싸서 어깨에 메니라
본문을 보면 느끼겠지만, 무교절을 지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쩌다보니 무교병을 먹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12:43-51까지 다시한번 유월절의 규례가 나오는데, 50절과 51절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50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50절을 방금 읽어서 알겠지만, 이 말씀대로라면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의 규례대로 유월절을 지켰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13:1-10에 무교절의 규례를 다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12:43-51의 마지막 50절과 51절은 분명 이스라엘이 유월절의 규례를 지켰다고 나오지만, 13장의 무교절에는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그냥 마지막 1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지켰다는 소리입니까. 지키지 않았다는 소리입니까. 지키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무교병을 먹은 것도 무교절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급박하게 애굽을 떠나야 하니, 빵을 누룩으로 발효시킬 시간이 없어서 그대로 반죽해놓은 것만 챙겨간 것뿐입니다. 당연히 첫째날의 성회와 마지막 날의 성회는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 뒤, 우리가 알다시피 애굽군대의 추적이 있었고, 홍해를 건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속에서 어느새 무교절은 잊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2번이나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도 지켜졌는지는 의문입니다. 왜냐면 광야에 있는 동안 한번도 유월절에 대한 본문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수5:10에서 길갈에서 할례를 받은후 유월절을 지켰다만 있습니다. 이때, 무교절을 같이 지켰다고 추측정도는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 먹은 것은 무엇입니까. 빵입니까. 만나입니다. 유교병이든 무교병이든 그 많은 숫자가 먹을 밀가루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되었을 것입니다. 구할래야 밀을 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밀을 구해서 도정하고 빻아서 밀가루로 만드는 것은 품이 많이 듭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면 언제든지 움직여야 하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에서 밀로 빵을 만들어 먹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의 광야생활 당시에는 유월절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루인 유월절은 지킬수도 있었겠지만, 일주일동안 무교병을 먹어야 하는 무교절은 당연히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오늘 본문에서 무교절을 지키라고 명을 받은 이스라엘은 평생 단 한번도 무교절을 지킨 적이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40년간 광야에서 쓰러져갔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무교절을 한번도 지키지 못할 세대에게 이 무교절을 명하고 있을까요. 그것도 오늘 본문에서만 명하는 것이 아니라 13장 1-10절을 통해 다시한번 자세히 명하고 있을까요.
그들은 못지키겠지만, 그들의 자손은 지키게 하려는 의도때문일까요. 그래서 광야의 세대는 무교절도 지키지 못하고 어찌보면 하나님앞에 불순종하고 버려진 세대라도, 그 다음 가나안세대만을 보고 무교절을 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무자비한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무교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이 평생 불순종하다가 광야에서 스러져갈 것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동일하게 명하십니다.
왜냐면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이며, 애굽의 노예생활을 겪은 하나님의 아픈 손가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지키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들의 후세대가 되어야 겨우 지킬 것을 아시지만, 그들에게 동일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동일한 의무가 있다는 것은 동일한 권한,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동일한 권한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교절은 일주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7일입니다. 하나님이 공허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무교절의 7일간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키지 못할지언정,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요구하시며,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확언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못한다고 교과서도 책가방도 사주지 않는 부모가 어디있습니까. 그 아이의 능력여부와 상관없이 부모는 책가방을 사주고 필기구를 사주며, 자녀가 공부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요구합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무교절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요구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지키지 못할지언정, 천지를 창조한 7일처럼, 너희는 일주일간 다시 창조된 나의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너희가 지키지 못할 지언정, 그 동안 세상의 모든 누룩을 끊고 나에게 돌아와야 하는 오직 나만 바라보아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들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다 지키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나 합니까. 기억하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을 보기라도 합니까. 일주일에 하나님 말씀 얼마나 보십니까. 얼마나 내 생활속에서 그 말씀을 지침삼아 살아가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 생활을 채우셨습니다. 요즘 스마트폰에도 성경이 있습니다. 인터넷에도 성경이 있습니다. tv에도 말씀이 나오며 유튜브등 각종 매체에 모두 말씀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든지 보지 않든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것이 넘칠수록, 하나님의 말씀도 우리에게 넘치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지금도 최고의 역사로 우리를 덮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무교병을 일주일이나 먹으라고 하십니까. 일년에 일주일을 먹으면 무교병의 맛이 기억될까요 안될까요. 당연히 기억됩니다. 우연찮게 무교병을 보면 무엇이 생각날까요. 당연히 일주일의 기억, 무교절이 기억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무교절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성회, 예배였음이 자연스럽게 상기될 것입니다. 무교병을 볼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위해 무교절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평소때는 만나를 먹겠지만, 어쩌다 밀가루를 구해 무교병을 먹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출애굽때가 기억나고, 하나님의 구원, 유월절이 기억나고, 그 앞에서 살아가야 하는 무교절, 내 생애 동안 단 한번도 지키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앞에 기쁨으로 거룩하게 드릴 그 무교절이 떠오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당장 무교절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무교병 하나를 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하나님의 약속을 떠올리며, 그 약속의 소망을 가지고 힘든 광야생활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광야의 이스라엘은 실패했습니다. 그들이 떠오른 것은 무교병이 아닌 애굽에서 먹던 각종 채소와 고기였습니다. 그리고 애굽이 떠오르자 당연히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떠올랐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광야에서스러져갔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약속의 땅은 없던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에게 이런 무교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말씀 한구절이어도 좋습니다. 내 생애 하나님께서 주신 한가지 은혜의 사건이어도 좋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내 눈앞에 띄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이 집이든지, 기념품이든지,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며 그 때의 기억속으로 들어가 즐거워하듯이, 하나님의 은혜를 떠올리며 하나님을 찬양할, 무교병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우리의 무교병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떠올릴 무교병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엇나가다가도, 화를 내다가도, 내 욕망을 따라가다가도, 그 무교병을 보고 아, 하나님의 뜻이 아니지, 하나님의 은혜는 이게 아니지라고 다시 돌아올, 바로 그 무교병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주셨던 은혜들을 떠올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연약한 인간이라 이런 상징적인 물건이 있으면 참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영원한 무교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시다.
우리의 영원한 무교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시다.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돌아옵시다. 이스라엘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광야에서 무교병은 너무나 보기 힘든 희귀하고 귀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나 친밀하고 가까이 있습니다. 반대로 너무나 가까이 있기에, 그 말씀이 너무나 흔하기에 우리는 전혀 귀중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그 십자가를, 그 부활을 우리의 무교병으로 삼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화가 날 때, 슬플 때, 기쁠 때, 즐거울 때, 내 욕심이 앞설 때, 바로 그 십자가의 보혈을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를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신외지물에, 어떤 물건에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려한다면, 그 물건은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씀을 기억하며,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신 예수님을 떠올린다면, 성령께서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광야의 이스라엘은 스러져갔지만, 우리는 영원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그 광야에 하나님의 대로를 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해 전도의 문이 닫히고, 복음의 길이 막히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한번 생명의 길을 개척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고난이 우리의 앞을 막아도 우리 앞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며, 기억하며, 기도하며 기쁨으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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