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2-특별

고등부공과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3 views
Notes
Transcript
설교
서론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비전을 주셨다. 이 시간은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을 부르시는 본문을 살펴보며, 우리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자.
본론
본문은 요한복음 1장이다.
1장 18절까지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지, 특히 예수님의 하나님이심을 설명한다. 태ㅊ초부터 계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이 세상 모두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을 증거한다.
그후 세례요한에 대해 쓴다. 왜 이렇게 이야기하냐면, 34절까지는 그냥 예수님에 대한 소개이기 때문이다.
35절부터 예수님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도 세례요한의 제자로 있다가 예수님께로 온 안드레와 안드레의 소개로 온 베드로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스스로, 북한에서 많이 쓰는 표현을 쓰자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오늘 본문이 처음이다. 스스로 빌립을 만나서 제자삼으시고, 빌립을 따라온 나다나엘을 제자 삼으신다.
빌립은 그냥 제자가 되지만 나다나엘은 보다시피 또 다르다.
45절에 보면 알겠지만, 빌립은 나다나엘을 설득한다.
구약에서 예언된 선지자가 그야!!
그러니까 46절에 나다나엘은 뭐라고 하는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라는 당시 속담같은 말로 대응한다.
믿지 않겠다는 거다.
이 말이 왜 나왔냐면, 나사렛은 유대의 국경지역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제주도방언이 독특하다는 거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일본말과 섞인 영향도 크다.
그와마찬가지로 국경지대에 있는 나사렛은 이방인의 영향을 엄청나게 받았다. 이스라엘로 들어오려는 이방인들의 상당수는 나사렛을 거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당연히 유대교, 즉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제대로 지킬수가 없다. 왜냐면 외국인을 상대로 숙박업, 서비스업등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슬람이 극단적이지만, 두바이같은 경우는 워낙 외국인이 많고 관광으로 유명하다보니 자연스레 관광객을 위해 조금더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나사렛이 예수님 시대에 그런 동네였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 유대인입장에서는 소위 말해 가라같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조롱섞인 말이 떠돌고 다닌 것이다.
한때 창렬스럽다 혜자스럽다 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런 말이라고 보면 된다.
나다나엘이 46절에서 이 말을 한 것은 무슨 뜻인가? 자신은 절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는 거다. ㅓㅇ떻게 나사렛 출신인 사람을 믿을수 있겠느냐는 거다.
그래도 친구인 빌립이 계속 설득을 하니 어쩔수 없이 반쯤 끌려서 예수님께로 왔다.
그런데 47절에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을 보고 참 이스라엘 사람, 간사한 것이 없다. 라고 평가한다.
간사한 것이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거짓된 것이 없다는 뜨ㅡㅅ이다. 정말 순수하게 하나님만 따랐다는 것이다.
당연히 처음 본 자신을 그렇게 평가하니 나다나엘은 물어볼수박에 없었고, 예수님은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고 말한다.
무슨뜻인가?
보통 무화과나무란 것은 밖에서 키우기도 하지만 집마다에 있느 경우가 많았다. 예전에 시골에 집마당에 감나무가 있던 것과 같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집마당에 있는 그 무화과나무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나와서 몰래 기도했다고 한다. 무화과나무 아래가 그런 기도처소로 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다나엘은 자기 집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자기 혼자만 몰래 나와 기도했다는 뜻이다. 아무도 못봤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이 몰래 기도하는 것을 보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참 이스라엘인, 거짓이 없는 자라고 높이신다.
진짜 나다나엘이 살면서 거짓말 한번도 안햇을까? 생각으로나마 죄를 짓지않았을가?
예수님은 그런 것을 다 언급하지 않으신다.
예수님이 아는 것은 하나다.
그가 무화과나무에서 기도한 것이다.
그의 삶 전체는 온전하지 못했지만, 그가 기도하러, 몰래 기도하러 온 그 시간, 그 마음은 온전했다는 것이다.
당시에 바리새인이 있었음을 기억하라.
그들이 ㅅ람들의 인정과 존경을 위해 일부러 눈에 띄는 장소, 광장이나 길가에서 기도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나다나엘은 그런 사람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둘만의 시간, 하나님과의 1:1의 관계를 가지고, 그것을 자랑으로 삼지 않는 그 마음만을 예수님은 기억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억하신다.
우리의 못됨을 기억하시는가. 윌의 죄악됨을 기억하시는가.
아니 우리의 온전케 되려는 행동과 마음을 기억하신다.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지우고 잊으신다.
잊을수 없는 분이신데도 잊으신다.
그리고 우리가 잘하고 ㅎ나님앞에 온전히 살려고 하는 부분만 기억하시려 하신다.
우리의 좋고 선한 부분만 보려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비전이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선하시다.
이 선하시다는 것은 선한것만 기억하시고 선한것만 주신다는 뜻이다.
물론 하나님도 죄악을 기억하시다.
하나님의 뜻을 배반할 때, 이런 선하신 하나님을 끝까지 무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별거아닌 것으로 여길 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그러나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살리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살리실 것이다.
그러니 선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래서 우리의 선한 부분, 그리스도의 피로 씻긴 우리를 기억하는 하나님을 우리가 기억하자.
세상에서 힘들고 답답할 때, 하나님이 주신 비전은 커녕 앞으로 한걸음도 뗄 힘도 없이 주저앉을 때,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잡고 끌어앉고 계신다는 것을기억하자.
그리고 나는 나를 부정적으로 보고, 난 못해, 난 이정도야라고 하 ㄹ때도, 하나님은 필사적으로 우리를 선하다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신다는 것응ㄹ 기억하자.
그래서 51절처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열림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있는 향유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