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으로

출애굽기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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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וַיֵּ֨לֶךְ מֹשֶׁ֜ה וַיָּ֣שָׁב׀ אֶל־יֶ֣תֶר חֹֽתְנֹ֗ו וַיֹּ֤אמֶר לוֹ֙ אֵ֣לְכָה נָּ֗א וְאָשׁ֨וּבָה֙ אֶל־אַחַ֣י אֲשֶׁר־בְּמִצְרַ֔יִם וְאֶרְאֶ֖ה הַעוֹדָ֣ם חַיִּ֑ים וַיֹּ֧אמֶר יִתְר֛וֹ לְמֹשֶׁ֖ה לֵ֥ךְ לְשָׁלֽוֹם׃

19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מִדְיָ֔ן לֵ֖ךְ שֻׁ֣ב מִצְרָ֑יִם כִּי־מֵ֨תוּ֙ כָּל־הָ֣אֲנָשִׁ֔ים הַֽמְבַקְשִׁ֖ים אֶת־נַפְשֶֽׁךָ׃

20 וַיִּקַּ֨ח מֹשֶׁ֜ה אֶת־אִשְׁתּוֹ֣ וְאֶת־בָּנָ֗יו וַיַּרְכִּבֵם֙ עַֽל־הַחֲמֹ֔ר וַיָּ֖שָׁב אַ֣רְצָה מִצְרָ֑יִם וַיִּקַּ֥ח מֹשֶׁ֛ה אֶת־מַטֵּ֥ה הָאֱלֹהִ֖ים בְּיָדֹֽו׃

21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לֶכְתְּךָ֙ לָשׁ֣וּב מִצְרַ֔יְמָה רְאֵ֗ה כָּל־הַמֹּֽפְתִים֙ אֲשֶׁר־שַׂ֣מְתִּי בְיָדֶ֔ךָ וַעֲשִׂיתָ֖ם לִפְנֵ֣י פַרְעֹ֑ה וַאֲנִי֙ אֲחַזֵּ֣ק אֶת־לִבֹּ֔ו וְלֹ֥א יְשַׁלַּ֖ח אֶת־הָעָֽם׃

22 וְאָמַרְתָּ֖ אֶל־פַּרְעֹ֑ה כֹּ֚ה אָמַ֣ר יְהוָ֔ה בְּנִ֥י בְכֹרִ֖י יִשְׂרָאֵֽל׃

23 וָאֹמַ֣ר אֵלֶ֗יךָ שַׁלַּ֤ח אֶת־בְּנִי֙ וְיַֽעַבְדֵ֔נִי וַתְּמָאֵ֖ן לְשַׁלְּחֹ֑ו הִנֵּה֙ אָנֹכִ֣י הֹרֵ֔ג אֶת־בִּנְךָ֖ בְּכֹרֶֽךָ׃

24 וַיְהִ֥י בַדֶּ֖רֶךְ בַּמָּל֑וֹן וַיִּפְגְּשֵׁ֣הוּ יְהוָ֔ה וַיְבַקֵּ֖שׁ הֲמִיתֹֽו׃

25 וַתִּקַּ֨ח צִפֹּרָ֜ה צֹ֗ר וַתִּכְרֹת֙ אֶת־עָרְלַ֣ת בְּנָ֔הּ וַתַּגַּ֖ע לְרַגְלָ֑יו וַתֹּ֕אמֶר כִּ֧י חֲתַן־דָּמִ֛ים אַתָּ֖ה לִֽי׃

26 וַיִּ֖רֶף מִמֶּ֑נּוּ אָ֚ז אָֽמְרָ֔ה חֲתַ֥ן דָּמִ֖ים לַמּוּלֹֽת׃ פ

출애굽기 4:18–26 BHS/WIVU
