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ossians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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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지난 주 토요일 제가 비젼예배 설교한 본문과 같은 본문입니다.
새벽예배 나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비젼예배도 오셨던 분들이기때문에 나누었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나누지 못한 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조블레스 오블리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
노블리스 오블리제 라는 말이 있습니다. 귀족은 의무를 갖는다.란 프랑스어 말입니다.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층은 그 신분에 상응하는 여러 의무가 있다는 뜻입니다. 영국 해리 왕자 10년간의 군복무. 야생동물 밀렵꾼 단속 환경운동가로 실천에 옮기고 있습니다.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갑을 격차 미투운동등이 벌어지면서 한국 사회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요구가 그 어느때보다도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이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 걸맞는, 그리스도인에 상응하는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1절에 보니까
Colossians 3:1 NKRV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너희가 죽고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위의 것을 찾으라고 권면합니다. 지붕위에 있는 위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그럼 이전에는 무엇을 찾고 살았을까요?? 땅의 것을 찾고 살았겠지요.
7절
Colossians 3:5 NKRV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Colossians 3:5–7 NKRV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으니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샌안토니오 쪽으로 가는 방향이었다면 이제는 달라스쪽으로 가는 방향으로 완전히 경로가 변경되었습니다. 다시 방향을 돌릴 수가 없습니다. 돌리고 싶어도 돌려지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이 아니면 행복하지 않고 영원한 가치를 가진 것에 의미를 두는 인생들이 되었습니다.
그럼 왜 아직도 우리는 땅의 것을 쫓게 되는 것일까요? 3가지가 있습니다.
음란, 부정, 사역, 정욕, 탐심이 땅의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본성을 가지고 오래토록 살아왔습니다. 하얀 도마에 김치국물 배기어 없어지지 않듯이 이게 우리에게 남아있습니다. 두번째는 이 세상이 악합니다. 세상의 가치관들이 땅의 것을 쫓도록 부추깁니다. 마지막으로 사단의 권세입니다. 여전히 공중권세 잡은 자 사단이 성도들로 하여금 넘어지도록 온갖수단들을 사용하여 역사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땅의 것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시스템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싸움이 있습니다. 위의 것을 구하는 것이 저절로 되는 것이라면 바울이 이 편지를 왜 썼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은 단호하게 끊어야 합니다.
Colossians 3:3–4 NKRV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나타난다. 땅의 것을 찾지 말고 위의 것을 찾으라!! 또 하나의 근거를 이야기합니다. 3-4절 이는, 왜냐하면,
NKRV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우리가 죽었고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우리 살아있는데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가려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세상사람이 볼 때는 지금 우리과 그 사람들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모습은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진짜 생명이 예수님 안에 감추어 있다. 드러나지 않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때 하나님으로 인정되었나? 그렇지 못했다.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의 외투 걸치고 사람들과 함께 다니시고 비난을 당하기도 하셨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발견 못한다. 그러나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믿었다. 나사렛 청년 이상을 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도우리 볼 때 그렇다.
정말 예수님과 같이 살다가신 분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람을 양자로 삼은 목사님, 일평생을 나병환자를 위해 살다가신 분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우와 정말 존경스럽다하는 그 모습도 아주 약간의 모습일 뿐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그와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이땅에서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삶의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가 끝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부활의 소망이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자들입니다.
우리의 진짜 생명이 예수님 안에 감추어 있다. 드러나지 않다. 약간만 보인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때 하나님으로 인정되었나? 그렇지 못했다.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의 외투 걸치고 사람들과 함께 다니시고 비난을 당하기도 하셨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발견 못한다. 그러나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믿었다. 나사렛 청년 이상을 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도우리 볼 때 그렇다. 하나님 옆에 영광스런 모습인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게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 나라의 부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인데도 이 땅에서는 사기도 당하고 자녀 병도 들고 죽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죽었고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다. 우리 살아있는데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가려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나는 여기 버젓이 살아있는데 다른 사람들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다 아는데?? 안숨겨져 있는데.. 내 생명이 왜 그리스도와 함께 숨겨졌다는 것인지? 구원받기 전하고 구원받은 후하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데 똑같습니다. 얼굴 똑같고, 키도 똑같고, 바뀐거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사람이 볼 때는 똑같다. 우리의 진짜 생명이 예수님 안에 감추어 있다. 드러나지 않다. 약간만 보인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사실 때 하나님으로 인정되었나? 그렇지 못했다. 평범하게. 가난한 사람의 외투 걸치고 사람들과 함께 다니시고 비난을 당하기도 하셨다.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을 발견 못한다. 그러나 믿고 고백하는 사람은 믿었다. 나사렛 청년 이상을 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도우리 볼 때 그렇다. 하나님 옆에 영광스런 모습인데 세상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게 생명이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 나라의 부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인데도 이 땅에서는 사기도 당하고 자녀 병도 들고 죽기도 하고 가난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의 전부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정체성이 자꾸 넘어지는 나를 일으켜 세울 수 있습니다. 자꾸 작아지고 실수하는 나를 격려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나로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위의 것을 구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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