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잔치같은 새로운 신앙 (막2:18-22)

마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166 views
Notes
Transcript

서론

TV에서 예능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장난같이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배우자와 결혼하시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면 “무슨 큰일날 소리를 하냐고” 답합니다. 불편할수도 있으니 성도님들에게는 이 질문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저의 삶은 많은 것들이 새로워 졌습니다. 가장 깊고 중요한 것까지 의논할 상대가 생겼고, 서로의 연약함을 품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생겼고, 인생의 새로운 기쁨인 자녀도 생겼습니다. 물론 싱글 때의 자유로운 시간과, 내가 편한 방식을 간섭받지 않고 누리는 등의 좋은 점도 있지만 저는 이 결혼 이후 새롭게 얻게된 풍성한 기쁨이 훨씬 큽니다. 결혼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결혼생활은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은 서로를 위해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닙니다.
* 밥은 몇끼를 해줄 것인지, 월급은 얼만큼 서로 공유할 것인지, 서로를 위해 시간을 얼만큼 내 줄 것인지, 자녀 양육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 이런 것을 계산해서 계약하는 것을 결혼생활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의 본질도 하나남 앞에서 무엇을 얼만큼 해야하는 행위의 약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사랑의 관계가 신앙생활의 본질입니다. 이 본질을 잊어버리게 될 때 우리는 신앙생활의 기쁨을 상실하고 의무감만 남고 말 것입니다.
결혼생활을 하다보면 내외적으로 힘겹고 어려운 시간들이 분명히 있지만 그럼에도 결혼과 가정을 이루는 생활의 중심을 이끄는 것은 기쁨과 행복입니다. 아니 오히려 여러 어려움들을 이 가정에서의 인격적인 교제에서 나오는 힘으로 이겨나갈 때가 많습니다. 역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분명 힘겹고 어려운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럼에도 신앙생활의 중심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에서 오는 기쁨과 행복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침례요한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향해 “정상적인 신앙생활이라면 금식을 해야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합니다. 그들은 외적인 행동이 신앙생활의 핵심을 이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원래 유대인들은 공식적으로 속죄일에만 금식을 했습니다. () 바벨론 포로시대 이후에는 민족적인 스픔을 기억하며 일년에 네 번씩 금식을 지키다가(, ) 예수님 시대에는 모세가 율법을 받으려 올라갔던날과 내려왔던 날을 기념하여 월요일과 목요일에 매주 두 번씩 금식을 지켰습니다. 구약에서는 슬픔과 회개의 표시였지만 신약시대에는 경건과 자기 헌신의 표현이 된 것입니다. 특히 당시 침례요한의 제자들은 침례 투옥된 상태에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는데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동참하지 않은 것이 이상했고 이에 바리새인들과 함께 동조해서 예수님께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금식이라는 한가지 신앙활동이 아닌 신앙생활의 근원적인 동기에 대해서 되물으십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금식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지만 신앙생활의 핵심은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도래했기 때문에 새로운 신앙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잔치와 같은 기쁨을 주는 새로운 신앙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기쁨의 교제를 누리지 못하는 우리를 건져주셔서 다시 하나님과의 기쯤의 교제를 회복시켜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의 노력으로 교제의 자격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변화시켜 주시는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킬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어두움이 있든지, 어떤 연약함이 있던지 주님은 새롭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오는 진정한 기쁨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오늘 주님은 이런 새로운 차원의 기쁨의 신앙생활을 잔치에 비유합니다. 혼인잔치, 새 옷, 새 포도주의 비유는 잔치의 이미지를 강력하게 드러냅니다. 특별히 혼인잔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기쁜 날 중 하나로 혼인식을 전후해서는 율법이 명하는 금식과 같은 의무를 면제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호인잔치와 같이 비유한 적도 있습니다.
()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살펴보며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된 새로운 신앙생활은 어떤것인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그것은 잔치 같은 신앙생활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생활의 본질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이 생기기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잔치의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신앙생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 새로운 교제: 의식이 아닌 사귐

