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7.수요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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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탄생, 하나님의 약속과 실행, 아브라함의 온전한 순종

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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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해석

וַֽיהוָ֛ה פָּקַ֥ד אֶת־שָׂרָ֖ה 1/4
כַּאֲשֶׁ֣ר אָמָ֑ר 1/2
וַיַּ֧עַשׂ יְהוָ֛ה לְשָׂרָ֖ה 1/4
כַּאֲשֶׁ֥ר דִּבֵּֽר׃1/2
( WTT)
그리고 여호와께서 사라를 방문하셨다(칼 완)1/4
그가 이야기하신(칼 완)대로1/2
그리고 여호와께서 사라에게 행하셨다(칼 바익톨)1/4
그가 말씀하신(칼 완) 대로1/2
: 그후 여호와께서 그가 이야기하신대로 사라를 방문하셨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사라에게 행하셨다.
- 이야기하신대로, 말씀하신대로가 똑같이 반복, 방문과 행동이 같음. 약속하시고 실행하심.
- 문장의 처음에 ‘여호와’란 이름이 나와서 하나님께서 행동하셨음을 매우 강조한다.
2 וַתַּהַר֩ וַתֵּ֙לֶד שָׂרָ֧ה לְאַבְרָהָ֛ם בֵּ֖ן 1/4
לִזְקֻנָ֑יו 1/2
לַמּוֹעֵ֕ד 1/4
אֲשֶׁר־דִּבֶּ֥ר אֹת֖וֹ 1/8
אֱלֹהִֽים׃1/2
( WTT)
사라가 임신했고(칼 바익톨)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칼 바익톨)1/4
그의 늙음에1/2
바로 그때 였다1/4
그에게 말씀하신(칼 완)1/8
하나님께서1/2
: 그가(아브라함) 늙었음에도 사라가 임신했고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았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바로 그때 였다.
-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함
- 그의 늙음에 가 황제로 아브라함만 늙었다기 보다 둘다 늙어 그럴 능력이 전혀 없음을 나타낸다.
3 וַיִּקְרָ֙א אַבְרָהָ֜ם אֶֽת־שֶׁם־בְּנ֧וֹ הַנּֽוֹלַד־ל֛וֹ אֲשֶׁר־יָלְדָה־לּ֥וֹ שָׂרָ֖ה 1/4
יִצְחָֽק׃1/2
( WTT)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가 낳았고(칼 완) 그에게서 태어난(니팔 완료) 그의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칼 바익톨)1/4
이삭이라고1/2
: 그리고 아브라함은 사라가 낳았고 그에게서 태어난 그의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불렀다.
- 이삭이 매우 강조된다.
-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음을 강조한다.
4 וַיָּ֤מָל אַבְרָהָם֙ אֶת־יִצְחָ֣ק בְּנ֔וֹ 1/4
בֶּן־שְׁמֹנַ֖ת 1/8
יָמִ֑ים1/2
כַּאֲשֶׁ֛ר צִוָּ֥ה אֹת֖וֹ 1/4
אֱלֹהִֽים׃1/2
( WTT)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다(칼 바익톨)1/4
8 사이에1/8
일1/2
그에게 명령하신(칼 완) 대로1/4
하나님께서1/2
: 그리고 아브라함이 8일된 그의 아들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였다.
- 8일이 따로 강세를 가진 것은 아브라함이 순종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다
- 역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다 행했다는 의미다.
- 하나님께서는 완전하게 약속을 성취하셨고,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한다.
5 וְאַבְרָהָ֖ם 1/4
בֶּן־מְאַ֣ת שָׁנָ֑ה 1/2
בְּהִוָּ֣לֶד ל֔וֹ 1/4
אֵ֖ת 1/8
יִצְחָ֥ק בְּנֽוֹ׃1/2
( WTT)
그리고 아브라함은1/4
100세였다1/2
그에게 태어났을 때(니팔 부정사)1/4
을1/8
그의 아들 이삭1/2
: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났을 때 100살이었다.
- 다시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 그만큼 이삭의 탄생은 기적이었다.
6 וַתֹּ֣אמֶר שָׂרָ֔ה 1/4
צְחֹ֕ק 1/8
עָ֥שָׂה לִ֖י 1/16
אֱלֹהִ֑ים 1/2
כָּל־הַשֹּׁמֵ֖עַ 1/4
יִֽצְחַק־לִֽי׃1/2
( WTT)
사라가 이야기했다(칼 바익톨)1/4
웃음을1/8
나에게 만드셨다(칼 완)1/16
하나님께서1/2
모든 듣는 자가(칼 분사)1/4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칼 미완)1/2
: 사라가 이야기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웃음을 만드셨다. 모든 듣는 자들이 나와 함께 웃을 것이다.”
