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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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וַיֹּ֤אמֶר יְהוָה֙ אֶֽל־אַהֲרֹ֔ן לֵ֛ךְ לִקְרַ֥את מֹשֶׁ֖ה הַמִּדְבָּ֑רָה וַיֵּ֗לֶךְ וַֽיִּפְגְּשֵׁ֛הוּ בְּהַ֥ר הָאֱלֹהִ֖ים וַיִּשַּׁק־לוֹֽ׃

28 וַיַּגֵּ֤ד מֹשֶׁה֙ לְאַֽהֲרֹ֔ן אֵ֛ת כָּל־דִּבְרֵ֥י יְהוָ֖ה אֲשֶׁ֣ר שְׁלָחֹ֑ו וְאֵ֥ת כָּל־הָאֹתֹ֖ת אֲשֶׁ֥ר צִוָּֽהוּ׃

29 וַיֵּ֥לֶךְ מֹשֶׁ֖ה וְאַהֲרֹ֑ן וַיַּ֣אַסְפ֔וּ אֶת־כָּל־זִקְנֵ֖י בְּנֵ֥י יִשְׂרָאֵֽל׃

30 וַיְדַבֵּ֣ר אַהֲרֹ֔ן אֵ֚ת כָּל־הַדְּבָרִ֔ים אֲשֶׁר־דִּבֶּ֥ר יְהוָ֖ה אֶל־מֹשֶׁ֑ה וַיַּ֥עַשׂ הָאֹתֹ֖ת לְעֵינֵ֥י הָעָֽם׃

31 וַֽיַּאֲמֵ֖ן הָעָ֑ם וַֽיִּשְׁמְע֡וּ כִּֽי־פָקַ֨ד יְהוָ֜ה אֶת־בְּנֵ֣י יִשְׂרָאֵ֗ל וְכִ֤י רָאָה֙ אֶת־עָנְיָ֔ם וַֽיִּקְּד֖וּ וַיִּֽשְׁתַּחֲוּֽוּ׃

27 וַיֹּ֤אמֶר יְהוָה֙ אֶֽל־אַהֲרֹ֔ן
לֵ֛ךְ לִקְרַ֥את מֹשֶׁ֖ה
הַמִּדְבָּ֑רָה
וַיֵּ֗לֶךְ וַֽיִּפְגְּשֵׁ֛הוּ בְּהַ֥ר הָאֱלֹהִ֖ים
וַיִּשַּׁק־לוֹֽ׃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칼 바익톨)1/4
모세를 만나기위해(칼 부정사) 가라(칼 명령)1/8
그 광야로1/2
그리고 그는 갔다(칼 바익톨) 그리고 하나님의 산에서 그를 만났다(칼 바익톨)1/4
그리고 그에게 입맞추었다(칼 바익톨)1/2
: 그리고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야기하셨다. 모세를 만나기위해 그 광야로 가라. 그리고 그는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었다.
매우 자연스러움
엄청난 어려움이 있었을텐데 아무런 언급이 없음(애굽의 노예)
마치 아브람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연상시킨다.
모세보다 아론이 나아보인다.
28 וַיַּגֵּ֤ד מֹשֶׁה֙ לְאַֽהֲרֹ֔ן
אֵ֛ת כָּל־דִּבְרֵ֥י יְהוָ֖ה
אֲשֶׁ֣ר שְׁלָחֹ֑ו
וְאֵ֥ת כָּל־הָאֹתֹ֖ת
אֲשֶׁ֥ר צִוָּֽהוּ׃
모세가 아론에게 알렸다(히필 바익톨)1/4
여호와의 모든 말씀(행적)을1/8
그에게 보낸(칼 완)1/2
그리고 모든 기적들을1/4
그에게 명령하신(피엘 완)1/2
: 모세가 아론에게 그에게 보낸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기적을 알렸다.
그에게 보낸 말씀vs 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기적
명령에 강조가 들어가 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기적에 좀더 포커스가 있었다는 뜻이다.
말씀(행적)보다 하나님이 보이신 기적, 능력을 보이는데 관심이 많다
이것은 모세가 아직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의 종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인식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세는 하나님의 동반자로서 함께 걸어갈 준비가 되었는가?
