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29.저녁예배설교

저녁예배설교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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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끝 슬리퍼
성가대쪽 좌석에서 기도
종치기
다함께 묵상기도 드림으로 주일저녁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찬송가 446장 찬양드리겠습니다.
전유수 시무집사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8장 20절에서 24입니다. 구약 93페이지입니다.교독하겠습니다.
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21 네가 만일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며 그들이 사는 땅에도 그러하리라
22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2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라 내가 네게 이르는 바를 너는 애굽 왕 바로에게 다 말하라
23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24 여호와께서 그와 같이 하시니 무수한 파리가 바로의 궁과 그의 신하의 집과 애굽 온 땅에 이르니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
30 모세가 여호와 앞에서 아뢰되 나는 입이 둔한 자이오니 바로가 어찌 나의 말을 들으리이까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령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할지니라
3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내 표징과 내 이적을 애굽 땅에서 많이 행할 것이나
4 바로가 너희의 말을 듣지 아니할 터인즉 내가 내 손을 애굽에 뻗쳐 여러 큰 심판을 내리고 내 군대,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지라
5 내가 내 손을 애굽 위에 펴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야 애굽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매
6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더라
7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에 모세는 팔십 세였고 아론은 팔십삼 세였더라
호산나찬양대 찬양하겠습니다.
서론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는 4번째 재앙, 파리떼의 재앙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시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전에 모세와 아론의 족보를 말함으로써, 애굽에 있는 동안에도 변함없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변함없이 모세와 아론에게 그리고 이스라엘과 바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살펴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본론
3번째 재앙, 이 재앙의 끝맺음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바로에게 선포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을 섬겨야 할 백성이 하나님이 아닌 바로를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것이 10재앙에서의 쟁점이기도 합니다.
처음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앞에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광야에 가서 절기를 지킬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후 모세와 바로의 대화에서 이 절기를 지킴은 하나님께 제사드림으로 바뀌게 됩니다.
본문은 애굽 땅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다라고 하면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작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도 그렇고 10번째 재앙까지도 내 백성이 내게 제사를 드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첫 번째 말씀은 순종입니다.
물론 둘은 같은 것입니다. 제사드리는 것.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섬길 것이다를 미완료로 말하십니다. 이것은 한번만 3일길을 가서 예배드리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길 것을 말씀하는것입니다.
29절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모두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냐면 모세는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펴본대로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가게 해달라는 것은 전했지만, 정작 그 이유는 제대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는 말은 애굽의 왕앞에서 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 전부를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가 제사하러 가라 라고 할 때는 항상 완료로 씁니다. 이것은 한번만 하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을 받은 모세는 못하겠다라고 30절에 대답합니다. 그 이유로서 지난 번에 이야기한 할례받지 못한 입술을 가진 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이야기하지만 모세의 좌절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와 계속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고, 절기를 지키기를 원하시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로는 어떻게든, 그 예배드림조차도 딱 한번으로 끝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좌절은 어디서 왔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기 때문에 좌절한 것입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임에도 자신의 판단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하지 않았습니다.
소위 말해 주도권싸움입니다. 누가 이스라엘 백성의 왕이 될 것이냐를 두고 하나님과 바로는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재앙은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특징, 구조라고 볼수도 있는 것이 뭐냐면, 3의 배수마다 다른 재앙과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는 이야기는 기뻐했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나서야 할 상황, 책임지고 고초를 당해야 하는 상황은 다들 피하기 급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장로 기록원 백성들 모두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인간의 본성을 따라 행했습니다.
1, 2재앙에서는 바로를 향한 경고와 재앙의 끝맺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간에 본 것처럼 3재앙에서는 이 두가지가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특징은 3재앙만이 아닙니다. 6재앙인 악성종기의 재앙도 바로에게 하는 경고와 그 재앙의 끝맺음이 빠져 있습니다. 9재앙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모세에게 이번에는 하나님의 말씀 전부를 온전히 말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3의 배수 재앙, 3재앙, 6재앙, 9재앙은 심판의 성격을 가진다는 뜻입니다. 1,2재앙에서 경고하시고 듣지 않으시자 3재앙에서 심판하신것입니다. 마찬가지로 4재앙과 5재앙을 통해 경고하시고 또 듣지 않자 6재앙에서 심판하십니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며, 재앙의 강도 역시 점점 심해지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인 4재앙은 재앙의 강도가 강해지는 첫 번째 재앙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힘들어하는 모세를 향해 1절의 말씀을 하십니다.
