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2-7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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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오병이어의 본문이다. 오늘본문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본론
본문의 의미
문맥과 관련 :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오는 자를 살리시는 분.
마가복음에서 오늘 본문 이전의 내용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 제자를 파송하심과 세례요한의 죽음을 다룬다. 세례요한의 죽음은 예수님의 제자파송 이전으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살아돌아왔다고 6장 14절에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가는 제자들의 파송과 세레요한의 죽음을 연결해서 적고 있는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찾아오는 자, 자신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자를 먹이시고 살리시는 분이란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는 병든자를 고치며, 귀신들린자를 자유케하며 사역을 하셨다.
그러나 당시 왕이었던 헤롯은 백성의 마음을 위로하며 인도하던, 왕이 해야할 역할이지만, 못하고 있었던 역할을 대신했던 세례 요한을 죽여버렸다.
왕이지만 이름만 껍데기만 왕이다. 지금은 목자, 목사라는 말이 교회에서만 주로 쓰이지만, 구약시대, 그리고 로마당시만 하더라도, 왕이 자신을 목자로 많이 비유했다. 백성을 인도하고 돌보는 자, 백성의 앞에 서는 자라는 의미다.
다윗이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한 것은 자신이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대단한 고백이다.
그런데 헤롯은 왕인데, 백성, 양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잡아먹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본문이 이어진다.
30-34절에 보면 예수님이 가시는 경로를 알고 미리 사람들, 그것도 수많은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다. 자신들의 목자가 되어 달라는 간절한 마음인 것이다.
진정한 왕, 목자가 없는 시대를 살던 그 당시 백성들에게 예수님은 목자로서 다가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34절에 나오다시피 이들이 정말로 목자없는 양임을 알고 그들을 인도하신다.
그냥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오병이어를 통해 그들의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기까지 하신다.
즉, 오늘 본문은 왕이 없던, 왕이 있지만 사는 백성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권력과 명예, 부, 안위에만 관심이 있던 그들에게 진정한 목자로 오신 예수님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자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오병이어의 기적이 끝난 이후 즉시 자리를 비움으로써, 백성에게 휘둘리고, 백성이 주는 존경과 명예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선하신 뜻에 따라 인도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참된 목자가 어떤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참된 목자이시다. 그 누구보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우리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아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우리의 갈길을 각자 정해야 하는 시대속에서 살고 있다. 마치 내 꿈 내길은 내 뜻과 능력으로만 정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로 그런가? 그렇다면, 왜 여러분은 확실한 비전이 없는가. 나는 어떤 직업을 가지며, 그 직업속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이다라는 명확한 비전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 마치 모든 것이 열려있고, 평등한 시대, 기회의 평등을 말하는 시대이지만, 그 실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음을 그 누구보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련회에서 며칠간의 학업이 빠지는 것도 부담스럽지 않는가.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진정한 목자이시다. 정말로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때로는 양들과 뜻이 부딛힐 때도 있고, 그로 말미암아 핍박을 당할 때도 있지만, 끝까지 그분의 선하신 뜻대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니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얻자. 오늘 본문의 상황처럼, 왕이 핍박하고, 세상이 멸시한다. 정말로 갈곳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한 노릇이다. 말로는 미래의 꿈을 펼치라. 너희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라고 하지만, 우리의 피부로 느껴지는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만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직접 우리곁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보다 앞서서 우리보다 더욱 아픈 상처와 노골적인 조롱과 수치를 당신 분이시다. 그러면서도 오직 양인 우리를 위해 그 모든 풍파를 감당하신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 우리를 입히시고 먹이시고 살리시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자.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겸손이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파송까지 받았던 자들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교만한 자들이 나온다.
바로 제자들이다.
본문 35절과 36절에는 제자들이 먼저 예수님께 찾아온다. 그러면서 지금 모인 무리들, 예수님을 따라 모인 길잃은 양과 같은 그들을 흩어지게 하자고 한다.