18 וַיֵּ֨לֶךְ מֹשֶׁ֜ה וַיָּ֣שָׁב׀ אֶל־יֶ֣תֶר חֹֽתְנֹ֗ו וַיֹּ֤אמֶר לוֹ֙ אֵ֣לְכָה נָּ֗א וְאָשׁ֨וּבָה֙ אֶל־אַחַ֣י אֲשֶׁר־בְּמִצְרַ֔יִם וְאֶרְאֶ֖ה הַעוֹדָ֣ם חַיִּ֑ים וַיֹּ֧אמֶר יִתְר֛וֹ לְמֹשֶׁ֖ה לֵ֥ךְ לְשָׁלֽוֹם׃ 19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מִדְיָ֔ן לֵ֖ךְ שֻׁ֣ב מִצְרָ֑יִם כִּי־מֵ֨תוּ֙ כָּל־הָ֣אֲנָשִׁ֔ים הַֽמְבַקְשִׁ֖ים אֶת־נַפְשֶֽׁךָ׃ 20 וַיִּקַּ֨ח מֹשֶׁ֜ה אֶת־אִשְׁתּוֹ֣ וְאֶת־בָּנָ֗יו וַיַּרְכִּבֵם֙ עַֽל־הַחֲמֹ֔ר וַיָּ֖שָׁב אַ֣רְצָה מִצְרָ֑יִם וַיִּקַּ֥ח מֹשֶׁ֛ה אֶת־מַטֵּ֥ה הָאֱלֹהִ֖ים בְּיָדֹֽו׃ 21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לֶכְתְּךָ֙ לָשׁ֣וּב מִצְרַ֔יְמָה רְאֵ֗ה כָּל־הַמֹּֽפְתִים֙ אֲשֶׁר־שַׂ֣מְתִּי בְיָדֶ֔ךָ וַעֲשִׂיתָ֖ם לִפְנֵ֣י פַרְעֹ֑ה וַאֲנִי֙ אֲחַזֵּ֣ק אֶת־לִבֹּ֔ו וְלֹ֥א יְשַׁלַּ֖ח אֶת־הָעָֽם׃ 22 וְאָמַרְתָּ֖ אֶל־פַּרְעֹ֑ה כֹּ֚ה אָמַ֣ר יְהוָ֔ה בְּנִ֥י בְכֹרִ֖י יִשְׂרָאֵֽל׃ 23 וָאֹמַ֣ר אֵלֶ֗יךָ שַׁלַּ֤ח אֶת־בְּנִי֙ וְיַֽעַבְדֵ֔נִי וַתְּמָאֵ֖ן לְשַׁלְּחֹ֑ו הִנֵּה֙ אָנֹכִ֣י הֹרֵ֔ג אֶת־בִּנְךָ֖ בְּכֹרֶֽךָ׃ 24 וַיְהִ֥י בַדֶּ֖רֶךְ בַּמָּל֑וֹן וַיִּפְגְּשֵׁ֣הוּ יְהוָ֔ה וַיְבַקֵּ֖שׁ הֲמִיתֹֽו׃ 25 וַתִּקַּ֨ח צִפֹּרָ֜ה צֹ֗ר וַתִּכְרֹת֙ אֶת־עָרְלַ֣ת בְּנָ֔הּ וַתַּגַּ֖ע לְרַגְלָ֑יו וַתֹּ֕אמֶר כִּ֧י חֲתַן־דָּמִ֛ים אַתָּ֖ה לִֽי׃ 26 וַיִּ֖רֶף מִמֶּ֑נּוּ אָ֚ז אָֽמְרָ֔ה חֲתַ֥ן דָּמִ֖ים לַמּוּלֹֽת׃ פ
18 וַיֵּ֨לֶךְ מֹשֶׁ֜ה וַיָּ֣שָׁב׀ אֶל־יֶ֣תֶר חֹֽתְנֹ֗ו וַיֹּ֤אמֶר לוֹ֙ אֵ֣לְכָה נָּ֗א וְאָשׁ֨וּבָה֙ אֶל־אַחַ֣י אֲשֶׁר־בְּמִצְרַ֔יִם
18 וַיֵּ֨לֶךְ מֹשֶׁ֜ה וַיָּ֣שָׁב׀ אֶל־יֶ֣תֶר חֹֽתְנֹ֗ו וַיֹּ֤אמֶר לוֹ֙ אֵ֣לְכָה נָּ֗א וְאָשׁ֨וּבָה֙ אֶל־אַחַ֣י אֲשֶׁר־בְּמִצְרַ֔יִם וְאֶרְאֶ֖ה הַעוֹדָ֣ם חַיִּ֑ים וַיֹּ֧אמֶר יִתְר֛וֹ לְמֹשֶׁ֖ה לֵ֥ךְ לְשָׁלֽוֹם׃ 19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מִדְיָ֔ן לֵ֖ךְ שֻׁ֣ב מִצְרָ֑יִם כִּי־מֵ֨תוּ֙ כָּל־הָ֣אֲנָשִׁ֔ים הַֽמְבַקְשִׁ֖ים אֶת־נַפְשֶֽׁךָ׃ 20 וַיִּקַּ֨ח מֹשֶׁ֜ה