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절

출애굽기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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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분석

유월절이 있는 달이 바로 첫달 1월이 된다. 새로운 시작.
10일, 어린양 한마리, 가족을 위한 1마리.
양이 부족하지 않게 하라. 먹는 양에 맞추라.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1년된 흠없는 수컷. 가장 귀한 것.
14일까지 간직. 10일부터 4일동안 간직. 저녁무렵에 도살. -> 저녁은 이스라엘상 새로운 날의 시작.
양이 도살당하는 것은 유월의 시작이다.
양먹은 집의 문틀에 양의 피를 발라라.-> 주님이 받으시는건 오직 양의 피뿐. 양의 살은 이스라엘이 먹는다.
불에 구운 고기, 쓴나물, 누룩없는 빵 ->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의 양식들인듯(확인필요), 나그네삶.
꼭 불에 구워 먹어라.-> 제사?
고기를 아침까지 남기지 마라.
바로 출발할 채비를 갖추고 먹으라.
*내가 너희를 넘어가듯이 너희도 세상을 넘어가라.
아까운 고기. 4일간의 기다림.
부족하지도 남지도 않을 만큼의 양.
새로운 시작.
불.
언제든지 떠날 준비.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
그분께서 지나가면, 너희를 괴롭게 하던 모든 것이 심판당할 것이다.
그것이 사람이든 가축이든, 애굽의 신이든 모든 것이 심판당해 죽을 것이다.
오직 너희만이, 하나님의 백성만이 그 심판을 면할 수 있다.
하늘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가치판단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
근데
우리는
거기 머무른다.
학습된 무기력처럼 거기 머무른다.
애굽의 신들이 부서지는 것보다 당장 남아있는 양고기가 더 소중하고
하나님이 지나가심보다 내가 하더 행동들과 삶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또다시 나를공격하던 열등감, 좌절, 고난은 찾아온다. 우리가 죄가운데 있으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지나가는 것을 따라오라고 하신다.
내가 먼저 지나갈테니
내가 먼저 모든 것을 다부수고 지나갈 테니
모든 장애물을 뚫고 길을 만들테니
나를 어서 빨리 따라오라고 하신다.
물론 양을 맛있게 요리할 수 있고
빵을 발효시켜 더 맛있게 먹을수 있고
다른 짐들을 천천히 챙겨 갈 수있지만,
그러면 그 열린 길이, 어느새 가리워질수밖에없다.
우리는 하나님보다죄악에 익숙한 존재니까
또 그러면 그속에서 고난겪고 고통당할 존재니까.
그러니 하나님은 빛이 어둔 그늘을 헤쳤을 그때, 광명의 길이나타났을 때, 우리를 재촉하신다.
빨리 오라고 하신다.
이것이 유월절이다.
하나님의 구원
다만 목숨, 육신의 생명만이 아니라, 내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던 모든 죄악, 열등감, 아픔까지도 다 부수고 지나가신 구원이다.
그리고 그 구원에 길, 그 열차에 빨리 올라타라는 초청이다.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마지막 재앙에 앞서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재정하는 부분입니다. 유월절을 명하신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며, 그 뜻에 따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유월절본문인 12장 1절부터 14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직접 유월절을 어떻게 지내라라고 제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유월절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면 십계명 이전에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양식을 지정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월절이라는 특정한 날짜에 국한 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월절이라는 날을 공포하시고 그 모든 규칙을 제정하신다는 것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2절, 유월절을 제정하는 시작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즉, 역법, 날짜를 계산하는 법 자체를 바꾸라는 뜻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역법을 따라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달력에 따라 움직였을 것입니다.
이 달력을 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도 몇월을 기준으로 계절을 구분하고, 우리가 입을 옷등 생활패턴도 살짝 바꾸게 됩니다.
그런데, 농사가 주된 업이었던 이 당시는 달력이란 말 그대로 삶의 지표입니다. 몇월이 되면 무슨 씨를 뿌려야 하고, 몇월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하고가 달력에 따라 정해집니다. 1월, 유대인이 부르는 명칭으로 니산월에는 보리를 추수하고 2월에는 일반추수를 하고 3월에는 포도원을 손질하는 식으로 각 달별로 해야 하는 일이 딱딱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시기에 하지 않고 때를 놓치는 안되는 일입니다. 우리역시 농사를 지으면 언제 모내기를 하는지 언제 무엇을 심는지 다 정해져 있습니다.
