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삶을 사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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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삶을 사는 사람들

1.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 개인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A.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죄인의 마음을 이끄는 주제는 그리스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비할 데 없는 사랑을 세상에 나타내셨다. 그와같이 그분을 굶주린 영혼들에게 제시하라. 그리하면 그분의 사랑의 빛이 사람들을 흑암에서 빛으로, 불법에서 순종과 참 성결로 인도해 줄 것이다. 갈바리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죄의 지독한 성격을 양심에 일깨워 줄 것이다”(리뷰 앤드 헤랄드 1892년 11월 22일)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라. 십자가는 하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자비에 대한 영구적인 보증이다(원고 154, 1897년).”(1기별, 156)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B.     십자가는 우리의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i.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십자가는 고통과 순교를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었다.

1.      그대는 죽었는가? - 로마의 군인이 그의 죽었음을 창으로 찔러 확인함

“갈바리의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세상 사람들의 무거운 죄에 눌려 죽어가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에게 나타나 보이실 때에 성령께서는 죄를 회개하는 모든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태도를 보여 주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1기별, 213)

“로마 병정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두 가지의 분명한 액체가 흘러 나왔다. 한 가지는 피였고 또 한 가지는 물이었다. 그 피는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의 죄를 씻어 주심을 표상한 것이고, 그 물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수를 상징한 것이었다.” 초기 문집, 209.

2.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으로 사는 것임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3.      십자가에 함께 못박힌 것은 무엇인가?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죄인은 죄의 본거지로부터 떠날 수 있으며 악의 동맹한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고 매번 십자가에 접근할 때마다 그의 심령은 순화(純花)되고 그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나의 죄였다’고 외치게 될 것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죄들을 버리게 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의 품성이 변화된다. 구세주께서는 죄인을 티끌에서 일으키사 성령의 지도 밑에 두신다. 죄인이 구세주를 바라볼 때 그는 소망과 보장과 기쁨을 찾게 된다. 믿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는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영혼을 순결케 한다.” 가려뽑은 기별 1권, 349.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한다. .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쳤다는 것 그리고 품성으로 세상에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항상 인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자기희생, 동정, 사랑이 하나님의 일꾼의 생애에서 재현(再現)되어야 한다.” 시대의 소망, 416,417.

하나님의 백성은 땅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일 때문에 탄식하며 부르짖고 있다. 그들은 눈물로써 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짓밟는 그들의 위험에 대하여 경고한다. 또한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범죄 때문에 주님 앞에 스스로를 낮춘다. 악인들은 그들의 슬픔을 조롱하고, 그들의 호소를 비웃고, 그들이 그들의 약점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하여 냉소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번민과 굴욕은 그들이 죄의 결과로 잃어버린 힘과 품성의 고결함을 다시 찾고 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들이 죄의 심히 죄스러움을 그처럼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이끌려 가고 있고, 그들의 눈이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통회와 겸손은, 슬피 탄식할 이유를 깨닫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비웃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완전을 주장하는 자들의 자부심이 강하고 거만한 정신보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훨씬 더 가납될 만한 일이다. 마음의 온유와 겸손은 힘과 승리를 얻는 조건들이다. 영광의 면류관은 십자가의 발 아래 엎드리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애통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ii.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게 하심

(고전 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영원한 복음 되신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에 그는 복음이었다. …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기별이며, 우리의 논리이며, 교리이다. 그리고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는 우리의 경고이며,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우리의 위로이며, 모든 믿는 자들의 소망이다.” 6주석 1113.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킨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릴 것이다. 이기심에 대하여 죽을 것이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것이며, 그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매우 놀랍고도 영광스럽게 높임을 받을 것이다.” 6주석 1113.

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왜 필요하였는가?

