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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의 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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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과 없음을 대조 시켜 진정 봐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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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혼인잔치는 ‘나는 누구인가?’ 곧 하나님이시다. 그가 찾아오면 어떤 일이 생기는 가? ‘생명을 얻는다’
잔치와 초상집에는 ‘포도주의 있고 없음으로 포도주가 없음이 - 절망의 상태를/ 생명이 없는 세상의 모습이라면 ‘ 돌 항아리 6개는 비어 있음 - 항상 채워져 있어야 할 돌항아리는 비어있는 상태 우리의 모습이 공허의 상태임을 보여준다.
인생은 먹고 마시는 삶을 원한다. 잔치와 같은 인생 ‘아모르 파티’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눅 12:19 //
성경은 같은 비교로. 하나님과 먹고 마시는 것,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먹고 마시는 것것을 직접 보여주셨다. //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눅 17:27
누가복음 17:28 NKRV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그곳에 ‘예수’가 있다는 것은 ‘그 길, 그 진리’ (정관사를 붙여 사용된다’ ‘유일한 의미
예수가 있는 곳에 기쁨과 생명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배경지식
세례 요한의 사역이 완전히 끝난 뒤 예수님이 향하신 곳은 갈릴리다. 갈릴리로 가던 중 예수님은 잠시 갈릴리 가나에 들르신다. 가나는 ‘갈대 마을’이라는 뜻으로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는 길에 자주 방문하셨다. 사흘 되는 날이란 갈릴리로 향한 날부터 사흘째가 되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유대인은 일주일을 부를 때 ‘월 화 수…’ 하지 않고 창세기의 표현을 따라 ‘첫째 날(주일), 둘째 날(월), 셋째 날(화)…’이라 한다. 이것이 요일을 가리키는 건지, 어떤 일을 하고 난 후 세 번째 날을 가리키는 건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풍습으로 보면 화요일을 가리킬 가능성이 크다. 유대인은 셋째 날을 길일로 여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셨는데 좋는 말을 두 번 반복하신 날이 바로 셋째 날이다. 그래서 유대인은 셋째 날을 우리로 말하자면 ‘손 없는 날’로 여겨 중요한 행사를 이 날 많이 치른다. 더블 축복이 있는 셋째 날 결혼식이 주로 열린다. 정결예식 여섯 항아리가 전시되어 있다.
정결 예식을 위한 항아리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포도주는 필수 음료다. 이스라엘은 석회가 많아 몸에 흡수된 석회를 중화시키려면 산성인 알코올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포도주가 한 것이다. 산성의 토양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는 산성인 알코올보다 알칼리성 음료를 마셔야 좋다.
잔치의 비유를 보면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24장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6장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6장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5장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New Korean Revised Version) 5장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

정결예식 -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 신약 가나-혼인잔치: 눈을 먼저 바꾸시 다 요 2:1–12

유대인은 정결함을 중요하게 여겨 손을 씻을 수 있게 항아리를 두었다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 신약 가나-혼인잔치: 눈을 먼저 바꾸시 다 요 2:1–12

정결예식에 쓰는 물은 흐르는 물로 채워야 한다. 즉 샘물에서 길어 와야 하는 것이다. 샘물을 히브리어로 아인(עַיִן)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이 이 ‘아인’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샘을 변화시켰다는 의미다. 이 일 후에 예수님은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갈릴리 바닷가 가버나움으로 내려가셨다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 신약 가나-혼인잔치: 눈을 먼저 바꾸시 다 요 2:1–12

모세는 애굽에서 첫 번째 기적으로 물을 변화시켰다. 광야에서는 마라의 샘을 고치고 그곳을 ‘여호와는 치료자’라는 뜻을 가진 ‘여호와 라파’라 불렀다.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 신약 가나-혼인잔치: 눈을 먼저 바꾸시 다 요 2:1–12

광야 시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첫 이적으로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셨다. 예수님과 가장 많이 닮은 사역을 한 엘리사도 첫 이적으로 여리고에서 물을 바꾸었다.

