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thlife Sermons

2018.9.26.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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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해석

23 הַשֶּׁ֖מֶשׁ 1/4
יָצָ֣א עַל־הָאָ֑רֶץ 1/2
וְל֖וֹט 1/4
בָּ֥א צֹֽעֲרָה׃1/2
( WTT)
그 해가1/4
그 땅위로 올라왔다(칼 완)1/2
그리고 롯은1/4
소알로 들어왔다(칼 완)1/2
: 그 해가 그 땅위로 올라왔고 롯은 소알로 들어왔다
24 וַֽיהוָ֗ה הִמְטִ֧יר עַל־סְדֹ֛ם וְעַל־עֲמֹרָ֖ה 1/4
גָּפְרִ֣ית וָאֵ֑שׁ 1/2
מֵאֵ֥ת יְהוָ֖ה 1/4
מִן־הַשָּׁמָֽיִם׃1/2
( WTT)
그리고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 위에 비를 내리셨다(히필 완)1/4
불과 유황을1/2
여호와께로부터1/4
하늘로부터1/2
: 그리고 여호와께서 여호와께로부터, 하늘로부터 소돔과 고모라 위에 불과 유황의 비를 내리셨다[쏟아부으셨다](히필).
25 וַֽיַּהֲפֹךְ֙ אֶת־הֶעָרִ֣ים הָאֵ֔ל 1/4
וְאֵ֖ת 1/8
כָּל־הַכִּכָּ֑ר 1/2
וְאֵת֙ כָּל־יֹשְׁבֵ֣י הֶעָרִ֔ים 1/4
וְצֶ֖מַח 1/8
הָאֲדָמָֽה׃1/2
( WTT)
그가 이 도시를 엎으셨다(칼 바익톨)1/4
그리고 ~을1/8
모든 평원들1/2
그리고 그 도시에 살고 있는(칼 분사) (사람들)을1/4
그리고 싹(식물)을1/8
그 땅의1/2
: 그가 이 도시와 모든 평원들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땅의 싹[식물]을 엎으셨다.
- 사람들이라기 보단 그 도시의 ‘살고있음’이라고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26 וַתַּבֵּ֥ט אִשְׁתּ֖וֹ1/4
מֵאַחֲרָ֑יו1/2
וַתְּהִ֖י1/4
נְצִ֥יב מֶֽלַח׃1/2
( WTT)
그리고 그의 아내가 보았다(히필 바익톨) – LOOK의 의미
그의 뒤를1/2
그래서 되었다(칼 바익톨)1/4
소금 기둥이1/2
: 그때 그의 아내가 그의 뒤를 보았다. 그래서 소금기둥이 되었다.
- 칼 형식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다.
- 하지만 아비규환이다.
27 וַיַּשְׁכֵּ֥ם אַבְרָהָ֖ם 1/4
בַּבֹּ֑קֶר 1/2
אֶל־הַ֙מָּק֔וֹם 1/4
אֲשֶׁר־עָ֥מַד שָׁ֖ם 1/8
אֶת־פְּנֵ֥י יְהוָֽה׃1/2
( WTT)
그리고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났다(칼 바익톨)1/4 – 장면전환, 평안
그 아침에1/2
그 장소를 향해1/4
섰던(칼 완) 거기1/8
여호와앞에1/2
: 그리고 그 아침에 아브라함은 일찍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섰던 거기, 그 장소를 향해 (갔다).