A.     희생의 목적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나타내심으로써 이스라엘이 회개하여 죄의 사유함을 받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죄인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죄인의 범죄의 고통을 맛보시며 죄의 형벌을 받으시는 것을 바라볼 때, 십자가의 죽음의 두려운 표현으로써 악에 대한 하나님의 증오심과 타락한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될 때,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한 율법을 범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향하여 회개하게 될 것이다.”(1기별, 324)

B.     율법의 요구: (히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희생제물은 그리스도를 지적했다. 그는 창세함으로부터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참 어린양이었다. (계 13: 8) 그 당시에 죄인이 자기 양을 드리고 자기 죄를 자백하면서 그 양의 머리 위에 자기 손을 경건하게 올려 놓았을 때에 그는 그 양을 통해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았던 것이다. 그가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드리고 제사장이 그 피를 제단 위에 혹은 성소 안에 가지고 가서 뿌릴 때에 그 죄인에게 그 피는 하나님의 아들이 갈바리에서 흘린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비단 어린양 뿐 아니라 모든 다른 제물과 피도 또한 골고다 위에서 드려진 희생제물에 관한 상징이요 예언이었다. 그것들은 십자가와 십자가위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지적하는 그림자로써 다만 십자가까지만 계속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드려졌을 때에 모든 제사가 끝났고 그와 아울러 제물에 관한 율법도 끝나게 되었다.”

C.     한 영혼의 가치

“한 영혼의 가치를 누가 능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 가치를 알고자 하면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서, 거기서 그리스도께서 핏방울과 같은 땀을 흘리시면서 몹시 고민하시는 그분을 주목하여 보라.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바라보라.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막 15:34)하는 낙담의 부르짖음을 들어 보라. 상처를 입은 머리와 찔린 옆구리와 상한 발을 바라보라. 그리스도께서 온갖 위험을 무릅쓰신 것을 기억하라.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하늘 자체가 위험을 무릅썼던 것이다. 한 명의 죄인을 위해서라도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목숨을 버리셨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간다면 거기서 그대는 한 영혼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물 교훈, 196.

“그대가 죗되고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를 받아들이지 않으실 것이라는 두려움으로 그대의 영혼에 고통을 주며 의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약 4:8. 그대를 위해 갈바리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를 간구하면서 그대의 경우를 그분 앞에 제시하라. 사단은 그대가 큰 죄인이라고 참소하며 그대는 이것을 시인할 수 밖에 없으나 그대는 ‘나는 내가 죄인임을 알고 있으며 죄인이기 때문에 구세주가 필요하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말할 수 있다.’” FW, 105,106.

“죄인이 율법을 바라볼 때에 그가 범한 죄들이 자기 자신에게 밝히 드러나며 양심을 깨우치게 되며 정죄함을 받는다. 그의 유일의 안위와 소망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바라보는 데 있다. 그가 과감하게 허락들을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당신을 붙잡을 때에 그의 영혼에게 위로와 화평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는 “오, 하나님,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이름으로 당신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나이다. 저는 멸망할 수밖에 없으며 무기력하고 소망이 없는 영혼이로소이다. 오, 하나님, 나를 구원하여 주소서. 그렇지 않으면 저는 멸망할 수밖에 없나이다”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그의 믿음은 그리스도를 굳게 붙잡게 되며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다.”(1기별, 365)

D.     제사제도에 나타난 대속죄물의 요구

(골 1: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E.      그리스도께서 언제 돌아가셨는가?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실 때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으며 그것이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위한 그의 봉사의 시작을 표시한 사건이었다. (행 10: 38, 마 3: 13~17) 예수께서는 티베리우스 15년 곧 서기 27년에 침례를 받으셨다. (눅 3: 1~23) 이 예언은 아주 정밀하게 성취된 것이다. 선지자는 그리스도의 사업에 관한 그의 묘사를 계속했다.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 27) 그러므로 이 “한 주일”은 기원 27년 가을에서 34년 가을까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3년 반 동안 계속된 그분의 봉사로써 많은 사람과 언약을 굳게 하였고 나머지 3년 반 동안에도 그의 제자들의 봉사를 통하여 그 같은 사업이 계속되었다. (히 2 : 3 엡 2 : 15~17)

이 7년의 중간에 그가 “끊어질”것이고 그래서 “제사와 예물이 끝나”게 될 것이었다. (26, 27절) 기원 27년 가을부터 정확히 3년 반이 지난후 기원후 31년 봄에 예수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상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을 15세기 동안이나 예표해온 레위기의 규례에 따른 제사제도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신 때에 끝났다. 그의 죽음은 제사와 예물을 멈추게 한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순간에 예루살렘성전 휘장이 찢어진 것으로서 증거되었다. (마 27: 51) 그러나 예수의 죽음후에도 그 예언적 기간중에 3년 반이 남아 있었다. 이 기간의 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에 의하여 전파된 복음을 공식적으로 배척하였다. 바울이 복음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일으킨바 되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 죽었고 그가 돌에 맞은 이 사건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그들의 은혜의 기간이 끝난 것을 표시하였다. 이 모든 일이 기원 34년 곧 기원전 457년에서 꼭 70주일 혹은 490년이 되는 해에 일어난 것이다. 그 예언은 얼마나 정밀하게 성취되었는가! ”(성서연구의 길잡이 1권, 0)

 

3.     십자가와 율법

A.     십자가의 은혜 안에 사는 자는 누구인가?

                i.         율법이 왜 필요한가?

