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저녁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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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주해

11
Διὸ μνημονεύετε
ὅτι ποτὲ ὑμεῖς τὰ ἔθνη
ἐν σαρκί,
οἱ λεγόμενοι ἀκροβυστία
ὑπὸ τῆς λεγομένης περιτομῆς
ἐν σαρκὶ χειροποιήτου,
그러므로 기억하라(현능명2복)
전에는 너희가 그 이방이었다(명사 문장)
육체안에서[육체로]
그 할례받지 않음이라고 불리는 자(현수분복주남)
그 할례 받은 자(현능분단소녀)로부터
손으로 살에
: 그러므로 기억하라 전에는 너희가 육체안에서 그 이방인이었고 손으로 살에 그 할례 받은 자로부터 할례받지 않음이라고 불리는 자였다.
- 육체와 손으로 살에 가 구조분성상 같은 위치다. 결국 육체에 할례가 없는 자들이라 불렸다. 그리고 그것은 이방인이라는 뜻이었다.
12
ὅτι
ἦτε τῷ καιρῷ ἐκείνῳ χωρὶς Χριστοῦ,
ἀπηλλοτριωμένοι
τῆς πολιτείας τοῦ Ἰσραὴλ
καὶ ξένοι τῶν διαθηκῶν
τῆς ἐπαγγελίας,
ἐλπίδα μὴ ἔχοντες
καὶ ἄθεοι ἐν τῷ κόσμῳ.
그것은
그때 너희는 그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미능직2복) – 상태의 미완
제외자들(완수분복주남)
그 이스라엘의 시민권의
또한 그 언약의 이방인
그 약속의,
소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현능분복주남)
그리고 그 세상안에서 하나님 없는 자들
: (그것은) 그 때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그 이스라엘의 시민권의 제외자들이었으며 그 약속의 그 언약의 이방인이며 소망이 없고 그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자들이었다.
- 신택스분석은 이렇지만, 주동사가 있다(미완)이다.
- 이것은 그리스도밖에 있다가 메인이며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고 약속의 언약도 없으며 하나님없이 세상에서 사는 자와 동일하다는 뜻이다.
- 즉, 그리스도 밖에 있다 외 나머지는 그에 대한 설명이다.
13
νυνὶ δὲ ἐν Χριστῷ Ἰησοῦ ὑμεῖς
οἵ ποτε ὄντες μακρὰν ἐγενήθητε ἐγγὺς
ἐν τῷ αἵματι τοῦ Χριστοῦ.
그러나 이제 너희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전에 멀리 있던 자들이(현능분복주남) 가까이 되었다(에오수직2복)
그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 그러나 이제 너희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가까이 되었다.
- 그리스도 예수로 시작해서 그리스도로 끝난다. 이것은 우리의 모든 것이 오직 그리스도로 인함임을 말해주기 위해서다.
- 특별히 ‘너희의’라고 첫 그리스도 예수 앞에 씀으로 ‘우리 주’가 되심을 강조한다.
- 일종의 평형법이다.
14
Αὐτὸς γάρ ἐστιν ἡ εἰρήνη ἡμῶν,
ὁ ποιήσας τὰ ἀμφότερα ἓν
καὶ τὸ μεσότοιχον τοῦ φραγμοῦ λύσας,
τὴν ἔχθραν ἐν τῇ σαρκὶ αὐτοῦ,
그러므로 그는!(강조) 너희의 그 평화다(현능직3단)
그 둘을 하나로 만드셨던 분(에오능분단주남)
그 나누는 장벽을 무너뜨리셨다(에오능분단주남),
그의 그 육체 안에서 그 원수됨을
:그러므로 그는! 너희의 그 평화다 그의 그 육체 안에서 그 원수된 그 나누는 장벽을 무너뜨리셔서 그 둘을 하나로 만드셨던 분이며,
- 계속 이어진다
15
τὸν νόμον τῶν ἐντολῶνἐν δόγμασιν καταργήσας,
ἵνα
τοὺς δύο κτίσῃ
ἐν αὐτῷ
εἰς ἕνα
καινὸν ἄνθρωπον
ποιῶν εἰρήνην
법령인 그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다(에오능분단주남),
이것은
그 둘을 창조하시어(에오능가3단)
그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람을
평화를 만들기(현능분단주남) 위함이며
: 법령인 그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것은 그 둘을 그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사람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만들기 위함이며
- 계속 이어진다.