본문 전 3재앙은 이 재앙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벼룩, 모기, 흡혈파리와 같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 벌레들이 들끓는 재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파리 재앙은 이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재앙입니다.
1절에서 모세는 바로에게 신이 되며, 아론은 모세의 선지자가 되어 바로에게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바로는 살아있는 신입니다. 그런 살아있는 신 앞에서 모세가 신과같이 된다는 것은 모세가 바로보다 높아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바로의 말 한마디로 인해 모세와 아론뿐만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을 온전히 전한다면, 모세의 한마디에 바로와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대로 모세의 한마디로 애굽에 엄청난 재앙들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그대로 성취하신 것입니다.
보통 파리떼라고 번역된 이 단어의 원래 뜻은, 섞여있는 이라는 뜻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단어 자체가 파리라는 특정한 벌레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파리를 포함한 수많은 종류의 벌레들의 떼거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벌레의 특징은 사람을 물어뜯고, 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45에는 쇠파리가 그들을 문다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서 물다도 무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먹는 것까지 갑니다. 즉, 벌레가 와서 사람의 살점을 뜯어 먹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바로의 마음을 굳게해서 모세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왜 바로의 마음이 굳어서 모세의 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애굽땅에서 하나님의 기적과 표징을 많이 행해서 결국 애굽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현재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고난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애굽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됩니다. 이런 상황을 가리켜 24절에 “파리로 말미암아 그 땅이 황폐하였더라”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물어뜯고 쏘고, 온갖 독을 뿜어대는 벌레떼가 온 사방에 가득하니 이정도 표현이 나올만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그에 대해 반박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 고난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은커녕 이스라엘이 분열되고, 기록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컸는 죄를 저지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황폐하였다는 표현은 사실 이정도, 그냥 사람이 못살지경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가 처음으로 쓰인 곳은 :11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과정입니다. 애굽왕 바로의 말도 아니고, 모세의 말도 아닌,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성취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라고 할 때, 부패하여 라는 단어가 이 단어입니다. 그리고 6장 13절에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은 이스라엘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4절에 보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 군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 애굽의 노예가 하나님의 군대로 변화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손, 그래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해 그들이 군대가 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표현할 때,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말을 좀더 쉽게 바꾸면 군대들의 여호와라는 뜻입니다. 일반인이 군인이 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합니까.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만군의 여호와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일반인은 몇 달간의 훈련으로 되지만, 정예병, 특전사가 되기위해서는 그정도의 훈련이 아닙니다. 먹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생활패턴과 사고방식까지 완전히 바꾸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특전사, 정예병과가 이정도인데,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 위해선 대체 어떤 과정이 필요했겠습니까.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겠다라고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사람을 바꿀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13 ◎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또한 이 과정, 출애굽의 과정은 여러면에서 아브람의 부르심과 비슷합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 그 우상의 도시에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람의 고향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몇 년째 살고 있습니까. 400년 이상 살고 있습니다. 그정도 살았다면 고향입니다. 가나안땅은 400년 전에 얼굴도 못본 증조부들 고조부들이나 살았던 시골에 불과합니다. 당장은 애굽이 노역을 시키기 때문에 힘들어하지만, 만약 바로가 3일길을 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것을 허락했다면, 이스라엘은 과연 가나안으로 돌아갔을까요. 그중에 태반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제 공식적인 휴가까지 생겼는데 왜 아무것도 없는 낯선 땅으로 돌아갈 것입니까.
라고 할 때, 멸하리라도 이 단어입니다. 마지막으로 :29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 썼던 단어도 이 단어입니다.
즉, 넷째 재앙이 일어난 애굽의 상황은 노아의 홍수심판을 받아야 하는 세상과도 같고, 소돔과 고모라와도 같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땅도 포기하고 친척과 가족도 포기하고 떠났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모세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학대하며, 그들의 피와 땀으로 잘먹고 잘살고 있는 애굽입니다. 그들의 눈에 그들의 땅, 애굽은 풍요롭고 살기 좋은 땅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는 훈련의 과정,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군대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눈에 애굽땅은 홍수 이전의 세상과 같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인들이 이것을 알았습니까? 아닙니다. 반대로 26절에서 애굽인이 싫어하는 바가 뭐라고 합니까. 여호와께 제사드리는 것이 싫어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싫어하는 바라는 말은 끔찍한 혐오스러운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간과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군대가 되기 위해서 자신들역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듣지 않는데, 어떻게 군대가 되겠습니까. 군대는커녕 종도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애굽땅이 하나님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되었는데, 반대로 애굽인의 눈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끔찍한 것으로 보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애굽의 노예를 데리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군대를 일으키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은 결국 애굽이 하나님께 심판받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정복하심,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지도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붙잡아 자신들을 섬기게 하는 애굽이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넷째 재앙을 통해 애굽땅을 황폐한 곳, 사람이 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는 그대로 애굽인들에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이스라엘을 새롭게 태어나게 하실 필요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애굽을 섬기던 이스라엘이 이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순종할 준비가 되게 해야 했습니다.
