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싸우시는 하나님 (슥9:1-8)

스가랴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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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저에게는 정말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저의 초심이 변질되지는 않을까? 저의 신앙이 변질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입니다. 정말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 같았던 사람들도, 많은 도전을 주었던 사역자들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연약함을 잘 알고 있고 때로는 믿음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성도님들은 열심히 해보았는데도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던 경험이 있습니까? 열심히 해도 변화가더딘 것 같을 때 그리고 그것이 계속 반복될 때 우리는 지치고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사실 탈진이라는 경험은 열심히 해보는 것을 시도조차 않은 사람은 모르는 것입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하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이 행복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크게 다가왔을 때는 어떤 도전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 계속되는 반대와 갈등을 경험하게 될 때, 실수와 실패들을 경험하게 될 때 우리는 자신감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보다는 내 자신의 연약함들에 집중하게 되고 만만치 않은 현실이 점점 더 크게 느껴지게 됩니다. 신앙은 믿음의 갈등을 거쳐야 하는 치열한 영적전쟁이 있는 삶입니다. 그러한 갈등들을 마주치기가 부담스럽고 점점 지쳐질 때 우리는 영적 싸움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적절히 타협해 버리는 신앙으로 변질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부터 스가랴서의 하반부로 들어갑니다. 스가랴서는 전체를 1-8장과 9-14장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8장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8가지 환상 그리고 금식에 대한 질문과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주고 성전을 건축하도록 격려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을 얻어 드디어 제2성전 건축을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약 4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만 건축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많아지고 적들은 금방 물러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적들의 공격은 여전했고 나라가 없는 궁핍한 상태가 지속되자 다시금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신앙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정말 하나님이 약속한 그런 회복의 시대는 오는 것일까?”
그럴 때 하나님은 -14장의 하반부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 스가랴서의 뒷 부분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들입니다. 적들의 계속되는 공격에도,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 속에서도, 너무도 약한 것 같은 자신들의 모습 속에서도 인내하며 붙들 말씀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메시야되신 예수님에 대해 부분적으로 예언한 선지서들은 많이 있지만 스가랴서 만큼 구체적이며 다양하게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는 선지서는 없습니다.
그 중 9-11장은 예수님의 초림에 관한 예언입니다. 메시야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것이며 그 메시야는 어떤 일을 하실지에 대한 예언입니다. 12-14장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예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재림하신 예수님과 함께 마침내 다스리게 될 영원한 나라에 관한 예언입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본문에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메시야가 예언되고 있습니다. 사실 피조물인 마귀는 창조주 하나님의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 뜨려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최후의 발악인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한 자인 것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길을 가시다가 여러 어려움들을 만날 때 이 영적 싸움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속이는 자입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연약함에 집중하게 하여 우리가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이 싸움은 하나님이 승리케 하시는 싸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확신입니다. 이 확신을 위해 약속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예언으로 약속한 메시야의 모습을 바라봅시다. 이 메시야의 모습은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이 싸우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영적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원수와 같았던 주위 나라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예언들입니다. 아람, 두로와 시돈,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우시며 엄정한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이방인의 남은 자들이 구원받을 것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안전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려면 3중적인 성취를 예언한 구절이 많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한가지 예언이 3가지 모습으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먼저 역사적으로 성취되고, 예수님의 초림을 통해 성취되며,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재림을 통해 종말론적으로 성취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 이방인에 대한 심판도 먼저 역사적으로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근원적인 가장 큰 적인 죄의 권세에 대한 심판이 예수님의 초림에 의해 성취되었습니다. 또한 이 예언은 다시 오실 주님에 의해 하나님 나라 속에서 완전하게 성취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예언의 말씀은 그 날을 꿈꾸는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에게도 주어진 말씀입니다. 우리도 싸워야 할 수많은 현실의 문제들이 있을 때, 재림하실 주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통해 반드시 승리할 그 날, 완전히 승리케 될 그 날이 있음을 믿으며 오늘의 현실도 승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엇을 위해 싸우시는 지를 본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싸우십니다(1)

() “여호와의 말씀이 하드락 땅에 내리며 다메섹에 머물리니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봄이니라”
하드락 땅과 다메섹은 아람의 도시들입니다. 이 곳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리며 머물 것이라고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번역이 생략된 히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마사’라는 단어인데 ‘무거운 짐’이라는 뜻입니다. 개역한글에는 '경고'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무겁고 엄중한 말씀이 선포되었고 그곳에서 성취되기까지 머물러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은 성취되기 위해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전부 이루기까지 멈추지 않고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람 땅에도 이스라엘처럼 심판의 말씀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땅들도 하나님의 소유이며 소중한 백성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들도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머문다’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에 사용된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그 뒤에 나온 문장을 볼 때 더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드락 땅과 다메섹에 머문 이유가 그 땅의 사람들와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예배자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 임하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예언이 드러남을 알려주는 정말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의 구함을 멸시치 않고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놀랍고 엄중한 말씀을 주시며 이 말씀이 반드시 성취하실 것임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자는 영적 승리의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리 자체가 영적 싸움의 자리입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환경을 바라볼 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과 엄중한 말씀을 바라볼지의 싸움이 일어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이루시기까지 쉬지 않으십니다. 그 말씀을 대적하는 모든 것들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반드시 이루어 내실 것입니다.