36절처럼 그들이 그 시간에 마을에 가서 무엇을 사먹을 수 있는가? 못한다.
그당시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을 새야 할 것이다. 이 것을 제자들이 모를까? 안다.
그렇다면 어디서 제자들이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가.
37절이다. 예수님이 먹을 것을 주라고 하시니 제자들이 뭐라 하는가?
이백데나리온이라고 한다.
우리돈으로 1000-1500만원 정도 될 것이다.
자, 매우 구체적인 숫자이지 않은가? 제자들중에 이런 대규모 집회를 많이 진행해봐서 딱 봐도 견적이 나와서 바로 말할까?
당연히 아니다.
그러면, 결론은 하나다. 제자들이 미리 의논을 했다는 것이다. 지금 모인 사람들의 식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의논하고 자기들끼리 들어가ㅡㄴ 돈까지 계산해보고, 아예 안된다고 결정을 한 다음에 예수님께 온 것이다.
지금 목자는 누구인가. 예수님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목자를 찾아 모인 양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미리 결정을 하고, 통보하는 것처럼 말한다.
36절을 봐라. 사먹게 하옵소서. 헬라어로 명령형으로 한다. 흩어보내라! 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36절을 직역하면 이렇게 된다.
그들을 보내시오. 그러면 그들이 근처의 마을(시골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살 겁니다.
뉘앙스가 어떤가? 자기 알아서 하게 합시다. 이다.
다시한번 말했지만, 지금 목자, 그 백성들을 돌보는 자는 누구인가. 이 사람들은 누구를 보고 누구의 은혜를 바라고 왔는가.
예수님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결정하셔야 하는 부분인데, 자신들이 이미 결정한 것이다.
이백데나리온이라는 근거를 언제 제시하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반박하는 근거로 사용한다.
37절에 ‘우리가 가서’라고 나오지 않느냐?
이 ‘가서’라는 말은 앞에서 36절의 ‘가서’와 똑같은 말이다.
뭔 소린가?
예수님, 저사람들 보낼래요? 우리를 보낼래요?
ㅁ무슨 소리인지 알겠는가? 예수님을 협박하는 거다 물론 제자들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런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떠날까요? 또 우리가 어떻게 200데나리온 1000만원이 넘는 식량을 어떻게 사고 어떻게 들고와서 먹입니까?
라는 뜻이다.
오늘 본문 마가복음에는 오병이어의 출처가 나와있지는 않지만, 요한 복음에는 이 오병이어가 한 아이의 도시락이란 것을 분명히 밝힌다.
즉, 제자들이 자기 먹을 것을 가지고 온게 아니라, 어떤 아이가 이걸로라도 저사람들을 먹게 해달라고 헌금한 것만을 가져 온것이다.
자기 몫은 놔두고 말이다.
예수님은 목자로서 그 사람들을 살리시고 살피셨는데, 제자들은 자기 먹을 것만 챙기고 있다.
헤롯왕과 똑같다는 뜻이다. 저 사람들이 가서 기력이 쇠진해서 죽든지 말든지, 나만 살자고 한다.
그렇게 모든 것을 결정해놓고 통보한다. 자신과 다르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에게 반박하고 알게 모르게 빈정거린다.
이것이 교만이다.
예수님보다 앞서서 결정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도 들어가지 않는것. 그 결과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것이다.
이 제자들보다, 자신이 먹을 것을 생각지 않고 다 바친 한 아이가 더욱 예수님을 닮았다. 더욱 예수님께 합당하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를 살리신다고 사실을 믿고 경험했는가?
그렇다면 한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자.
예수님 안되요! 라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그 뜻이 무엇인지 기도하자.
그래서, 제자들과 같이 부끄러운 오병이어, 그 기적을 보고 뻘쭘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병이어가 우리의 기쁨이되기를 소망한다.
그를 위해 겸손함으로 우리의 것을 드리를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온 맘 다해”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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