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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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25 Ταῦτα ἐν παροιμίαις λελάληκα ὑμῖν· ⸆ ἔρχεται ὥρα ὅτε οὐκέτι ἐν παροιμίαις λαλήσω ὑμῖν,* ἀλλὰ παρρησίᾳ περὶ τοῦ πατρὸς ⸀ἀπαγγελῶ ὑμῖν.* 26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αἰτήσεσθε,* καὶ οὐ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ἐγὼ ἐρωτήσω τὸν πατέρα ⸋περὶ ὑμῶν⸌· * 27 αὐτὸς γὰρ ὁ πατὴρ φιλεῖ ὑμᾶς, ὅτι ὑμεῖς ἐμὲ πεφιλήκατε καὶ πεπιστεύκατε ὅτι ἐγὼ παρὰ ⸂[τοῦ] θεοῦ⸃ ἐξῆλθον.* 28 ⸋ἐξῆλθον ⸀παρὰ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ἐλήλυθα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πάλιν ἀφίημι τὸν κόσμον καὶ πορεύομα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29 Λέγουσιν ⸆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Ἴδε νῦν °ἐν παρρησίᾳ λαλεῖς καὶ παροιμίαν οὐδεμίαν λέγεις.* 30 νῦν οἴδαμεν ὅτι οἶδας πάντα καὶ οὐ χρείαν ἔχεις ἵνα τίς σε ἐρωτᾷ·* ἐν τούτῳ πιστεύομεν ὅτι ἀπὸ θεοῦ ἐξῆλθες. *31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 Ἰησοῦς· Ἄρτι πιστεύετε˸;* 32 ἰδοὺ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ἐλήλυθεν ἵνα σκορπισθῆτε ⸆ ἕκαστος εἰς τὰ ἴδια κἀμὲ μόνον ἀφῆτε·* καὶ οὐκ εἰμὶ μόνος,* ὅτι ὁ πατὴρ μετʼ ἐμοῦ ἐστιν. *33 ταῦτα ⸆ λελάληκα ὑμῖν ἵνα ἐν ἐμοὶ εἰρήνην ἔχητε.* ⸋ἐν τῷ κόσμῳ θλῖψιν ⸀ἔχετε·⸌ ἀλλὰ θαρσεῖτε, ἐγὼ νενίκηκα τὸν κόσμον.*

다같이 묵도하심으로 고등부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사도신경 신앙고백하겠습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304장 찬양드리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33절입니다. 합독하겠습니다.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2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28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29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로도 하지 아니하시니
30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
3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말씀
*25 Ταῦτα ἐν παροιμίαις λελάληκα ὑμῖν· ⸆ ἔρχεται ὥρα ὅτε οὐκέτι ἐν παροιμίαις λαλήσω ὑμῖν,* ἀλλὰ παρρησίᾳ περὶ τοῦ πατρὸς ⸀ἀπαγγελῶ ὑμῖν.*
이것들을 비유로 내가 너희에게 말했다(완능직1단). 더이상 너희에게 비유로 말하지 않을(미능직1단) 때가 온다(현능중1단) 반대로 숨김없이 아버지에 대해 내가 선포할 것이다(미능직1단)
26 ἐν ἐκείνῃ τῇ ἡμέρᾳ ἐν τῷ ὀνόματί μου αἰτήσεσθε,* καὶ οὐ λέγω ὑμῖν ὅτι ἐγὼ ἐρωτήσω τὸν πατέρα ⸋περὶ ὑμῶν⸌· *
그 날에 내이름으로 너희가 구할 것이다(미중직2복),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나는 너희를 위해 그 아버지께 질문할 것이다(미능직1단)라고 말하지 않는다(현능직1단)
중간자가 사라진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있다.
27 αὐτὸς γὰρ ὁ πατὴρ φιλεῖ ὑμᾶς, ὅτι ὑμεῖς ἐμὲ πεφιλήκατε καὶ πεπιστεύκατε ὅτι ἐγὼ παρὰ ⸂[τοῦ] θεοῦ⸃ ἐξῆλθον.*
왜냐면 아버지, 그분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현능직3단), 왜냐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완능직2복) 믿는다(완능직2복) 왜냐면 나는 아버지로부터 왔기 때문이다(부과능직1단).
- 우리가 직접 하나님께 갈수 있는 이유는 단하나, 하나님의 사랑때문이다.
- 3가지 이유 하나님의 사랑, 우리의 사랑과 믿음, 예수님의 출신(성자 하나님이심).
- 3가지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앞에 올 수 있게 되었다.
28 ⸋ἐξῆλθον ⸀παρὰ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ἐλήλυθα εἰς τὸν κόσμον· πάλιν ἀφίημι τὸν κόσμον καὶ πορεύομα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나는 그 아버지로부터 나왔고(부과능직1단) 그 세상으로 왔다(완능직1단). 다시 그 세상을 떠나(현능직1단) 그 아버지께로 간다.