() “여호와의 진노는 그의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돌이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끝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우리가 예배할 때 대적은 멸하게 되고 말씀은 성취되는 놀라운 승리의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할 때 이 땅의 교회를 포함한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영광을 같이 보게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영광을 우러러보는 예배를 드립시다. 그럴 때 엄중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며 이 땅에 이루어지기까지 싸우시는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십니다(2-7)

인간이 죄를 지을 때 마귀는 그것을 올무로 우리에게 권세를 잡고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 스스로이 죄를 정복하고 이길 수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은 인간안의 이 죄의 권세를 무너뜨리기 위해 싸우십니다.성경에서 죄의 속성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려는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주위의 적들을 하나 하나 심판하실 때 그 죄의 속성들을 드러내시며 무너뜨리심을 보여줍니다.
1) 두로와 시돈을 향해서는 지혜를 무너뜨린다고 말합니다.
() “그 접경한 하맛에도 임하겠고 두로와 시돈에도 임하리니 그들이 매우 지혜로움이니라”
두로와 시돈의 지혜는 잠언이 말하는 지혜와 다른 것입니다. 기술적인 재능, 성공을 위해 인간을 이용하기까지하는 철저히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두로와 시돈은 해상 무역도시로 무역을 통한 막대한 부를 소유하였는데 이 이익을 위해 노예 무역까지 손을 대었습니다.() 특별히 에스겔서에는 이러한 두로의 악한 지혜에 대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워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과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네 무역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말미암아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6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하였으니”
인간의 죄성은 지혜를 이익의 추구에만 모든 관심을 가지게 만듭니다. 이것은 결국 나 외의 다른 자들의 인격의 말살까지 가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는 이론과 논리, 이익을 추구하는 지혜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가로막는 이런 악한 지혜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울 것입니다.
()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5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2) 3-4절에서는 두로와 시돈의 부요함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3 두로는 자기를 위하여 요새를 건축하며 은을 티끌 같이, 금을 거리의 진흙 같이 쌓았도다 4 주께서 그를 정복하시며 그의 권세를 바다에 쳐넣으시리니 그가 불에 삼켜질지라”
두로는 그 단어 자체가 “바위”라는 뜻으로 지정학적으로 사방이 바다로 둘러 싸인 요새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략에 시달려온 두로는 사방이 바다로 둘러 싸여 있는 곳에 높고 튼튼한 성벽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 성벽은 어떠한 강대국도 멸망시키기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4절앞에 '보라'는 히브리어 감탄사가 원래 있습니다. 도저히 점령되지 않을 것 같은 그 두로의 권세와 부요함이 바다에 쳐 넣어 지다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알렉산더 대왕은 두로의 육지 지역을 먼저 점령한 뒤 폐기물로 길을 만들어내어 결국 이 두로를 완전히 멸망시켰습니다.
‘주께서 정복하시며’라는 말의 원래 의미는 ‘소유권을 박탈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유함을 자신의 것인양 자랑한다면 하나님은 그 소유권을 박탈해 버릴 것입니다. 인간의 죄성은 자신의 부요함을 추구하고 결국 이 부를 지키고 보호하기 위한 자신만의 요새를 건축하게 됩니다. 이 부요함은 인간에게 그 자체가 삶의 목적이자 추구가 되기에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성공과 부요함만을 달려가며 그것을 지키는데 온 관심이 있어 자신의 성벽만을 쌓는 이 죄성을 위해 싸울 것입니다.
