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35과

Notes
Transcript
설교
*왜? 단 500명에게만 보이셨을까?
1절 갈릴리사람들의 죽음, 예수님은 갈릴리지방의 나사렛 마을출신.
2절 당시 유대인들의 죄의식을 보여줌
사고로 죽던 뭐로 죽던 자기 죄때문에 죽은 것이다.
-> 나는 죄인이 아니니 잘 산다.
예수님 :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사고(해)가 죄때문이냐?
3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 아니다 사고와 죄의 심판은 관계 없다.
-> 누구든지 회개하지 않는 자는 다 망한다.
4절 다른 ‘모든’ 사람보다
예수님의 반복 -> 실로암 망대 사고
완전히 반대되는 성질의 두가지 사건
갈릴리인의 처형은 로마에 반하는 열심당들의 처형
예루살렘 실로암망대 : 예루살렘 방어목적(로마정부 협조)
둘다 똑같이 죽었다. 그런데 너희는 왜 너희의 생각대로 판단하냐?
5절 - 3절 반복. ‘다’ 이와같이 망하리라.
-> ‘다’ ‘모두’ 같은 말.
너희 전부 망한다. 저 사고 당했거나, 독립운동하는 극단적인 자들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하나님께 예외란 없다.
그러나 그 후에 소망을 주신다.
6-9절 무화과나무의 비유
왜? 유력자들에게 보이지 않으셨을까?
1-5절에 나온 죽은 자들과 무화과 나무비유에서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바로 예상, 예고의 여부다.
빌라도에게 잡혀서 죽은 갈릴리 열심당들이 자신들이 그 때 잡혀서 죽을줄 알았겠는가? 그것도 제사중에 쳐드어올줄 알았겠는가. 전혀 예상지 못하게 죽었다.
실로암에 망대, 감시탑을 세우다가 죽은 18명이 자신들이 그렇게 죽을줄 예상했겠는가? 그랬으면 안했지.
둘다 자신의 죽음, 심판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3년을 기다리신다. 그후 포도원지기, 예수님과 이야기하시고 다시 기회를 주신다.
그냥 기회가 아니라, 온갖 선물과 보화까지 주신다.
우리같으면 3년동안 수확없는 나무에게 그렇게 하겠는가. output이 안나오면 당연히 input도 넣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회를 주신다.
기회를 주심을 알려도 주신다.
그리고 기 회를 살릴수 있게 은혜도 주시고 환경도 예비하신다.
분명 부활하신 곳은 예루살렘이다. 지금 이곳도 예루살렘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유력자들에게 보이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회개란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알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 본문에 나온 이들에게 회개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다면 회개는 불가능하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회개란, 내 잘못을 숨기거나 남탓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다 예수님께 내어놓는 것이다.
그런후, 죄악은 놔두고, 좋은 것만 챙기는 것이 회개다.
우리의 나쁜 것, 죄악은 예수님께서 다 가져가신다.
왜? 40일인가? 40일이면 그 누구도 환상이라 하지 안ㅇㅎ을 거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만 있으셨다. 이전처럼 기적을 베풀고 다니시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베푸신다면, 우리가 다시 예수님께 우리의 죄악을 줄건가? 그건 예수님을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통해 옥석이 가려졌다.
그러니 우리의 악한 것, 더러운 것, 나쁜 것을 자신의 생명을 댓가로 구입하시고 구원과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을 생각하자.
그래서 죄에서 돌아서는 회개를 하자.
왜?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맡기셨을까?
물론 벗어나기 힘든 죄악의 습관들도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을 솔직히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이해하시며 널리 용서하실 것이다.

27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

또한 이 모든 것은 믿는 자의 축복이란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 모든 악한 것, 나쁜 것, 약한 것을 받아가시고, 우리에게 사랑과, 구원, 생명, 좋은 것주신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생각하며 꼭 예수님을 영접하길 소망한다.
라고 에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 나라가 임함을 부활을 통해 보여주셨다.
그리고 5절에서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40일이 지난 다음에 이렇게 말한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대체 지난 40일동안 가르친 가르침이 무엇인가. 왜 십자가에 달리셨나. 왜 부활하셨나. 왜 제자들에게만 보이셨나.
앞의 질문,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다.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권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갈 권한과 책임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40일간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에 다른 모든 자들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이제는 예수님의 기적과 능력을 보고 모이는 자들이 아닌, 십자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흩어지지 않고, 배반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 자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6절의 질문을 한다. 40일이 허사인것같다.
하지만 제자들을 정죄해서는 안된다. 그 시대에 하나님 나라=이스라엘이었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시대속에 있고 사회 환경속에 있는 사람의 한계였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전, 그런 제자들의 한계를 깨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보게 하려 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변하지 않는다.
부활 후,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으신다. 그저 명령할 뿐이다. 8절이다.
그리고 승천하셨다.
제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성령께서 인도하셨다. 그래서 자신의 한계에서 벗어났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그 시대를 초월한 사람이 되었다. 말 그대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자들이 되었다.
예수님은 3절의 내용대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끝까지 하나님 나라 일을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었다.
그러나 사도행전 마지막은 이렇게 말한다.

3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어떻게 제자들이 이렇게 될 수있었을까. 바로 성령님과 동행했기 때문이다. 동행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삶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도 삶으로 경험하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자. 우리는 지난주, 태풍이 사라짐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삶으로 경험하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자.
제발 적당히 믿지 말자. 제발, 하나님을 명분으로 내 이득을 챙기지 말자. 내 기분전환을 위해, 내 콧대가 높아지기 위해, 내 이익을, 인간관계이든, 돈이든 뭐든, 이득을 위해 제발, 하나님을 팔지 말자.
하나님께서는 경홀히 여기심을 받으실 분이 아니시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를 나 자신보다 잘 알고 계신 하나님을 따라가자. 그래서 한계를 넘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나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시선”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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