29 וַיֵּ֥לֶךְ מֹשֶׁ֖ה
וְאַהֲרֹ֑ן
וַיַּ֣אַסְפ֔וּ
אֶת־כָּל־זִקְנֵ֖י
בְּנֵ֥י יִשְׂרָאֵֽל׃
모세가 갔다(칼 바익톨)1/4
그리고 아론이1/2
그리고 그들이 모았다(칼 바익톨)1/4
장로들을1/4
이스라엘 아들들의1/2
: 모세와 아론이 가서 아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을 모았다.
이스라엘 자손과 장로가 함께 쓰인 것은 단 3번뿐이다.
겔8은 이스라엘이 장로부터 모든 자들이 타락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29절은 그저 장로만 모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노예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을 반길 지도자가 있을까?
일단 장로들은 모일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구절은 더하다.
모인 것 자체가 기적이다.
30 וַיְדַבֵּ֣ר אַהֲרֹ֔ן
אֵ֚ת כָּל־הַדְּבָרִ֔ים
אֲשֶׁר־דִּבֶּ֥ר יְהוָ֖ה
אֶל־מֹשֶׁ֑ה
וַיַּ֥עַשׂ הָאֹתֹ֖ת
לְעֵינֵ֥י הָעָֽם׃
아론이 말했다(피엘 바익톨)1/4
그 모든 말씀을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신(피엘 완)1/16
모세에게1/2
그리고 그 이적을 행했다(칼 바익톨)1/4
그 백성들의 눈앞에서1/2
: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그 모든 말씀을 말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의 눈앞에서 그 이적을 행했다.
모세는 이적을 강조하는데,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다.
둘이 뒤바뀌었다.
정말로 모세보다 아론이 하나님의 뜻을 더욱 잘 이해하고 순종하는 것 같다.
31 וַֽיַּאֲמֵ֖ן
הָעָ֑ם
וַֽיִּשְׁמְע֡וּ כִּֽי־פָקַ֨ד יְהוָ֜ה אֶת־בְּנֵ֣י יִשְׂרָאֵ֗ל וְכִ֤י רָאָה֙ אֶת־עָנְיָ֔ם
וַֽיִּקְּד֖וּ
וַיִּֽשְׁתַּחֲוּֽוּ׃
그리고 믿었다(히필 바익톨)1/4
그 백성이1/2
그리고 그들은 들었다(칼 바익톨)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찾아오시고(칼 완) 그들의 고통을 보셨다(칼 완)1/4
그리고 그들은 엎드렸다(칼 바익톨)1/8
그리고 그들은 경배했다(히트파엘 바익톨)1/2
: 그리고 그 백성들은 믿었고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찾아오시고 그들의 고통을 보셨다는 것을 듣고 엎드려서 경배했다.
백성들의 반응역시 즉각적이다.
아론의 말에 전혀 반박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께서 임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아론이 전한 모세의 말, 하나님의 말씀을 즉각 믿는다.
믿고 듣고 엎드리고 경배한다.
단 한순간도 고민하거나 지체하지 않는다.
구조
주제 : 예비하심
모든 상황이 아주 스무스하게 흘러간다. 모세가 하나님께 했던 모든 반문과 걱정들이 무의미할 정도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준비되지 못한 자는 오히려 모세 자신이다.
27절 아론의 준비됨(순종)
하나님의 명령 :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나라
목적지는? 우스갯소리 부산이 다 네 집이냐? : 확실하지 않음
광야로 가는 방향도 다양함.
마치 아브라함과 같은 명령임-> 하지만 아론은 아무말도 없이 순종함.
모세는 목적지가 확실한 애굽으로 가라는 명령도 받기 싫어했지만 아론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언제까지 가야할지 모르는 기약없는 명령에도 아무말없이 순종함.
모세는 이드로에게만 이야기하면 됨. 자신이 노예, 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는 했지만, 실제로 종은 아님
그러나 아론은 진짜 애굽의 종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음
-> 실제로 스스로를 종이라고 지칭함
모세에게는 실제적인 임재(가시나무)와 기적을 보여주셨지만 아론은 아무것도 없음.
과연 누가 더 순종하기 쉬웠던가? 누가봐도 아론이다.
28절 모세의 이야기 : 그에게 보낸 여호와의 모든 말씀vs그에게 명령하신 모든 기적
기적을 강조한다.
여호와의 모든 말씀보다 그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기적이 더 중요하다.
말씀은 뒷전이고, 자신이 기적을 행할수 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4:20에서 가족을 챙기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챙긴 것과 같다.
