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3.저녁예배설교

저녁예배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6 views
Notes
Transcript
왼쪽 끝 슬리퍼
NKRV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성가대쪽 좌석에서 기도
결론세상사람들은 우리가 광신적이라 조롱할 수있습니다. 뭐하러 그렇게 헌금하고, 뭐하러 니시간 내어서 헌신하고 봉사하냐. 어차피 인생 즐기는거 아니냐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세상은 우리를 조롱하는 그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요즘 비혼족, 딩크족, 욜로족등 수많은 말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결국은 나혼자 잘먹고 즐기고 살면 된다는 것입니다. 아예 결혼하지 말고 즐기고 살던지, 결혼하더라도 애는 낳지 말고 서로 수입합쳐서 그걸로 해외여행도 다니며 더 즐겁게 살자. 한번 사는 인생 즐기며 살자라는 뜻을 가졌습니다.그리고 교회내에서 믿는 자들도 그런 생각에 동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가 아니라 더 즐겁게 내 생각과 기준에 합당하게 살자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하지만 오늘 말씀은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너는 어떻게 죽을 것이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고, 그 단번의 죽으심을 통해 새언약의 대제사장이 되셨다. 이 히브리서를 처음 읽은 자들은 그렇게 끔찍하게, 또한 온갖 조롱속에서 죽으면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그 결과 30년 후, 노예나 자유민이 아니라 황제의 사촌인 클레맨스가 순교했습니다. 그들의 죽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셔서 황제의 사촌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게 하신 것입니다. 단 한번 사는 인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의 제사로서 자신을 드리신 것처럼, 우리역시 단 한번의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사용하시겠습니까.저가 말했다시피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기준에서 보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좌편에 있는 예수로 만드시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처럼 죽음으로 오히려 자신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자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히브리서의 첫 수신자들처럼 단 한번뿐인 생애를 통해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증거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이 어두워져가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송가 246장 다함께 찬양 드리겠습니다.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성가대쪽 좌석에서 기도
종치기
종치기
다함께 묵상기도 드림으로 주일저녁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찬송가 315장 찬양드리겠습니다.
찬송가 86장 찬양드리겠습니다.
설호석 시무집사님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히브리서 12장 14절에서 17절입니다. 신약 368페이지입니다.교독하겠습니다.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15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17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이어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호산나찬양대 찬양하겠습니다.
설교
설교
서론
우리의 신앙 생활은 마치 마라톤과 같습니다. 잠시 앞선다고 끝까지 앞선 자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지금 뒤쳐져 있다고 영원히 뒤쳐진다고 할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믿음의 경주, 믿음의 싸움에 임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 생활은 마치 마라톤과 같습니다. 잠시 앞선다고 끝까지 앞선 자라고 확신할 수도 없고, 지금 뒤쳐져 있다고 영원히 뒤쳐진다고 할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것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란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믿음의 경주, 믿음의 싸움에 임해야 할까요. 본문을 통해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는 명령을 하며 시작합니다. 이 명령은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입니다. 믿는 모든 사람을 향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사람에게 하는 명령임과 동시에, 우리 전체를 향해 하시는 명령입니다.
즉, 우리가 믿는 자라면, 우리에게는 평강과 거룩을 따라갈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는 평강을 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화평함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11절에 나온 평강과 같은 단어입니다.
11절에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징계, 다른 말로 하나님의 훈련의 결과로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해하기 쉽게 의와 평강의 열매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이 말을 직역하면 ‘의로운 평강의 열매’입니다. 의의 열매와 평강의 열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강이라는 열매 자체가 의롭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그전 구절인 10절 후반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
10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여 맺는 열매가 11절에 나오는 의로운 평강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강이라는 열매는 의로움과 거룩함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속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그것은 그 평강의 열매속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평안이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 아니란 결론이 나옵니다. 오히려 오늘 말씀은 우리가 평강속에 거하기 위해 애쓰고 힘쓰라고 하십니다. 평화 속에 있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자 의무라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은혜 받아서 그 결과로 평안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다른 원인에 의해서 우리가 평화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강 안에 거하기 위해 애쓰고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이해하기 쉽게 의와 평강의 열매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이 말을 직역하면 의로운 평강의 열매입니다. 의의 열매와 평강의 열매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평강이라는 열매 자체가 의롭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10절 후반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0절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여 맺는 열매가 11절에 나오는 의로운 평강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강이라는 열매는 의로움과 거룩함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평화를 추구해야 합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의 평화속으로 들어가야 합니까. 그것은 그 평강의 열매속에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로움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처음 읽었던 성도들은 과연 평안함 속에 있었습니까. 언제 잡혀갈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담대하게 믿음의 경주를 하는 자도 있었겠지만, 하루하루를 괴로워하며 주일이 되면 예배의 자리로 가야할지를 고민하는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평강이었습니다. 이 평강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내가 어떤 상태에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를 지켜주실 것이다. 이제까지 지켜주셨고, 지금도 지키시고 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잠시 흔들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화평이 먼저 있어야지만 평강이 우리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평안이 우리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진정, 의로움과 거룩함을 겉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그러니 평강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 환경이 불안하며, 내 직장이 불안하며, 내 위치가 붕 뜬 것같습니까. 평강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간절히, 애쓰며, 온 힘을 다해 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따르라는 말은 가혹하리만치 힘쓰라는 의미입니다. 앞사람이 오라고 하든 말든 다른 곳에 기웃기웃하다가 너무 멀어졌다 싶으면 후다닥 뛰어가는 게 아닙니다.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등반대처럼, 외줄타기로 절벽을 올라가는 팀처럼, 앞사람을 놓치면 죽는다는 각오로 필사적으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평강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끈적하며 끈질기게 우리에게 달라붙을 것입니다. 특히 사람사이에서 온 갈등과 그 갈등에서 나온 분노와 원망, 슬픔과 같은 감정들은 정말 끊임없이 우리를 쿡쿡 찌를 것입니다.
