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4. 고등부29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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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론
우리는 수련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을 향해 우리가 달려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나타난 두사람의 모습을 보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하나님의 힘주심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본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기간동안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입장에서는 어땠을까요. 그가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 아셨을까요. 당연히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삼위 하나님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 당시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위라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확실하게 말씀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한 사실은 신약 성경 전체를 걸쳐서 나와 있습니다. 물론 구약에서 성령의 임하심과 역사하심에 대해 말하지만, 그 진정한 실체는 미궁에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과 그 주위는 천사가 요셉에게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냥 메시아라고 소개하는 것입니다. 모르니까요.
여기서 믿음의 도전이 시작됩니다. 분명 천사가 꿈에서 나타났지만 꿈은 어디까지나 꿈입니다. 꿈도 중요하지만 그에게 닥친 현실은 정말 오랜 세월동안 돈을 모아서 겨우 산 아내가 임신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대로라면 자신은 이에 대해 어떠한 반론을 펼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설명해주시지 않습니다. 당장 우리가 본 아가서만 해도 그냥 살피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를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마리아와 요셉에게 동의를 구하고 예수님을 성육신 시키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일지라도 우리 입장에서는 사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수도 있습니다. 그게 좋은 사건이면 그나마 다행인데, 나쁜 사건이라면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받아들이시기를 원합니다. 받아들이고, 내 것을 포기하고, 그러나 고통스러운 그 과정을 통해서 이제 나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서로됨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도 요셉과 같은 사건이 나타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건을 믿음으로 용납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한가지를 더 말합니다. 20절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처음으로 한 말은 무엇입니까. 다윗의 자손 요셉아, 입니다. 과연, 요셉 자신이 다윗 왕가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그렇게 가난한 목수의 삶을 사는데요?
내 조상이 어떻구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지금 내 삶이 시궁창이 잖아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방학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좋은 시간은 참 빨리 간다.
마치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위로하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너는 다윗의 자손이다. 언약의 계승자다. 그래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자다라고 말입니다.
이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요셉의 정체성을 바꾸는 말입니다. 이제 그는 일개 가난한 목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품은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식으로 임명하신 왕이 된 것입니다. 그것도 메시아를 낳게 되는, 다윗도 이루지 못한 엄청난 일을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요셉이 해야 할 선택은 목수의 선택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서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비록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그는 이제 목수가 아닌 다윗의 자손, 왕이기에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
이제 말씀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서로됨을 이루어 나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만 쉽지 그것보다 어려운 것도 없을 것입니다.
좋은 시간은 참 빨리 가기때문인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한다.
엡 부부
그런데, 이렇게 자기 좋은 것만 쫓다보면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칠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도전 하십니다. 모르겠다면 무작정 따라해라라고 합니다. 그 따르는 길이 고난의 길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길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그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쳐버린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들의 모습이 나온다. 살펴보자.
분명 하나님께서는 그 길에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일개 목수인 요셉의 본질, 다윗의 아들이란 사실을 깨닫게 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본론
그러니 하나님의 그 도전속에는 언제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가득차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내가 아니라 주님을 볼수 있어, 그길을 주님과 함께 걸어갈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 둘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께 뭘 요구하면서 시작된다. 뭘 요구하는가?
37절에 예수님의 영광중에서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는 요구다.
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선시대도 좌의정과 우의정이 있었던 것처럼, 왕의 양 옆에 앉는 것은 가장 높은 자리를 뜻한다.
한마디로 이 둘은 지금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테니까. 그 때 우리 둘에게 제일 높은 자리를 주세요. 그래서 우리 가족이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요. 그렇게 해주실거죠? 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반응하시나? 38절에 보면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정신이 탈출할 정도다.