즉, 2절에 말하는 것처럼, 역법, 날짜를 계산하는 방식을 바꾼다는 것은 엄청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소위 우리가 구주소를 도로명주소로 바꾸는데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들어간 것만 봐도 알수 있습니다. 주소가 이정도인데, 그당시 삶의 지표나 마찬가지인 달력을 바꾸는 것은 대체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제정하시면 가장 먼저, 달력을 바꿀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너희들이 익숙한 이집트의 달력이 아닌, 이집트의 방식이 아닌,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라는 것이 유월절의 가장 첫 번째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를 향한 가장 첫 번째 부르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원래 살던 삶의 방식, 그래서 알게 모르게 죄악을 지을 수 밖에 없는 삶의 방식속에서 나오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사고방식, 생각의 방식이 바뀌어도, 내 삶의 패턴이 똑같다면, 획기적으로 변화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패턴을 변화시키시기를 바라십니다. 믿으면 가장 변화되는 삶의 패턴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이전에는 예배가 없었지만, 이제 우리의 삶에 예배가 찾아와 자리하게 됩니다. 오늘도 오신 분은 알겠지만 수요예배를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루동안 아무런 생각없이 살다가 문 듯 생각나서 오면 됩니까. 그럴경우도 있겠지만, 보통 수요예배를 오기 위해서는 일정을 조절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직업에 따라 예배를 지키기 위해 크게는 근무시간도 조정해야 하고, 작게는 오늘 할 일도 빠르게 처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수요예배에 늦지 않게 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새벽예배 모두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은 내 생활의 패턴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떻게? 바로 하나님께서 바라시는대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자들의 생활의 기본입니다. 이런 삶의 패턴의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우리는 결코 믿는 자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은 후, 헌금을 내기 위해서는 미리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십일조를 내는 것은, 십일조를 위해 내 소비패턴자체를 변화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3절과 4절, 5절에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으라고 명하고 계십니다. 이 어린양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지 못하게하기 위해서 준비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의 것입니다. 그렇게 심한 중노동을 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어찌보면 자식처럼 길러왔던 가축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 흠하나 없는 1년된 수컷을 잡아야합니다. 그것도 집안에 어느 누구도 부족함이 없도록 잡아야 합니다. 남음도 없도록 잡아야 합니다. 자신의 집에 쓰일 양을 면밀히 파악하고 딱 그대로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양을 잡는 것이 쉬웠을까요. 아무리 자신이 먹는 것이기는 하지만, 정말 흠하나 없는 1년된 수컷, 소위 가장 아끼던 양을 잡아먹는게 쉽겠습니까. 이 명령을 처음 들었다면, 우리의 경우로 따지면 마치 씨암탉을 잡아먹으라는 말과 비슷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십니다. 유월절의 모든 것을 스스로 준비하고 스스로 헌신하게 하십니다. 삶의 패턴을 바꾸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위해 쓰던 재물들도 가져오라 하십니다. 왜냐면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첫 번째길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와의 결별없이는 새로운 미래를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이제 애굽의 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 그들은 애굽에서 계획했던 모든 것에서 떠나야 했습니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낯선 하나님의 방식에 스스로를 맞추어야 했습니다. 왜냐면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우리스스로를 부릅니다. 그런데, 정말 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믿지 않는 사람앞에서 스스럼없이 말합니까. 보통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교회안에서만 쓰이는 용어입니다. 밖에서 말할 때, 아 나 교회다녀만 해도 대단한 용기입니다. 특히 현재는 더욱 말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의 패턴과 가장 직접적인 우리가 쓰는 돈의 흐름까지도 하나님께로 맞춰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세상과 이별하고 하나님께로 가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아는 찬양의 가사처럼, 십자가를 보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을 등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세상을 등질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11절에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월절, 너희의 유월절이 아니라 여호와의 유월절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지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정말, 우리가 우리의 삶의 패턴을 오직 주님을 위해 맞출수 있습니까. 그럴수 없습니다. 요일4: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이라는 세상을 지나 하나님께로 올수 없었습니다. 지난시간에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이미 애굽이 제공하는 편의와 호의에 젖어있었습니다. 바로의 의회는 바로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지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속에서 정말 이스라엘이 바로 섰을까요. 소위, 졸부같은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까요. 갑작스레 반전된 상황에 기뻐하며 애굽인이 속으로 비웃는지도 모른채 그것을 즐기기만 급급하지 않았을까요. 애굽인을 보면 본능적인, 인생을 살면서 학습된 열등감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숨기며 기뻐하지는 않았을까요. 그리고 애굽인들은 그런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고 경멸하면서도 당장 9가지 재앙을 행하신 하나님이 무서워서 가짜웃음을 짓고 있지는 않았을까요.
이스라엘은 이런 애굽을 뚫고, 이런 애굽을 지나 하나님께로 올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여호와의 유월절’ 여호와의 지나감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내가 먼저 지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길을 뚫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만든 길로 빨리 오라고 하십니다. 나그네의 채비를 갖추고 빨리 오라고 하십니다. 다시한번 우리가 가진 상처들, 세상에서 받은 열등감이 고개를 들기 전에, 애굽의 모습을 보고 열등감에 빠졌던 이스라엘처럼, 세상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며, 나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못하게 된 우리, 아니 사랑이란게 정말 무엇인지도 잘 알수 없게 된 우리를 보고, 어서빨리 내가 만든길로 오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아프게 했던 모든 것을 내가 심판하겠다. 애굽땅의 모든 처음것을 치겠다. 세상의 모든 것을 없애겠다. 누구를 보고 나는 왜이렇지, 어떤 상황을 보며 아 나는 이정도밖에 안될까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따라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양고기가 남더라도 버리라 하십니다. 급히 나갈 채비만 갖추고 빨리 먹고 따라오라 하십니다. 왜냐면 주변을 살피기 시작하면, 앞에 있는 하나님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남긴 세상의 미련이 보일테니까요.
이렇듯, 우리의 회복과 우리의 진정한 축복은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 급히 서두르며 챙기지 못한 것을 보며, 세상은 조롱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급히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시야가 좁아진다고 세상에서 뭐라할지라도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고 급히 달려가야 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이 세상 만물, 우주만물 전체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눈과 마음은 하나님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다른 모든 것까지 담으려고 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도 다 담을 수 없는데, 왜 세상의 소리들, 평가들, 그결과 상처받고 비틀린 마음들까지 다 품고 가려 하십니까.
하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만 담으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뒷모습을 보고 따라갈 때,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을 헤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을 바꾸라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명령전에 우리 삶을 다 바꿀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니 지금도 우리 앞에서 먼저 전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따라가기 바랍니다. 우리 삶의 패턴을 변화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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