- 매우 대조적
28 וַיַּשְׁקֵ֗ף עַל־פְּנֵ֤י סְדֹם֙ וַעֲמֹרָ֔ה 1/4
וְעַֽל־כָּל־פְּנֵ֖י 1/8
אֶ֣רֶץ הַכִּכָּ֑ר 1/2
וַיַּ֗רְא וְהִנֵּ֤ה עָלָה֙ קִיטֹ֣ר הָאָ֔רֶץ 1/4
כְּקִיטֹ֖ר 1/8
הַכִּבְשָֽׁן׃1/2
( WTT)
그리고 그는 소돔과 고모라 앞을 내려다 보았다(히필 바익톨)1/4 – LOOK의 의미
그리고 모든 앞을1/8
그 평원 땅/2
그리고 그가 보니(칼 완)(see, understand) 보라 연기[안개]가 그 땅에1/4
연기[안개]처럼1/8
그 옹기가마[화덕, 용광로]의1/2
: 그리고 그는 소돔과 고모라와 그 모든 평원 땅 앞을 내려다 보았고 그가 보니 보라 연기[안개]가 그 땅에 그 용광로[화로]의 연기처럼 올라왔다(칼 완)
– 롯의 아내와 너무나 대조된다. 롯의 아내를 뒤를 돌아보아야 했고, 소금기둥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 모든 것 위에서 내려다 보았다. 그는 마치 하나님같다. 모든 땅을 한번에 다 보고 있다.
연기는 임재의 상징이다.
29 וַיְהִ֗י בְּשַׁחֵ֤ת אֱלֹהִים֙ אֶת־עָרֵ֣י הַכִּכָּ֔ר 1/4
וַיִּזְכֹּ֥ר אֱלֹהִ֖ים 1/8
אֶת־אַבְרָהָ֑ם 1/2
וַיְשַׁלַּ֤ח אֶת־לוֹט֙ מִתּ֣וֹךְ הַהֲפֵכָ֔ה 1/4
בַּהֲפֹךְ֙ אֶת־הֶ֣עָרִ֔ים 1/8
אֲשֶׁר־יָשַׁ֥ב בָּהֵ֖ן 1/16
לֽוֹט׃1/2
( WTT)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평원의 도시들을 멸망시키실 때(피엘 부정사) 있었다(칼 바익톨)1/4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이름짓다](칼 바익톨)1/8
아브라함을1/2
그리고 롯을 뻗으셨다[구원하셨다](피엘 바익톨) 그 파괴의 한가운데서1/4
그 도시들을 엎으시는 중에[칼 부정사]1/8
살았던(칼 완)1/16
롯이1/2
: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평원의 도시들을 멸망시키실(피엘)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기억하심이 있었다. 그래서 롯이 살았던 그 도시들을 엎으시는 중에, 그 파괴의 한가운데서 롯을 뻗으셨다[구원하셨다]
- 여기서 살다는 야샤브로 완전히 눌러앉아서 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 하지만 9절에서 소돔인들은 가나르, 즉 잠시 머무는 나그네라고 롯을 평가한다.
- 이 차이는 엄청나다.
- 도시들을 엎으시는 중, 파괴의 한가운데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구원의 전능함을 나타낸다.
- 뻗다도 하나님의 손의 능력, 전능을 나타낸다.
1차작성
1차 작성
성경의 심판은 보통 밤에 일어났다. ( :24모세가 할례하지 않아 심판; 12:22, 29–31열째 재앙; 2 K. 19:35히스기야 왕때 앗수르 심판)
30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Revised Version. (n.d.). (electronic ed., 롬 11:29–33). South Korea.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아침에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다. 분명 하나님은 롯을 빠르게 소알로 이동시킬 수 있었을 것이지만, 롯의 걸음에 맞춰서 이동시켰다. 아브라함과 함께 일하기 위해서다.
24절과 25절에 주의 성호가 4번 반복된다. 특히 심판의 진행을 나타내는 24절에는 3번이나 반복된다. 이것은 심판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뜻하는 주요한 표지다.
18장과 19장에서 하나님은 땅위에서 활동하신다. 상수리나무 밑에서 쉬신다. 음식을 드신다. 아브라함과 대화하신다. 그의 천사들을 굳이 걸어서 마므레에서 소돔까지 가게 한다. 롯과 하룻밤을 보내게 하신다. 땅에서 활동하시던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 심판을 주관하신다. 그리고 땅에는 하나님과 대화하고 함께 소돔에 대해 고민했던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내려다보고 있다.
