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교회 이야기 1, 에베소 교회

소아시아 일곱교회 이야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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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먼저 변화하는 미래상을 6가지로 압축한 후 이에 맞는 뉴타입의 사고방식을 정리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래 예측은 의미없다는 것. 사회 전반에 변동성(volatility), 불확실성(uncertanty), 복잡성(complexity), 모호성(ambiguity)이 넘쳐나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을 적용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단언한다. 문제가 넘쳐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문제를 발견해서 제안해야 하는 시대다. 그 과정이 인간과 일의 가치를 높여준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24가지의 뉴타입을 저자는 제안한다.
저자는 문제를 발견하려면 새로운 지식과 교양으로 자신의 철학을 먼저 세우라고 강조한다. 앞서 갔던 사람들의 경험은 빛바랜 추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문제에 정답을 찾으면 그만이던 시대는 지났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찾지 못하는 올드타입 혹은 사고력을 바탕으로 문제를 발견하고 창의적인 해결책까지 제안하는 뉴타입으로 예측불가능한 미래의 길을 담대하게 걸어가고자 하는 사람 모두에게 일독을 권한다.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Z41CQFM4X
뉴타입의 시대라는 책에서 저자는 과거는 문제해결을 하는 사람이 많은 보수를 받고 대우를 받아왔지만, 미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중요하게 여겨진다고 말합니다.
원시 시대 이후로 인류는 항상 많은 불만, 불안, 불편에 시달려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막대한 부를 가져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해결하는 사람이 각광을 받아왔습니다.
예를 들어, 겨울에 따뜻하기 위해서 난로를 만들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음성으로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기 위해 전화가
비에 젖지 않고 멀리까지 이동하기 위해서 자동차가 생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미래시대에는 문제해결에 뛰어난 사람은 올드타입으로 구분되어 자신의 가치를 잃어간다는 것입니다.
문제해결의 능력이 과대해지는 시기가 되고 있고 그런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비슷비슷한 기능을 가진 그만그만한 제품이 넘쳐나는 것도 그러한 시대를 보여줍니다.
더구나 1997년 세계체스챔피언을 이긴 딥블루시라는 컴퓨터가 약 10억원에 팔렸지만 지금은 가정용 컴퓨터에 하드디스크 용량과 메모리를 늘리면 그 정도의 계산능력은 갖출 수 있다고 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의 타인의 해석에 따르면 판사가 보석결정을 할 때, 사람을 보고 판단을 하지만 보석결정을 받은 사람이 더 악한 일을 저지를 확률이 더 크다고 합니다. 오히려 슈퍼컴퓨터에 법전관련 내용과 양형내용을 넣어서 판단하게 했을 때 더 좋은 판결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이상 문제해결을 위한 인간의 탁월함이 장점으로 부각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고 합니다.
문제가 부족한 상황은 세상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혹은 인간은 이래야만 한다는 비전력을 감소시킵니다.
뉴타입은 항상 나름의 바람직한 이상형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뉴타입은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눈앞의 현실과 비교하고 둘 사이의 차이를 찾아냄으로써 문제를 발견합니다.
자녀들도 문제해결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제발견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와 예배에 관련하여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듭니다.
무엇이 교회인가? 참된 예배는 무엇인가? 꼭 현장에 와야만 예배인가? 주일날만 예배 드리는 것인가? 등등.
우리에게 주어진 여러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모습이 있는지 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의 우리 교회를 돌아보고 점검해 볼 수 있는 일곱교회 이야기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있다고 생각합니다.
본부교회의 담임목회자들이 특정 주제를 두고 주일 오전 연합예배에 시리즈로 설교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삼군 담임목사들은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을 궁구해볼 수있는 원형탐구에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다룬 일곱교회 이야기를 성도님들과 함께 나누며 이 시대 교회의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즉 코로나 상황 속에서나 다양한 교회의 문제 속에서 주어진 문제를 발견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교회의 원형적인 상황을 품고 이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당시대의 문제를 품고 고민하던 교회였으며,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비판을 겸하여 받는 양상이 있던 교회들이었습니다.
너무 완벽하게만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일곱 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를 향한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에베소교회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아볼로와 함께 사역한 곳이며, 바울이 2차 전도여행과 3차 전도여행을 통해 오랫동안 머물며 사역한 곳이기도 합니다.
3차 전도여행에는 3년을 머물면서 사역했고, 디오드레베, 오네시모, 사도 요한이 목회한 곳입니다.
특히 사도 요한은 밧모섬으로 강제노동에 끌려가기 직전까지 바로 이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에베소는 고대 로마의 중심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주전 133년에 로마의 행정구역으로 편입된 자우도시이며, 약 인구 25만에서 50만명이 거주하는 대도시였습니다.
로마군인이 주둔하지 않는 자유도시이면서, 버가모가 행정수도였지만, 거의 버가모 만큼의 행정도시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는 로마의 주요 4대 도로가 연결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전과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에는 로마의 주요항구도시였으며, 해안이어서 그런지 우상숭배가 극심했습니다.
특히 당시 고대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아데미신전이 있었고 성전 창기를 두어서 성적으로 아주 문란한 곳이었습니다.
또한 에베소의 아데미신전은 소아시아에 있는 우상숭배의 헌금이 모이는 집결지여서 금융이 아주 발달한 곳입니다.
연 중 한달을 택해서 체육, 연극, 음악 축제를 열어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방문한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이곳에 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은 이들을 위해서 눈물로 목회했다고 할 정도로 그 열심과 열정이 대단한 곳이었습니다.
