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30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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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우린 왜 공부하는가? 우린 왜 꿈을 갖는가? 우린 왜 무언가를 성취하고 이루려고 하는가?
좋은 시간은 참 빨리 가기때문인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자기 좋은 것만 쫓다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수가 있다.
진짜 중학교나 고등학교때 배운 것처럼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서 배우고 공부하는가?
오늘 본문은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의 모습이 나온다. 살펴보자.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가려고 하는가?
오히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주위 환경을 위해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나?
공부를 잘하면 어떻게 되나. 내가 만족스럽고 공부 잘하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내가 뭔가 성취한 기분이 드는가?
솔직히 그런 기분이 든다고 해도, 그것은 주위에서 칭찬하고 박수쳐주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수능 만점을 받았는데도, 주위에서 관심이 없다면, 자아가 실현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받을수가 없다.
그래서 ㅂ잘 보면 게임을 좋아하ㄴ고 잘하는 친구는 좋아하는 그룹으로, 운동을 좋아하고 잘하는 친구들은 운동하는 그룹으로 가게 된다.
하다못해, 동아리나 여러 모임을 찾아서라도 가게 된다. 그래서 그곳에서 인정받고 나누고 싶어한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그게 공부든, 운동이든, 그 무엇이든지간에, 우리는 주위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 하고 있다는 뜻이다.
나를 보고 하기 보다는 주변을 보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다니는 것도, 외모를 가꾸는 것도, 돈을많이 버는 것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모두 주변을 향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주변을 살피는 자들과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자들, 그 둘중, 누가 하나님을 만났는지를 보여준다.
본론
삭개오 이야기는 다 알 것이다. 이 이야기를 다 말할 필요는 없다. 지루하기만 하다.
37절에 예수님의 영광중에서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요구다.
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선시대도 좌의정과 우의정이 있었던 것처럼, 왕의 양 옆에 앉는 것은 가장 높은 자리를 뜻한다.
한마디로 이 둘은 지금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테니까. 그 때 우리 둘에게 제일 높은 자리를 주세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요. 그렇게 해주실거죠? 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시나? 38절에 보면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정신이 탈출할 정도다.
왜, 갑자기 이 두 제자는 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가? 쉽게 말해, 예루살렘에 다 와가기 때문이다. 제자들 생각에는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께서는 왕좌에 오르실테고,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과 기적을 보면, 로마군대도 박살내고 세상을 정복하실테니, 그 때, 예수님 바로 옆에서 온갖 것을 다 누릴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에만 시선고정, 채널고정 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38절에 말씀하신다.
“너희 지금 뭔 소리 하고 있냐? 너희가 무슨 소리 하고 있는지 너희 알아? 내 좌우편? 그러면 내가 이제 어떤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있어? 나랑 같이 그 일을 당할거야?”
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면 이 구절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33-34절에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실 것을 암시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예루살렘에 가서 할 일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권력자들을 만나 함께 떵떵거리는 일이 아니다. 정복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복당하고 매맞고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일이다.
자, 그럼 이 두제자가 요구하는 건 무슨 일인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저희가 그 좌편과 우편의 십자가에 같이 달리게 해주세요. 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어하며 말씀하신 것이다.
야, 진짜야? 너희 진짜 나랑같이 십자가에 못박힐거야? 그래서 죽을거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제자는 네! 당연하죠! 라고 그게 뭔지도 모른체 대답한 것이고요.
그리고 나머지 제자는 이런 예수님의 어처구니 없고 황당한 심정도 모른채, 지들만 십자가에 매달리려고 해? 나도 달아줘라고 화를 낸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죠.
왜 제자들이 이런 코메디를 찍고 있나요? 서두에 말했듯이, 자기 행복, 자기 즐거움, 자기 기쁨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얻을 것, 내가 누릴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눈이 멀어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뭐에 눈이 멀어 있습니까. 우리도 혹시 오늘 말씀의 제자들처럼 눈이 멀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지만 몇가지만 짚어보자.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이 멀어 있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너희 왜, 나를 따르면서 세상권세, 세상 모든 것 누릴려고 생각하니? 그들 처럼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은 건 이해해. 하지만 너희는 그러면 안되. 너희는 오히려 내 생각대로 내편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형제 자매의 생각에 맞추며, 서로 서로 이해하며 배려해서 서로됨이 너희 안에 있게 해야해.
왜냐면, 내가 인자, 사람으로 이 땅에 온 것도 너희에게 맞추고 너희를 섬기고, 내 목숨까지도 너희를 위해서 주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삭개오는 세리장이다. 영어로 ruler of tax collector다.
결론
우리는 어디에 우리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까. 마치 tv프로그램에서 채널 고정!이라고 외치듯이 내 기쁨 내 행복, 내 편안에 내 눈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나요? 그러면 당연히 서로됨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서로됨은 섬김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는 그 모습속에서 우리의 비전과 은혜주심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섬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자기 편한 사람, 자기보다 밑사람, 내가 친한 사람에게 가서 놀고 떠드는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좀 불편한 사람, 대하기 힘든 사람, 나랑 맞지 않는 것같은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하며, 배려하며, 맞추는 것이 섬김입니다.