אֶת־אִשְׁתּוֹ֣ וְאֶת־בָּנָ֗יו וַיַּרְכִּבֵם֙ עַֽל־הַחֲמֹ֔ר וַיָּ֖שָׁב אַ֣רְצָה מִצְרָ֑יִם וַיִּקַּ֥ח מֹשֶׁ֛ה אֶת־מַטֵּ֥ה הָאֱלֹהִ֖ים בְּיָדֹֽו׃ 21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לֶכְתְּךָ֙ לָשׁ֣וּב מִצְרַ֔יְמָה רְאֵ֗ה כָּל־הַמֹּֽפְתִים֙ אֲשֶׁר־שַׂ֣מְתִּי בְיָדֶ֔ךָ וַעֲשִׂיתָ֖ם לִפְנֵ֣י פַרְעֹ֑ה וַאֲנִי֙ אֲחַזֵּ֣ק אֶת־לִבֹּ֔ו וְלֹ֥א יְשַׁלַּ֖ח אֶת־הָעָֽם׃ 22 וְאָמַרְתָּ֖ אֶל־פַּרְעֹ֑ה כֹּ֚ה אָמַ֣ר יְהוָ֔ה בְּנִ֥י בְכֹרִ֖י יִשְׂרָאֵֽל׃ 23 וָאֹמַ֣ר אֵלֶ֗יךָ שַׁלַּ֤ח אֶת־בְּנִי֙ וְיַֽעַבְדֵ֔נִי וַתְּמָאֵ֖ן לְשַׁלְּחֹ֑ו הִנֵּה֙ אָנֹכִ֣י הֹרֵ֔ג אֶת־בִּנְךָ֖ בְּכֹרֶֽךָ׃ 24 וַיְהִ֥י בַדֶּ֖רֶךְ בַּמָּל֑וֹן וַיִּפְגְּשֵׁ֣הוּ יְהוָ֔ה וַיְבַקֵּ֖שׁ הֲמִיתֹֽו׃ 25 וַתִּקַּ֨ח צִפֹּרָ֜ה צֹ֗ר וַתִּכְרֹת֙ אֶת־עָרְלַ֣ת בְּנָ֔הּ וַתַּגַּ֖ע לְרַגְלָ֑יו וַתֹּ֕אמֶר כִּ֧י חֲתַן־דָּמִ֛ים אַתָּ֖ה לִֽי׃ 26 וַיִּ֖רֶף מִמֶּ֑נּוּ אָ֚ז אָֽמְרָ֔ה חֲתַ֥ן דָּמִ֖ים לַמּוּלֹֽת׃ פ
וְאֶרְאֶ֖ה
הַעוֹדָ֣ם חַיִּ֑ים
וַיֹּ֧אמֶר יִתְר֛וֹ לְמֹשֶׁ֖ה
לֵ֥ךְ לְשָׁלֽוֹם׃
모세가 걸어서(칼 바익톨) 돌아갔다(칼 바익톨)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그리고 그가 그에게 말했다(칼 바익톨) “저가 가게 해주세요(칼 미완 청유) 그래서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 돌아가갈 것입니다(칼 미완).1/4
내가 볼 것입니다(칼 미완)1/8
그들이 아직 살아있는지”1/2
이드로가 모세에게 말했다(칼 바익톨)1/4
평안히 가라(칼 명령)1/2
: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 돌아가서 그에게 말했다. “저가 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면 전 애굽에 있는 제 형제들에게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있는지 보겠습니다.”
이드로가 모세에게 말했다.
“평안히 가라.”
모세는 이드로에게 가서 매우 공손한 태도로 말한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보다 더 공손한 것같다. 매우 조심스럽다.
이드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가라고 명령한다.
이 둘의 관계를 알 수있다.