아직도 모세는 자기가 우선이다. 종의 태도가 아니다.
29절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임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이라고 아들들의 장로라는 명칭은 성경에서 단 3번 쓰임
에스겔은 백성의 죄악을 말하며, 백성의 대표인 70인의 장로들조차 한명도 예외없이 우상숭배에 빠졌다는 의미로 쓰임.
원래 이스라엘 장로라는 명칭도 대표성이 강하지만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말은 백성과 상관없이 모인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의 관심이 실질적으로 있음을 뜻하는 의미로 쓰인 것으로 보임
마치 아담이 인류의 조상인 것처럼. -> 물론 내 생각.
노예 지도자 70명이 모임 이것만해도 애굽정부에서는 견제했을 것임.
30절 아론의 말(백성들이 모임)
백성앞에서 이적을 행했다는 말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의 백성이 모였을 것을 보여준다.
노예가 이렇게 대규모 집회를 한다면 찬성해줄까? 엄청난 견제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 모이지 않았다면 더욱 큰 기적이다.
왜냐면 장로들과 일부 백성들이 본 기적을 그저 입으로 전하기만 했는데도 모든 백성이 믿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대규모로 모였든지, 일부에게만 보여주었듯이 이것은 기적이다.
단순히 지팡이가 뱀으로 변하고 문둥병이 나왔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단 한순간에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큰 기적이다.
31절 백성의 모임 - 믿음
31절에서 대부분의 말은 하나의 구로 처리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이게 하나의 구다.
그렇다면 31절의 포커스는 이렇게 된다.
백성이 믿었고 들었고 머리숙였고 경배했다.
대규모 집회이든 소문이든 단 한번으로 믿고 듣고 머리숙였고 경배했다.
반대로 그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에 처음부터 믿음으로 갔다.
듣고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들었다.
엄청난 믿음이다.
또한 악센트상으로 백성의 믿음 = 듣고 머리숙여 경배 로 나타난 것이다.
즉각적인 반응이다.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이다.
*이렇게 아론과 백성들은 준비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지기만을 바라며 준비되어있었다. 더욱이 아론의 강조와 모세의 강조가 완전히 다르다.
30절 아론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모든 말 > 이적
길이로도 차이가 난다.
포커스도 앞쪽,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
모세와는 반대다.
모세는 이적에 집중했고, 아론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집중했다.
또한 이적을 행한 것은 모세일텐데, 따로 주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것은 마치 이적을 행한 것도 아론인듯한 인상을 준다.
모세보다 아론이 낫고, 백성들의 믿음이 훨씬 낫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모세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지만 모세는 아직 준비되어있지 못하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쓰신 자는 모세다.
30절에 마치 아론이 기적까지 행한 것처럼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아론에게 신과같이 될 것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준비하심은 그 택하신 자를 향한다.
설교
서론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길을 나선 모세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시간에 보았듯이, 그의 마음이 아직까지 완전히 하나님을 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음속에는 아직도 애굽으로 가는 것에 대한 근심과 걱정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함께 살펴보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27절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부르시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 부르심은 모세와는 많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애굽으로 가라, 바로를 만나라라고 분명한 목표와 목적지를 정해주십니다. 그러나 아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어디로 가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광야로 가라는 말씀밖에 하지 않습니다.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나라는 말씀만 하십니다. 물론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서 모세를 만나기는 하지만, 아론은 호렙산이라는 목적지를 듣지 못합니다. 그저 광야로 나가라는 말씀만 듣습니다.
40년전에 헤어진 동생을 만나러 가는 것입니다. 어디인지 확실한 목적지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명령은 다른 말로 하면 광야로 가서 모세를 찾아라는 말씀입니다. 광야는 쉽게 말해 사막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끔찍한 광야에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으러 가야합니다. 그것도 40년 전에 헤어진 동생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약속이라도 받았는데, 아론은 그런 것도 없습니다.