이처럼 선지자들이 첫 이적으로 샘물을 바꾸는 데는 언어적인 유희(word play)가 있다. 히브리어 ‘아인’은 ‘눈’(eye)이라는 의미도 있다. ‘샘물’을 바꾸는 것은 곧 ‘눈’을 바꾸는 것이다. 종 되었던 ‘시각’에서 하나님을 향하는 눈으로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의 눈, 가치관을 바꾸는 것이다. 예수님은 물을 잔치의 도구인 포도주로 바꾸시면서 우리의 눈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 눈으로 바꾸고자 하셨다. 제자들도 이때부터 믿음의 눈을 갖게 되었다. 첫 표적은 제자의 눈, 그들의 아인을 변화시키는 사역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정결사건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은 생각보다 과정이 복잡합니다.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짐–마리아가 예수님께 알림(요 1:3)–예수님의 거절(요 2:4)–마리아가 하인들에게 순종을 명함(요 2:5)–예수님이 하인들을 명령하심(요 2:7–8)–하인들의 순종(요 2:7–8)–물로 된 포도주의 탄생(요 2:9)–연회장의 시음과 감탄(요 2:9–10)’ 순으로 이어집니다. 각각의 상황을 모두 완벽하게 해석하려면 걸림돌이 많습니다. 마리아가 왜 포도주 떨어진 것을 예수님께 알렸는지, 예수님은 왜 처음에 이를 거절하셨는지, 그런데도 마리아는 왜 하인들에게 순종을 명했는지, 예수님은 왜 마음을 돌이켜 다시 기적을 행하셨는지 등 알쏭달쏭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첫 표적에 대한 해석은 무척 다양합니다.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도 진짜 핵심을 망각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기적을 행하신 예수님보다 마리아를 주인공처럼 취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해석할 때 모호한 부분은 잠시 제쳐 두고 핵심부터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성경이 말하려는 참된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기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물이 포도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표적의 의미를 밝혀 나가야 합니다. 이 변화의 의미를 알려면 물이 최초에 어디 담겨 있었는지가 중요합니다. 요한복음은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요 2:6)라고 기록합니다. ‘정결 예식’이란 말 그대로 ‘씻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어야 했는데, 위생 차원을 넘어 엄격한 율법이었습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공관복음서에는 먹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이 나옵니다(마 15:1–2; 막 7:1–5). 요한복음에도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정결 예식에 대하여”(요 3:25) 논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정결 예식을 따라 놓인 여섯 항아리’는 잔칫집에 모인 사람들이 율법을 매우 중시하던 자들임을 보여 줍니다. ‘두세 통’에서 ‘통’은 당시 단위로 약 39리터입니다. 따라서 두세 통 담는 항아리는 대략 100리터 안팎의 물이 들어가는 꽤 큰 용기였습니다. 심지어 항아리는 돌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거대한 돌 항아리를 여섯 개나 구비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잔치를 위해 빌려 왔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렇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던 것은 그만큼 혼인 잔치의 참석자들이 율법의 정결 예식을 중시했다는 증거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요 2:7, 본래는 ‘항아리들’로 복수임)라고 하신 것은 그 항아리들이 거의 비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잔치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이 정결 예식을 따라 항아리의 물을 다 소진할 만큼 열심히 손을 씻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잔치는 애초에 율법을 중시하는 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가나 사건의 계기가 된 “포도주가 떨어진지라”(요 2:3)의 의미는 이 깨달음에서 밝혀집니다. 한마디로 율법을 중시하던 자들의 시대가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흥과 기쁨을 주는 잔치에서 포도주는 매우 중요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지면 잔치는 끝납니다. 율법을 중시하는 자들의 잔치에도 포도주가 다 떨어졌습니다. 잔치는 끝났고, 마침내 율법시대도 막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항아리에 다시 물을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이때 예수님이 채우신 물은 율법 준수를 위한 세척용 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아귀까지 채운 물로 씻으라 하지 않고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요 2:8) 명하십니다. 씻는 물이 마시는 물로 용도가 바뀐 것입니다. 씻는 물은 율법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다시 채워져 마실 수 있게 된 물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율법은 효력이 다했습니다. 그 물에 다시 손을 씻어도 포도주는 공급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채우신 물은 포도주로 변해 잔치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포도주는 이전 것보다 훨씬 “좋은 포도주”(요 2:10)였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물은 포도주가 되어, 파국을 맞은 잔치를 다시 살아나게 했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과거의 율법에서 결코 얻을 수 없는 새 생명을 사람들에게 공급하신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잔치는 예전 잔치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가나혼인잔치 본문은 구약의 종말 예언과 병행을 이룬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사 25:6–8). 예수님의 첫 기적은 바로 이 구약에 예언된 종말 잔치가 마침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유대인의 율법으로는 생명을 얻을 수 없지만 예수님이 포도주를 공급하신 잔치를 기점으로 사망의 권세는 사라지고 참 생명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는 ‘유대인’이라는 말이 유달리 많이 등장합니다. 마태복음에 5번, 마가복음에 7번, 누가복음에 5번 나오는 데 비해 요한복음에는 자그마치 70번이나 나옵니다. 유대인들은 대부분 예수님과 적대적 관계였습니다(요 2:18; 5:16; 6:41; 7:1; 8:52 외 다수). 공관복음서에는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지만(마 26:59; 막 3:6), 요한복음에는 이들을 뭉뚱그려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요 5:18)라고 기록합니다. 한마디로 요한복음은 일부를 제외하면(요 4:22) 대부분의 유대인에게 부정적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모세의 제자”(요 9:28)로 자부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예수님)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요 9:29)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율법을 전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모세를 무시하지 않으시지만,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 5:46)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증거한 사람입니다(요 1:45; 3:14). 모세와 그가 전한 율법의 궁극적인 기능이자 가치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기에, 예수님은 모세보다 훨씬 크신 분입니다. 서막에 보면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라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인간에게 은혜와 진리를 주십니다. 이는 율법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2)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진리가 인간에게 자유와 생명을 공급하신다는 뜻입니다(요 14:6).
예수님의 첫 표적인 가나의 기적은 새 시대의 도래와 새 생명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평범한 물이 아니라, 만인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생명수입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는 새 시대, 새 생명의 주인공이 됩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실을 거듭 반복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말씀하십니다. 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말씀하십니다.
죽음이 지배하는 이 세상은 언젠가 끝날 허무한 잔치와 같습니다. 무엇으로도 파국의 운명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멸망의 자리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새 생명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가나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한 첫 표적은 예수님의 새 생명의 시대가 인류 역사에 시작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오경준. (2018). 신약정독: 복음서 편 (초판, pp. 360–362). (04084) 서울시 마포구 양화진4길 3: 주식회사 홍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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