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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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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어제 새백시간에
1. 먼저 이들은 말씀을 찾는 자들입니다.
2. 옳은 행동은 그렇지 않는 이들로 하여금 드러내게 합니다.
우리는 거의 육감적으로 상대를 구분합니다.
수요일 칼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칼빈은 ‘ 심지어 누구든지 자기의 이웃을 욕하여 속으로 중얼거린 자라면 비록 그것이 채 입 밖으로 발설되지 않은 입 안에서의 말이고 또 어떤 구체적인 행위가 이루이전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역시 그에게는 심판에 이르게 할 만한 죄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칼빈의 이야기를 인용하겠습니다.
칼빈 “마음에 미워하는 감정을 계속 붙들고 있다면, 앙갚음할 궁리를 하거나 어떻게든 해코지할 기회를 골똘히 찾고 있다면, 더 나아가 원수처럼 여기는 상대가 보여 준 호의에 보답해서 거기에 어울리는 온갖 배려를 하려 애쓰지 않는다면, 이 기도를 드려 봐야 하나님께 우리 죄를 용서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하는 꼴이 될 따름이다.”
15장에 그 보답을 행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아 잔치를 배푸는 것,
한 드라크마를 잃어 버렸다가 찾은 다음에 잔치를 베푸는 것,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가 잔치를 베푸는 것.
우리도 그렇습니다. 기쁜 일이 있다면 서슴없이 친구를 초청해 잔치를 베풉니다. 좋은 대학에, 좋은 직장에, 좋은 일이 있을 때 잔치를 베품으로 인해 자신의 자랑을 베품과 상치해서 사람들의 마음에 미움을 사그라들게 하는 것입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지만 그 사촌이 잔치를 열고 땅을 산 값을 하면 미워했던 마음은 사그라들고 그래도 입으로라도 잘 되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교제가 갖는 힘입니다. ‘음식을 같이 먹는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시작할 때 그런 일이 회복되었습니다. ‘나누고, 서로 통용하는 교제 말입니다’
수요일에 말씀드린 출애굽기 24장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와 주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던 놀라운 구속의 은혜를 즐기는 장면이 그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주님께서 오늘 죄인과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바로 구약의 전체에서 예표됭어 왔던 복음이며 새 언약의 행하심입니다.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원망하는 자는 교제의 테이블에 앉을 수 없습니다. 들째 아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잃고서야 알았습니다. 자신이 16절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그 쥐엄 열매조차 먹을 수 없는 철저한 무너짐이 있고서야 알았습니다.
17절에 ‘내 아버지에게는 약식이 풍족한 품꾼’을 보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자신을 철저하게 아는 것, 아버지께서 나의 모든 것이라는 존재를 깨닫게 되는 것으로 부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아버지 집의 품꾼의 처지보다 못한 상태가 되었을 때 /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풍족’하다는 의미는
‘다 배물리 먹고 남은 족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들이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화비 전부를 넣었느리라.
먹고산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내일 먹을 걸 걱정해야 하는 삶, 그런 그 삶이 풍족했다는 사실을 둘째 아들은 자신의 겪고보면서 알고 있는 것이다.
첫째 아들은 여전히 일했다. 아들이라고 해서 아버지는 구별하지 않았다. 이는 아버지가 공평한 아버지 임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누리는 풍꿈들이 아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틀렸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직장이 무엇일까. 갑질하지 않는 곳, 인격적 대우를 받는 곳이다. 그곳에서 아들이라고 해도 엄연히 ‘밭에 나가 일을 해야’하는 곳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겠는가. 아들이라는 소유권만을 주장하고 재산을 나눠달라는 것도 그 아들에게 있어서는 이유가 될만도 하다. 직원들에게 주는 돈을 좀 덜 주고 아버지의 기업을 키우고 자신들은 자녀로써 기득권을 누린다면 충분히 아버지의 방식이 아닌 내 방식대로 성공하겠다는 둘째 아들은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그 극심함이 끼니를 걱정하는 자신의 삶이 되어보고서야 깨닫게 된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선택받은 백성으로, 하나님을 말씀을 맡은 자로 엄청난 축복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무엇인가 되어야 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심지어 로마의 압제가운데서도 이렇게 율법을 잘지키면 메시야가 빨리 도래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들의 영적 상태는 마치 부모님이 출타 중이면 밥 잘먹고 있고 할머니 말 잘 듣고 있으면 빨리 오겠다고 달래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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