24절에 비내리다는 말은 성경 전체에서 17번 반복되었다. 창세기에는 3번나온다. :5에는 생명을 살리고 낳게 하는 비다. 두번째는 7:4에서 대홍수 심판의 비다. 셋째는 이 본문, 유황과 불의 비다. 우리에게 있을 비는 성령의 비가 아닌가? 첫째 창조와 둘째 창조(재림).
유황과 불이란 말은 불타는 유황, 즉, 불타면서 내리고 땅에 떨어져 폭발과 불을 일으키는 것이 비처럼 내렸다는 뜻이다.
25절의 엎으셨다는 표현은 지진의 가능성도 내포한다. 하늘에서는 불타는 유황, 즉 화약 같은 폭탄이 떨어지고, 땅은 지진이 일어나 모든 것을 엎으셨다는 의미다. 물론 지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상상도 하지 못할 엄청난 재앙을 표현한다.
그런데 재앙의 범위가 사람과 식물이다. 짐승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13장에서 롯이 매우 많은 가축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고 있다. 혹시 롯의 가축들은 그대로 남아있지 않을까? 하지만 25절에 모든 사람이란 표현은 사람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히브리어상 모든 살아있는 것이란 해석이 더욱 직역한 해석이다. 그렇다면 짐승도 같이 불타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식물이 심판에 포함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소돔 자체를 완전히 멸절시켜버렸다는 것을 뜻한다. 창조 때 식물은 세상의 기반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6절에서 롯의 아내가 뒤돌아본 것은 17절에서 나온 하나님을 명령을 완전히 무시한 것이다. 특별히 보다라는 표현이 영어로 look에 어울리는 표현이란 점을 생각하면 롯의 아내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도망치는 것보다 소돔과 고모라가 파괴되는 광경을 유심히 보고있던 것을 추정된다. 그 이유는 알수 없다. 구경거리여서인지, 소돔에 두고 온 것이 아까워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삶을 뒤돌아봤을지 알길이 없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서 유심히 봤던 것같다. 그리고 이것은 마치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행동과도 같다. 지금까지 롯은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한 적이 한번도 없다. 롯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임하신 것도 처음이다. 그런데, 들어가지 않으려는 천사들을 잡아 끌고, 탈출하라 할 때 주저하다 천사의 손에 잡아 끌려나온다. 또한 산으로 도망하라는 말씀을 거부하고 소알을 택한다. 삼손이 생각난다.
또한 이때 쓰인 히브리어가 완전히 같다. 뒤돌아보지 마라 라고 하고 뒤돌아봤다 라고 똑 같은 단어가 나온다.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했다.
여기서 기둥이라 번역된 단어는 보통 수비대나 총독으로 번역되는 단어다. 그 지역을 관할하는 자를 가리키는 단어다. 그래서 군인들과 연관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 (The noun is formed from the verb nāṣaḇ, “to set, station, erect,” and indicates something or someone that has been placed in position, formed.) 이 의미는 한 곳에 서있거나 정착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요세푸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그당시까지 롯의 아내가 변한 소금기둥이 서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지금도 이 소금기둥이 서있다.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기록은 고대 중동에서 널리 발견된다. 기원전2500-2200년 사이에 시리아의 에블라 지역에서 발견된 토판에도 소돔과 고모라의 기록이 발견될 정도다. 이 지역과 소돔은 약 700km이상 떨어져 있다.
왜 굳이 소금기둥으로 하셨을까. 소금은 변하지 않음에 상징이었다. 그래서 소금언약이란 표현이 있을 정도다. 하나님께서는 롯의 아내를 통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상기시키고,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다.
27절부터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그는 평안한 밤을 보내고 일찍 일어났다.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되었지만, 아브라함은 고원에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고, 아브라함은 뒤에서 그 일함을 지켜보고 있다. 롯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만약 롯이 산에 올라갔다면, 롯도 이런 관찰자가 되었을 것이다. 소알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대함을 체험하며 두렵지만 오히려 하나님께 나아갔을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는 하나님과 천사들이 소돔을 지켜보던 자리다. 이것은 정말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징이다.