16
καὶ ἀποκαταλλάξῃ
τοὺς ἀμφοτέρους
ἐν ἑνὶ σώματι
τῷ θεῷ
διὰ τοῦ σταυροῦ,
ἀποκτείνας τὴν ἔχθραν ἐν αὐτῷ.
또한 화해시키기 위해서다(에오능가3단)
그 둘을
하나의 몸으로
그 하나님께
그 십자가를 통하여
그 안에서 그 원수됨을 죽이기 위해서다(에오능분단주남)
: 또한 그 둘을 그 십자가를 통하여 그 하나님께 한몸으로 화해시키기 위해서이며 그 안에서 그 원수됨을 죽이기 위해서다.
- 여기서 계속 나오는 ‘그 둘’이란 이방인과 유대인(할례의 여부)이다. 전에는 그 둘이 완전히 나누어져 있었고 원수취급했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하나되었다.
- 그리고 그 하나됨의 목적과 결과는 하나님과의 화해이며 원수됨의 말살이다. 완전히 하나되어 하나님과도 하나되는 것이다.
17
καὶ ἐλθὼν
εὐηγγελίσατο εἰρήνην ὑμῖν τοῖς μακρὰν
καὶ εἰρήνην τοῖς ἐγγύς·
또한 그는 오시어(에오능분단주님)
멀리있는 너희에게 평화를 선포하셨고[복음을 전했고](에오중직3단)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도 평화를
: 또한 그는 오시어 멀리 있는 너희와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셨다.
- 선포하다란 말은 복음을 전하다와 같은 단어다.
18
ὅτι
δι᾽ αὐτοῦ ἔχομεν τὴν προσαγωγὴν
οἱ ἀμφότεροι ἐν ἑνὶ πνεύματι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이것은
그를 통해 우리가 접근권을 가진다(현능직1복)
둘다 하나의 성령안에서 그 아버지께로
: 이것은 그를 통해 우리 둘다가 하나의 성령 안에서 그 아버지께로 우리가 접근권을 가진다.
-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인해 손할례든 무할례든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 이것은 할례의 여부로 싸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19
ἄρα οὖν οὐκέτι ἐστὲ
ξένοι καὶ πάροικοι
ἀλλὰ ἐστὲ συμπολῖται τῶν ἁγίων
καὶ οἰκεῖοι τοῦ θεοῦ,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아니다(현능직2복)
외인과 나그네가
오히려 성도와 동포들이다(현능직2복)
그리고 그 하나님의 가족
: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외인과 나그네가 아니라 오히려 성도와 동포이며 그 하나님의 가족이다.
- 현재형이 쓰인다. 계속 그렇다는 뜻이다.
- 나그네는 시민권을 갖지 못한 자를 말한다. 이제 완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란 뜻이다.
20
ἐποικοδομηθέντες ἐπὶ τῷ θεμελίῳ
τῶν ἀποστόλων καὶ προφητῶν,
ὄντος ἀκρογωνιαίου αὐτοῦ Χριστοῦ Ἰησοῦ,
너희는 그 기초 위에 세워졌다(에오수분복주남)
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바로 그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통잇돌이 되신다(현능분단소남)
: 너희는 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그 기초 위에 세워졌고 바로 그리스도 예수께서 모퉁잇돌이 되신다
- 기초와 모통잇돌이 하나의 이미지를 이룬다.
-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활동과 예언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것이다.
- 앞에 세워졌다는 에오리스트로 끝난 것이다. 우리는 벌써 세워진 자들이다.
- 하지만 모퉁잇돌되신다는 현재 분사다 계속해서 그렇다는 뜻이다.
- 우리는 이미 세워졌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우리의 기반이 되신다.
21
ἐν ᾧ
πᾶσα οἰκοδομὴ
συναρμολογουμένη αὔξει
εἰς ναὸν ἅγιον
ἐν κυρίῳ,
그분 안에서A
모든 건물마다 B
결합되어(현수분단주여) 자라간다(현능직 3단)C
거룩한 성전으로B’
주 안에서A’
: 그분 안에서 모든 건물마다 결합되어 주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간다.
- 그분과 주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역시 주님으로 쌓인 절이다.
- 평형법을 이루고 있다.
