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대제사장

수요예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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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밖으로 나가서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밖으로 나가서 그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모세 당시에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잡지 못했던 자들을 부정적인 예로 제시한 후, 우리는 그러지 말자.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가자. 그 길이 죽음의 길이지만, 그 길이 옳은 길이다.
주님이 우리를 도와주시는데, 사람이 우리에게 어떻게 할것인가. 이 노래를 부르면서 영문밖, 안전이 보장된 울타리 밖으로 나아가자.
3장 7절
시 95로 광야에 엎드려진 자들을 설명한다.
그러기때문에 거룩한 영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 주절이 없음, 인용으로 보지 않으면 다음문장이 주절이 된다.
그분의 말씀을 여러분이 듣는다면
8절
고집스럽게(단단하게) 마음을 가지지 마십시오. 찌를 때처럼 -> 마음이 강팍해지면 넘어갈수 있는 것도 넘어가지 않는다.
광야에서 시험의 날에 -> 광야의 어려움. 사람이 바글바글, 가축도 바글바글, 먹을 것도 부족, 마실 것도 부족. 서로 짜증을 내고 하나님께도 짜증, 서로 찌르고 하나님도 찔렀다.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재혼을 두고 찌를 정도였다. 공동체가 엄청나게 힘들었다. 하지만 공동체를 떠나면 죽는 것이었다.
9절
시험은 받아들ㅇㄹ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했다.
자신을 시험을 받아들이고 봐야하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시험했다.
하나님께서는 먹을 것이 없는 그들으 시험했다. 하나님의 정답은 기도로 먹을 것이 없습니다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들은 시험했다. 우리를 굶겨죽이려고 한다고 시험했다.
우스개소리로 그들은 하나님을 시험에 빠뜨렸다.
10절
40년간 이스라엘이 한 것을 하나님께서 보셨다.
하나님이 힘들었을까. 이스라엘이 힘들었을까.
둘다 힘들었다.
그럼에도 어떤때는 심판으로, 어떤때는 식량으로, 어떤 때는 물로 간섭하셨다
그 40년은 헛되지 않았다. 40년을 지나며 요단을 건널수 있는 믿음의 군대가 형성되었다.
솔직히 세상에 찌들어 있는 자들이다. 그물을 빼고 예수물을 들여야 한다. 내가 죽어야 한다.
그렇기때문에 내가 이세대에 대해서 분노했다. 그래서 이야기했다. 항상 그들은 제멋대로 간다. 마음의 측면에서
-> 마음이 올곧고 일편단심이 아니라 시시때때로 바뀐다.
그래서 그들은 내 길들(하나님의 방법, 하시는 일)을 모른다. -> 하나님의 방법도 일도, 뜻도 모른다.
-> 방황을 해도 올곳게 방황하면 가다가 걸리면 돌아올수 있다. 하지만 가다말다 이리저리하면 돌이키지 않는다.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하는 것이다. 죄를 짓다가 다른 방향의 죄로 돌아 잠시 나아지면 죄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중심이 자신에게 있기 때문이다.
- 항상 마음이 왔다갔다한다. 내가 옳다하지만 식구들이 모두 힘들어한다면 틀린 것이지만 인정하지 않는다.
11절
하나님의 격함을 나타낸다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이것이 전체적으로 성령께서 주신 말씀이다.
12절
주의해라, 살펴봐라 여러분중에 누군가에게 있지 않도록, 불신, 불순종의 해로운,악한 마음이 있지 않도록
신뢰를 못하는 마음
13절
스스로, 서로 권하라, 위로하라 격려하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될 때 갖게 되는 악한 마음
하나님은 더이상 신뢰할 수 없는 대상이다. 이런 악한 생각.
날마다 스스로를 권하라. 중단없이 계속, 지금이시간까지 항상
-아크리스 : 중단없이 거기까지
-헤오스 : 어림잡아 거기까지
-메크리 : 그만큼
오늘이라고 하는 날까지 -> 시편을 인용하며, 오늘이라는 시간과 오늘이전의 시간을 나눈다. 오늘이 중요하다. 광야에서 망했던 상태의 연속이 아닌, 하나님이 정하신 시점, 오늘이라는 시간이다. 그날이 바로 오늘이다.
여러분은 스스로 권고하십시오 그날까지 그런데 그날은 오늘입니다.
이들은 광야가 아닌, 오늘을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기회를 주시는 기간이다.
그러므로 오늘이란 시간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리고 신자는 항상 오늘을 살아간다.
누가복음에서 주기도문에는 그날 각각마다 이다. 그것은 어제도 오늘, 오늘도 오늘 내일도 오늘이다. 왜냐면 하나님게서 새로운 말씀, 은혜를 내려주시기 때문이다.
오늘이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주신 ㄴ새로운 기회의 날이다.
여러분가운데 누군가가 강팍하게 되지 않도록
죄는 속임이다. 죄의 유혹, 속임으로 강팍하게 되지 않도록.
왜냐면 오늘이라 부르는 그날이 계속해서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안식의 날이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날이다.