19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מִדְיָ֔ן
לֵ֖ךְ
שֻׁ֣ב מִצְרָ֑יִם
כִּי־מֵ֨תוּ֙ כָּל־הָ֣אֲנָשִׁ֔ים
הַֽמְבַקְשִׁ֖ים
אֶת־נַפְשֶֽׁךָ׃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칼 바익톨)1/4
가라(칼 명령)1/8
애굽으로 돌아가라(칼 명령)1/2
왜냐면 모든 사람들이 죽었기 때문이다(칼 완)1/4
찾는 자들이(피엘 분사)1/8
너의 생명을1/2
: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가라. 애굽으로 돌아가라. 왜냐면 너의 생명을 찾는 자들이!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생명을 찾는 자가 강조되었다.
이 구절이 모세가 이드로에게 말한 다음에 나온다.
즉, 이드로에게 허락을 받고 떠날 준비를 할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모세는 이드로에게 말할 때도 애굽에 가기 두렵지 않았을까? 자신이 지은 죄가 아직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예 이 생각은 하지도 못할 정도일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니 어쩔수 없이 준비한 것일수도 있다.
그 무엇이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한발자국 옮긴 모세를 위해 말씀하신다.
20 וַיִּקַּ֨ח מֹשֶׁ֜ה אֶת־אִשְׁתּוֹ֣ וְאֶת־בָּנָ֗יו וַיַּרְכִּבֵם֙ עַֽל־הַחֲמֹ֔ר
וַיָּ֖שָׁב
אַ֣רְצָה מִצְרָ֑יִם
וַיִּקַּ֥ח מֹשֶׁ֛ה אֶת־מַטֵּ֥ה הָאֱלֹהִ֖ים
בְּיָדֹֽו׃
모세가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을 취해서(칼 바익톨) 그들을 나귀에 태웠다(히필 바익톨)1/4
그리고 돌아갔다(칼 바익톨)1/8
애굽땅으로1/2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취했다(칼 바익톨)1/4
그의 손안에1/2
: 모세가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나귀위에 태우고 애굽땅으로 돌아갔다. 모세는 그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아내와 아들들을 취하고 하나님의 지팡이를 취했다.
둘이 동등하게 나온다.
그냥 형제를 보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독립해서 나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야곱때처럼 가진 소유를 취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는 그 모든 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능력이 들려 있었다.
21 וַיֹּ֣אמֶר יְהוָה֮ אֶל־מֹשֶׁה֒
בְּלֶכְתְּךָ֙ לָשׁ֣וּב מִצְרַ֔יְמָה
רְאֵ֗ה כָּל־הַמֹּֽפְתִים֙ אֲשֶׁר־שַׂ֣מְתִּי בְיָדֶ֔ךָ
וַעֲשִׂיתָ֖ם
לִפְנֵ֣י פַרְעֹ֑ה
וַאֲנִי֙ אֲחַזֵּ֣ק אֶת־לִבֹּ֔ו
וְלֹ֥א יְשַׁלַּ֖ח
אֶת־הָעָֽם׃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칼 바익톨)1/4
“네가 애굽으로 돌아(칼 부정사) 갈 때(칼 부정사)1/8
내가 너의 손에 둔(칼 완) 모든 이적들을 봐라(칼 명령)1/16
너는 행했다(칼 완)1/32
바로 앞에서1/2
그러나 내가1/4
그의 마음을 굳게 할 것이다(피엘 미완)1/8
그는 보내지 않을 것이다(피엘 미완)1/16
그 백성을1/2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면 내가 네 손에 둔 모든 이적들을 (꼭) 봐라 너는 바로앞에서 (이미) 행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굳게! 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백성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모세가 손에 쥔 지팡이를 쓰기만 하면, 그 이적들이 보일 것을 확언하신다.
두려워말라라는 명령이다.
바로의 마음이 굳게 되고 보내지 않는 것은 이미 3장 19-20절에서 말씀하셨다.
하지만 다시 한번 말씀하신다.
바로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임의로 역사하셔서 강하게(단단하게) 하셨다.
하지만 모세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스스로 강하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위해 모세의 죄가 사면되었음도 늦게 말씀하시고, 아무것도 아닌 지팡이라는 표식도 주신다.
