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41과

고등부공과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5 views
Notes
Transcript
설교
서론
왜 사귀고 싶나. 사랑받고, 기쁨을 얻고, 내가 채워짐을 얻기 위해서다.
여자가 원하는 것과 남자가 원하는 것이 다르고, 서로에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요구한다.
서로가 사랑을 주는 것이 아닌, 정확히는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받는 것을 원한다.
결혼도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한다. 모든 기준은 내 행복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행복과 사랑을 착각한다. 오늘은 사랑에 대해 알아보자.
본론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1절 사람의 방언 천사의 말 -> 천국과 소통, 가장 고상한 지식-> 사람을 초월한 존재 => 사랑없인 꽹과리
2절 초월적인 능력 -> 사랑없으면 없는거나 마찬가지다.
3절 초월적인 봉사와 헌신 -> 아무런 유익이 없다.
-> 사랑이 없으면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이 헛것이다. 심지어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된다해도 거짓이다.
--------------서론-------------
사랑의 속성
오래참음
온유 시기x 자랑x 교만x 무례x 자기유익x 화x 악한것 생각x 불의x 진리ㅇ
참음, 믿음 소망 견딤
서론 - 디모데전서의 배경과 우리에게 오는 의미
오래참음, 인내가 3번 나온다. 처음에 나오고 마지막에 2번 나온다.
사랑의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다.
사랑이 어떤 것인가 - 그들은 사랑을 몰랐다.
4절에서 시기하지 아니하며부터 무례까지를 한마디로 하면 겸손이다. 상대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마음이다.
성내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말로 원한을 품지 않는다라고 봐도 된다.
6절에 불의를 기뻐한다는 것은 타협하고, 그 타협으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이다(커닝).
그리고 7절에서 다시 참고 믿고 소망하고 견딘다고 나온다.
공통점이 무엇인가?
사랑은 자기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내 기준에서 판단한다.
하지만 사랑은 내 기준에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내가 필요하고 겸손해야 하며, 유익을 얻는 불의보다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기뻐하며, 그 기쁨속에서 믿고 소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 소망 사랑중 제일은 사랑이다. 왜냐면 믿음과 소망이 모두 사랑안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사랑은 자신에게로 향하는 것이 아니다. 내 편안, 내 행복, 내 이득을 위해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내 뜻대로 변화시키려는 것도 사랑이 아니다. 오직 변화는 진리로 인해 되는 것이다.
디모데전서는 이제 젊은 목회자인 디모데를 향해 바울이 쓴 서신이다. 그래서 목회서신이라고 불린다.
나역시 여기서 너무나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한대로 여러분이 서기를 원히기 때문이다.
이 온전한 사랑을 우리가 할 수 있을까. 부모님을 보니 평생 싸우더라. 지금도 집에 가면 열심히싸우고 있다. 서로를 위해서 싸우더라. 웃기게도. 서로 잘되라고 싸우더라.
서로를 너무 믿고 너무 소망해서 싸우더라.
그래서 그걸 아니 서로 화해할 필요도 없이 재미있게 말하더라.
분명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사랑해서 싸우고, 사랑해서 다투는 그런 어린아이같은 모습으로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10절의 말씀처럼, 12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언젠가 온전해져서 서로의 모습을 완전히 알며 완전히 소망하며 완전히 인내하며 완전히 사랑할 그때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사역자가 아니라서 필요없는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중에 필요없는 말씀이 있는가?
그러니
우리가 지금은 부족해도, 약해도, 사랑하자.
내 곁에있는 부모님, 형제 자매, 가족들을 사랑하자.
진짜 사랑하기 힘들어도, 이렇게 함께 모인 주안에서 한 가족된 서로를 사랑하자.
아니다 그래서 더욱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위에 하나님을 사랑하자.
어떤때는 실망하고 상처받아도, 우리를 온전케 하실 하나님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성령님을 사랑하며, 우리의 삶을 사랑으로 물들일수 있기를 소망한다.
젊은 사역자 디모데는 당연히 많은 위기속에 있었다.
당시는 교회가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 교회라는 이름도 없을 때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때였다. 특별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인지, 성령께서는 어떤분인지 지금처럼 명확하게 알려지지도 않은 시대였다.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시대속에서 디모데는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더욱 큰 의미를 지니는 말씀이다. 왜냐면 우리 시대는 기군과 권위를 일부러 무너뜨리고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다원주의라고 부르며, 그 속내는 결국 내가 좋은것이 최고다이다.
바울이 이제 교회의 모든 것을 세워나가야 하는 디모데에게 하나님을 믿는 자로서의 삶이란, 가치관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준 것이 디모데전서다. 그래서 모든 가치관이 무너져버리고 내가 최고, 정확히 말해 내 욕망을 이루는 것만 몰두해라고 하는 이 세대를 향해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볼 필요가 있다.
