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살아있는 신앙 (슥7.1-14)

스가랴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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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요즘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란 것이 유행입니다. 강상현실은 어떤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을 컴퓨터로 만들어서,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이 마치 실제 주변 상황·환경과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 주는 기술입니다. 증강현실은 현실의 이미지나 배경에 3차원 가상 이미지를 겹쳐서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입니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실제처럼 느끼기 원하기 때문에 나온 기술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들이 현실과 가상을 구별하지 못하게 하여 실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신앙도 삶이며 생활입니다. 그것은 환상으로만 그쳐서도 안되고 이론으로만 이해해서도 안되는 현실 한 가운데 경험하고 체험하며 살아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6장에서 하나님은 8가지 환상을 통해 회복에 대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성전 재건에 대한 비전과 함께 장차 올 메시야를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포로시대에 소망이 없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이러한 비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비전과 환상이 아무리 주어져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대로 삶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7장-8장은 스가랴 선지자에게 환상이 주어진지로부터 2년이 경과한 후에 주신 메시지입니다. 그것은 벧엘 사람들의 금식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이어집니다.
()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이르되 내가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 오월 중에 울며 근신하리이까 하매”
5월의 금식은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b.c. 586년 5월 7일을 기념하기 위해 한달 동안 금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금식은 포로 생활 중에도 지속되었고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온 후에도 계속해서 지켜졌습니다. 5절에는 7월 금식도 나오는데 이것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대 총독 그달랴가 암살당한 사건을 상기하기 위한 금식이었습니다. 벧엘 사람들이 와서 질문한 이유는 성전이 재건되고 있는데도 계속해서 금식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타당한 질문인데 하나님은 마치 화가 나신듯이 대답하고 계십니다.
벧엘 사람들의 질문 속엔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에 대한 갈망은 없고 “여러 해 동안 행한 대로”의 신앙의 태도가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인 신앙보다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신앙을 향해 죽은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형식적인 신앙에 대해 지적하시며 살아있는 신앙이 되기를 촉구하십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겐 새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영적인 생명으로 영원한 생명을 약속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들을 향해 하나님은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의 사데 교회도 바로 그러한 모습이 있었습니다.
()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우리도 살아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죽은 신앙인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살아있는 신앙은 어떤 것인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을 위한 신앙(5)

벧엘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5절에 나옵니다.
() “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다섯째 달과 일곱째 달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나를 위하여'를 두번이나 말하며 강조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움이 느껴지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식은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금식이 아니었습니다. 포로 신세의 비참함을 표현, 자신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금식이었습니다. 이 마저도 습관적인 금식이 되며 하나님을 향한 인식은 조금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잘 알 수 있는 것이 금식하지 않는 때의 그들의 삶입니다.
() “너희가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먹고 너희를 위하여 마시는 것이 아니냐”
이스라엘 백성의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은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금식 또한 그 욕망을 더 추구하기 위한 구실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잘먹고 잘마시고 평안하기 위해 하는 금식은 누구를 위한 금식입니까?
살아있는 신앙을 가진 자는 주님을 위해 먹고 마시는 자입니다.
()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난 자의 삶은 예수가 주인이 되어 따라가는 삶입니다. 내가 주인되서 살아가는 삶은 살아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진정한 살아있는 신앙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기 때문에 나의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위한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2.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9-10)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신앙의 모습은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입니다.
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의 신앙이 삶으로 드러나기를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 “9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우리의 신앙이 살아있는 신앙이 되기 위해선 우리 삶에 이러한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① 진실한 재판: 공의를 추구하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② 서로 인애와 긍휼을 베풂
③ 과부, 고아, 나그네,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않음
④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않음: 악한 계획을 세움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변화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삶의 부유함과 평강함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과 떨어져 영적인 체험만 추구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새 생명, 주님이 이 끄시는 새 삶은 우리의 일상의 자리에서 변화로 나타나길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생명의 영향력이 흘러가길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의 삶의 원리대로 살아가면서 생명력있게 확장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마땅한 삶이 없기에 복음의 생명력도 전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삶에서 의로움을 추구하고 사랑과 긍휼을 베풀 때 이 신앙은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살아있는 신앙이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앙(11-12)

살아있는 신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앙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깨닫고 이해한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따르기 위해서 듣는 것입니다. 왜 생명을 주는 복음을 들었는데도 살아있는 신앙이 되지 못할까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거하신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새 생명을 받았어도 영적으로 죽은 자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무시하는 것이 반복되면 어느새 우리의 마음은 굳어져 버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어려워지게 되어 버립니다. 급기야는 죄에 대해서도 둔감해지며 죄아 타협하며 적당한 신앙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짜 문제는 경건의 외적인 모양이 아닌 바로 여기에 있음을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 “11 그들이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리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그의 영으로 옛 선지자들을 통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진노가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나왔도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져가는 모습이 나오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듣기를 싫어하여 등을 돌립니다. 더 나아가면 듣지 안히하려고 귀를 막습니다. 더 나아가면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듣지 않게 됩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신앙 생활은 주님의 음성를 듣고 따라가는 삶입니다.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우리가 복음을 깨닫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은 자가 누리는 영생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본질이기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함을 받을 때에만 참된 기쁨과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도님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경험하는 영생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은 존귀한 자의 인생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옛 사람의 습관을 좇아 간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 우리 개인의 위기는 신앙의 세속화에 따른 결과입니다. 종교 생활을 하는 겉모습은 달라진게 없는 것 같지만 주님과의 교제가 빠져있다면 죽어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열심만 남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이라고 일침하셨던 주님의 경고가 우리에게도 들려지기를 소망합니다.
()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살아있는 신앙은 하나님을 위한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입니다. 살아있는 신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앙입니다. 지금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지는 않습니까? 거기서부터 살아있는 신앙이 회복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소망이 있습니다. 더 이상 마음을 금강석 같이 굳데 하지 맙시다. 더 이상 귀를 막지 맙시다. 더 이상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맙시다. 주님께 나아오라는 그 음성앞에 순종함으로 나아갑시다. 주님게 우리 인생을 맡깁시다. 십자가의 핏값으로 주신 이 생명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닌 주님의 것임을 고백합시다. 주님이 우리 인생을 가장 잘 아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행복인 영생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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