옹기가마의 연기같이라는 표현은 연기가 너무 많아 기둥처럼 올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심판속에 아무도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걸 현대의 관점에서 따지자면 핵폭발이 일어날 때 생기는 버섯구름을 상상하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당시에 롯과 그 가족의 생사를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상황은 평온 그 자체다. 아브라함이 걱정한다는 뉘앙스도 없다. 일찍 일어난 것으로 보아 이후 있을 심판을 예상하고 나온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평안하다. 평안속의 아브라함과 아비규환 속의 롯은 이 본문의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29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했다는 표현에서 nicot는 아브라함이 롯을 생각한 때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한 때가 같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상당히 일리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시간도 이른 아침으로 비슷하다. 즉, 그 재앙이 소알까지 미치지 않도록 막으셨다는 뜻이다. 바로 그 시간에 말이다.
아브라함은 18장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한다. 50명에서 10명까지 내려간 그 담화속에서 하나님은 시종일관 도시를 구원할 것이라 말하신다. 그리고 의인이 없는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말한대로 행하신다. 롯 한명이라도 구해내신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했다. 하지만 구원의 실행은 우리를 통해 하신다.
2차 작성
서론
소돔과 고모라의 마지막.
소돔과 고모라의 실제성 - 시리아의 에블라지역 유적, 소돔과 고모라와 약 700km이상 떨어진 지역
그리고 이 다음 나오는 후일담과 함께 롯이 성경에서 사라짐.
구원의 역사 속에 아브라함과 롯
본론
1. 롯
롯의 선택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어찌보면 롯의 멸망
아브라함과 함께 나왔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이름이 바뀌었다.
롯은 그대로다.
롯은 애굽땅을 선택했다.(소돔)
여호와의 동산 과 애굽땅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이미지가 동시에 나온다.
히브리식 평형법. 겉은 여호와의 동산 속은 애굽땅
가장 대조적인 두 이미지를 통해 롯의 실상을 알림.
고향으로 귀환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
잠시 누린 애굽땅에서의 열락(사래를 판 값)
소돔을 선택
롯의 순종 -
천사들을 강제로 집으로 데려감
소돔인에게서 천사 보호하려 시도 -> 오히려 천사들에게 구원받음 : 하나님의 자비하심
소돔에서 나오라는 명령 - 불순종(지체)
-> 천사들이 강제로 데려고 나옴
산으로 도망하라 - 불순종
-> 자신의 생각에 따라 소알을 선택
롯의 아내의 죽음 - 소금기둥
-> 삼손의 머리카락과 매치됨.
-> 히브리어 성경 17절의 돌아보거나 와 완전히 똑같은 단어 사용됨.
-> 완전히 불순종함.
:: 그의 순종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그의 수변인은 소돔인이라 볼수 있다. 소돔에서 결혼하고 딸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나그네’였다.
그런데 29절은 그 지역의 성, 곧 롯이 거주하는 서이라 표현
다른말로 롯은 소돔인.
그러나 그는 나그네.
롯은 소돔인이 되고자 했고 그들의 문화에 젖어들었지만, 결국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롯은 이방인의 길을 택했다.
2.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이 모든 일에 함께 한 자
성경의 심판은 보통 밤에 일어났다. ( :24모세가 할례하지 않아 심판; 12:22, 29–31열째 재앙; 2 K. 19:35히스기야 왕때 앗수르 심판)
소돔과 고모라는 아담이 일어난 아침일찍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심
롯이 산으로 가든 소알로 가든 아브라함이 일아나고 난후 일어났을 것이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함께 일한다.
롯의 아내는 뒤돌아서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아브라함은 28절에서 내려보고 있다.
원문상 내려보다라는 의미다. 롯의 아내처럼 look의 의미로 보고 있다. 관찰하고 있다는 의미다.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다.