언약궤에 들어간 지팡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다. 모세의 지팡이는 없어졌다.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 때문이 아닌, 모세 스스로 마음을 강하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왜냐면 함께 걸어갈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도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구는 고와 낙을 같이 하지 않지만, 동반자는 고와 낙을 함께 한다.
22 וְאָמַרְתָּ֖
אֶל־פַּרְעֹ֑ה
כֹּ֚ה אָמַ֣ר יְהוָ֔ה
בְּנִ֥י בְכֹרִ֖י
יִשְׂרָאֵֽל׃
너는 말했다(칼 완)1/4
바로에게1/2
여기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칼 완)1/4
내 장자다1/8
이스라엘은1/2
: 너는 바로에게 말하길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이스라엘은 내 장자다.”
모세가 이렇게 말할 것을 확언하신다.
첫아들, 장자는 기업을 물려받을 자이다. 장자에게 해꼳이를 하는 것은 그와 전쟁을 하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굳게 하신 것은 바로가 장자된 이스라엘에게 한 모든 악들을 갚으시겠다는 심판선언이다.
이스라엘은 장자며, 모세는 동반자이다.
23 וָאֹמַ֣ר אֵלֶ֗יךָ שַׁלַּ֤ח אֶת־בְּנִי֙ וְיַֽעַבְדֵ֔נִי
וַתְּמָאֵ֖ן
לְשַׁלְּחֹ֑ו
הִנֵּה֙ אָנֹכִ֣י הֹרֵ֔ג
אֶת־בִּנְךָ֖
בְּכֹרֶֽךָ׃
내가 네게 말했다(칼 바익톨) “내 아들을 보내라(피엘 명령) 그가 나를 섬길 것이다(칼 미완)1/4
그러나 너는 거절했다.(피엘 바익톨)1/8
그를 보내기를(피엘 부정사)1/2
보라 내가! 죽인다(칼 분사)1/4
너의 아들을1/8
첫1/2
: 내가 네게 말했다. “내 아들을 보내라! 그가 나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를 보내기를! 거절했다! 보라 내가! 너의 아들을 죽일 것이다.
강조형이 매우 많이 나온다.
보내다와 거절하다가 강조형이며, 거절 후, 하나님스스로를 가리키는 내가도 강조다.
마지막 너의 아들을 죽일 것이다는 분사로 되어있다.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모세가 하는 말이다.
모세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형으로 똑같이 전달하기 위해 모세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모세 역시 하나님의 인자에 감사하며,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지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구절은 모세가 끝까지 그러지 못했음이 나타난다.
24 וַיְהִ֥י בַדֶּ֖רֶךְ
בַּמָּל֑וֹן
וַיִּפְגְּשֵׁ֣הוּ יְהוָ֔ה
וַיְבַקֵּ֖שׁ
הֲמִיתֹֽו׃
그 길중에 있었다(칼 바익톨)1/4
그 밤을 보낼 곳(숙소, 야영지등)/2
여호와께서 만나셨다(칼 바익톨)1/4
그리고 그를 찾으셨다(피엘 바익톨)1/8
그를 죽이려고(히필 부정사)1/2
: (가는) 길중에 숙소에서 있을 때였다. 여호와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그를 죽이려고 찾으셨다.
노중인 것 보니 다시 호렙산을 향해 가는 중인 것같다.
하루 이틀 정도는 가지 않았을까?
그 밤에 하나님께서 갑자기 모세에게 타나나셨고,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다.
여기서 그는 게르솜일수도 있다.
모세는 이미 할례를 했다. 하나님의 백성의 표가 있다. 그러나 게르솜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게르솜이 할례가 없는 것은 분명 매우 큰 문제를 유발 할 것이다. 왜냐면 이스라엘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만약, 모세가 정말 하나님의 동반자로서 가려고 했다면, 하나님의 지팡이를 취하는 만큼, 자신의 가족을 취했으므로, 그 가족 역시도 하나님의 지팡이와 같이 거룩해져있어야 했다.
모세는 그러지 못했다.