잠시 세상에 오신 예수님.
다시 왔던 곳, 아버지의 곁으로 가시는 예수님.
당연한 것이다.
슬퍼하거나 낙담하거나 불신하지 마라.
자녀들을 놓고 세상을 떠날 것을 아시는 예수님.
그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
29 Λέγουσιν ⸆ οἱ μαθηταὶ αὐτοῦ· Ἴδε νῦν °ἐν παρρησίᾳ λαλεῖς καὶ παροιμίαν οὐδεμίαν λέγεις.*
그 제자들이 그에게 말한다(현능직3복). 보소서 이제는 숨김없이 말하시고(현능직2단) 비유로 말하시지 않으십니다(현능직2단).
30 νῦν οἴδαμεν ὅτι οἶδας πάντα καὶ οὐ χρείαν ἔχεις ἵνα τίς σε ἐρωτᾷ·* ἐν τούτῳ πιστεύομεν ὅτι ἀπὸ θεοῦ ἐξῆλθες.
이제 우리가 압니다(완능직1복) 당신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완능직2단) 당신에게 누가 질문하는 것을(현능가3단)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현능직2단) 이 안에서 우리가 당신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부과능직2단) 믿습니다(부과능직2단)
‘물음’이라 번역된 것은 26절과 27절에서 ‘구함’으로 번역된 것과 똑같은 말이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질문에 대답해주시고, 질병을 고쳐주심이 중보자로서의 역할임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하시지만,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시고,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일임을 알았다.
*31 ἀπεκρίθη αὐτοῖς ⸆ Ἰησοῦς· Ἄρτι πιστεύετε˸;*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부과중직3단). 이제 너희가 믿느냐?(현능직2복)
드디어 믿는거야?
이제는 깨달은 거야?
32 ἰδοὺ ἔρχεται ὥρα καὶ ⸀ἐλήλυθεν ἵνα σκορπισθῆτε ⸆ ἕκαστος εἰς τὰ ἴδια κἀμὲ μόνον ἀφῆτε·* καὶ οὐκ εἰμὶ μόνος,* ὅτι ὁ πατὴρ μετʼ ἐμοῦ ἐστιν.
보라 때가 온다(현중직3단) 그리고 왔다(완능직3단) 그 결과 너희가 자기의 것으로 흩어지고(부과수가2복) 너희는 나를 홀로 버릴 것이다(부과능가2복).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현능직1단), 왜냐면 그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현능직3단).
이제야 예수님을 믿고, 이해한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말하신다.
근데, 이제부터 우리는 함께 있지 못해. 너희는 나만 버려두고 다 뿔뿔히 흩어질거야. 하지만 나는 하나님과 함께 있어. 지금도, 그때가 와도.
너희는 하나님을 버리고
*33 ταῦτα ⸆ λελάληκα ὑμῖν ἵνα ἐν ἐμοὶ εἰρήνην ἔχητε.* ⸋ἐν τῷ κόσμῳ θλῖψιν ⸀ἔχετε·⸌ ἀλλὰ θαρσεῖτε, ἐγὼ νενίκηκα τὸν κόσμον.*
이런것들을 내가 말한다(완능직1단) 내 안에서 평안을 너희가 가지기 위해서다(현능가2복). 그 세상 안에서 너희가 고통을 가진다(현능직2복). 그러나 담대하라(현능직2복), 내가! 그 세상을 이겼다(완능직1단).
평안을 가져라. 평안하라
분명히 세상에서 고통을 가질 것이다.
평안함으로 담대하라.
평안함과 담대함의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 예수시다.
우리를 위로하시는 예수님.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
자식을 먼저보내는 부모와 같은 마음의 예수님.
죽음의 길, 고통의 길을 먼저 더욱 심한 길로 가지만 자신이 아닌 제자들 자녀들을 걱정하시는 예수님.
이런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잔을 힘겨워하셨다.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
그럼에도 제자들을 생각했다. 위로했다.
힘을 내세요 평안하세요. 예수님이 먼저 가셨어요. 우리 앞서 가서 길앞잡이 역할을 하고 계세요.