내가 왜 영어로 말했냐면, 누가복음 18장에서 ruler가 한명더 등장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부자 청년이다. 예수님께 와서 구원의 길을 물어봤으나, 재산을 포기하라는 말에 구원을 포기해버린 바로 그 청년이다. 그 청년을 눅18장에서는 ruler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관리로 번역되었다.
섬김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섬김의 태도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도 오늘 본문에서 나온 예수님의 두 제자처럼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무조건 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간곡히 구하면 주시겠죠. 그러면 받고 나서 하나님을 원망하겠죠.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악한 것을 주십니까.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니가 지금까지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한순간도 잊지 않고 바랬던 게 그거 아니냐. 십자가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삭개오와 부자관리 둘다 룰러다. 둘다 부자다. 하지만 사회적인 위치는 전혀 다르다. 부자청년은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명성있는 자다. 부와 권력 명예, 모두다 얻은 자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서로 섬김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나 똑같이 룰러이고, 부자인 삭개오는 전혀 다르다. 삭개오는 세리장으로 볼린다. 세리장을 다른 말로 바꾸면 뭔지 아는가? 민족반역자다.
왜냐면 세금을 거둔다는 것은 로마에 충성한다는 뜻이다. 세리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로마 관청에 스스로 신청을 해야한다. 그 과정은 경매와 비슷하다. 자신이 많은 세금을 거둘수 있고, 그 능력을 증명해야 세리로 뽑힌다. 경쟁을 한다면, 그중에서 가장 많은세금을 거두는 자가 뽑힌다.
삭개오는 그런 세리들을 다스리는 자다. 한마디로 가장 많은 세금을 거두는 위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로마에 정복당한상태였기에, 삭개오의 상황은 일제앞잡이 중에서 대장앞잡이다.
지금 우리로 따지면 우리가 이렇게 불매운동을 하고 있는데, 더욱 일본 제품을 사고 회사에 가서 사원들에게 일본제품을 사지 않으면 패널티를 주고, 일부러 일본관광을 잡아서 사원들을 일본으로 가게하는 자다.
그래서 민족 반역자라는 소리다.
똑같은 부자이며 룰러이지만, 한명은 민족의 애국자이며, 한명은 민족반역자다.
그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리고 애국자는 예수님을 떠났다. 그는 길을 가더 예수님을 불러 세우고 예수님께 물었다. 그가 예수님께 찾아왔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물론 마가복음을 보면 그는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었지만, 그가 무릎꿇은 것을 본 자신의 아랫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철저히 높은 자였다. 부도, 명예도, 아무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자였다.
반역자는 예수님께 다가왔다. 사람들이 그를 밀쳐 예수님을 못만나게 하자, 나이가 들어 늙은 몸으로 나무에 올라갔다(물론 그 나무는 오르기 쉬웠다). 분명 그의 아랫사람도 보았을테지만, 아무런 상관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예수님께 갔을 때, 그는 그의 부를 기꺼이 포기하였다.
왜냐면 낮은 나, 비천한 나를 받아주실 분은 예수님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만이 아니다. 누가복음 낮은 자와 높은 자의 비교로 가득차있다. 낮은 과부, 어린아이, 세리, 맹인들은 예수님께 기꺼이 나아온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구원을 너무나 기뻐하고 어쩔줄 몰라한다. 높은 자들, 바리새인, 부자, 서기관, 제사장들은 결코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베푸는 구원은 좋게 말해 선택의 문제이며, 만약 많은 비용이 들거나, 내 위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기꺼이 구원이 아니라, 예수님을 버렸다.
결론
처음했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우리는 왜 꿈을 꾸는가. 왜 계속 비전을 가지려고 하는가. 그래서 그 비전을 따라 최선을 다해 달려가려고 하는가. 높아지기 위해서다. 주위의 환경보다 내가 높아지기 위해서다. 그 결과 나를 신봉하고 선망하고 따르는 것들이 가득찬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나는 없다. 나는 철저히 외부의 것으로 만족을 얻는 자다.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었으면, 그걸 소화시켜 내 살을 만들어야 하는데, 반대로 돼지살, 소살을 내게 붙여놓고 이게 내살이다.라고 하는 하고 있다.
그러니 낮아지자. 내가 부족함을 알자. 내가 세상의 것으로 채워도, 그게 본질적으로 내 것이 될수 없음을 인정하다. 왜? 그리스도 예수의 살과 피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지만, 이 세상 것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면 날아갈 것이다. 조금만 인식이 바뀌어도 없어질 것이다. 전쟁이라도 나면 내 재산은 모조리 없어질 가능성이 크다.
말그대로 돼지살 소살을 붙여놓고 내 살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낮아지자. 내 부족함을 인정하자. 주변이 아무리 풍족해도, 그래서 내가 정말 풍족한 삶을 사는 것같아도, 결국 그것은 하나님께서 후 하고 부시면 날아갈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그래서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낮은 곳으로 , 낮은 마음으로, 낮은 자리로 언제나 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한다.
“낮은 곳으로”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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