- 늙은 자의 웃음, 기쁨은 너무나 벅찰 것이다.
- 모든 듣는 자, 아브라함에게 속한 자 뿐이 아니라, 그와 관계한 모든 자에게 웃음, 기쁨이 된 탄생이다.
- 하나님의 언약과 실행, 아브라함의 완전한 순종속에서 나온 가장 큰 기쁨이다.
7 וַתֹּ֗אמֶר מִ֤י מִלֵּל֙ לְאַבְרָהָ֔ם 1/4
הֵינִ֥יקָה בָנִ֖ים 1/8
שָׂרָ֑ה 1/2
כִּֽי־יָלַ֥דְתִּי בֵ֖ן 1/4
לִזְקֻנָֽיו׃1/2
( WTT)
그녀가 말했다. “누가 아브라함에게 공포할 수 있을까요?1/4
아들들을 빨게한다고[젖먹인다고](히필 완)1/8
사라가1/2
그러나 (정말로) 내가 아들을 낳았다(칼 완)1/4
그의 노년에1/2
: 그녀가 말했다. “누가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들을 젖먹인다고 공포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정말로 내가 그의 노년에 아들을 낳았다.”
- 사라의 믿기지 않는 기쁨
- 젖먹이는 기쁨
- 아들을 양육하는 기쁨이 충만히 나온 7절이다.
1차 작성
우습게도, 하나님의 약속때는 아브라함이 이야기하고 사라는 침묵했다. 성취때는 사라가 이야기하고 아브라함이 침묵한다.
또한 약속때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면, 지금아브라함은 온전히 순종한다.
1절의 파카드 동사는 의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방문하다와 돌보다의 뉘앙스를 가지도록 했다. 그런데 이 파카드동사는 남편이 아내를 방문하다로 쓰여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나타낼때도 쓰인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방문하셨다는 것은 이삭의 탄생이 하나님의 주권하에서 벌어진 거룩한 탄생임을 뜻한다. 이것은 바로 전에 아말렉의 위험이 있었기에 더욱 강력한 메시지이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신 그 때, 은총이 사라를 감싸 안았음을 뜻한다.
또한 평형법이 쓰여 더욱 강화한다.
2절 원문에는 사라가 임신했고 낳았다라고 연속해서 쓰고 있다. 10개월의 시간은 생략되었다. 그만큼 순적하게 일어났다는 뜻이다.
본문은 아브라함의 반응을 생략하고 있다. 분명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도착해서 25년동안 기다린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나선 이유도 분명 후손에 대한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문은 아브라함의 반응을 전혀 담고 있지 않다. 아브라함은 묵묵히 자신이 할일,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고 있을 뿐이다.
왜 5절에서 아브라함의 나이를 이야기하고 있을까? 때문이다.
창세기 17:17 NKRV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섬세하게 역사하신다.
그리고 이 역사는 웃음으로 돌아왔다. 처음에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비웃음, 의심어린 웃음에서 나왔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비웃음을 환희의 웃음으로 바꾸어주셨다.
2차 작성
서론
이삭의 탄생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이시간 이삭의 탄생을 함께 살펴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나누기를 소원합니다.
본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삭의 탄생은 하나님의 성취하심으로 가득하다.
1절의 돌보시다라는 동사는 방문하다. 돌보다(돌아보다) 계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 동사가 방문하다라는 뜻을 가진 것은 에 말한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지킨 것이다.
이 동사가 부부사이에 쓰일 경우, 남편이 아내를 방문하다로 부부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사라에게 임했다.
이것은 사라의 출산이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 안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나은 시기역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시기다.
5절에 아브라함의 100세는 의 아브라함의 반응을 막기 위해서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전에 자식이 있었으면 어땟을가.
의 약속을 잘보면, 아브라함에게 복을 주는 것도 있지만, 후손이 나라를 이루는 것도 있다.
아브라함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선뜻 목적지도 모를 여정에 나설수 있었을까?
과연 그 아들은 이삭처럼 자랄 수 있었을까>
오히려 롯과 같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배하시고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입장에서는 인고의 세월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축복된 자녀를 주셨다.
적용 :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약속을 주셨다. 바로 성경이 약속의 책이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이다.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함께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흔들린다면, 그만큼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다.
