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2-28

고등부공과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3 views
Notes
Transcript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우리모두가 한번쯤 들어본,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본문을 살펴보며 우리 모두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본론
본문의 모습은 우리에게 있어 참 이상적인 모습이다.
이런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힘들다.
사역자로서 변명을 해보자면, 이런 모습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잠시 행해졌던 일이지 초대교회 내내 있었던 일은 절대 아니다.
몇번 말했지만, 100년쯤 지나고서는 도덕적으로 해이해져 사역자들에게만 도덕적으로 살고 나머지 성도들은 세상과 타협한 모습도 보였다. 그게 원인이 되어 가장 극심한박해가 벌어지기도 했다.
4세기 초에 일어난 대박해, 가장 극심한 박해인 디오클레티안 황제의 박해가 그랬다.
그럼에도 사역자인 나는 33절처럼 큰 권능으로 큰 은혜를 전파하고 싶다.
그러나 이것은 33절이고 벌써 그 이전인 32절에 물건을 통용함이 먼저 있었음을 생각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역사가 있을수 있었을까.
32절에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한 뜻이 원래 한 영혼이라는 뜻이다.
즉, 마음과 영혼이하나되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5장에 가면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책망하며 뭐라고 하는가.
3절에서 ‘성령을 속이고’
9절에서 ‘주의 영을 시험한다’라고 말한다.
즉, 한 마음과 한 영혼이 되었다는 것은 성령안에서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역사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왜냐면 지금도 성령안에서 하나가 된 교회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대출을 내어서라도 헌금하며, 헌신하는 분들도 있다.
그 모든 마음들이 성령안에서 행해지는 마음이다.
우리가 이때처럼, 모든 것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소유를 포기하고 주를 위해 헌신하면, 그 모든 것은 성령안에서해해지는 일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초대교회의 모습을 부러워할 필요나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다. 초대교회에서 역사하시던 성령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 그것이 시간이든, 노력이든, 헌금이든지간에, 그 드리는 것은 바로 성령안에서 드려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기도하며, 아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무엇이든, 그것이 교회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그 생각이 강해서 계속 나타난다면, 깊이 기도해보고 실행하면 된다. 그것이 헌신이다. 헌신은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안에서 하는 것이다.
초대교회의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하심안에서 나타난 모습이었다.
그러니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모습이다. 때론 다른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비전을 품고, 하나님 주신 비전대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역시 하나님을 향한 헌신이 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포장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위해 예배에 빠지거나 한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의 욕망을 이루는 일이다.
36절과 37절에는 바나바의 헌신이 나온다.
그리고 5장 1절에서 11절까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온다.
성경은 이를 통해 비교하고 있느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신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바로 성령안에서 행하지 않은 것이 잘못된 것이다.
성령안에서 행한 헌신이 온전한 헌신이다.
2절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었다’라고 나오는데,
여기서 감추다는 말의 다른 뜻은 “빼돌리다”라는 말이다.
이단어는 성경에서 총 3번 쓰이고, 그중 2번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본문이고, 마지막은 디도서 2장 10절이다. 딛2:10에서 이 단어는 “훔치다”로 번역되었다.
자, 무슨 뜻인지 알겠는가.
성령안에서 행하지 않는 헌신은, 헌금은 결국 온전하지 못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헌신을 하더라도, 결국,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것으로 쉽게 말해 그 결과가 더욱 좋지 못하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베드로도 돈을 다 안가져왔다고 꾸중하는 것이 아니다.
4절을 보아라.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거 우리말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했다.
4 그 땅은 팔기 전에도 네 소유였고 또 팔고 난 뒤에도 네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지 않았느냐?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마음에 품었느냐? 너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4절 상반절에 나오듯이 어차피 땅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것이었다. 그 처분도 그러니까 그 돈을 어떻게 할것인지도 자신들의 마음대로 였다.
그런데, 성령ㅇ밖에서 행해서, 그 결과 그 돈을 헌금으로 냄으로써, 자신이 칭찬받고 높아지기 원한 것이 문제였다.
즉, 성령안에 있지 못한 결과, 내 욕망이 더 앞서게 된 것이다. 차라리 이들이 처음부터 반만 내겠다고 했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욕망도 채우고, 사람들앞에서 존경도 받고, 하나님을 위해 했다는 자부심도 갖고 싶어 했다.
그 결과 이들은 죽었다.
왠줄 아는가. 이들은 바람을 폈기 때문이다. 세상과 하나님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둘다 얻기를 바란 것이다.
헌금은 액수가 아니다. 헌신역시 시간과 노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 온전한 마음을 위해서, 자신의 몫을 포기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헌신, 예물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아 액수가 중요하지 않으니 하면서 그냥 맘대로 헌금할수 도 있다. 미안하지만, 아무런 마음도 고민도 담기지 않은 예물은 예물이 아니다.
예물 드리기 전에 먼저 나를 드릴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은 돈을 받으려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라, 우리를 얻기위해 부르신 것이다.
사탄과 죄에 빼앗긴 우리를 다시 찾기 위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셨다.
그러니 그 값어치를 기억하자.
그리고 그에 합당한 것을 드리자.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도전하실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도전하실 때, 그 도전에 순종할 수 있기를.
그래서 초대교회와 같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우리모두가 되기를.
우리의 삶에 날마다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간증이 가득하기를.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