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32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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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우리는 지난 시간 예수님의 사랑이 어디까지인지 함께 살펴보았다. 그 사랑은 우리가 어떻든지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의 욕망, 이기심을 그대로 드러내도, 안아주고 위로해주신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조은 것이 있음을 알려주시는 사랑이다. 제자들은 세상의 영광, 부와 존귀를 바랬지만, 예수님은 썩어 없어질 세상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주실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상황이 변하고 사람과 마찰이 생기거나 하면 참 힘들다.
그러다보면 소위 말해 밑바닥을 보이는 상황이 생긴다. 너무 피곤하고ㅗ 지쳐서 그럴수도 있고, 긴장을 풀고 편안한 상황이라 그럴수도 있다ㅏ.
그래서 내 밑바닥, 이기적인 마음을 보이면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왔더라도, 그거 한방에 끝나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가면을 쓰고, 우리의 밑바닥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런데, 오늘, 자신들의 밑바닥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제자들이 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 한결같은, 오히려 더 사랑으로 다가가는 예수님이 있다. 살펴보자.
본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근심하지 마라,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왜냐면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신다는 말을 듣고 불안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뉘앙스로 보아하니 절대 좋은 곳으로 간다는 뜻은 아니다. 그리고 제자들 모두가 흩어질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지금껏 고생하며 따라왔다. 먹을 양식이 없어 지나가다가 보이는 밀밭에 들어가서 밀이삭을 잘라 먹어야 할 지경이다. 말 그대로 허기만 겨우 면하는 식이다. 예루살렘에 들어와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익지 않은 열매를 찾아 길을 벗어날 때도 제자들이 말리지 않는 것을 생각해보면, 예수님께도,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배를 채우는 것이 익숙하다는 소리다.
하지만 그들은 행복했다. 왜냐면 그들 앞에 빛나는 길이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 가기만 하면, 그곳에 도착하면 예수님께서 뭔가를 하실 것이다라는 바람과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번에 보았듯이 두 제자가 자신들이 무슨 소리하는지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당시 제자들에게 희망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었다. 마치 다윗을 따르던 신하들이, 빨리 다윗이 왕좌에 오르기를 바랬던 것처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영광받으시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믿고 기대하던 제자들에게 찬물을 끼얹으신 본문이 13장이다.
제자들이 마음에 근심하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서 근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들을 위해서 근심하고 있다. 첫째로 가신다는 말속에 혹시 우리들은 버리고 가는 것아냐?라는 의문이 있는 것이다.
특히 모든 제자들이 흩어진다는 말씀을 들었기 때문에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야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생각하지만, 이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이 생각을 했을 거 같은가? 그것도 지금 잔치를 벌이고 있는 집도 예수님의 기적적인 능력으로 구해진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이 아닌 내입장만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 바로 제자들의 밑바닥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사람의 밑바닥을 보면 돌변한다. 아, 저 사람 좋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니네. 저것밖에 안되는 사람이네. 라고 판단한다. 그후 그 사람과 거리를 둔다.
지금 예수님은 제자들의 밑바닥을 보고 있다. 3년동안 예수님을 따랐지만, 결국 자기 영화를 위해서였고, 지금은 예수님이 혹시 자신들을 버리고 딴 놈들과 이 세상 권력을 잡을지 불안해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본다.
예수님께서 어떤 뜻으로 이 말씀을 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연히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 뿔뿔히 흩어지고 부인하는 것이다.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예수님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예수님께서 단 한가지, 믿고 따를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믿고 따르는 삶이란 뭘까? 함께 믿고 따르는 삶, 살아있는 믿음에 대해 알아보자.
그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어떤가.
1절에서 4절의 말씀이다.
쉽게 말해 이런 말이다.
걱정마, 너희 하나님 믿지? 나도 믿어. 내가 너희를 버리고 어디를 가겠어? 내가 지금 가는 것도 너희를 위해서 가는 거야. 내 아버지집, 사람은 갈수도 누릴수도 없는 그 아름다운 곳에 너희의 자리를 마련하러 가는거야. 나만 가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라 자리 찜해놓고 다시 와서 너희도 데리고 갈거야. 내가 어디로 갈지 너희도 알고있어(자연스레 알게 될거야).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 소위 밑바닥을 드러낸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그 길이 십자가라는 것도 모르고 자신들이 그 십자가를 질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다는 사실도 모르고 끝까지 우리는 모르니 우리도 데러가 달라고 말하는 도마의 말에도 부드럽게 위로하신다.
본론
끝까지 눈으로 보여달라고 8절에서 제자들이 말하자, 뭐라고 하시나.
나는 이것을 하지만 너희는 나보다 더 큰 것을 할 거야. 왜냐면 하늘 아버지가 너희를 도우실 거니까 라고 12절에 말씀하신다.
더욱이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다 이루어줄 것이라고 14절에 말씀하신다.