우리의 고난의 대부분의 원인은 우리의 눈이다. 다른 말로 우리 생각과 우리 기준으로 행동하다가 벌어지는 일이다. 심지어 병에 걸려 하나님을 원망할 때, 그 원망도, 내 생각에는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먹고 잘 살고 싶은데, 그것을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있는가. 지금까지 아브라함을 걸어왔던 길을 보면, 알수 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지 못했기에 더욱 고생스러운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우리가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한다고 세상의 모든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의지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분명하다. 그 풍파의 세월속에서 약속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함께 할 것이다. 그런 자가 되길.
그렇다면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오늘의 아브라함의 행동이 그 답이다.
2. 묵묵히 그리고 순순히 순종하자.
아브라함의 노년에 얻은 아들이다.
가나안에 오고 25년만에 얻은 아들이다.
얼마나 기쁘겠는가.
불임인 부부가 수년간의 시술과 노력끝에 자식을 임신하고 무사히 출산하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런데 아브라함의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순종한다.
아브라함이 한 첫번째 순종은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은 것이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아들이 태어나면 이름하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4절에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한다.
이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며 명령했던 그대로 행한다. 본문에서 사라의 반응은 나온다. 말도 나온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반응도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는 기쁘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모든 기쁨을 표현하기보다 그는 행동으로 순종하고 있다.
바로 행동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다.
왜냐면 이삭이란 아이의 탄생이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기때문이다.
이것은 2절과 5절 7절에 나타난 노년, 100세, 노경이란 표현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2절에서 노년은 1차적으로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2절을 통사론을 고려해서 해석해보면, 쉽게 말해 2절에 나타난 악센트를 고려해서 해석해보면, 아브라함과 사라 둘다 늙었다는 뜻이 된다.
1절의 돌보다란 동사로 사라에게 방문하시고, 그 방문은 거룩한 임재였다. 동시에 아이를 예고하는 방문이었다.
그 모든 것을 안 아브라함은 기쁨을 감추고, 온전히 순종한다. 다시말하지만, 행동으로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적용 : 우리가 해야할 순종이 이런 것이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도 순종이다.
우리에게 하신 모든 역사를 간증하는 것도 순종이다.
하지만 가장 큰 순종은 모든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 기쁨을 하나님께 돌리ㄱ는 가장 큰 방법이다.
우리는 좋은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표현하는가. 예배를 드린다든지, 헌금을 한다든지, 여러 방법들이 있다.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이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처럼 우리의 삶을 그리스도께로 트는 것이다. 그래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이다.
이 순종의 삶, 감사하며 섬기는 삶이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표시, 기도, 예배, 헌금은 마치 하나님께 받았으니 드린다는 댓가가 될 뿐이다.
순종의 삶을 살자. 아브라함과 같은 섬기는 종의 모습을 가지자.
3. 순종하는 자에게 복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든 과정이 순적하게 하셨다. 2절에 사라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다. 원어에는 임신하다와 낳았다가 연속으로 나온다. 분명 중간에 있을 10개월은 사라져있다.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평안하게 임신의 과정이 지나갔다는 것이다.
먼저 하갈과 이스마엘이 사라진다. 이삭의
그러나 이스마엘은 낳기 전부터 죽을뻔했다. 하갈이 사라를 무시하고 조롱하다가 내쫒겨 광야에서 죽을뻔했다. 그래서 이름이 이스마엘이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대비되는 잉태와 출생의 과정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음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하셨다. 그렇다면 믿는 자에게는 어떤 복으로 임하겠는가.
그것은 이후의 본문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먼저 하갈과 이스마엘이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이삭이 태어났다. 진정한 적자가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이스마엘은 장자다. 당시 중동의 풍습상 이스마엘은 장자가 맞다. 야곱의 자식들의 순서를 살펴보면 된다.
본부인이라 할 수 있는 라헬이 낳은 아들보다 다른 종들이 낳은 아들들이 먼저 나온다. 축복이야 하나님께서 그에 맞게 내려주셨지만, 순서는 그렇다.
본부인의 종의 아들이라고 장자가 아닌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임신하지 못한 부인이 자신의 몸종을 주어 그 몸에서 난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나만 해도 씨받이라는 개념이 있지 않는가. 이슬람은 이런 사실을 들어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고 이스마엘의 후손인 자신들이 진정한 약속의 자녀란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하갈과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이 아니란 사실을 아브라함은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쫓아낼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이스마엘에게 죄를 범하게 하셨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사라를 통해 진정한 언약의 자손이 누구인지 상기시키신다.
그리고 12절에서 임하셔서 진정한 자손이 누구인지 하나님께서 직접 말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이스마엘에게도 은혜를 베푸시겠다는 약속을 하신다.
이를 통해 아브라함은 안심하고 이스마엘을 내밸수 있었다.
이제 후계구도가 안정된 것이다. 아브라함의 죄가 벗겨졌다.