:12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며, 이미 아론이 모세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고있다라고 하신 것을 보면, 아론이 꽤 오랜 기간을 광야에서 헤메고 다녔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다시 돌아와 이드로를 만나고, 여정을 준비하고 다시 호렙산으로 돌아올 때까지 광야에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시일은 알수 없지만 모든 시일을 합치면 최소한 며칠에서 몇주까지 광야에서 있었다고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평생 애굽에서 산 노인이 광야에서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지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도 언제 자신의 동생인 모세를 만날 수 있다는 기약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아론의 순종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며칠, 몇주가 걸렸든지 광야에서 헤메었든지 하나님의 산에 와서 모세를 만났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겪었던 고난과, 애굽에서 나오기 위해 했던 수고역시 기록하지 않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애굽인의 종이었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자신의 볼일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갔다오겠다고 하면 쉽게 허락해줄 주인이 어디있겠습니까.
27절에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런 엄청난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는 부르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론이 어떻게 했다라는 말씀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가 갔다,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났다, 모세에게 입맞추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정말 아무말도 없이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29절에서 31절까지 나오는 장로들과 백성들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29절은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을 모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특별한 표현이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왜냐면 성경에서 이스라엘 장로라는 표현은 46번이 나오는데 비해,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단 3번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9절을 제외하고는 모두 에스겔8장에서 쓰였습니다. 에스겔 8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장로 70명이 한명도 빠짐없이 우상숭배하는 장면을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보여주시는 장면입니다. 즉, 이스라엘 자손의 장로라는 표현은 그저 장로들의 생각만으로 모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의 입장을 대변하는 자로서 모여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30절에 분명 모인 것은 이스라엘의 장로들인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라고 나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놀라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상태입니까. 애굽의 노예로 있습니다. 노예들이 이렇게 대규모로 모인다고 하면 지배계층이 허락을 하겠습니까. 당연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만약 모인다해도 매우 까다로운 절차와 엄중한 감시속에서 모일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30절에 백성이 모인 자리에 애굽의 병사들과 감독들이 나와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자칫 반역과도 같은 말,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들으셨다는 말씀을 듣는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굽은 아무런 제지를 가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모이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일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백성들은 40년전에 도망갔던 모세란 자가 찾아와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라는 말만 들었을 것입니다.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특히 400년이 넘게 애굽에 있으며 그 문화에 우상에 젖어있던 이스라엘이 이름도 모르던 우리 조상의 신이 ‘여호와’이시며, 그분께서 찾으시고 고난을 살피셨다는 말을 믿고, 그 말만 의지하고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납니다.
31절에 뭐라 하고 있습니까. 백성들이 믿었다로 시작합니다. 들었다는 그 다음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다라고 하기도 전에, 그 이름만을 듣고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들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믿는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들었고, 그 즉시 하나님께 경배하며 예배드렸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문도 말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산으로 가서 만난 것처럼 말입니다.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도 분명 수많은 난관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또한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예비하셨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그렇게 거부하고 안될거라고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뜻입니다. 모세가 할 것은 순종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모세만은 제대로 순종하고 있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못한 자는 모세밖에 없습니다.
28절에 모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적을 말합니다.
그런데, 28절에서 모세가 강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말씀이 아니라 이적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으니, 내가 기적을 행할 것이다가 강조점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아직도 하나님을 잘 모르고 있고, 하나님의 종으로서 따르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모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다는, 자신에게 있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30절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30절에도 똑같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이적이 나옵니다. 그러나 이때 강조점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아론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셨고, 우리의 모든 고난을 보셨다는 그 말씀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직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한가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믿음의 사람입니까. 누가 하나님의 사람같습니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강조한 모세입니까. 아니면 그 모든 고난을 묵묵히 감당하고 모세를 만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데 집중한 아론입니까. 하나님을 계속해서 의심하고 따르지 못해서, 결국 할례까지 시행하지 않았던 모세입니까. 애굽의 삼엄한 감시와 경고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모였고, 그 자리에 가지도 못했지만 그저 귀에 들리는 소문만으로 하나님을 믿고 경배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입니까.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준비하심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만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안된 사람은 오직 모세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는 모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들의 마음을 돌리셨는데, 모세의 마음은 변화시키지 않으셨습니까. 모세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종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기 원하셨기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끝까지 참으시고 계십니다. 주위 모든 상황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이렇게 걱정하고 고민했는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자 거짓말같이 모든 상황이 풀림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택하심이 무엇인지 알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는지, 알게 하십니다.
살다보면, 나보다 나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사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거듭났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의롭고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모든 사람들이 아닌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론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준비됨은 분명 모세의 마음에 와닿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바로앞에 설 담력을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 앞에 설 담력을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는 하나님앞에 우리 또한 준비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던 모세처럼, 세상의 빛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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