- 그분안에서 결합되어 자라갈 때 우리는 그저 건물이 아니라 성전이 된다.
- 성전은 바로 주님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 동시에 성전은 우리가 결합, 하나되어 이루는 것이다.
22
ἐν ᾧ
καὶ ὑμεῖς συνοικοδομεῖσθε
εἰς κατοικητήριον τοῦ θεοῦ
ἐν πνεύματι.
그분 안에서
우리도 함께 지어진다(현수직2복)
그 하나님의 거하는 곳으로
성령안에서
: 그분 안에서 그 하나님의 거주장소로 성령 안에서 우리도 함께 지어진다.
- 역시 일종의 평형법을 띄고 있다.
-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감싸고 있으며
- 우리는 하나님의 거주장소, 즉 성전의 다른 말로 지어지고 있다.
- 함께 지어진다.
2차 작성
설교 구조
서론 : 생각과 마음이 다른 우리들, 여러 환경 요소
본론
하나됨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요소
그리스도로 인한 하나됨
하나됨을 위한 전제 조건 :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임을 인정하라 -> 우리의 중재자인 그리스도 예수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성전인가? : 성전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됨
결론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를 존중할 준비가 된 것-> 그를 우리의 화해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되어 함께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어 나가자
참고 작성
설교
설교
서론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받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도 구제할 수 없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길임을 고백하고 믿을 때,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개인의 신앙고백이라는 점입니다. 아내가 믿는다고 남편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가 믿는다고 자식이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히 하나님 앞에서 1:1로 만나 그 영광스런 생명의 빛앞에서 자신을 적나라하게 비추고, 그 모습을 보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덮어져 옷입는 것이 구원입니다. 거기에 인간적인 다른 것이 개입될 여지는 없습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됨입니다. 구원은 개개인이 받는데, 구원받은 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모입니다. 혼자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며, 우리의 하나됨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본론
장소가 어디든, 초대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됨이었습니다. 초대교회였기에 더욱 중요했습니다. 왜냐면 지금 우리처럼 한 민족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각종 외국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민족이며, 같은 지역에서 평생을 산 우리가 이렇게 아웅다웅하며 사는데, 초대교회는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이전에 구원이 은혜에 의해,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하나됨의 첫 번째 태도가 나옵니다.
첫째, 나를 내려놓는 것이 하나됨의 길입니다.
당시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할례였습니다. 원래 할례는 눈에 보이는 표지는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나타내는 표지입니다. 왜냐면 모든 사람 앞에서 나체가 될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 내부, 예루살렘같은 곳은 상관없는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그 시대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로 할례가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당시 로마군단의 정규병은 로마 시민만 될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조병은 다양한 속주에서 뽑았습니다. 문제는 로마군단은 아침마다 구보로 훈련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육군에 가면 소위말해 알통구보라고 겨울에도 윗옷을 벗고 뛰는 것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로마때도 이 문화가 있었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윗옷만 벗는게 아니라 아예 나체가 되어 뛰었습니다. 그리고 뛰는 코스는 군대 막사가 아니라 도시 한바퀴였습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알통구보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왔다고 합니다. 특히 여자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이 문화가 로마를 더욱 퇴폐적이고 성적으로 타락하게 만드는데 한목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문제는 보조병들은 속주출신이기에, 유대인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미국군을 전역하면 시민권을 주는 것처럼 로마도 그런 정책이 있었고, 이 때문에 유대인들도 로마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런 알통구보중에 할례가 드러날 수 밖에 없었고, 할례는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런 조롱을 받으며 할례를 유지해왔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온갖 수치와 모멸을 감수해가며 지키는, 그야말로 자신의 정체성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다시피 교회의 하나됨에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바로 할례였습니다. 만약 우리라면 할례를 주장하지 않을까요. 젊은 시절부터 온갖 수치를 받아오며, 유대이인이라는 단하나의 이유, 다른 말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의 증표로서 지켜왔는데, 이제와서 할례가 증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할례는 상관없이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평생동안 지켜온 신념이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해서 버려야 했던 것은 바로 할례였습니다. 할례가 아닌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과 거리가 멀고,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었던 자들이란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놀리던 유대인들 덕분에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11절에서 1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즉, 이방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들에게 빚진 자란 것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지금까지 유대인들을 속주의 출신 2등급 인간으로 취급했는데, 사실 그것이 반대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평생 깔보았던 사람들이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둘다 정말 인정하기 힘들고 싫은 사실들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죄악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씻으셨습니다. 서로를 싫어하고 무시하고, 내 생각, 내말이 최고인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못박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못박음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나를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나를 내려놓는다는 것은 내가 살아왔던 방식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하나하나 대어보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나누어주신 그리스도의 살과 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그 피와 살을 받아 먹고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초대교회보다 나은 상황입니다. 우리가 다른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그래서 서로 깔보고 멸시할만한 거리가 있습니까? 