그리고 아비멜렉과 언약을 하게 하신다. 그 언약의 결과로 이제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정말로 정착할 수 있게 되었다. 땅을 정해 농사를 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나은 처지로 다닐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삭도 가나안에서 좀더 나은 상태로 살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삭이 믿음의 자손으로 자라나게 하셨다. 이것은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할 때 이삭의 태도에서 드러난다.
만약 조카 롯이었다면, 이삭처럼 가만히 있었을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아브라함에게 복주셨다.
먼저 주위 환경이 그 언약의 자손을 키움에 전혀 문제가 없게 하셨다.
그리고 언약의 자손, 이삭 자체가 언약의 자손답게 커가게 하셨다. 물론 이삭역시 완전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아브라함에 비하면 평탄하기 그지 없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다.
결론
오늘 말씀속에서 1. 하나님께서는약속을 성취하셨다. 2. 그런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했다. 바로 자신의 기쁨을 순종의 삶으로 보여드리고 올려드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내려주셨다. 가장먼저, 언약의 자손을 키울 주위 환경에 복을 주셨다. 그리고 언약의 자손, 이삭 자체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로 자라게 하셨다. 그리고 이삭의 삶을 평탄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믿고 따른다면 그에 대한 약속을 믿지 않고 불순종한다면 그에 대한 약속을 성취할 것이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따르게 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의 순종은 삶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삶이다. 솔로몬은 일천마리의 번제로 축복받았다. 그러나 그의 순종은 한번으로 끝났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대를 이어 복을 받았다. 우리가 어떤 순종을 할 것인가. 사람이 보기에는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더욱 멋저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말없는 순종의 삶이다.
순종의 삶으로 하나과 함께 나아가자.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이다.
설교
서론
이삭의 탄생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이시간 이삭의 탄생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아브라함의 반응을 살펴보며,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본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본분에서 나온 이삭의 탄생은 하나님의 성취하심으로 가득합니다.
1절의 돌보시다라는 동사는 방문하다. 돌보다(돌아보다) 계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 동사가 방문하다라는 뜻을 가진 것은 에 말한대로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을 지킨 것을 나타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단어를 쓴 것입니다. 더욱이 이 동사가 부부사이에 쓰이면 부부간의 관계를 가리키는 말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거룩함이 사라에게 임했다는 뜻입니다. 마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것처럼 돌보시다라는 단어속에는 하나님의 거룩함이 늙어서 기력을 상실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사라의 출산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이었습니다. 이삭을 나은 시기역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때입니다. 또한 5절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는 :17에서 한 아브라함의 반응, 백세된 사람이 어떻게 아이를 낳겠는가라는 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아브라함이 이전에 자식이 있었으면 그 아들은 어떤 모습이었겠습니까. 또한 아브라함은 정말 12장에서 선뜻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땅으로 나설수 있었을까요. 오히려 그 아들이 롯과 같은 사상, 풍족한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으면 다행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그 후 이삭을 주셨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입장에서는 인고의 세월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가장 축복된 자녀를 주셨습니다.
적용 :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도 수많은 약속을 주셨습니다. 바로 성경이 약속의 책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고 있습니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안에 거하며 하나님과 함께 약속의 성취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들린다면, 그만큼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고난의 대부분의 원인은 우리의 눈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 생각과 우리 기준으로 행동하다가 벌어지는 일입니다. 심지어 병에 걸려 하나님을 원망할 때, 그 원망도, 내 생각에는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먹고 잘 살고 싶은데, 그것을 들어주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주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얼마나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 아브라함을 걸어왔던 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지 못했기에 더욱 고생스러운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온전히 신뢰하고 의지한다고 세상의 모든 고난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와 의지하지 않는 자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서론
의지하는 자에게는 의지하는 자에게 주어진 말씀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불순종하고 의심하는 자에게는 의심하는 자를 향한 말씀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속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의 아브라함의 행동이 그에 대한 답이 될 것입니다.
둘째, 묵묵히 순종하자. 다른 말로 순종의 삶의 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에 얻은 아들입니다. 가나안에 오고 25년만에 얻은 아들입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불임인 부부가 수년간의 시술과 노력끝에 자식을 임신하고 무사히 출산하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아브라함의 반응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이 한 첫번째 순종은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은 것입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아들이 태어나면 이름하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4절에 난지 8일만에 할례를 행합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하며 명령했던 그대로 행한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쁘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그 모든 기쁨을 표현하기보다 그는 행동으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바로 행동으로, 삶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이삭이란 아이의 탄생이 온전히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2절과 5절 7절에 나타난 노년, 100세, 노경이란 표현에서도 나타납니다. 특히 2절에서 노년은 1차적으로 아브라함이 늙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쉽게 말해 2절에 나타난 악센트를 고려해서 해석해보면, 아브라함과 사라 둘다 늙었다는 뜻이 됩니다. 이삭의 탄생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기쁨을 감추고, 온전히 순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행동으로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순종이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는 것도 순종입니다. 우리에게 하신 모든 역사를 간증하는 것도 순종입니다. 감사의 예물을 드리는 것도 순종입니다.