“그대들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가까이 나아갈 때에 그곳에서 비할 데 없는 사랑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대들이 믿음을 가지고 희생의 의미를 깨닫게 될 때에 그대들 자신이 깨어진 바 된 율법으로 정죄를 받은 죄인임을 알게 된다. 바로 이것이 회개이다. 그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에 사유하심을 얻게 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단 앞에 서 계셔서 간단없이 세상의 죄를 위하여 희생 제물을 바치는 자로 상징되었기 때문이다. ”(1기별, 343)

“인간의 정신이 갈바리의 십자가에 이끌리게 될 때에 불완전한 안목으로 보면 그 십자가는 수치스러운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실 수 밖에 없었을까? 그것은 죄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칠 때에 인간의 눈은 죄의 특성을 밝히 보게 된다. 비록 율법은 깨어진 바 되나 죄를 범한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율법은 우리들의 몽학 선생이며 형벌을 받도록 정죄한다. 그러면 이에 대한 구제책은 어디에 있는가? 율법은 타락하고 죄지은 인간에게 당신의 의를 나누어주시며 당신의 의로운 품성을 통하여 하늘 아버지를 인간에게 나타내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로 우리를 인도한다.”(1기별, 341)

               ii.         십자가는 사형선고를 받은 죄인을 위한 것이다.

(신 21:22,23)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갈바리의 십자가를 쳐다보라. 그 곳에 예수께서 계시는데,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주셨으니 이는 인간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을 범할 수 있는 자격증을 그들에게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무한하신 희생을 통하여 그들이 모든 죄로부터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목사에게 보내는 기별, 161-162.

“갈바리 십자가의 그늘 밑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하여 자고하거나 교만해 질 수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이 찢어지게 한 고민의 원인이 자기들의 죄였다는 것을 느끼고, 그런 생각이 저들을 스스로 겸비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생애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과 약점을 가장 분명히 깨닫고 저들의 유일한 희망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쟁투 471).

              iii.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며 그것을 담당하셨다.

(마 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골 2: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예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으니 비록 내게는 주님께 드릴 아무것도 없지만 다음과 같이 말할 수는 있다. ‘내 손에는 가지고 갈 아무 대가도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십자가에 매달릴 뿐이옵니다.’ 죄인은 전심으로 구주를 찾지 않았을지라도 구주께서는 그를 찾고 계셨던 것이다.”

정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구하러 오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17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요 8:3-5

어떻게 이 여인이 죄를 짓게 되었는가?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요 8:6-11

“그는 마음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고마운 사랑의 마음으로 흐느껴 울면서, 뜨거운 눈물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다. 이것은 그에게 순결과 평화의 생애,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바쳐진 새 생애의 시작이 되었다. 이 타락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께서는 가장 흉악한 육체적 질병을 고칠 때보다도 더 큰 이적을 행하셨다. 예수께서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영적 질병을 고치셨다. 이 회개한 여인은 예수를 가장 신실히 따른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자기 희생적 사랑과 헌신으로 그는 예수의 용서하여 주신 은혜에 보답하였다.

이 여인을 용서하시고 고상한 생활을 하도록 격려하신 이 일 가운데서 예수의 성품은 완전한 의의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예수께서는 죄를 가볍게 하시거나 죄책감을 경감시키지 않으시는 동시에 정죄하려 하지 않으시고 구원하려고 노력하신다. 세상은 이 곁길로 나아간 여인에게 멸시와 조롱밖에는 주지 않았지만 예수께서는 위안과 희망의 말씀을 하셨다. 무죄하신 분은 죄인의 연약함을 동정하시고 그녀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치셨다. 위선적인 바리새인들은 비난하였지만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시대의 소망, 462.