보았듯이 제자들은 시종일관 혹시 자기가 한 고생이 헛수고로 돌아갈까봐 전전긍긍한다. 그들은 정말 예수님께서 어떤 의미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사랑으로 이 말씀을 하시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종일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같은 뜻의 말을 다른 말로 바꿔서 다시 위로하시고, 다시 힘주시고, 다시 용기내라 하신다.
결론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이기적인 제자들, 밑바닥을 드러낸 제자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고 위로하시고 힘주심을 보여주신다.
초대교회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무생각이 없나? 지금 하는 생각은 아 언제 끝나지 인가?
이 예수님을 알아가자. 우리가 아무리 어처구니 없는 것을 요구해도 받아주신다. 우리가 밑바닥을 드러내고 이기적으로 해도, 우리를 안아주신다.
사람은 이 모습을 보고 치를 떨어도, 예수님은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사랑하신다. 안으신다.
그럼 초대교회 말고 여러분에게 가깝지만 먼, 또 멀고도 가까운 대학생활을 떠올려봐라. 어떤 느낌이 드는가? 아 자유다. 좋다. 빨리 대학가고 싶다 맞지? 여러분은 방학이 끝난지 오래인데, 대학생들은 아직도 방학을 하고 있다.
이 예수님을 경험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도로, 예배로, 헌신으로, 삶으로 우리 예수님을 알아가지 않겠는가.
지금은 이기적인 제자들이 후에 어떻게 변화되고 쓰이고 영광받았는지 생각하며, 우리역시, 제자가 아닌 사도가 되는,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여러분은 한달 겨우 쉬었는데, 대학생들은 6월말부터 방학이었다. 아직까지 방학이다. 부럽지? 방학때도 학교가고 학원가는데, 대학생들은 그런거 없다. 알바해서 돈벌고 싶으면 그렇게 하고 하기 싫으면말고, 아니면 자기가 배우고 싶은거 배운다. 이 기간에 교회에서 봉사하는 우리 서기 샘들도 있다. 자유다 부럽지?
아무리 대학가도 똑같다. 더 치열하다. 어쩌구저쩌구해도, 고딩보다 대딩이 되고 싶어한다. 일단 책임이나 다른 모든 것은 차후 문제다. 자유, 그 하나만으로도 대학은 멋진 곳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자유롭고 싶어한다. 왜 우리가 부자가 되고 싶나. 결국 자유 때문이다. 하고 싶을 때 일하고, 그러다가 지치면, 아무런 근심없이, 매일 것이 없이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 돈으로 행복을 살수 없지만, 자유를 살수는 있다. 그리고 그 자유는 삶의 질을 높인다. 그리고 그 결과는 보통, 행복이다.
그래서 어떤 책은 부를 돈이 아니라 3F라고 말한다. Family(가족, 관계), Fitness(건강), Freedom(자유)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의 믿음이 나타난다.
우리는 부를 가졌을 때, 어떻게 행할 것인가.
오늘 본문은 대표적으로 부를 가졌지만, 자유를 자기 좋을 대로 이기적으로 쓰는 자들이 나온다.
도울 능력도 있고, 선택할 자유도 있지만, 말뿐인 위로로 끝낸 자들이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기 보다는 나의 부를 누리기 위해 그 자리에 주저 앉기를 결정한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를 통해서, 그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포하신다.
죽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글쎄,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다. 분명한 것은 좋은 결과는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칭찬도 없을 것이다.
살아있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자유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것이 살아있는 믿음이다. 우리가 매여서 억지로 교회 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오지 않고, 예배 드리지 않을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 믿음은 산 믿음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의 결단을 기뻐하신다.
앞서 말했듯이, 예수님께서는 자유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와 가족이 되기 위해서 자유를 버리셨다. 책의 논리대로 하면, 부자가 부를 버린 것이다.
예수님을 생각하자. 그래서 우리 역시 우리의 자유를 하나님께 드리자. 그럴 때, 진짜 자유가 우리에게 올 것이다.
세상 자유는 돈이 없으면 사라진다. 많은 돈으로 시간을 사서, 레저를 누리고 여행을 다니고, 각종 취미생활을 하며 마음대로 살던 사람도, 돈이 없어지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매여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던 사람이 매인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왜 사업에 실패하고 빚을 진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가.
세상의 부는 3f는 우리를 오히려 나약하게 만든다. 셋중 하나라도 잃으면 모든 것이 망가진 것이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 믿음은 진정한 자유를 우리에게 준다. 환경이 변하고 내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 그 사랑이 우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물론 힘들지만, 결국 우리가 극복하고 더욱 강해지게 만든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바보같다 할 것이다. 자유를 드리면, 우리는 노예가 아니냐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케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살아있게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의 믿음을 살리는 분이시다.
그러니 주 안에서 자유하자.
그를 위해 우리의 자유를, 우리의 선택권을 하나님께 드리자. 우리의 구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크기를 믿자. 십자가를 믿고 다시 한번 우리를 하나님께 드려, 세상에서 살아있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아있는 자가 되길 소망한다.
“오직 예수 뿐이네 ”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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