이 축복의 오늘을 죄에 속아서 강팍해진 마음으로 사탄에게 팔것인가?
그러나 죄의 유혹은 우리를 하와에게 했던 것처럼 꼬드기다.
바울이 1 2 3차 전도여행을 갔다왔을 때, 들려진 소리는 그만하면, 좀 쉬엄쉬엄하자다. 그게 일종의 죄의 유혹이다. 죄가 속이는 것이다.
14절
그리스도와 함께 공유한 자가 되었다. ->조건의 성취
만약에 그만큼 확실하게 붙들면 -> 여기서 확실은 그분의 본체의 형상에서 쓰였다.
마음을 강팍하게 하면 끝까지 갈수 없다.
16절
어떤 이들이 듣고서 찔렀냐. 도리어 모든 사람이 아니었느냐?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서 나온 모든 사람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를 저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잊고, 하나님께서 능력없는 분인 것처럼, 지도자, 하나님께만 아니라 서로를 불평하며 찔렀다.
17절
어떤이들에게 하나님께서 40년동안 화가 나셨느냐.
우리는 40년동안 말안듣게 가만히 둘수 있을까. 하나님의 인내다. 하나님은 40년을 말안듣게 허락하셨다.
그들의 시체들이 광야에 엎드러진 자들, 죄지은 자들에게가 아니었느냐.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수명에 따라 죽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천수를 누리게 기다려주셨다.
죄지은 자들에게가 아니었느냐.
18절
또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에게 그분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맹세하셨느냐.
도무지 순종하지 않던 자들 이 아니냐.
19절
우리가 실제 삶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두려워하는지 알아보자. 말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이라고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하는가.
고등학생들에겐ㄴ 학원이, 성적이 무섭다. 우리에게는 돈이 무섭다. 건강이 무섭다.
신뢰하지 않으니까.
예수님께서도 나사렛에서 믿지 않으니까 능력을 행하실수 없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능력을 행하실수 없게 만들지는 않느가.
4장 1절
그래서 우리도 두려워하자. 여러분가운데 누군가가 부족하게 여겨지지 않도록 그분의 안식의 약속이 남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 우리가 걱정된다.
2절
저들과도 같이 과연 그렇게 우리도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복음을 들었다.
출애굽했던 백성들에게는 내가 가나안땅울 주겠다. 율법을 지키라. 거기에 마음이 합한 자는 들어갔고 아닌 자는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들음의 말씀이 저들을 유익하게 하지 못했다. 왜? 그들이 믿음으로 들은바에 섞이지 못해서.
들은바 말씀에 섞이려면 믿음이 필요하다. 시멘트를 이섞어서 이길려면 물이 필요하다.
믿음이 뭐냐? 하나님의 말씀과 나를 섞이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믿음이 없다면 말씀과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하나님과 나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다.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은 자의 것이다라라고 했으면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무슨 말씀이든지 그것이 내 말씀이라 믿으면 그 말씀이 섞인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3절
-우리를 괴롭히는 자들을 통해 우리는 인내를 배우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내.
-예수님께서는 겪으신 고난을 통해 인내를 배우셨다. 혈과 육만 사람이 아니라 마음도 사람이 되셨다.
세상이 조성될때부터 하나님의 일들이 실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 창조때 안식이 이미 이루어졌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을 통해 다윗에게 다시 말씀하신다.
4-5절 그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신다.
왜냐면 그들이 어딘가에 제 일곱번째날에 대해서 이처럼 말슴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 일곱째 날에 그분의 모든 일에서.’
그 일은 사실 완전히 이루어진것이다.
하나님의 안식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우리는 거기에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5절에서 그 이미 존재하는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말한다.
출애굽이전에, 인생이 시작하기 이전에 이미 안식이 준비되어 있지만 그들은 들어가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끝내셨지만, 우리 일을 하고 계신다. 왜냐면 인생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지금 하나님의 일은 바로 인생의 구원을 위해서다.
안식은 자신의 일을 쉬는 것이다.
6-7절
그러므로 몇몇이 안식에 들어갈것이 남겨져있기 때문에 먼저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못들어갔다. 믿지 않아서(불순종)
하나님께서는 출애굽때 제안했지만 불순종때문에 못들어갔다ㅏ.
다시 어느날, 오늘이란 날을 정하셨다. 다윗안에서 말씀하셔서. 그정도의 시간이 지난 다음에 말씀하셨다. 미리말씀하신 것처럼.
설교자는 성경을 계속 인용한다.
오늘이 그날이기 때문이다. 평안이 없다면, 바로 오늘이 평안이 있는 날이다. 바로 오늘이 평안, 그리스도의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오늘 그분의 음성을 너희가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팍하게(단단한 돌같이) 하지말라.
8절
만약 그들을 여호수아가 쉬게 했다면, 다른 날에 대해서 그분이말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알레스와 헤메라스를 떨어뜨려놓았다. 다른 날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다른날은 오늘이다.
여호수아가 안식을 완전히 얻지 못했다. 적의 공격은 없지만 내 마음의 기쁨도 없다.