그렇다면, 애굽인들이 또한 애굽의 왕인 바로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까.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니 25절에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그들이 섬기던 애굽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게 순종한 댓가는 눈에 보이는 물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섬김의 댓가 역시도 손에 들어오는지 들어오지 않는지 알수 없을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넘치도록 주시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디가 나은 곳입니까.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광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황폐해진, 홍수이전의 세상같고 소돔과 고모라같은 애굽땅입니까.
당연히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영원히 섬기는 광야입니다. 그러나 애굽은 이것을 모르고 끝까지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체질부터 사고방식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변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인식이 변해서 우리가 떳떳하게 하나님을 믿는 것을 드러냈으면 좋겠다. 우리가 기도해줄게요. 예수님 믿으세요. 라는 말을 하면 흔쾌히 받아들이고, 오히려 좋아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보다시피 세상은 결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바로의 마음처럼 더욱 완강하게 될 것입니다.
적용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환경이 그렇고 요즘 풍조가 그러니 우리가 조금 수그러야 합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더욱 예배하고 더욱 기도하고 더욱 모이며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더욱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합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짊어지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왜 애굽땅이 황폐하게 되었습니까. 부패한 땅, 홍수이전의 세상과 같고 소돔과 고모라와 같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그 땅에서 하나님을 섬김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하나님을 섬겨야할 하나님의 백성이 반대로 애굽왕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애굽땅은 그렇게 황폐하게 되었고 멸망되어야 하는 땅이 되었습니다.
분명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기 때문에, 세상을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닮아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애굽왕, 세상풍조, 세상의 가치관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은 무시할지라도 그것이 생명의 길입니다. 우리에게만 생명의 길이 아니라 이 세상에도 생명의 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섬김이 없어진다면,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론 혼란스럽고, 어떤 때는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판단하기 힘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무엇이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지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의 명령과 상황속에서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냐며 비난하고 분열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또한 모세조차 하나님의 명령에 100%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받을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복은 무엇일까요. 명예입니까. 물질입니까. 세상에서 살면서 누리는 평안함입니다. 다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길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이미 순종의 본을 보인 자들,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본문 30절과 31절 상반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행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대로 그대로 행했다.’
30 모세가 바로를 떠나 나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니
31 여호와께서 모세의 말대로 하시니
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바로에게 말할 때 모세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다.
31절의 뉘앙스는 30절에 모세가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셨다입니다.
나이 여든이 넘었습니다. 평생을 하나님의 명령과는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앞에서 새롭게 태어났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누가 이렇게 했습니까. 모세가 이렇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하시면, 모세가 이와같이, 다른 말로 그대로 행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반대로 나옵니다. 모세가 말하고 하나님께서 실행하고 있습니다. 상하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의 모세의 종과 같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의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하고,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이렇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결혼관계로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이런 관계를 가지시기 원합니다. 서로 순종하고 서로 섬기는 부부의 관계를 우리와 맺으시기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신부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도 처음부터 온전히 순종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들도 순종할 건 순종하고 자기가 생각할 때 순종하지 못할거 같아 보이는 것은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을 거쳐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고 모든 명령을 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되는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분명 세상은 이 복을 멸시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과 바람피우는 것이 더 좋다라고 속삭일 것입니다.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와 아론이 행한 순종의 과실만 따먹다가 결국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하나님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분은 하나님을 섬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이 땅에 보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김, 예배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헌신하는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 상황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 스타일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내 생각과 반대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기 바랍니다. 믿음은 거듭남에서 나옵니다. 우리 모두가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거듭난 이성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거듭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거듭난 순종을 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대로 우리가 행하고, 우리가 기도하는 대로, 말하는대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축복의 자리에 우리모두가 서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송가 313장 다함께 찬양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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