그 이전은 롯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것’ 자체를 금지당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역사를 마치 하나님처럼 관찰하고 있다.
그가 선 위치는 소돔의 모든 것이 보인다. 소돔보다 1300m는 위에 있다.
18장과 19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위에서 활동하신다.
지금 이 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늘 위로 올라가서 심판하신다
그가 선 위치는 그 전날 하나님과 천사들이 소돔을 심판하기 위해 서있던 그 장소다. 그는 마치 하나님과 같은 눈높이에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 그는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
그에게는 평온이 있다.
그는 하루동안 잘 자고 아침일찍 일어나 나왔다.
롯은 아비규환의 한복판에 있다.
이것은 29절에 잘 나온다.
그 엎으시는 중에서 라고 번역된 구절은 그 뒤엎으심[파괴]의 한가운데라고 직역할 수 있다.
이것은 롯이 아비규환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구하다라는 말은 뻗다라는 말이다.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롯을 구원하신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평안속에 거한다.
그가 있는 곳은 심판과는 전혀 상관없는 장소다.
오히려 땅의 심판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장소다.
그래서 그는 여유를 가지고 그 때 상황이 어떤지 묘사할수 있었다.
옹기 가마의 연기라는 것이 그 증거다.
그는 하나님과 함께 했다.
이상의 사실들이 그와 하나님께서 함께 일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거기에 한가지가 더있다.
해가 돋을 때, 소돔의 심판이 진행되었다.
아브라함은 아침일찍 나와서 그 모든 것을 보았다.
그는 분명 자신의 조카 롯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파괴의 한가운데 있을 롯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29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가 그 아침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보며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셨다.
그가 롯을 위해 기도했을 때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구원한 때는 비슷하거나 같은 시각이라고 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등 우리의 모든 것을 듣고 반응하신다는 것이다.
기도는 물론 포함된다.
비교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
바로 거류함과 사는 것의 차이다.
아브라함은 항상 떠돌아다니는 나그네였다.
이 본문 후에도 마므레를 떠난다.
그의 평생 어느 땅에 정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의 나그네였다.
그의 범위는 항상 가나안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벗어나지 않았다.
주위 민족들도 그를 인정한다.
롯은 소돔에서 ‘살았다.’
정착했다.(29절 롯이 거주하는 성)
주변인, 소돔인들의 평가
그의 수변인은 소돔인이라 볼수 있다. 소돔에서 결혼하고 딸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는 ‘나그네’였다.
그런데 29절은 그 지역의 성, 곧 롯이 거주하는 서이라 표현
다른말로 롯은 소돔인.
그러나 그는 나그네.
롯은 소돔인이 되고자 했고 그들의 문화에 젖어들었지만, 결국 영원한 이방인이었다.
롯은 이방인의 길을 택했다.
::아브라함과 롯의 차이는 바로 하나님만 바라는 나그네냐 정착을 바라는 나그네냐의 차이다.
롯이 정착을 바라고 정착했다 생각했을 때, 그는 나그네였다.(9절)
아브라함은 나그네의 삶을 이어갔다.
롯은 세상의 평안을 구하고 소돔으로 갔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평안, 언약을 믿고 나그네생활을 이어간다.
우리는 어떤 나그네인가. 우리는 본질상 나그네일수 밖에 없다.
