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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회입니다_수요강좌 2

우리가 교회입니다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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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픔을 함께하는 치유자

고개 숙인 사람들.. 스마트폰 시대가 낳은 지하철과 버스의 풍경이고 이 시대의 자화상입니다. 쉴 새 없이 접속 하면서도 끊임없이 차단하는 이 사회의 모습을 어떤 학자는 ‘단속사회'라고 명명합니다. SNS는 하루가 다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오히려 사람들은 갈수록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간에도 의미 있는 대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회는 이런 단절의 이유로 소통의 부재를 말하지만, 성경은 그 밑바닥에 웅크린 를 직시합니다. 죄 때문에 끊어진 관계, 그로 인한 아픔과 상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만 온전히 회복되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위대한 치유자입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는 치유받은 공동체이자, 동시에 치유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형제와 이웃의 아픔에 진정한 마음으로 함께하는 온전한 치유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가장 불행하고 안타까운 현실 중 하나가 바로 ‘이웃의 부재’입니다. 소유의 부족보다 이웃의 부재가 더 뼈아픈 상황입니다. 내 인생의 여정에서 기억나는 선한 이웃이 있습니까? 만약 있다면, 그를 통해 받은 도움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나누어봅시다. 기억나지 않는다면, 선한 이웃이 드문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해봅시다.
잠언 27:10 NKRV
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 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마가복음 7:21–23 NKRV
21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4 NKRV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2.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에서, 누가 내 이웃입니까? 하는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님은 “누가 강도만난 자의 이웃이냐?” 라고 되물으십니다. 이 두 질문이 보여주는 관점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눅 10:
누가복음 10:29–37 NKRV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31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32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36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37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3. 예수님은 강도 만난 자를 향한 사마리아인의 마음과 행동을 자세히 묘사하십니다. ‘동사'를 중심으로 찾아봅시다.
누가복음 10:33–35 NKRV
33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35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우리에게 선한 이웃의 길, 온전한 치유자가 되는 길을 보여줍니다. 나는 선한 이웃으로 인정받을 만큼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까? 교회 안의 제체 혹은 우리 사회의 약자나 소외된 자들 가운데 나를 형제로, 이웃으로 인정해줄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지금 내가 수고하고 베풀며 도와야 할 이웃은 누구입니까?
4. 죄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중심성'입니다. 따라서 ‘죄로부터 구원을 받는다'는 말은 나밖에 모르던 사람들이 나를 부인하고 남을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지독하고 집요한 자기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하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즉 나 중심의 신앙을 탈피하여 타인 중심의 신앙으로 성장해갈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요한1서 4:9–11 NKRV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5. “사랑의 크기가 우리의 가치를 결정합니다.” 사랑의 수준이 우리의 생애와 교회의 장래를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은 주님의 희생적인 사랑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섬기면 하나가 될 수 있고, 사랑하면 세상을 살리는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선한 이웃, 선한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겻은 무엇일까요? 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베드로전서 4:7–10 NKRV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잠언 10:12 NKRV
1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6. “교회는 경찰차가 아니라 구급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회의 책임과 역할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담긴 의미를 내가 이해한 대로 설명해봅시다. 또 지금까지 지체들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내 역할은 어떠했는지 솔직히 나누어봅시다.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는 과정은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내신 예수님의 삶과 닮았습니다. 예수님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먼저 다가오셔서 우리 인생의 치유자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치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내게 이익이 되는 사람들만 이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의 경계를 마음대로 정할 수 없습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참사랑의 섬김과 실천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가, 우리 교회가 먼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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