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46과

고등부공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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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6 그 안에서 너희는 크게 기뻐한다(현중직2복), 비록 지금은 잠시동안 필요하다면 여러가지 시험속에서 괴로워졌지만(에오수분복목남) 말이다.
7 그 결과 너희의 그 믿음의 진실성은 없어져버리는(현중분단소중) 불을 통해 연단된(시험된)(현수분단소중) 그 금보다 귀하여 찬송과 영광과 존귀(명예)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안에서 찾아질 것이다(에오수가3단)
설교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 야고보서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앞에서 우리가 해야할 것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 아버지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넘치는 악으로 살 것이지만, 우리의 근본이 되는 땅,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뿌리박혀 있다면, 결국 그 악은 물이 흘러가듯이 흘러가고 생명수가 우리를 통해 흘러나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은 쉽지 않다. 가만히 놔둔다고 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릇에 가깝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 함께 알아보자.
본론
오늘 본문은 시험속에서 기뻐함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험의 종류는 온갖 시험이다. 이것은 모든 종류의 시험을 뜻한다. 어떤 때는 불과같이 고통스러운 시험의 과정도 있다. 어떤 때는 내가 시험을 당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시험을 당하는 때도 있다.
이 모든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괴로워한다. 왜냐면 시험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의 힘이 못미치기 때문에 시험이 되기 때문이다.
대학생에게 초등학교 1학년 시험이 시험이 되겠는가.
시험은 힘들기때문에 시험이다. 그 시험을 통과할 준비가 잘 되었다면, 그 시험은 한결 할만할 것이다. 그러나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그 시험은 불과같이 다가올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시험을 준비하느냐이다. 서론에서 그릇인 우리가 어떻게 넘치는 악을 비울것인가를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본문처럼 기뻐하면 되는가?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기쁨은 우리가 생각하는 기쁨과 개념이 다르다.
본문에 나오는 기쁨이란 말은 성경에 총 11번 쓰였다. 그리 많이 쓰인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기쁨이 의미하는 것은 종말론적인 기쁨이다.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 즉, 지금도 살아계심을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기쁨이다.
또한 살아계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결국 그리스도의 재림 때, 모든 고난과 아픔을 기쁨으로 바꾸어 줄 것이라는 믿음에서 나오는 기쁨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6절의 크게 기뻐함은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기에 기뻐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핵심이다.
7절에서 왜 믿음의 시련과 금을 비교하고 있는가. 오히려 믿음보다 금이 더 오래간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 그렇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심을 믿는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지어 하나님과 끊어져 하나님을 볼수도 들을수도 어떤 교제도 나눌수 없음을 알고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믿는다. 그리고 부활, 승천하셔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심을 믿는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승천하심 그대로 이땅에 재림하심을 믿는다.
모두들 믿는가?
그런데, 정말 수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금보다 더욱 변치않는 믿음인가?
때론 보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냥 기록된, 생명없는, 죽은 하나님을 믿는 것같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는데,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멈춘 것같다.
예수님이 살아계시든가 말든가, 내가 편한 방식 그대로 믿는 것같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나온 기쁨은 종말론적 기쁨이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기에 기뻐하는 것이다. 살아계신 예수님이기에 우리가 살아있는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시기에 우리에게 불보다 더한 연단의 시련이 와도, 기뻐하는 것이다. 왜냐면 그 믿음의 시련은 이 세상 전부가 없어져도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게할 증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 믿기 쉽지 않다. 믿고 자녀답게 살기는 커녕 교회에 나오기만 해도 다행인 상황이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심을 믿자.
그럴 때 기뻐할 수있다. 내가 처한 상황이 나아지지 않아도 기뻐할 수 있다. 왜냐면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날 지켜주고 계시기 때문이다. 내 모든 아픔과 억울함, 괴로움들을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주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살아계신 주” 찬양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

오늘 본문의 대원칙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다. 이 대원칙 아래 세부적인 행동강령들이 나온다.그 첫번째가 듣는 것을 속히, 말과 화는 더디게! 이다.그런데, 듣는 것을 속히 하라는 것이 무슨 뜻인가? 말하는 사람에게 빨리 말하라고 재촉하는것인가? 절대 아니다.쉽게 말해 경청하라는 뜻이다. 이 경청의 중요성을 우리는 많이 들었다. 하지만 모든 말을 경청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본문은 우리가 경청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을 알려준다.그게 21절이다.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 너희 영혼을 구원할 능력이 있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으라고 한다. 그것도 온유함, 겸손함으로 받으라고 한다. 즉, 말씀을 경청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경청이다. 그러면 왜 말은 천천히, 화도 천천히 내야 하는가?그 역시 21절에 있다. 특히 악을 표현하며, 넘치는 악이라고 한다. 우리의 귀는 악은 쉽게 받아들인다.편법은 쉽게 한다. 누구든 나 한몸 편한 것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쉽게 한다. 말도 마찬가지고 화를 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씀으로 가다듬어지지 않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쉽게 다른 사람을 상처입힌다. 내가 화를 내고 나면 내 마음은 풀리고, 통쾌하지만 그 화를 당하는 사람은 더욱 큰 상처를 받는다. 내가 편한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인가?예수님께서 편하기 위해, 쉽게 가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는가. 그래서 듣는 것은 빠르게 듣지만 말은 조심해야 한다. 화를 더욱 절제해야 한다.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말씀으로 가다듬어진 말과 감정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말씀을 속히 듣고 천천히 말을 하고 화를 낸다면, 말씀으로 가득차고, 말씀으로 제어되는 말과 화를 낸다면, 이걸로 끝인가?2. 몸으로 실천해야 한다. 말씀은 듣는 것과 행하는 것을 연결하고 있다. 나는 말씀 잘 들어. 교회 열심히 다녀. 구원받았어. 이런 말들은 사람들앞에서 하는 말들이다. 기도를 얼마나하는지 말씀을 얼마나 가까이 하는지등등 이런 것들을 하나님앞에서 우리가 했다고 자랑하는가? 우리는 사람들앞에서 이런 말들을 은연중에 한다.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이런 것들, 듣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23-25절까지 말하며, 25절 끝에 말씀을 실천하는 자는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한다.25절에서 말씀 실천과 행하는 일은 같은 단어로 되어 있다. 우리가 하는 일, 공부와 말씀이 똑같은 행동강령,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루어져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실천하는 공부? 좀 황당한 표현이지 않나? 맞다. 황당하게 느껴진다. 공부는 기본적으로 혼자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스터디그룹등, 모임으로 들어가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즉, 사람과의 만남이나 부딛힘이 있는 곳이라면, 말씀안에서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몸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나는 표현한다. 마치 수영이나 달리기처럼 몸에 익어서, 자연스럽게 나올 정도로 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몸에 새겨져,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다. 이런 자는 27절처럼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조그마한 도움이라도 줄수 있다. 그리고 세상속에서도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다. 정리 오늘 본문의 대원칙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라’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라’는 것을 나누어보았다. 여러분은 이제 조금씩 시야를 넓히고 있는 단계에 있다. 아직 나와 다른 타인의 것을 깊이 이해하기는 무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듯이, 여러분도 결국 세상속으로 가서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어울리며 살아야 하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지만, 죄는 없으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똑같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어울리지만 하나님의 경건을 원하고 계신다.왜냐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이다. 올해의 목표처럼, 하나님을 알고, 나를 알고, 이웃을 알아, 그 앎으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경건을 이루기를 소망한다.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나라이 임하옵시며,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영원히 있사옵 나이다.광고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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