설교
서론
오늘 본문은 소돔과 고모라의 마지막을 담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실제 기원전 2500-2200년경의 고대중동의 기록에서 매우 널리 발견됩니다. 시리아의 에블라지역 유적에서 발견된 토판에도 그 기록이 있습니다. 참고로 이 지역은 소돔과 고모라라고 추정되는 위치와 약 700km 이상 떨어진 지역입니다. 그만큼 소돔과 고모라 사건은 수백년동안 고대중동에서 이슈가 될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소돔과 고모라가 진실이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과 더불어 롯도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이제 다음시간에 볼 롯과 두딸의 이야기를 끝으로 롯은 성경에서 사라집니다. 오늘은 성경에서 사라진 롯과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의 모습을 살펴보며 우리를 되돌아 볼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본론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어찌보면 롯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을까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어찌보면 롯의 멸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가장 큰 분기점은 아브라함과 갈라섰을 때입니다. 그당시 성경은 롯이 왜 소돔을 택했는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소돔 땅을 여호와의 동산과 애굽땅이라는 두가지 이미지로 묘사합니다. 이둘은 매우 상반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은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입니다. 하지만 애굽땅은 반대로 우상들이 넘치는 곳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두가지 상반되는 이미지를 통해 소돔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소돔의 겉보기가 여호와의 동산같이 아름답고 살기좋다는 것을 뜻합니다. 하지만 그 속은 애굽땅과 같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엄중히 경고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잘 살펴보면 애굽땅과 연관이 깊습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왕들은 나라를 경영하며 애굽과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나 바벨론이 발호할때는 애굽의 봉신국을 자청해가며 그들을 막으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을 의지하라고 하십니다.
롯의 선택, 소돔은 바로 애굽땅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이전에 애굽에서 잘 지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라를 팔았다는 자책이라도 있었겠지만, 롯은 분명 바로에게 받은 것으로 애굽에 있는 기간동안 정말 평안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가나안에서의 척박하고 어려운 삶과는 대조적입니다. 그래서 롯은 소돔을 선택했습니다. 떠나온 하란과 애굽에서의 평안한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의 선택속에는 하나님의 뜻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했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롯은 순종이라 할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겨우 하나 들자면, 소돔인들이 자신들의 집을 둘러쌓을 때, 천사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입니다. 그 것을 제외하고는 롯은 철저히 자신을 위해 살았습니다.
오히려 롯의 불순종은 찾기 쉽습니다. 소돔을 선택했습니다. 성에 들어가려 않는 천사들을 강제로 들어오게 했습니다. 소돔에서 나오라는 명령에 불순종합니다. 지체합니다. 나온후 산으로 도망하라는 명령에 온갖 이유를 붙이며 불순종합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하라는 명령조차 어깁니다.
이런 롯의 모습은 마치 삼손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실인으로 태어났지만 나실인의 규례는 단 하나도 지키지 않은 삼손입니다. 그가 나실인이라는 증거는 긴 머리카락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머리카락이 사라지자 성령도 떠났고 힘도 사라졌습니다. 롯에게 뒤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이 바로 그런 의미였습니다. 그의 아내가 26절에서 뒤돌아 볼 때 사용된 단어는 17절에 돌아보거나라는 단어와 완전히 똑같은 단어입니다. 아담과 같이 정면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뒤로 흘깃 보는 게 아니라 마치 불구경하듯이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롯의 아내는 지금까지 겪었던 하나님의 기적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소금기둥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소금기둥은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엄중하고 큰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순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려줍니다. 이와같이 롯은 하나님앞에서 철저히 불순종한 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습니까.
먼저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했습니다.
사실 소돔과 고모라의 기사에서 아브라함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함께 하는 것이 아브라함입니다.
성경속에 심판은 보통 밤에 일어납니다. 에서 모세가 할례를 하지 ㅁ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뻔 한 것이 밤입니다. 출애굽할 때 열번째 재앙도 밤에 일어났습니다. 의 앗수르가 하나님을 비난하고 심판했을 때도 그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이른 아침에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시간은 오늘 본문으로 보면, 아브라함이 일어나서 나와 소돔과 고모라쪽을 내려다본 시간입니다. 이것만 봐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아브라함을 배려하고 있습니까.
롯과 가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보는 것’ 자체를 금지당했습니다. 그것을 어겨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28절에서 소돔과 고모라, 온 땅의 심판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28절에 보았더라는 내려다보다라는 단어입니다.