하지만 평강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평강을 구하되,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강을 구하십시오.
저는 지금 평강, 평안, 평화라는 단어를 섞어서 쓰고 있습니다. 그 어떤 단어이든지 하나님 안에서 평안하고 화평한 상태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가지를 전달하기 위해 섞어서 썼습니다. 이 세가지 단어가 다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평강이라는 의미가 되듯이, 우리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평화를 누려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 한명만 평안하다고, 평화롭다고 정말 평강에 이를수 있습니까. 옆에서 형제가 죽어가며, 아파서 신음합니다. 어떤 형제는 마음이 너무나 괴로워서 실족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나만 평화롭다면, 그것은 평안입니까.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평화는 관계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평안할 때도, 우리의 모든 일, 즉 일이라는 관계속에 얽매인 모든 사람들이 다 형통하게 돌아가야 그 평안이 찾아옵니다. 결코 평화란 혼자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이 평안 속으로 들어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마치 믿음의 선진들과 천사들이 증인들이 되어서 구름같이, 앞이 보이지 않는 빽빽한 안개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응원하는 것처럼, 우리는 함께 믿음의 경주를 하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평강을 구해야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15절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라 라고 합니다. 다르게 번역하면 아무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잘 살피라입니다. 그것도 한번 살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살피라고 하십니다. 이 살피라는 말은 다른 뜻으로 감독하라라는 말도 있습니다. 심판이 경기에 집중해서 선수들을 보듯이 우리도 우리의 형제 자매들을 살필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피지 않으면 쓴뿌리, 죄악들은 너무나 쉽게 우리가운데 퍼집니다. 나중에 알아차렸을 때는 그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적당히 사람들과 거리를 둡니다. 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으로 가면을 씁니다. 물론 이런 모습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고 내가 원하는 것보다 함께 있는 사람을 배려하며, 서로 맞추어가며, 하나되는 것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마치 2인3각 달리기처럼, 우리는 발맞추어 달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강이 사라지고, 서로 사랑으로 살핌이 사라지면, 배려가 아닌 나 자신을 방어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하게 됩니다. 서로 눈치보며 나서지 않고, 내 것이라 생각되는 것은 단 하나라도 내어놓기 싫어하게 됩니다.
그것이 평강입니까. 그 결과를 16절에서 노골적으로 말씀합니다. 너희가 그렇게 소위 말해 자기만 생각하게 되면, 너희중에서 에서가 나올 것이다. 조금의 이익을 위해 장자의 명분, 믿음과 평강을 팔아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자들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 에서는 회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믿음의 길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때는 눈물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 눈물은 오직 자기만을 위한 눈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 때문에 눈물을 흘렸지만, 에서는 자신이 축복받지 못했기에 그 울분으로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는 늦습니다.
그러니 우리들 중에 에서를 만드는 자가 되지 맙시다. 이삭과 리브가가 피흘려서라도, 목숨을 걸고라도 자신의 아들 에서가 이방여자와 결혼 하는 것을 막고, 그 전에 사냥을 배운다고 밖으로 다니며, 온갖 이방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온 힘을 다해 막았다면, 에서의 운명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평강을 구합시다. 우리의 평강을 구합시다. 분명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것입니다.
결론
말씀을 정리하며, 한가지만 더 나누기 원합니다. 이렇게 평강을 구하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하지만 앞서 우리가 나눈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훈련시키십니다. 어떤 때는 우리에게 채찍질까지 하십니다. 왜인줄 아십니까.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가 더욱 강하게 되어 승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깍아 자신에게 맞추려는 세상에 대항할 힘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우리를 훈련시키시며, 사랑으로 채찍질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우리를 채찍질합니다. 휴전선 근처에 몇만명의 장병들이 있습니다. 모든 지휘관들은 그 수많은 장병들이 10분안에 다 죽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10분을 위해 군은 우리의 수많은 아들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총알받이로 쓰기 위해 훈련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비정한 세상에 대항하고, 지지않고 우리가 달려가게 하시기 위해 사랑으로 우리를 채찍질하십니다.
그러니 애쓰시기 바랍니다. 나 혼자도 챙기기 힘든데, 내가 왜 옆사람까지 챙겨야 하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11장 6절에서 상주심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6절의 말씀처럼 우리에게 가장 값진 상을 더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으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고 예수님께 시선을 두기 위해 평강을 추구합시다. 필사적으로 추구합시다. 우리 모두가 함께 추구합시다. 그래서 우리를 길들여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쓰려는 세상에서 당당하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송가 516장 다함께 찬양 드리겠습니다.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