“과오를 범한 자들이 타락의 길로 가도록 내버려두고 그들에게서 눈을 돌이키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고발하는 데 앞장서고 그들을 재판하여 처벌하는 데 열중하는 자들이 오히려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는 그 사람들보다 더욱 죄가 많은 수가 있다. 사람들은 죄는 사랑하면서도 죄인은 미워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미워하고 죄인은 사랑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의 정신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비난하는 데는 느리고 회개함을 분별하여 용서와 격려를 하는 데는 신속하고 방황하는 자를 거룩한 길로 인도하여 그의 발이 그 길에 머무르도록 한다.” 시대의 소망, 462.

“마리아는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과 경배로써 예수님의 용서와 동정을 보답하였다. 나중에는 십자가의 발아래 마리아는 슬픔에 잠겨 서 있었으며 그녀의 주님의 얼굴에서 죽음의 번민을 보았으며, 그분의 고통의 부르짖음을 들었으며, 이때 그녀의 마음은 새로이 찔림을 받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 희생이 죄 때문이었다는 것과 자신의 큰 죄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이러한 아픔을 가져다 주는 데 한몫을 한 것을 매우 무겁게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리아는 구세주의 몸을 찌르는 이러한 아픔들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과, 그분의 상처로부터 흘러내리는 보혈이 자신의 죄의 기록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는 것과, 그분의 죽어가는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신음들은 자신의 범죄로써 말미암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마음은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슬픔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그녀를 위해 무한한 값어치를 치르고 산 생명의 선물을 보답하기에는 자아를 포기하는 희생은 너무나 적은 것이라고 느꼈다.” 사인즈 오브 더 타임즈 1897년 10월 23일.

“마리아는 큰 죄인처럼 주목을 받았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생애를 꼴지워왔던 환경들을 아셨다. 그는 마리아의 영혼 속에 있는 모든 희망의 불꽃을 끄실 수도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절망과 파멸에서 마리아를 건져 주신 분은 그리스도셨다. 마리아는 그의 마음과 정신을 지배하고 있던 사귀들을 일곱 번이나 책망하시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다. 그를 위하여 아버지께 힘써 탄원하시는 예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예수의 흠없는 순결에 비하여 죄가 얼마나 더러운 것임을 알고 예수의 능력을 통하여 승리해 왔었다.…

예수의 은혜로 그는 거룩한 품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타락하여 그 심령이 사귀의 거처가 되었던 자가 구주와 매우 가까이 교제하고 또한 봉사하는 자가 되었다. 예수의 발 아래 앉아서 예수에게 배운 사람은 마리아였다. 예수의 머리에 귀중한 기름을 붓고 눈물로 예수의 발을 씻은 사람은 바로 마리아였다. 마리아는 십자가 곁에 섰었으며 무덤까지 그를 따라갔다. 예수의 부활 후에 무덤에 제일 먼저 나타난 사람은 마리아였다. 부활하신 구주를 처음으로 선포한 사람도 마리아였다.” 시대의 소망, 568.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막 16:9-10

“예수께서는 모든 영혼의 환경을 아신다. 그대는 나는 매우 죄가 많다고 말할는지 모른다. 그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악하면 악할수록 더욱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리스도는 울면서 참회하는 사람을 한 사람도 돌려보내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나타내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어느 누구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떨고 있는 모든 영혼에게 용기를 가지라고 명하신다. 그에게 나아와 용서와 회복을 구하는 모든 사람을 그는 즐거이 용서하실 것이다.” 시대의 소망, 568.

“그에게 피난처를 구하는 영혼들을 예수께서는 참소자들과 구설의 다툼으로부터 높이 쳐들어 올리신다. 어떤 인간이나 악한 천사도 이 영혼들을 참소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신성과 인성에 그들을 연합시키신다.” 시대의 소망, 568.

B.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4.     예수의 십자가

A.     그의 십자가는 죄없는 자의 십자가였다.

                i.         빌라도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손을 씻음

WASHING OF HANDS.

The hands are the essence of the individual. Hands communicate our attitudes and perform our deeds. They speak more eloquently than our words, since the actions of the hands come from the heart. Through hands come blessing and healing, or bloodshed and deeds of wickedness. The condition of the hands portrays the condition of their owner. It is no wonder that the Bible speaks of blood being on the hands (Gen 4:11; 2 Sam 4:11; Ezek 23:37, 45). The Hebrews also speak of evil, treason or guilt as being “in the hand” (1 Sam 14:10; 26:18).