25 וַתִּקַּ֨ח צִפֹּרָ֜ה צֹ֗ר וַתִּכְרֹת֙ אֶת־עָרְלַ֣ת בְּנָ֔הּ
וַתַּגַּ֖ע
לְרַגְלָ֑יו
וַתֹּ֕אמֶר
כִּ֧י חֲתַן־דָּמִ֛ים אַתָּ֖ה
לִֽי׃
십보라가 돌칼을 취하여(칼 바익톨) 그녀의 아들의 포피를 잘랐다(칼 바익톨)1/4
그리고 던졌다(만져지게 했다)(히필 바익톨)1/8
그의 발에1/2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칼 바익톨)1/4
당신은 피신랑이다1/8
내게1/2
: 십보라가 돌칼을 취하여 그녀의 아들의 포피를 잘랐다. 그리고 그의 발(성기)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그녀가 말했다. 당신은 내게 피신랑이다.
이렇게 한 것을 보니 모세보다 십보라의 반대가 좀더 컷을것같다.
남편이란 말이 특이하다 신랑으로 쓰이는 단어다.
이것은 십보라도 이제 새롭게 되었다는 뜻일수도 있다.
죽임의 대상이 모세이든지, 게르솜이든지, 결론은 둘중 하나가 하나님의 백성의 표시가 없었다는 뜻이다.
성인이 되어서 하는 할례는 이집트나 시리아쪽에서 성인식으로 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자였고, 이스라엘 백성과도 상관없는 자였다.
40년동안 떠나 있는 사람이, 그 아들일지라도 할례가 되어 있지 않다는 말은 이제 이스라엘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모세를 멈춰세웠다.
왜냐면 분명 할례하는데 시간이 걸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26 וַיִּ֖רֶף
מִמֶּ֑נּוּ
אָ֚ז אָֽמְרָ֔ה
חֲתַ֥ן דָּמִ֖ים
לַמּוּלֹֽת׃ פ
놓아주었다(칼 바익톨)1/4
그를1/2
그때 그녀가 말했다(칼 완)1/4
피남편이라고1/8
할례때문이었다1/2
: 그분께서 그를 놓아주셨다. 그때 그녀가 피남편이라고 말한 것은 할례 때문이었다.
25절 참고
구조
설교 메인 테마 : 동반자 – 하나님께서 모세와 동반자되길 원하신다.
18절 이드로에게 간청하는 모세
하나님께보다 더욱 공손한 자세로 간청함
이드로는 그런 모세의 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임
장인과 사위의 관계가 아닌 주인과 종의 관계
이드로는 모세를 보내는데 아무런 미련이 없음 -> 그저 오래 부려먹은 나이 많은 양치기 하나 사라지는 정도
모세의 위치 : 종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대언자, 동반자가 되시길 원함
19절 하나님의 말씀 : 위협이 사라짐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이전에 하셨다면, 모세는 좀더 편하게 애굽행을 결정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드로에게 애굽으로 돌아갈 것을 말해서 모든 것이 결정된 다음에 말씀하신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모세를 종이 아닌 동반자로 택하셨다는 첫 번째 근거다.
종은 단순히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한다. 자신이 뭔가 책임지고 감수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함께 길을 걸어가는 자는 위험도 함께 감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기에 앞서 모세가 애굽으로 가는 것을 막는 여러 가지 위협(남아있는 살인죄, 이드로의 종됨)을 극복하시기 원하셨다.
20절 애굽으로 갈 준비 : 가족과 하나님의 지팡이
2가지 문장을 억지로 붙여놓은 느낌이 난다.
그런데, 액샌트상 이 두문장은 완전히 동등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와 자신의 가족을 동일시했다는 것을 뜻한다.
모세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만큼 자신의 가족이 소중했다는 뜻이다.
자신의 가족을 소중히 한다는 것은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보다 앞서서는 안되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모세가 하나님과 동반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우선시 하는 마음이 필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만큼 소중한 가족에게 문제가 발생할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21절 바로의 마음을 굳게(강하게) 하겠다
3장 19-20절에 이미 하신 말씀을 다시한번 반복하신다.
이 말씀은 모세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은 단단하게(강하게)하시면서 모세의 마음은 단단하게 만드시지 않으신다.
바로는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낼 도구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과 함께 갈 동반자이다.
동반자는 고와 낙을 함께 겪는 존재다. 옆에서 응원해주고 도와줄수는 있지만 본질적인 마음은 건드릴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도구는 바로는 임의대로 하시지만 동반자인 모세는 스스로 마음을 강하게 하시기 원하신다.