설교
서론
지난 시간 우리는 예수님께서 잡하시기 전날 밤 기도하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철저하게 수동적이었던 제자들과 능동적인 예수님의 모습은 엄청난 대조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피땀흘려 기도하시다가 3번이나 돌아오셔서 제자들에게 기도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근심과 걱정, 슬픔이 있었지만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소통하고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렇다는 것을 모두 아시고도 교훈하시고 말씀하시고 기도하러 데리고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심정으로 이렇게 하셨을까요. 본문을 살펴보며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오늘 본문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떠날 것을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이라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는 않지만,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라고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슬퍼하고 근심하는 제자들을 향해 성령께서 보혜사로 오실 것등 여러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본문은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고 계십니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슬퍼하는 제자들을 마치, 어린 자식을 보는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죽음의 길로 가는 것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제자들보다 더욱 큰 고통과 고난을 당할 것은 예수님 본인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모처럼 걱정하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마지막 33절은 어떤 내용입니까. 평안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서 평안을 소유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위로하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님 자신의 슬픔과 고난이 더욱 큽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이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느 어떻게든 제자들을 위로하고 싶어 하십니다. 성장하여 더욱 나은 사람, 하나님께 사람에게 더욱 아름다운 자가 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25절에 예수님께서는 이제 비유가 아니라 직접 이야기를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떠난다는 말씀에 슬퍼하는 제자들입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아니라 이제는 너희가 직접 물어보고 구하게 될거야.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 아버지께 직접 너희가 구한 것을 받게 될거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에게 있어 하나님과 예수님 두분중에 누가 더 가까운 분일까요. 눈앞에 있고 이야기를 듣고 직접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당연히 예수님이 가까운 분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께서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라고 불러도 제자들에게 있어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주관자, 심판자입니다. 아버지처럼 친밀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25절에서 28절까지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과는 친밀했습니다. 예수님께 꾸지람을 듣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오병이어때처럼 예수님께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를 치료해주신 것처럼 서로의 가족과 아픔을 챙겨주고 나누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그저 단순한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정말 가족이 되어 함께 지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떠남을, 죽을 것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나와 너희가 가졌던 그 관계, 어떤 때 불만도 가졌고 어떤 때 서로 기뻐했고, 어떤 때 서로 의견도 나누었던 그 관계, 함께 먹고 잤던 그 관계를 이제 너희가 내 아버지와 가질거야. 이제 하나님은 너희에게 단순히 ‘하늘에 계신 전능하신 주’가 아니야. 나와 그랬던 것처럼 너희는 하나님과 가족관계, 함께 먹고 마시는 식구가 될거야.” 라고 말씀하시며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27절에 나온 것과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함께 동고동락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이 엄청난 충격과 슬픔이 될 것이지만, 오히려 그 아픔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순종하지만 반항도 하고 서로 미워할 때도 있지만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가족임을 알게 될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 예수님의 심정을 알고 살았을까요. 저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가졌던 그 관계, 서로 울고 웃었던 그 관계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가지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부모님과 친구들과 가지는 그 관계를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가지고 싶어 하십니다. 그래서 27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라고 하실 때, 특별히 ‘필레오’라고 표현합니다. 한번쯤 들어보았죠? 아가패, 필로스, 에로스의 사랑. 정말 부모자식으로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십니다. 힘겨워하는 우리를 위로하고 싶어하시고, 위로하고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까. 이해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마음, 심정보다 우리는 우리의 상황이 더 급합니다. 고3들은 수능이 더 급하고 수능보다 모의고사의 성적이 더욱 큰 현실로 다가 올 것입니다. 여러분은 당장 코로나19도 중요하지만, 개학이 4월달로 늦춰진 것이 더욱 크게 다가오고 있을겁니다. 어떤 사람은 걱정을 할 것이고, 어떤 사람은 좋아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직장과 일터에서 근심하고 걱정하지만, 여러분은 그 마음을 100%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딱 한가지만 알아도 좋다 하십니다.
29절과 30절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다고 말합니다. 뭘 이해했습니까. 예전에는 비유로 모든 것을 말씀했는데, 지금은 비유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지 않음도 안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중 정말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30절에 ‘물음’이란 말은 26절에 나온 ‘구한다’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단순히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제자들이 하나님과 가족관계를 가지게 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것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저 비유로 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말씀하신다는 것만 이해했고, 딴 건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믿는다라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르는 것을 지적하거나, 그 이해가 잘못되었음을 말하지도 않습니다. 언젠가 알게 될 것을 기대하십니다. 제자들에게 ‘힘내’라고 하십니다. 33절에 담대하라는 말을 현대식으로 바꾸면 바로 ‘힘내라’라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떠나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하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외롭고 힘들어할 때, 그 누구도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돕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십니다. 단순히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가족으로서 아버지로서 함께 하십니다. 아픔을 나누시며, 함께 걱정하십니다. 하나님과 함께 행동하기는커녕, 도움조차 되지 못하는 우리의 손길을 기뻐하시며 받으십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뭐라 말씀하십니까.
‘담대하라’ 요즘 말로 뭐라고요?
‘힘내!’
‘내가 벌써 처리했어!’
‘그러니 조금만 더 같이 가자!’
우리 아버지의 이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힘을 내어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때에 나는”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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