왜, 갑자기 이 두 제자는 왜 이런 소리를 하고 있는가? 쉽게 말해, 예루살렘에 다 와가기 때문이다. 제자들 생각에는 이제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께서는 왕좌에 오르실테고, 지금까지 보여준 능력과 기적을 보면, 로마군대도 박살내고 세상을 정복하실테니, 그 때, 예수님 바로 옆에서 온갖 것을 다 누릴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서두에 말했다시피, 자신의 행복과 즐거움에만 시선고정, 채널고정 시키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38절에 말씀하신다.
“너희 지금 뭔 소리 하고 있냐? 너희가 무슨 소리 하고 있는지 너희 알아? 내 좌우편? 그러면 내가 이제 어떤 일을 당해야 하는지 알고있어? 나랑 같이 그 일을 당할거야?”
라고 말하고 있다.
왜냐면 이 구절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33-34절에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실 것을 암시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예루살렘에 가서 할 일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대로 권력자들을 만나 함께 떵떵거리는 일이 아니다. 정복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복당하고 매맞고 비참하게 죽어야 하는 일이다.
자, 그럼 이 두제자가 요구하는 건 무슨 일인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저희가 그 좌편과 우편의 십자가에 같이 달리게 해주세요. 라는 말이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이렇게 어처구니 없어하며 말씀하신 것이다.
야, 진짜야? 너희 진짜 나랑같이 십자가에 못박힐거야? 그래서 죽을거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이 두 제자는 네! 당연하죠! 라고 그게 뭔지도 모른체 대답한 것이고요.
그리고 나머지 제자는 이런 예수님의 어처구니 없고 황당한 심정도 모른채, 지들만 십자가에 매달리려고 해? 나도 달아줘라고 화를 낸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보면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죠.
왜 제자들이 이런 코메디를 찍고 있나요? 서두에 말했듯이, 자기 행복, 자기 즐거움, 자기 기쁨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내가 얻을 것, 내가 누릴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눈이 멀어서 다른 것은 하나도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뭐에 눈이 멀어 있습니까. 우리도 혹시 오늘 말씀의 제자들처럼 눈이 멀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눈이 멀어 있는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너희 왜, 나를 따르면서 세상권세, 세상 모든 것 누릴려고 생각하니? 그들 처럼 자기 맘대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고 싶은 건 이해해. 하지만 너희는 그러면 안되. 너희는 오히려 내 생각대로 내편한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같은 형제 자매의 생각에 맞추며, 서로 서로 이해하며 배려해서 서로됨이 너희 안에 있게 해야해.
왜냐면, 내가 인자, 사람으로 이 땅에 온 것도 너희에게 맞추고 너희를 섬기고, 내 목숨까지도 너희를 위해서 주기 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라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결론
우리는 어디에 우리 시선을 고정하고 있습니까. 마치 tv프로그램에서 채널 고정!이라고 외치듯이 내 기쁨 내 행복, 내 편안에 내 눈을 고정시키고 있지 않나요? 그러면 당연히 서로됨이란 있을수 없습니다.
서로됨은 섬김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닮아가는 그 모습속에서 우리의 비전과 은혜주심도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 섬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 South Korea.
자기 편한 사람, 자기보다 밑사람, 내가 친한 사람에게 가서 놀고 떠드는 것은 섬김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좀 불편한 사람, 대하기 힘든 사람, 나랑 맞지 않는 것같은 사람에게 가서 이야기하며, 배려하며, 맞추는 것이 섬김입니다.
섬김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섬김의 태도로 살지 않는다면, 우리도 오늘 본문에서 나온 예수님의 두 제자처럼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무조건 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간곡히 구하면 주시겠죠. 그러면 받고 나서 하나님을 원망하겠죠. 하나님 왜 저에게 이런 악한 것을 주십니까. 그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겁니다.
니가 지금까지 그렇게 간절히 원하고 한순간도 잊지 않고 바랬던 게 그거 아니냐. 십자가 아니냐라고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서로 섬김으로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낮은 곳으로” 찬양
다함께 기도
“내게 있는 향유 옥합” 찬양드리며 헌금드리겠습니다.
주기도문(천천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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