하지만 가장 큰 순종은 모든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입니다.
바로 순종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 순종의 삶, 감사하며 섬기는 삶이 없다면, 우리가 드리는 감사의 표시, 기도, 예배, 헌금은 마치 하나님께 받은게 있으니 드린다는 교만의 표시가 될 뿐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남용했고, 그 결과 나라가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은 어떻습니까. 복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3번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과정이 순적하게 하셨습니다. 2절에 사라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았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원어에는 임신하다와 낳았다가 연속으로 나옵니다. 임신한 10개월은 사라져 있습니다.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평안하게 임신의 과정이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낳기 전부터 죽을뻔했습니다. 하갈이 사라를 무시하고 조롱하다가 내쫒겨 광야에서 죽을뻔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이스마엘입니다.
이삭의 탄생은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이시간 이삭의 탄생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아브라함의 반응을 살펴보며, 우리를 돌아보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이삭과 이스마엘의 대비되는 잉태와 출생의 과정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음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왜 3절과 4절에서 아브라함의 순종이 한창 나오다가 5절에서 아브라함이 100세라고 말을 할까요. 그것은 이삭의 탄생이 축복 그 자체임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성취하신 축복이며, 그의 아버지가 하나님께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는 축복까지 더해진, 말그대로 축복의 자녀임을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후의 본문들은 그 축복의 자녀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먼저 하갈과 이스마엘이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삭이 장자입니다. 하지만 당시 풍습상 이스마엘이 장자입니다. 야곱의 자식들의 순서를 살펴보십시오. 레아의 아들인 유다이후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과 레아의 여종인 실바의 아들들이 먼저 나오고 다시 레아의 아들 잇사갈, 스불론이 나옵니다. 그후에 라헬의 아들 요셉과 베냐민이 나옵니다. 본부인이라 할 수 있는 라헬이 낳은 아들보다 다른 종들이 낳은 아들들이 먼저 나옵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축복은 레아의 아들을이 다 나오고 빌하와 실바의 아들이 나오고 라헬의 아들이 나옵니다. 이것은 여종의 아들도 그 직위를 인정받았음을 뜻합니다. 임신하지 못한 부인이 자신의 몸종을 주어 그 몸에서 난 자식을 자기 자식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씨받이라는 개념이 있지 않습니까. 이슬람은 이런 사실을 들어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고 이스마엘의 후손인 자신들이 진정한 약속의 자녀란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이 언약의 자손이 아니란 사실을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련의 사건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스마엘이 사라지고 이삭이 장자로 올라오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후계구도가 안정되고 아브라함의 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생각대로 했던 죄가 사라집니다. 그 후에는 아비멜렉과 언약을 하게 하십니다. 그 언약의 결과로 드디어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정말로 정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땅을 정해 농사를 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보다 훨씬 나은 처지로 다닐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삭도 가나안에서 더 나은 상태로 살수 있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삭이 믿음의 자손으로 자라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22장에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 할 때 이삭의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만약 조카 롯이었다면, 이삭처럼 가만히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아브라함에게 복주셨습니다. 먼저 주위 환경이 그 언약의 자손을 키움에 전혀 문제가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자손, 이삭 자체가 언약의 자손답게 커가게 하셨습니다. 물론 이삭역시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생애는 아브라함에 비하면 평탄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받은 복입니다.
결론
본론
오늘 말씀속에서 첫째,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께 아브라함은 묵묵히 순종했음을 보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기쁨을 순종의 삶으로 보여드리고 올려드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순종의 삶을 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내려주셨습니다. 가장먼저, 언약의 자손을 키울 주위 환경에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의 자손, 이삭 자체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로 자라게 하셨습니다다. 또한 언약의 자손, 이삭의 삶을 평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믿고 따른다면 그에 대한 약속을 성취할 것입니다. 믿지 않고 불순종한다면 그에 대한 약속을 성취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따르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순종은 삶에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처럼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삶입니다. 솔로몬은 일천마리의 번제로 축복받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순종은 한번으로 끝났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후는 비참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대를 이어 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더욱 멋져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아브라함의 순종, 묵묵한 순종의 삶이다. 순종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립시다.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자의 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 복을 넘치도록 받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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