3) 5-6절에서는 블레셋의 멸망을 말하면서 그들의 교만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하나님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 교만의 죄성도 끊어지도록 싸울 것입니다.
4) 7절 상반절에는 블레셋의 우상을 무너뜨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가증한 것’은 우상을 말하며, ‘그의 입의 피’는 피 있는 제물을 먹는 의식을 말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하나님말고 나의 욕망을 채워줄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우상을 제거하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제거하시겠다’고 말은 하나님께서 정결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말고 의지하는 우상들이 있다면 예수그리스도가 주인되시도록 하나님은 하나하나 제거하실 것입니다. 지금껏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제거된다는 것은 분명히 갈등이 있고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결케 되는 작업이 있어야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열방 가운데 사용하시는 사명자로 빚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안에 지워지지 않고 계속 영향을 미치는 죄의 권세가 있습니까? 죄의 권세보다 우리 하나님이 더 강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죄와의 싸움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을 가려고 할수록 이 갈등은 더 커져갈 것이고 이 싸움은 분명히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 모든 죄의 권세를 무력화 시켰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남은 싸움은 우리를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 가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끔 이끄시고 믿음의 길로 이끄시기 위한 싸움입니다. 죄로 인해 넘어져서 더 이상 믿음의 길을 갈 자격이 없는 것 같은 내 모습이 느껴질 때, 어차피 또 넘어질텐데 이렇게 몸부림치는게 의미가 있을까 느껴질 때 죄의 권세와 싸워 멸하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죄가 주는 사망의 권세가 나를 고통스럽게 할 때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죄의 권세를 위해 우리 하나님께서 싸워주셨기 때문에 죄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주님을 위한 믿음의 싸움을 하는 우리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말씀처럼 우리가 죄를 깨달을수록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경험하는 시간들로 하나님은 이끄실 것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오늘 다시 예수님을 붙들며 이 육체의 남은 죄성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집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십니다(8)

7절 하반절에 하나님은 남은 블레셋 사람들도 함께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7b)
() “...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
블레셋의 남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와 같이 된다고 말합니다. 지도자는 1000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여기서는 지도자 밑에 있는 집단 공동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 것입니다. 에그론이라는 블레셋 도시도 ‘여부스족’처럼 이스라엘 백성으로 동화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스가랴를 포함한 많은 선지서에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남은 자들도 함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미 구약에서 예수님의 몸된 교회는 혈통이 아닌 믿음으로 구성된 전 세계적인 공동체가 될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교회를 “내 집”이라고 불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적군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 “내가 내 집을 둘러 진을 쳐서 적군을 막아 거기 왕래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 포학한 자가 다시는 그 지경으로 지나가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눈으로 친히 봄이니라”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 대왕은 아람, 두로와 시돈, 블레셋까지 함락시킨 뒤 이스라엘을 지날 때 꿈의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도 꿈의 지시를 받고 예복을 입고 그를 맞으러 나갑니다. 그런데 그 제사장의 모습이 알렉산더 대왕의 꿈의 모습과 일치해서 알렉산더 대왕은 예루살렘을 침탈하지 않고 하나님께 예물을 바치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비단 역사에서의 성취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교회에도 분명히 고난과 공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집을 분명히 지키셨고 앞으로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향한 비방과 위기감이 아무리 거셀지라도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집과 그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실 것임을 끝까지 믿는 남은 자 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결론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높이고 바라볼 때 적들은 떠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깊이 새겨질 것입니다. 넘어지려고 할 때마다 포기하고 싶어질 때마다 붙들 엄중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죄의 권세에서 자유케 된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 남아 있는 죄와의 싸움은 하나님을 더 알고 은혜를 경험하고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 위해 허락하신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계속해서 해 나가면서 우리안의 숨은 죄성들을 드러내어 정결케 되시는 성도님들이 되기기 바랍니다. 원수가 아무리 강한 것처럼 속이며 다가올 지라도 하나님의 집인 우리 교회를 주님이 붙들고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늘 지켜 보고 계심을 기억하시며 힘 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약해 보여도 우리 교회는 열방의 비방이 되는 것이 아니라 열방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택하신 세대, 거룩한 나라,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내가 강한 것이 아니라 강하신 하나님이 싸우시기 때문에 가능한 줄 믿습니다. 바울처럼 가장 약한 그 때에 하나님의 강함을 더욱 더 찬양하며 의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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