에베소교회에 대해서 먼저 칭찬이 시작됩니다.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고생과 수고는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으로 아주 어려운 속에서도 버텨냈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에베소가 영적으로 아주 타락한 곳임을 생각할 때, 교회가 그 한복판에서 얼마나 극심한 박해와 핍박의 어려움이 있었는지 짐작할 만 합니다.
즉 이들은 참된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렇다면 어떤 믿음의 역사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는가?
2:2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그들은 또한 악한 자들을 몰아내고 타협을 거절했습니다. 교회 내에 악한 행실을 일삼는 이들을 찾아내고 몰아내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는 이들은 순회전도자였는데, 이들 중에는 거짓교사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2:3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들은 이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했고 게으르지 않고 지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2:6의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니골라당은 그리스도의 자유를 잘못 인식해서 방탕하고 무절제한 행실을 행했던 자들입니다. 이들을 식별하고 미워하는 모습을 통해 교리적 지식이 충만한 자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들을 비판하십니다.
2:4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며 비판하십니다.
이들은 에베소교회의 처음 개척할 당시의 신앙을 가진 세대들의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교회는 커지고 융성해 보이지만, 그들의 내면에는 첫 세대가 가지고 있던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질책하신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라 -> 다시 떠올려라. 첫 사랑을 계속해서 떠올려라. -> 자신이 영적 침체 상황임을 인정하라.
혹시 예배가 은혜롭지 않다고 느끼십니까?
설교가 지루하십니까?
기도가 귀찮으십니까?
성도들과 만나고 교제하는 것이 꺼려지십니까?
이 모든 것을 회복할 시작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개인예배를 통해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워렌 위어스비, 제자훈련은 매일의 훈련이다. 한 번에 하루씩, 한 번에 한걸음씩 우리는 예수를 따라간다.
시련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고,
세상에 의존하지 않으며,
성경말씀으로 나아가게 하고,
겸손히 무릎꿇도록 하기 위함이다.
두번째는 돌아와야 합니다.
죄를 의도적으로 거부해야 합니다.
하나님 사랑에서 시작하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나폴레옹이 어느 날 부관에게 옷을 입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옷을 입혀주고 있는 부관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옷을 천천히 입히게. 지금 난 바쁘단 말일세.”
바쁜데 옷을 천천히 입히라… 바쁠수록 더 침착하라.
옷을 입히는 사람까지 서둘러대면 폭발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바쁘고 조급할 수록, 하나님께 나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십니다.
마음을 흐트리는 곳에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오십시오.
셋째는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하십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다시 성경을 펼칩시다. 성경으로 기도합시다. 예배에 열정을 지핍시다.
매일 매일하는 것 같지만 이런 리추얼로 인해 달라집니다.
리추얼은 신께로 향하는 영적 습관을 말합니다.
루틴은 도로를 만든다. 개인이 사회로 가는 길에 대한 반복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처음 행위를 다시 회복합시다.
이런 처음 행위가 없는 분은 시도해 보십시오.
네비따라 성경읽기에 참여하세요.
하루 20분 성경읽기로 시작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삶의 맷돌을 돌리는 어이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배의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라고 합니다.
영생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을 불사신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참된 복입니다.
그렇다면 에베소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믿음의 역사는 대단했습니다. 이들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2:2에 보시면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했으며, : 교회에 있는 비도덕적이고 악한 사람들이 교회내로 침투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대처했습니다 -> 출교 :
자칭 사도라 하는 이단들의 문제점을 드러낸 교회였습니다. : 사도라고 하면서 사도가 아닌 자들이라는 복수를 쓴 것을 보면 교회 내에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6절에 있는 것처럼 니골라당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에베소 교회가 거짓 사도들의 책략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시험해서 그 거짓된 것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즉 명확한 판단 기준으로 그들의 거짓됨을 시험하고 밝혀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보았노라
이들은 견디고 참았다는 것이지요. 그들이 이렇게 참을 수있었던 것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대망하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기다림은 자기 교회의 의를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수고하고 애쓰고 힘써 이 모든 것을 이겨내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내게 있는 고난과 아픔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교회의 존립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자체의 명예를 위해 그렇게 한 것도 아닙니다. 사도 요한을 위해서도, 사도 바울을 위해서도 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목회자를 위해서 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에베소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은 이 모든 상황 속에서도 게으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수고롭게 피곤하지만 이 일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에베소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고난을 감수함에 있어서 결코 피곤해하거나 낙심한 적이 없음을 잘 드러냅니다.
수고 : 코폰, 단순히 육체적인 피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흘릴 정도로 심각한 고통을 의미합니다.
인내 : 휘포모넨,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로 초래된 현실적인 수고 곧 핍박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적 태도와 연관이 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에베소 교회가 책망을 면치 못한 이유는,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다.
에베소교회가 보이고 있는 지금의 행위와 교회가 세워질 당시의 처음 행위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처음 교회가 세워질 때 성도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하려는 마음,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 항상 신선하고 반짝이는 열정,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는 기쁨, 정열의 분출"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단들과의 오랜 투쟁으로 인해 모든 정열이 소모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오랜 내부의 문제, 즉 이단들과의 투쟁으로 인해 신학적으로 엄격하고 정확하며 윤리적으로 도덕적이며 준엄하기 그지없는 특성을 확립했을 지라도 사랑이라는 추진력에 의해서 살기를 멈추어버린 교회였던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처음 사랑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처음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무관심했고, 무신경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전까지는 다른 사람을 충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이 우선되어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리로 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ㄴ)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ㄷ)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생각하라 :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찾아보라, 계속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생각해 보라.
회개하라 :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즉각적으로 회개하고 돌아오라.
처음 행위를 가지라 : 처음 행위는 처음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