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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5.29 더리버처치 새벽예배 (에4:14) '위기를 함께 돌파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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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내 삶을 깨뜨립니다

본문

에스더 4:14 NKRV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서론

ㅇ 본문과 관련있는 예화 혹은 성경이야기

ㅁ 부림절의 유래가 되는 에스더서
구약정경론 부림절

유대인들이 극적으로 구원받은 것에 대한 기쁨은 해마다 부림절이라는 절기를 지킴으로써 계속되고 새롭게 되었다. 하만이 부르(제비)를 뽑아 아달월 13일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 절기는 제비의 이름을 따 부림절이라 불렀다(9:24). 모르드개의 편지(9:20)와 에스더의 편지(9:29)의 결과로 부림절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절기가 되었다.

구약정경론 부림절

예수께서 육신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태어나신 그때부터 부림절을 절기로 지킬 필요는 없어졌다.

구약정경론 부림절

이렇게 하는 것은 기념할 사건과 그 절기의 의미를 오해하는 일이다. 그 사건은 구속사의 빛 아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아무런 공로없이 그리스도를 위해 그 백성을 보호하신 사건이었다.

ㅁ 4장의 배경
에스더 1) 에스더가 하만의 의도를 찾아내다(4:1–9)

4장은 3장 마지막의 배경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수산 성은 혼란에 빠져있는데 왕과 하만은 행복하게 술을 마시고 있다. 이제 관심이 처음으로 한 남자, 모르드개에게 모아지고 있다. 1–9절은 모르드개와 에스더 그리고 에스더와 그의 백성 사이의 거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그들의 관점도 서로 다르다.

ㅁ 상황을 알게하는 모르드개
(1) 모르드개가 베옷을 입고 통곡하다(4:1–4)
〈1〉 모르드개는 모든 유대인들이 애통과 비애를 표현하면서 다함께 공개적으로 애도하도록 이끌고 있다. 오늘날에도 어떤 문화권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그들의 애도를 표현하고 있지만 고대 시대에는 이런 애통 방식이 규범이었다.16)
따라서 모르드개의 행동이 지나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사용된 언어 역시 모르드개가 관심을 끌만한 일을 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대성통곡하면서 도성(더 나은 번역은 “도성을 통과하고”[NRSV]와 “도성 가운데로”[NKJV]이다)으로 나간다. 히브리어 어근 “차악”(z‘q, “대성통곡하다”)이 두 번이나 반복되었고, 그 문자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는 “울며 부르짖었다”(NKJV는 문자적으로 반복하고 있다)이다.
이와 같은 히브리어 동사가 니느웨 왕이 백성들에게 금식하고 베옷을 입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을 촉구하는 요나 3장 7절에도 사용되고 있다. 이 두 사건이 흥미로운 것은 니느웨 사람들이 마치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처럼 긴박한 재앙을 예측하면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 둘의 차이를 찾는다면 그것은 에스더서에는 회개를 뜻하는 애통과 금식에 대한 죄목이 없다는 것이다. 긴박한 위기의 상황을 알게 하려는 목적인 것이다.
ㅁ 상황을 만드는 모르드개
모르드개가 대중 앞에서 통곡한 것은 의미가 있다.
첫째, 이 행위는 유대 공동체가 그를 따르도록 독려하는 것이다.
구약정경론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하지 않은 이유

모르드개는 수도인 수산에 살았고(2:5) 항상 대궐문에 앉아 있었으며(2:21), 후궁의 뜰 앞으로 갈 수 있는 사람으로서(2:11) 왕궁의 의례를 잘 알았을 것이다.

둘째, 에스더로 하여금 유대인에게 가하는 위협을 즉각 알아차리게 한다(에스더의 등장은 백성의 구출자로서 가능하게 하는 일이다).
〈2〉 모르드개는 애도의 옷을 입음으로써 스스로 대궐 문에 접근할 수 없게 자신을 꾸민다. 이것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와 유대 백성) 사이의 장벽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비록 궁궐 안에서 베옷의 착용을 금지하는 법률이 있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특히 헤로도토스의 설명에 따라 절실한 사람이 때때로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134페이지의 각주 16를 보라)을 표현하기 위하여 왕궁을 방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 행위는 왕의 거처에 위엄을 부여한 것과 관계된다.
〈3〉 이 같은 모르드개의 행동을 왕의 말과 법을 전달받은 모든 지방의 유대인들이 모방하고 있다. 깊게 드리운 엄숙함이 애도의 형태를 표시하는 금식과 울부짖고 통곡한다는 용어 속에 들어 있다. 이들의 동의어들이 예언자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 요엘서 2장 12절에도 나타나고 있다(위에서 언급한 요나 3장의 주석 참고).17)
ㅁ 동기를 부여하는 모르드개
에스더 4장 14절과 요엘 2장 14절과 요나 3장 9절에서처럼 이런 외적인 형태의 비통한 몸짓은 “누가 알겠는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요나서와 요엘서에서 “누가 알겠는가?”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의 편에 계실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반면에 에스더에서 하나님의 개입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아래 14절의 주석 참고). 그러나 이런 연결은 대대적으로 다함께 애도하는 유대인의 마음속에 언제나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서 간섭해 줄 것을 강렬하게 간청한데서 나온 것이다.
에스더 4:14 NKRV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요엘 2:14 NKRV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요나 3:9 NKRV
9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본론

ㅇ 주제와 관련 있는 문제제기 (원인과 결과)

ㅇ 해결방법

ㅇ 나타난 결과

결론

ㅇ 핵심내용 정리

ㅇ 결단할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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