22-23절 장자인 이스라엘과 박해의 댓가
이스라엘이 장자임을 말한다.
23절은 강조가 많이 나온다. 이것은 장자인 이스라엘을 박해한 댓가로 바로의 장자가 죽을 것이라는 것을 확언하기 위함이다.
바로 앞에서 바로를 협박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강해야 하는 것은 모세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동반자로서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같이 장자를 잃어버린 마음을 가지고, 같은 마음으로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그러지 못했다.
24절 하나님께서 노중에 나타나 죽이려하심
대상은 모세일수도 게르솜일수도(앞절에서 장자가 나옴, 히브리어의 끝은 장자로 끝남)
이유는 할례 때문이다. 왜 그런데 죽이려고 까지 하셨을까?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려는 상황이다.
그러나 결격사유가 많다.
1. 실질적으로 이스라엘과 함께 하지 않음(왕자40년 미디안40년), 2. 이방여인과 결혼
그런데, 그 아들까지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은 아들은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자라는 뜻이다. 이것은 모세의 리더쉽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는 위험요소다.
또한 모세는 20절에서 이미 하나님과 가족을 동등한 위치에 두었다.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의 가족이기에 모세는 할례라는 중대한 문제를 그냥 넘어가려고 한 것같다.
결국 모세의 이러한 태도는 문제를 일으켰고 하나님께서 나서시게 만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 죽이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분명 할례를 하는데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시간동안 하나님께서 기다려주셨다는 뜻이다.
히브리어는 하나님께서 나타나 그를 죽이기 위해 찾았다라고 한다. 찾을 필요가 없는데 찾으신다. 이것은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찾는 모습과도 같다.
정말 죽이려하기보다는 여정을 멈추고, 모세를 온전히 하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모세가 종이나 포로처럼 억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진 동반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다.
25절 그녀의 아들이란 표현이 매우 의미심장하다.
설교
서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살다보면 이럴 때, 하나님께서 나서셔서 해결해주시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이 들때가 참 많습니다. 주위 환경부터 시작해서 나 자신의 마음이나 태도까지 그런 영역도 참 다양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시지 않으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변화시키시지 않으실까요? 본문을 보며 그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문 18절은 이드로에게 돌아가 간청하는 모세의 모습으로 시작됩니다. 모세는 이드로에게 자신이 왜 애굽으로 돌아가려하는지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이드로의 대답은 매우 짧습니다. 평안히 가라. 이 말만 합니다.
그리고 18절의 분위기 자체가 앞서 말했다시피 모세가 이드로에게 간청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우리말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제발이라는 말도 있고, 가게 하소서라는 표현자체도 사위가 장인에게 할 표현은 아닙니다. 18절에 나온 둘의 관계는 장인과 사위라기보다는 주인과 종에 가깝습니다. 모세는 애굽에 가야하는 근본적인 이유, 하나님께서 부르심조차 말하지 못합니다. 감히 제사장인 이드로가 아닌 한낱 양치기에 불과한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둘의 관계가 주인과 종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계속 종으로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어떤 자가 되기를 바라셨을까요?
본문을 계속 살펴보겠습니다.
19절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세가 저지른 죄가 이제 무효화되었음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나온 위치가 참 묘합니다. 모세가 이드로에게 애굽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 나왔습니다. 이것은 모세는 애굽에 가면 잡혀서 죽을수도 있는데, 그 위협을 무릅쓰고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만약 이드로에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이 사실을 알려주셨다면, 모세는 좀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드로에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모세는 목숨의 위협을 각오하고 애굽행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완전히 확정되어서 무를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가도 생명이 위협받는 일은 전혀없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일의 선후를 바꾸셨을까요? 바로 모세가 변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구에 의해서도 아닌 자기 스스로 선택하고 위협을 감수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단순히 부려먹을 종이나 도구로 부르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함께 대화하며 고와 낙을 함께 할 동반자가 되시기를 원했습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대로만 하면 됩니다. 그에 대해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하지만 동반자는 등을 기댈수 있는 사람입니다. 위협이 오면 마음을 모아 함께 극복해가야하는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출애굽,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과 함께 길을 가는 동반자가 되시기를 바랬습니다. 이제 종이 아니라 동반자로 살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자신의 생명의 위협보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선택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실제 그 위협은 지나갔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계속해서 나옵니다.