사사기는 그게 서서히 무너져 나중에는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쫓겨난다.
9절
그렇다고 하면,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겨져있다.
설교자는 성도들을 이끌고 영문밖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서 죽겠다고 하니 제자들은 안따라간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데리고 가신다.
가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안식에 대해 반복한다.
10절
그분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그 자신도 그의 일로부터 멈춘다. 자기 자신의 것들로부터 하나님께서 멈추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제7일에 자신의 일을 쉬셨다. 자신의 일을 다하셨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때문에 우리의 일을 하고 계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의 일을 통해 구원의 길이 열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 구원의 길로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내 일을 할 필요가 없다. 왜냐면 주님께서 우리의 일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조차 내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일을 하고 계시기 때무니다.
갈2에서 이제 내가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라고 하신 것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안하고 못하는 일도 생긴다. 바로 죄짓는 일이다.
원래 죄를 잘 지었는데, 이제 죄를 못짓는다. 원래 초자연적인 일은 결코 못하는데 이제 그런 일도 한다.
바울이 말한 바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라가 바로 이 뜻이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 자기 일에서 멈췄다. 하나님이 일하시기 때문이다.
11절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자.
‘저’안식이다.
성도들이 안식에 안산다.
그들을 데리고 가기 위해 설교자도 안식에서 멀어져있다.
내 정욕 욕심 뜻이 죽는 것이 쉽지 않다. 힘쓰고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 어떻게든 주님이 내 속에서 주장하시도록 힘써야 한다.
누군가가 불순종(신뢰하지 못함)의 본, 바로 그본에 떨어지지 않도록.
이미 그 불순종의 본이 있다. 광야 40년의 세대가 그들이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마실 것도 없어도, 그들이 해야하고 순종하고 믿어야할 신뢰의 생각은, 애굽에서 우릴 구원하신 하나님, 그분을 신뢰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렵고, 혹 죽는다할지라도 그분을 신뢰한느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하나님의 능력, 존재, 사랑을 의 심하지 않고 갈수있도록 힘쓰라는 것이다.
12절-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랄레오, 레고로 하신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 뿐 아니라 이루셨고, 이루실 모든 것을 확인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그리고 일하신다 모든 두날 가진 칼 너머로 더 날카롭다. 그리고 두지점을 충분히 뚫는다. 중단없이 끝까지 영혼, 목숨, 영이라는 그 부근까지도 관절(연결부위)과 골수(뼈속)까지. 그리고 마음의 있는 것(가슴속에 있는 것)과 머리속에 있는 것을 아신다(판단하신다)
내가 안식하는지 안식하지 않는지 아신다.
뼈속 싶이까지 영혼깊이 까지 내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 머무는지 여전히 내 일을 하고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은 아신다.
쇠사슬에 묶인 바울은 총독앞에서 당신들이 다 나와같이 되길 원한다고 말한다.
13절
그분앞에서 드러나지 않을 피조물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모든 것들이 벌거벗은것과 같다. 하나님 눈앞에 목이 비틀어진 것처럼 다 드러났다. 그분을 향해서 우리에게 있는 결산할 것이.
모든 만물은 다 그분앞에서 심판받는다.
믿는 자는 큰 은혜를 입었기에 큰 심판을 받는다.
사역자는 더 큰 은혜를 입었기에 더 큰 심판을 받는다.
그들에게 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안식이 어떻게 있었냐?
성전이 아직 건재하고 대세사장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에 참된 안식이 있을수있나?
광야는 어려운 세상과 비교할수 있지만, 벌써 성전이 있고 대제사장이 있고, 수많은 제사가 있다.
그에 대한 답을 이후에 말한다.
14절
그러므로 우리가 큰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분은 하늘들로 들어가신 예수님, 즉 하나님의 아들을. 함께 신앙고백하는 신앙고백을 붙들자.
히브리서의 독특한 표현이 대제사장이다.
자비롭고 신실한 대제사장이라 말하고 속죄를 이루신 분이란 것을 말했다.
그렇다면 안식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하나? 예루살렘 성전? 아니, 우리는 하늘성전에 잇대어 사는 자이기에 하늘보좌로 가야 하낟. 그래서 하늘에 계신 큰 대제사장이 있다.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 승천이 이들에게 있다.
15절
우리는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할수 없는 대제사장
함께 고통하는.(동정이 아님) 우리의 연약함들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그런 대제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당시 대제사장들은 일반백성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지 못한 자들이었다.
그당시 대제사장들은 일반 제사장들이 제사를 주관하고 받은 십일조를 뺏었다. 그래서 일반 제사장들이 많이굶어죽었다.
그래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사두개파와 제사장으로 말하기도 한다.
성전제사를 통해 부스러기라도 떨어지기를 바라지만 부스러기도 못먹고 병들고 죽어가는 가난한 제사장들.
그분은 모든 부분에 대해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분이시지만 죄는 없아(시험에 빠지지 않으셨다)
16절
담대함을 가지고 나아가자.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자. 그러면 우리가 자비하심을 받고 은혜를 발견한다. 때마다 도움을 반결할 정도로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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