더욱이 지금 그가 서있는 장소는 그 전날 하나님과 두 천사들이 소도과 고모라를 보고 있던 바로 그 장소입니다. 그는 마치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서 이 모든 심판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에게는 평안이 있습니다.
롯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비규환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29절에 그 엎으시는 중에서 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그 파괴의 한가운데서라고 됩니다. 롯은 멸망의 한복판에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너무나 평온하고 고요합니다. 그 전날, 롯이 아침부터 소돔을 나와서 애걸복걸하고 소알로 도망칠 때, 아브라함은 자신의 일을 하며, 평안히 지냈습니다.
어느 누구도 줄 수 없고, 뺏을 수 없는 평안이 아브라함에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29절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해서 롯을 구원하셨을 때가 언제일까요.
본문을 보면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른 아침에 나와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바라볼 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저 불구경하듯이 놀라서 바라보고만 있었을까요. 분명히 자신의 조카 롯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가 돋았을 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려 소돔과 고모라를 멸했습니다. 저는 분명 아브라함이 롯을 생각할 때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했을 시간이 일치했을 것이라 봅니다. 이는 저만의 생각도 아닙니다. 주석을 쓴 학자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홍수중에 노아를 하나님께서 생각하셨다는 구절과 레아가 딸 디나를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했다는 구절에서도 나옵니다. 노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라헬을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지금 아브라함의 기도를 듣고, 롯을 구원하십니다.
이와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우리와 교제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왜냐면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ㄱ래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 속에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때는 넘어지고 무너져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이키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항상 생각하고 기억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며 고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일을 기억하고 고려하십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롯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 같은 곳에서 자라 같은 날 출발해서 같은 장소에서 살던 두사람이 이토록 극단적인 결말에 이르렀을까요. 한 사람은 믿음의 조상, 복이 되었습니다. 한사람은 죄악을 잉태하고 사라졌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이 나그네란 사실을 인정하는지 인정하지 못하는지의 차이였습니다.
오늘 본문 29절에서 소돔을 롯이 거주하는 성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거주한다는 표현은 그곳에 정착해서 산다라는 표현입니다. 즉, 롯은 소돔인이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롯은 소돔에서 결혼하고 두딸을 낳았습니다. 소돔인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9절에서 보았지만 진짜 소돔인에게 그는 나그네였습니다. 진짜 소돔인들은 롯을 자신들과 같은 소돔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롯은 자신을 소돔인이라 여기고, 소돔의 문화에 젖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롯은 영원한 나그네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어디에서도 평안을 찾지 못하는 영원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그 끝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알수 없는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롯은 세상에 정착하고 세상속에서 녹아드려 했지만 그가 맞이해야 했던 결말은 영원한 떠돌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입니다. 그는 그의 생애동안 계속 떠돌아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나그네 삶에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실족했습니다. 어떤 때는 세상의 논리에 따라 일을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의 땅에서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항상 아브라함과 함께 하셨습니다.
결론
롯은 나그네를 버리고 세상에 정착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 영원한 나그네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을 세상을 버리고 나그네를 선택했지만,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바로 우리의 눈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입니다. 롯은 처음 소돔을 선택했던 그 눈으로 계속 살아갔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오르게 해서 보여주신 그 눈으로 살았습니다. 우리의 눈은 세상에 머물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든지 세상은 우리를 나그네로 볼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 동화되려고 해도, 세상은 우리를 이물질로 볼 것입니다. 그래서 롯처럼 뱉어져 영원히 떠돌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움지이실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안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장 필요한 그 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가기를 원합니다. 롯의 십수년은 헛된 걸음이었습니다. 소돔에서 이룬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짓 한번에 다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십수년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언약을 더욱 구체적으로 받고, 불가능하다 생각했던 약속의 자녀, 이삭을 얻을 믿음을 얻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롯에게는 죄악의 자녀가 남았지만, 아브라함에게는 약속의 자녀가 남았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입니까. 우리가 남기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되길 원합니다.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증거가 되길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자녀들도 약속의 자녀들을 낳고 기르며, 이땅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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