우리는 한 민족이고 평생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초대교회보다 나은 상황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초대교회보다 더욱 하나되어 있습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에는 누구의 생각이 나오고 있습니까. 가장 안타까운 상황중 하나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서로 다른 말을 할 때입니다. 그럴때가 있지 않습니까. 목적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함께 신앙생활하며 믿음을 다독이자입니다. 예를 들면 성경을 좀더 많이 읽자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더욱 많이 읽을 수 있을까를 놓고 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한다. 저 사람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서로 말이 안통한다고 느낍니다.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사이가 멀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13절에 보시다시피 바로 멀어진 우리를 가까이하기 위해 오신 분이십니다. 함께 말씀을 읽고 더욱 하나님앞에 나아가기 위한 일이 서로 멀어지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그러니 나를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를 내려놓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이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십시오.
다른 말로 예수님이 항상 우리 중간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십시오. 이것이 나를 내려놓는 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말한 예수님께서 우리의 화평이라는 말입니다. 나와 너가 1:1로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20절의 이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나 싸울 때, 예수님께서 그중에 계십니다. 우리의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결혼할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서약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가정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지어진 가정이란 뜻입니다. 성도에게 1:1의 만남은 없습니다. 항상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신 것은 바로 평안입니다. 17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 사이에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 우리는 우리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명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모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살다보면 마음에 맞고 쉽고 빨리 친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오래 지내도 그리 친해지지 않고 서먹서먹합니다. 이것은 현실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권면하지는 않습니다.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8의 이 말씀조차 단서로 할 수 있거든이 달려있습니다. 이 말은 너가 할 수 있는 정도 내에서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와 너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한명 한명이 그리스도 예수를 사이에 두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듯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사이에 두고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20절에 나오듯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통잇돌이 되셨다는 말의 뜻입니다. 집이 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 다르듯이,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반이 되는 모통잇돌은 똑같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의 구세주께서 우리의 기초가 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다른 말로 결합되어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성전이 되어가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어 갑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동포이자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19절에 나오는 권속이라는 단어의 뜻이 가족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족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떨어져 있어도 가족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더욱 보고싶고 그리워지는 것이 가족입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그런 분이십니까. 실상 우리는 몇주 교회에 나오지 않으면 이제 교회가기 힘들어집니다. 말씀을 안보기 시작하면 성경을 펴보는 것은 교회에서 설교들을 때가 되기 쉬운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가족이라 칭하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족이라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정말로 우리의 아버지라 생각하십니까. 말로만 하늘 아버지가 아니라 정말 안보고 그립고 보고싶고, 그래서 찾아갈 때는 명절날 자식이나 부모님 뵈러 가듯이 뭐라도 가져갈게 없나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그런 생각에서 나온 헌금입니까.
정말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보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말씀이 아니라 자식의 목소리가 듣고 싶듯이 하나님의 말씀이 듣고 싶고 보고 싶어 교회에 찾아오고 예배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이라는 증거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나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가족의 축복이 있기를 원합니다.
결론
우리는 이 시간 하나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저는 처음 시작할 때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과 1:1의 만남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틀린 표현입니다. 우리는 결코 1:1의 만남을 가지지 않습니다. 항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사이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나와 너 사이에도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우리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예수님을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보고 싶고 듣고 싶어서 교회에 찾아와 예배드립니까. 아버지를 생각하며 가족을 생각하며 드릴 것을 챙기는, 사랑과 정성이 담긴 헌금입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가족으로 생각하기 원합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 다릅니다. 모습도 다르고 생각도 다르고 사는 환경도 다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른 우리가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나아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니 그 모습 그대로 나아갑시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사랑의 띠로 연결됩시다. 바로 그리스도를 가족으로 받아들입시다.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항상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합시다. 생각합시다. 그리하여 성령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 아름다운 하나님의 가정을 만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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