21절에 하나님께서는 3장 19절과 20절에서 했던 이야기를 다시 하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강조되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직접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는 것과 그 결과 백성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완악하게 하다라고 번역된 단어의 원래 의미는 강하게 하다, 단단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마음 단디 먹어라’라는 표현을 쓰죠.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본문의 내용상으로 보면, 마음을 단단하게 먹어야 하는 자는 바로가 아니라 모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바로의 마음은 단단하게 만드시면서 모세의 마음에는 그러지 않으실까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하셨듯이 모세의 마음을 강하고 단단하게 하셨다면, 처음에 부르실 때부터 모세가 하나님을 그렇게 거부하는 일도 없었을테고, 이드로앞에서 저렇게 비굴한 모습을 보일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4절에서 27절의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마음은 단단하게 하시지만, 모세의 마음은 건드리지 않으십니다. 모세 스스로 마음을 강하고 단단하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위해 계속해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면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종이 아니라 동반자가 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애굽이 이스라엘에게 지었던 죄의 댓가를 지불할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임의대로 역사하셨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동반자이기에 모세 스스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굳게 서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그래서 22절과 23절을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용을 잘 살펴보면, 모세에게 이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바로, 니 장자, 황태자가 죽게 될 것이다라고 협박하라는 소리입니다. 지금 이드로 앞에서도 벌벌떠는 모세가 과연 바로 앞에서 이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렇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갈 동반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중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십계명의 돌판을 던져서 부셔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도록 간청합니다. 둘다 종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했습니다. 장자인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함을 아파하고 분노하시는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그러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24절부터 27절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의 원인은 단순히 모세의 아들이 할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20절에 그 계기가 적혀있습니다.
20절에는 2가지가 따로 적혀있습니다. 모세가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다. 이 두문장이 따로 놀고 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어상으로 이 두문장은 동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모세에게는 가족이나 하나님이나 똑같았다는 뜻입니다.
동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입니다. 함께 길을 가는 서로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20절은 모세에게 가족이란 하나님과 같은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어 같은 길을 걸어갈 자로서 합당한 마음가짐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24절 후반절을 번역하면 ‘하나님께서는 갑자기 나타나서 그를 죽이기 위해 찾으셨다’라고 됩니다. 개역개정에는 모세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 죽이려는 대상이 모세인지, 모세의 장자 게르솜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오히려 히브리어의 어순상으로는 모세의 장자를 죽이려했다고 보는게 더 맞는 표현일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려고 하셨던 대상이 모세이든지 게르솜이든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가족의 안위를 더욱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14에서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하면 더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분명 모세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을 것인데,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말씀보다 가족을 더 중하게 여기고 있음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25절에서 십보라가 그의 아들을 할례시키는 장면에서, 히브리어는 ‘그녀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모세의 아들이 아니라 십보라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가족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물론 정말 인연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모세가 이제 가족보다 하나님을 더욱 중요시 여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세가 애굽으로 가기에 앞서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동반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엇보다 중히 여기고, 하나님과 한 마음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 같은 꿈을 꾸는 것이 모세에게는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모세와 같이 애굽으로 가고 있습니다. 애굽이라는 세상속에서 살다가 잠시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세상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치열한 영적 전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영적 전투의 자리는 모든 곳일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이 영적 전투의 자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서두에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다해주셨으면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상황도, 사람도, 내 마음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손가락까닥하시고, 입김한번 후 불면 끝날텐데 라는 생각이 들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동반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변화시켰지만 우리는 변화시키시지 않으십니다. 다만 말씀과 기도,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 뜻, 마음을 느끼고, 한 마음이 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드로앞에서도 위축되었던 모세가 바로에게 협박할 수 있는 자가 되었듯이, 우리가 당당히 서서 하나님의 빛을 온 땅에 뿜어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힘이 드십니까. 고난이 찾아옵니까. 쉽게 되는 일이 없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습니까. 오히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반자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당장은 이해되지 않은 일도 많이 생길 것입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아픈 순간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라나고 변화되었듯이, 우리를 그 풍성한 은혜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은혜를 믿고, 그 속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방식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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