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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울 것 없는 그리스도의 일꾼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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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인정받은 일꾼 (딤후 2:14-18/274)

The most difficult issue in the verse is the precise meaning of ὀρθοτομεῖν, “to handle correctly.” However, while its specific nuance is debated, its general thrust is clear. In contrast to the opponents, perhaps with regard to both their beliefs and their behavior, Timothy is to deal correctly with the gospel message, perhaps both its teaching and the manner of life to which it calls (cf. Spicq, 2:755). ὀρθοτομεῖν occurs only here in the NT. It is a compound verb: τέμνειν, “to cut,” ὀρθός, “straight.” It is used in nonbiblical Greek in connection with ὁδός, “way,” meaning “to cut a straight path.” There has been much discussion of the precise nature of the metaphor: a mason cutting stone, a farmer cutting a straight furrow (Chrysostom), and other suggestions, with the emphasis on “the straightness with which the work of cutting or laying out is performed” (Ellicott, 123). Chrysostom emphasizes the idea of “to cut”: to “cut away what is spurious, with much vehemence assail it, and extirpate it. With the sword of the Spirit cut off from your preaching, as from a thong, whatever is superfluous and foreign to it” (“Homily 5”; NPNF 13:493). ὀρθοτομεῖν occurs in the LXX in Prov 3:6; 11:5 (cf. 1QH 12:34), both in connection with ὁδός. However, ὁδός does not occur in this passage, and most agree that the imagery of the original metaphor has been lost (Dibelius-Conzelmann, 11; H. Köster, TDNT 8:112) and that the emphasis is on the adjective ὀρθός (MM, 456), “straight,” hence “right, correct” (see discussions in MM, 456–57; H. Köster, TDNT 8:111–12; BAGD 580; TLNT 2:595; R. Klöber, NIDNTT 3:352). This is paralleled by the cognate adverb ὀρθῶς, “correctly,” used to describe the answering of a question (Luke 10:28; 20:21), and by the similar verb ὀρθοποδεῖν, “to walk straight,” a metaphor for correct behavior (Gal 2:14). The adjective ὀρθός can also mean “straight, correct” (BAGD 580), and according to Klöber was used in secular Greek for “ethically correct behavior” and in the wisdom literature for “the kind of right attitude, speech, and action that accords with a proper relationship to Yahweh. It does not describe a virtue as much as a relationship” (NIDNTT 3:351).

From this are established two basic interpretations of ὀρθοτομεῖν. Both fit the contextual needs of Timothy’s stance contrasted with the Ephesian myths and opponents. (1) “Right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Here the primary contrast is between the rightness of the gospel as interpreted by Paul and Timothy and the wrongness of what is taught by the opponents arguing about words. This points in the direction of the cognate ὀρθοτομία and the related ὀρθοδοξία, which are used to indicate “orthodoxy” in later Christian writers (but see Köster, TDNT 8:112 n. 11). Spicq also mentions ὀρθοέπεια, “correct language,” as the rule in Greek dialectic, “expressing oneself with exactness” (TLNT 2:595). (2) “Right behavior in line with the gospel.” Here the emphasis is on Timothy’s behavior, that it be in line with the gospel and that it be in contrast to the opponents. This agrees with the emphasis in the PE on the necessity of right conduct both in Paul’s condemnation of the opponents’ misconduct and in the repeated reminder to Timothy to observe his own conduct (cf. 1 Tim 4:6–16). It also agrees with the emphasis on conduct in this paragraph (2:14–18) and the repetition of the same ideas in 2:20–26. Perhaps the rarity of ὀρθοτομεῖν should serve as a caution against making too precise a distinction between the two options, especially in light of the theme in the PE that right belief and right conduct go hand in hand. Treating the gospel correctly cannot stop at right belief but must move into right conduct, and in fact vv 16–18 discuss both behavior and belief.

