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38과

고등부공과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7 views
Notes
Transcript
설교
서론
지난 시간 우리는 교회에 대해 살펴보았다. 교회는 성령께서 세우신 곳이다. 교회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라고 끝까지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러나 이 땅의 교회에는 가라지가 있을수 있다. 그래서 독초인 가라지에 의해 다치고, 어떨 때는 가라지가 아닌데도, 서로를 가라지라고 여기며 미워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교회는 사랑과 회복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 서로 미워하고 다칠수 있지만, 그것들을 어떤 때는 안아주고, 어떤 때는 질책하며, 회복하고 성정하게 하는 사랑의 공동체다. 그리고 그 사랑위에 하나님을 경외함, 두려워함이 있는 곳이다. 이것이 교회다.
그렇다면, 교회 내의 사람들이 교회로 인해 성장한다면, 교회는 무엇으로 말미암아 성장하는가? 한번 알아보자.
본론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 - 성령의 역사하심.
지난시간에 살펴본바와 같이 교회의 성장은 마찬가지로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오순절 성령강림, 단한번으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교회내부에 들어왔다.
즉, 교회가 외적으로 성장했다.
5000명이면 엄청나게 많이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를 10만으로 추정한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교회는 예루살렘 인구의 5%에 불과하다.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라고 믿는 그들에게 이것은 매우 답답한 상황이라 할 수있다.
당연히 그들의 전도는 동족에게 향할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땅끝까지 내 증인되라고 했지만, 그것을 이방민족을 구원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도는 교회의 성장의 원동력이다. 전도가 없으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보다 같은 유대인을 전도했을 것이다. 하지만 4장이후 유대인들이 전도되었다는 말씀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교회를 핍박하는 내용만 나온다. 대표적으로 스데반집사의 순교가 7장에 나오고 사울의 박해가 나온다. 그래서 특히 사마리아에서 믿는 자들이 견디지 못하고 흩어지는 장면도 나온다.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 생업, 앞길을 포기한 것이다.
그 후에는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도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냥 이방인이 아니라 내시까지도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후 사울의 회개, 베드로의 기적과 이방인의 회심이후 오늘의 사건이 나온다.
왜 전도 이야기를 하며, 이 이야기를 하는가. 전도는 교회성장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예외없이 전도의 사명을 부여받았다. 왜냐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교회를 성장시키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권면하시는 것이다.
왜 오늘 본문 1절부터 10절까지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셨는가. 베드로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 우리는 교회의 성장에 대해 알아보았다.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성령의 임재로 자랐지만, 우리가 보았듯이 예루살렘 교회는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인정했지만, 인정만 하고 움직이지는 않았습니다. 끝까지 자신들의 상식과 생각대로 움직였습니다.
오늘 본문 18절에서 베드로의 증언으로 이들은 겨우 받아들인다. 하지만 행동하지는 않는다.
예루살렘 교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방인을 위해 누구를 파송했는가. 선교를 위해 누구를 보냈는가.
아무도 보내지 않았다.
외려 안디옥의 교회에서 사울과 바나바를 파송했다.
그리고 이후 교회사는 예루살렘 교회가 단 한번도 크게 성장하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오히려 점점 약해져 종국에는 그저 첫교회였다는 명예만 가지고 있었고, 나중에는 그것조차 희미해졌다고 한다.
교회는 전도를 통해 자란다. 우리는 그렇다면 그 전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첫교회, 장자이신 예루살렘 교회의 촛대를 옮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촛대가 옮겨진 예루살렘 교회는 서서히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세워진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그 뜻에 순종하는 자녀들에 의해 세워진다.
그래서 결국 예루살렘 교회는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첫 열매이며, 교회의 장자이지만 마치 르우벤처럼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예루살렘의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순종,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 결과 하나님의 뜻이 그들을 떠났다.
분명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지만, 우리가 불순종하고 우리 마음대로 할 때,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식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것을 불태우는 불로 우리에게 올 것이다.
그 불속에서도 끝까지 고집을 피웠던 예루살렘 교회는 완전히 불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성령의 임재로 세워졌고, 성령의 뜻에 따라 성장했으면서, 성령의 인도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가 좋다고 안주하고 주저 앉았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나님께 겸비하는 삶,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향으로 갈 수 있게 준비된 자가 되길 원한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우리의 교회에 하나님이 원하시고 바라시는 방향으로 변화되길 소원한다.
오늘은 이와 반대로 자신의 모든 생각도 물질도, 마음도 몸도 하나님께 다 바쳐 헌신했던 한 명의 이야기입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이 담긴 본문입니다.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본론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는 우리 모두가 되고 교회가 되길 소원한다.
우리가 지금 이 시간에 바울사도의 출신, 생각, 하나님의 부르심과 인도에 대해 다시한번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라비아사막에서 3년간 머무르며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교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했던 공생애의 기간이 3년이란 것을 생각하면, 예수님께서는 기존의 사도들과 같은 훈련, 더욱 힘들고 고된 훈련을 그에게 시키셨습니다. 그 이후 그는 안디옥 교회에서 바나바와 함께 파송을 받았습니다. 파송이후의 과정이 20장까지 나오게 됩니다.
소위 말해 선교하러 갔던 그는 인정받고 환영받은 적이 없습니다. 항상 맨땅에 헤딩했고, 그 헤딩이 성공하면, 겨우 헤딩한 머리에 난 상처를 치료할 정도였습니다. 실패하면 큰 상처만 입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철저하게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기에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방인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사용했습니다. 자신의 신분, 로마시민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여행허가를 받았습니다. 재산을 들여 각지를 돌아다녔습니다. 돈이 떨어져서 한 도시에서 자신의 기술인, 텐트메이킹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 기술로 돈을 버는 것은 소위 노가다하는 것같았지만 끝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전도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고향에 가면 죽는다라는 성령의 말씀이었습니다. 금의환향은 못할 망정, 가서 그리던 가족을 만나든지, 휴식을 취하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고향에 가면 잡혀서 죽을 것이라는 말씀이 내려온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왜합니까. 저가 전도담당으로 나가는데, 꼭 빠지지 않는 기도가 있습니다. 바로 복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나가니, 그래봐야 일주일에 1시간도 안되지만,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일을 해달라는 기도를 빼먹을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 교회로 옵니다. 위로를 받고, 평안을 받고, 복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헌금도 잘안합니다.
1000원짜리 종교 - 카톨릭.
바울도 하나님께 한가지를 받았습니다. 바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바쳤습니다.
그가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내도 없고 자식도 없습니다. 그의 집안도 어떤지 모릅니다. 남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에게 있는 말씀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전했습니다. 바울은 왜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의 현실, 진짜이며, 이 세상이 그저 하룻밤의 꿈과 같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꿈과같은 세상에서 얻은 모든 것을 바쳐 자신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썼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무엇을 얻기 위해 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면, 그 자녀라는 부르심에 함께 있는 사명을 생각합시다. 바울처럼 모든 것을 다 바칠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그 시대에 필요해서 부르신 자입니다. 우리는 지금 바울과 같은 순결함과 동시에 뱀과 같은 지혜를 요구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는 명목하에 아무 생각 없이 해서는 안됩니다. 바울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그의 삶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인터콥이야기. 분당샘물교회.
이런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막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구보다 지혜롭고 누구보다 순결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자신의 안위나 자신의 단체의 안위를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하나님을 생각해며 살아갑시다. 물론 내가 지금 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친구들과 뭔가 다른 점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를 위해 비둘기같은 순결함을 구하기 바랍니다. 뱀과 같은 지혜를 구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그 사명에 집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갈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가 오신 이유”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광고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