우리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새로운 교제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예배는 주님을 감동시켜야만 하는 의식이 아닌 주님께 초대된 친밀한 자로서 사귐을 누리는 잔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앙생활의 핵심을 드러내기 위해 자신을 혼인 잔치의 주인공인 신랑임을 말씀하십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 혼인잔치에는 금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신앙생활의 핵심은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없는 금식은 의미가 없습니다. 주님과의 관계 없는 예배, 훈련, 친교, 봉사, 전도는 모두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 속에 있을 때 이 모든 것은 새로운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주님은 그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니다.
요한사도는 예수님과의 친밀한 사귐에서 오는 이 기쁨을 너무나 잘 알았기에 꼭 소개하고 싶어했습니다.
()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 20절에서 예수님은 금식의때가 있음을 추가로 말씀하십니다.
()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신랑을 빼앗길 날”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때를 말씀합니다. 정말로 금식할 때는 예수님과 함께하지 못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위기는 예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오랜 문제나, 긴급한 필요 때문에 금식을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정말로 금식해야 할 때는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무너져서 그 교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할 때입니다. 하나님이 진정 원하시는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
()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의무감으로 지키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를 누리는 잔치 같은 신앙생활을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랍니다.

2. 새로운 신분: 죄인이 아닌 의인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꾸미고 치장하고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옛사람의 자랑, 육신의 자랑이 전혀 의미가 없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존재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주님의 잔치를 누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두 번째 생베 조각의 비유에 담겨있습니다.
()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생베 족각으로 헌 옷을 기우면 세탁할 때 생베가 물을 흡수하여 급격히 줄어들면서 낡은 옷을 헤어지게 됩니다. 옷은 그 사람의 상태와 신분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사용되곤 합니다. “낡은 옷”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려하는 옛 모습을 말합니다. “생베 조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의 새로운 모습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옛 모습에서 종교적인 행위만 추가되는 조금 기우는 정도의 전환이 아닙니다. 신분이 완전히 바뀌는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때 율법으로 정죄받던 죄인에서 은혜로 용서받은 의인이 됩니다. 새 사람이 되었기에 새로운 통치의 법으로 살아갑니다.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새로운 신분을 누리기 위해선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다가 정죄감에 빠지는 살아가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우리를 새롭게 해주신 새로운 신분을 누리며 변화되어 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생활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괴로움에서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잔치 같은 신앙생활이 될 것입니다.

3. 새로운 능력: 내 힘이 아닌 성령의 힘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능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연약한 우리의 힘이 아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능력이 있습니다. 불가능한 목표를 위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을 따라가면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잔치같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새포도주와 새 부대의 비유를 통해 자신이 새포도자와 같음을 말씀하며 자신을 받을 새부대가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포도주는 아직 발효가 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발효가 시작되면 새 가죽부대는 신축성이 있어 늘어날 수 있지만 낡은 가죽 부대는 견딜 수 없어 터지고 만다.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예수님의 복음은 바리새인의 낡은 전통으로는 담을 수 없습니다.주님의 복음은 옛 것을 찢어버립니다. 우리의 낡은 습관에 매여서는 이 능력을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모든 것을 찢어 버리십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우리 주님은 사람과의 관계의 장애물도 모두 찢어버리십니다.
()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15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16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것이 바로 진정한 성령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할수 있도록, 사람들과 진정한 교제를 할수 있도록 나를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성령과 함께하는 자는 성령이 주시는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기에 잔치와 같은 신앙생활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틀을 깨뜨리고 내려놓을 때 성령님의 간섭하심으로 우리 삶에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내 힘으로 살려고 할수록 우리는 좌절과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지만 성령님과 함께할 때 우리 삶은 폭발적인 팽창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로 경험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나를 변화시켜 주님을 닮은 용서와 사랑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할 것입니다.

결론

복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로 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분입니다.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변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예수님으로 인해 잔치 같은 새로운 신앙생활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라는 종교활동과 의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친밀함을 쌓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신분이 되었습니다. 용서받고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의롭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의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새로운 능력을 얻었습니다. 연약한 나로부터 끌어낸 힘이 아닌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폭발적인 힘입니다. 무엇보다 이 힘은 사랑할 수 있는 힘, 용서할 수 힘을 주어, 열매맺는 신앙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부담과 염려와 스트레스 속에 지친 성도님들이 있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잔치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 삶에 모든 것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응대하는 삶에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우리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실 것입니다. 주님께 믿음으로 내어드리는 만큼 하나님은 우리 삶을 새롭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