본론
1. 돈을 사랑함을 피하라
오늘 말씀은 한가지를 피하라고 하며 시작된다. 여기서 나오는 이것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들이라고 많이 나오는데, 결국 이것들은 하나다. 돈이다. 돈.
우리 삶은 돈을 얻기 위한 전쟁이라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있는 곳에 정치가 있었고 정치가 있는 곳에 돈이 있다. 그리고 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 이 세가지는 맞물려서 돌고 돈다. 사람이 모이면 정치판이 벌어지고 그 정치판속에 돈이 맞물리고 돈을 얻기 위해 또다시 사람이 모여든다.
그만큼 적나라하게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돈이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돈 자체가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 물론 돈 역시 타락해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만물, 피조물들이 타락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몸만 타락한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관념들까지 다 타락했다는 것이다. 사랑도 타락의 대상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고 집착해서, 종래는 자신과 가족과 이웃을 죽게 만든다. 지금그러고 있지 않는가?
직업, 회사. 학교
그래서 11절에 돈을 대신하여 따라야 할 것을 말한다. 6가지나 나열한다. 11절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2. 하나님의 사람 - 하나님을 사랑하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름이 나와있는 사람은 모세, 다윗, 엘리사, 하난정도다.
정말 위대한 선지자나 왕에게만 붙여지는 칭호다.
그러나 바울은 젊고, 그래서 많은 부분에서 부족한 디모데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한다.
왜냐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받은 은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깊고 크다. 비교할 수가 없다.
14절까지의 말씀을 요약하면, 돈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명령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때까지 지키라이다.
그리고 15절과 16절에서는 우리가 사랑해야하는 대상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설명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의 재림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며, 그 자체로 복이시며, 주권자이시다. 생명의 근원이시며 빛이시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볼수 없는 분이시다.
문제는 가장 아래의 표현 사람이 볼수 없다는 것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하나님은 볼수없지만 돈은 볼수 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느낄수 없지만, 돈의 영향력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만약 꿈이 있다해도, 그 꿈이 단 한푼의 돈도 주지 못한다면, 할수 있겠는가.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연예인이 되기 위해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정말 박봉에 험한 대우를 받아가며 씨름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결국 자신의 꿈을 이루면 올 명예와 돈, 처음에 말했던 정치와 돈, 사람들을 바라보고 하는 것이다.
심지어 사역자인 나또한 돈의 영향력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먹지않고 자지 않고 입지 않으면 살수 없기 때문이다.
이전에 사역하던 교회는 정말로 사역자를 챙기는 것에 무심했다. 함께 사역하던 목사님은 말 그대로 태어난지 몇개월 안된 아기의 분유값, 기저귀값을 걱정해야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온갖 일들을 다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누구나 시험에 들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돈을 사랑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함이 있어야 한다.
사역자 혼자 돈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교회가 변할 것인가? 그래 변하기는 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니까.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는 돈을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합당한 댓가를 물으실 것이다.
3. 영생을 취하라. - 믿음의 선한 싸움
그래서 12절에 말씀한다. ‘영생을 취하라’
왜? 우리의 영생은 보장된 것이 아닌가? 하나님 믿으면 보장된 것이지 않는가? 그렇게 배워왔잖는가.
그런데 영생이 보장되었다고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한다면,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일까.
믿음은 우리의 삶에서 드러난다. 삶에서 드러난다는 말은 우리가 하는 선택에서 드러난다는 뜻이다.
영생을 선택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를 위해 우리 모두는 부름을 받았다.
분명 지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을 것이다. 고3들은 진로와 수시, 정시를 앞두고 있다. 고3뿐 아니라 모두들 자신의 진로와 할일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나라안밖도 힘든 가운데 있다.
그러나 우리의 선택은 바로 ‘영생을 취하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이다.
모든 사소한 선택들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물어보고 할 수없다.
다른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선택을 우리는 계속해서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믿음의 선한 싸움, 영생을 취하는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바로 훈련이다. 전쟁터에 군인들이 싸울 때, 하나하나 생각하며 창을 찌르며, 칼을 휘두르고 방패를 드는가?
훈련된 동작을 자기도 모르게 하는 것이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훈련이다.
말씀을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기도를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찬양도 훈련이다.
우리가 찬양, 말씀, 기도시간에 다른 것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을 줄이는 쪽으로 선택한다면 역시 하나님을 떠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훈련을 둘중하나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든지, 패배해서 죽든지이다
사람은 살든지 죽든지 둘중 하나다. 영적 싸움에서 회색지대는 없다.
그러니 우리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위해 우리를 훈련하자. 예배와 말씀과 기도를 하자. 찬양의 입술을 높이자.
15-16절처럼 모든 만물의 창조주 영존하시는 거룩하신 왕, 우리의 아버지의 편에 서는 자가 되자.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광고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