하나님의 종들에게 최고의 영광은 “하나님께 인정받은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는 일꾼이 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는 상황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을 우리는 잘알아야 합니다. 특별하게 영적으로 우리를 공격해오는 무리들이 많은 상황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너는 그들로 (당시 디모데가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에베소 교인들” 혹은 2:2절에 나오는 충성된 사람들을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양무리를 책임져야하고 제자들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기억하게 하여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나님 앞에서 엄히 명하라 이는 유익이 하나도 없고 도리어 듣는 자들을 망하게 함이라"
말다툼을 하지 말라고 하는 대상들은 16-18절에 나와 있습니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경건하지 않음에 점점 나아가나니"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번역은 그들의 가르침에 흠뻑 빠져 있는 자들은 점점 불경건한 상태에 나아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는 말입니다.
17절로 넘어가보면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거짓 가르침을 가르침으로써 영혼에 암덩이가 퍼지게 하는 자들의 정체는 “후메네오"와 “빌레도"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후메네오라는 사람은 디모데전서 1:19-20절에도 나왔는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믿음에서 완전히 떠나 간 사람들이어서 믿음의 공동체에서 완전히 쫓아 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뿌리가 뽑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이 아직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 암덩어리를 처럼 그리스도의 몸에 해를 가하고 있었습니다.
암덩어리 같은 그들의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18절 말씀입니다.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이 사람들이 정체가 분명히 들어났는데, 이 사람들은 영지주의적 가르침을 가르친 사람들입니다. 영지주의 자들의 표어중 하나가 “부활은 이미 일어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활이 이미 일어났다고 하는 배후에는 이런 사상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인간 속에 갇혀 있는 신적인 영의 불티가 “지식(영적지식)”의 활동 가운데서 해방이 되어 천상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이미 일어났기에 부활은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들은 무엇입니까? 거짓 가르침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적인 죽음과 또 그가 부활하셨고, 지금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다시 오실 때 모든 사람을 죽음에서 부활시킨다고 하는 이 명백한 진리를 부인하는 사탄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자들과 말도 섞지 말고, 이런 가르침을 배격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된 일꾼은 이렇게 거짓 가르침은 배격하고 진리 가운데 바르게 서있어야 하고 사람들을 진리로 가르쳐야 합니다.
2. 하나님께 인정된 일꾼이 되기 위해서 해야할 것이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입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분별하다라고 하는 헬라어는 “오르쏘토메인"인데 이것은 두개의 단어가 합성된 것입니다. 템네인 “자르다"는 단어와 호르도스 “똑 바르게 straight”의 합성어입니다. 이것이 일반 헬라어에서 사용된 용법을 보면 길이라는 말과 연관되어 사용했는데 짤라서 곧은 길을 내다.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것이 말하는 바는 석공이 돌을 자르는 것을 말하는 것이고, 농부가 밭고랑을 반듯하게 만드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클리어하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으면, 거짓 가르침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암덩이가 퍼지게 하여 심각하게 위기에 빠지게 하지만, 석공이 돌을 잘라 건축물을 세우듯 교회가 든든하게 서고, 농부가 밭고랑을 갈아 수확을 많게 하고, 길을 반듯하게 만들어 어그러지 지지 않고 교통이 원활하고 물류가 활발하게 하여 번성하게 하는 것처럼 교회가 복되게 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분명하게 가르치게 될 때 교회는 든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가진자가 하나님께 인정된 일꾼입니다.
하나님의 인정된 일꾼은 어떤 사람입니까? 가르침 뿐 아니라 삶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라고 한 다음에 나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15절 말씀에서 계속되는데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한글 번역은 좀 아쉬운데요,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는 표현이 영어는 “부지런히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번역한 것도 있고, “최선을 다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인정된 이라는 말은 시험하여 진짜라는 것이 증명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금속을 불에 단련하여 불순물이 제거되어 진짜라는 것이 검증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불에 단련되어 신실한 하나님의 종으로 서야 합니다. 고난이라는 시험, 인내라는 시험, 세상 유혹이라는 시험에서 이기고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늘 점검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을 받은 자니라"
고린도전서 10:6-12“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된 일꾼이 되기 위하여 늘 자신을 진리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하나님께서 이 내 아들은 진짜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가지고 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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