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시키고 세우시는 하나님 (렘52: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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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시키고 세우시는 하나님 ()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1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열아홉째 해 다섯째 달 열째 날에 바벨론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13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과 고관들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14 사령관을 따르는 갈대아 사람의 모든 군대가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더라
15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백성 중 가난한 자와 성중에 남아 있는 백성과 바벨론 왕에게 항복한 자와 무리의 남은 자를 사로잡아 갔고
16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17 갈대아 사람은 또 여호와의 성전의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 여호와의 성전의 놋대야를 깨뜨려 그 놋을 바벨론으로 가져갔고
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부집게들과 주발들과 숟가락들과 섬길 때에 쓰는 모든 놋그릇을 다 가져갔고
19 사령관은 잔들과 화로들과 주발들과 솥들과 촛대들과 숟가락들과 바리들 곧 금으로 만든 물건의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의 은을 가져갔더라
20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든 두 기둥과 한 바다와 그 받침 아래에 있는 열두 놋 소 곧 이 모든 기구의 놋 무게는 헤아릴 수 없었더라
21 그 기둥은 한 기둥의 높이가 십팔 규빗이요 그 둘레는 십이 규빗이며 그 속이 비었고 그 두께는 네 손가락 두께이며
22 기둥 위에 놋머리가 있어 그 높이가 다섯 규빗이요 머리 사면으로 돌아가며 꾸민 망사와 석류가 다 놋이며 또 다른 기둥에도 이런 모든 것과 석류가 있었더라
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아흔여섯 개요 그 기둥에 둘린 그물 위에 있는 석류는 도합이 백 개이었더라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립나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립나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서론

본문은 예레미야서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통해 그것을 예언하신 하나님이 이것을 성취하셨고 그래서 비참한 모습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보여주며 회복의 말씀을 이루실 것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합니다. 하나님은 파괴시키는 하나님이자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파괴시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세우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예레미야서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주신 말씀 속에서 밝히셨습니다.
()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 추구하는 것은 다 파괴시키시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님도 좋아한다는 착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해 살아가면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있어야지 하나님께 영광돌리수 있다는 명분으로 부유함, 명예, 안정감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역사를 통해 그런 것들이 우리를 얼마나 부패하게 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였는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성경말씀에도 하나님은 우리와 생각이 다름을 말씀하셨습니다.
()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본문을 통해 우리가 추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파괴시키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어서 우리가 주의해서 돌아보고 적용하지 않는다면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게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 보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악한 것들 것 파괴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마음으로 새워 주실 것입니다.

1. 파괴시키는 것

1) 화려함을 추구하는 마음

13절: 성전이 불사름 당함
17-23절 성전 두 놋기둥과 받침, 놋대야, 놋그릇, 금과 은으로 만든 물건을 빼앗김
하나님은 비록 성전이라 하더라도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실 만한 모습이 없다면 단호하게 파괴시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집중하기가 쉽습니다.
얼마나 모이느냐, 얼마나 큰 규모냐, 얼마나 세련되게 보이느냐…
어떤 것이든 그것을 하나님을 위한 명분이 있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관심에서 떠나있다면 하나님은 그 모든 화려함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종종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위한 형식만 있으면 영광도 같이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이가봇”을 기억하십니까? 엘리 시대에 언약궤만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도 함께 있어 승리할 것이라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고 전쟁에서 지고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었으며 언약궤를 빼앗기자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고 말하며 엘리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자신의 아들에게 붙여준 이름입니다.
그에 반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하나님은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다윗이 오늘 본문에서 파괴된 이 성전을 성전을 짓기 위해 엄청난 예물을 준비하고 솔로몬에게 주면서 고백한 말이 있습니다.
() “16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 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받으시는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으로 즐거이 드리는 것입니다.

2) 교만함

어제 본문에서 시드기야 왕은 비참하게 눈이 뽑히고 놋사슬에 결박당하여 평생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고관들역시 처형되었다고 말씀합니다.
()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그들은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뜻은 관심이 없었습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섬겼던 대제사장, 부제사장, 성전 문지기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군 지휘관, 왕의 내시, 성안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삶은 아닙니다. 그런 섬김, 그런 위치가 하나님의 주신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교만해지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저도 목사라는 타이틀이, 나이와 경험이 점점 저를 얼마나 교만하게 하는지를 보며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을 세운 자임을 알았기에 하나님 앞에 낮아질 수 있는 자였습니다. 언약궤가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엉덩이가 보일 정도로 뛰자 미갈은 왕의 체통이 없다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하나님이 가장 높은 분이기에 이보다 더 낮아져 스스로 천하게 보여도 상관없다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3) 잘못된 안정감

13절: 성전 뿐만 아니라 왕궁, 집까지 불살라짐
14절: 성벽이 허물어짐
27절: 땅을 빼앗겨 본국에서 떠남
우리는 안정감으로 부름받은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기 위해 모험하는 삶으로 부름받았습니다.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육체의 욕심은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영적 야성을 잃어 버리게 합니다. 그토록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도 전쟁의 날에 왕궁에 있다가 밧세바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미혹되고 악한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잘못된 안정감에 쉽게 변질될 수 있는 연약한 자입니다.

2. 세우시는 것

1) 가난한 마음

() “가난한 백성은 남겨 두어 포도원을 관리하는 자와 농부가 되게 하였더라”
그 땅에 남아 관리하는 자는 정말 가난한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절박함 속에 진정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2) 은혜의 마음

31-34절 여호야긴 왕에게 베풀어진 바벨론 왕 에윌므로닥의 은혜
감옥에서 풀려나고 친절하게 말하고 왕의 앞에서 먹고 날마다 쓸 것을 종신토록 공급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받는 은혜가 이와 같은 모습 아닙니까? 예수님도 세상의 불의한 자도 너희를 돕는데 하물며 하나님이겠느냐가 질문하셨습니다.
()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좋은 것-성령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을 바라는 자,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이 우리에게도 세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하나님은 보이는 성전을 허물고 영원한 임재를 위해 우리가 성전이 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결국 허물어지고 땅에서의 것들 것 세우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 않습니까? 겉모습이 아무리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명분이 있더라도 우리가 화려함을 추구하고, 교만해지고, 잘못된 안정감을 가진다면 하나님은 파괴시킬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모두 자신들의 성을 쌓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초라해 보여도 우리 마음을 성전삼고 거하신다면 그것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로 가득차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세우실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 은혜의 마음으로 늘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며 하나님의 성전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04 주의 말씀 듣고서
무료급식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복음이 전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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