If dirty hands represent past mistakes, clean hands represent contrition and a fresh start. The temple ritual prescribed the washing of hands (Ex 30:17–21). Those who ministered were to wash their hands as a “perpetual ordinance” so that they might not die as they approached the altar. The act of hand washing also appears elsewhere in biblical literature as a symbol of innocence and purity of heart. The elders of a town washed their hands as a symbol of their innocence in the death of a man found near their town (Deut 21:6). But the Hebrews had no monopoly on such obvious symbolism. Pilate can hardly be accused of bowing to Jewish custom when he too washed his hands before the crowd to demonstrate his innocence in Jesus’ death (Mt 27:24).

Clean hands protest innocence not only with regard to murder and death but to any offense. Hebrew poets describe heartfelt professions of innocence and purity as having “clean hands” (Job 17:9; 22:30; Ps 24:4; 26:6). The exhortation of James parallels the two ideas: “Wash your hands, you sinners, and purify your hearts, you double-minded” (Jas 4:8 NIV).

In a continuing search for holiness, the requirements of the priestly class frequently became generalized for the laity. The Pharisees adopted as their own the hand-washing stipulations of the priests, and they accused Jesus’ disciples of “eating with unclean hands” (Mk 7:1–8; Lk 11:38). Their offense at the disciples’ failure to abide by the more stringent standards provides Jesus the opportunity to teach that hand washing is symbolic. A person is not spiritually contaminated by unclean hands but rather by unclean handiwork.

In some cases a ritualized washing seems an inadequate gesture of remorse and contrition. Jesus strikingly captures the idea of hands as agents of sin in his admonition (with hyperbole, we hope!), “And if your right hand causes you to sin, cut it off and throw it away; it is better that you lose one of your members than that your whole body go into hell” (Mt 5:30 NRSV). Rabbinic evidence plausibly points to the “sin of the right hand” being masturbation. (In Matthew it follows a discussion of lust with amputation similarly suggested as the solution.) The extreme remedy emphasizes that outward conformity to the law or upright behavior is like clean hands, a symbolic gesture that cannot cleanse the mind if it longs for evil. Again, the work of the hands betrays an unclean heart.

Both the OT and NT record that human concerns of ritual purity, symbolic purity of heart and even simple daily needs of cleanliness converge to make the plainly visible hands a powerful symbol of the condition of our invisible heart before God.

               ii.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억울함을 아신다.

B.     그의 옷은 나누기 위해 제비 뽑혔다(막 15:24, 요 19:23)

                i.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모든 수치를 아신다.

C.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심(막 15:20, 32)

                i.         그는 우리의 모든 모욕을 아신다.

D.     그는 만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실 것이다.

                i.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ii.         “그러나 예수님을 죽게 한 것은 창에 찔렸기 때문도 아니고 십자가의 고통도 아니었다. 죽음의 순간에 ‘큰 소리로’(마 27:50; 눅 23:46) 부르짖으신 것과 그분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온 것은 그분이 심장 파열로 죽으셨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분의 심장은 정신적 고통에 의하여 파열되었다. 그분은 세상 죄를 인하여 죽임을 당하셨다.” 시대의 소망, 772.

5.     십자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

A.     마 16:24 합당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좇아야 한다.

                i.         자기를 부인하고

“종교에는 시련과 십자가가 따른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는 시련을 통하여 하늘에 적합하게 되고 정결하게 될 것이다.”

“자원하여 모든 것을 희생할 자들만 영생을 소유할 것이다. 그것은 고통받을 만한 가치가 있으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을 만한 가치가 있고 모든 우상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세상적인 모든 매력을 능가하며 세상의 모든 보화보다 더욱 중요한 영원한 영광의 중함과 지극히 큰 것을 이루게 한다.” 우리의 높은 부르심, 351.

“멍에와 십자가는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포기하는 같은 것을 나타낸다. … 십자가를 지는 일은 자아를 영혼으로부터 잘라낸다.” 리뷰 앤드 헤랄드, 1900년 10월 23일.

               ii.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우리의 죄악적인 정욕을 지배하는 것이다.” 교회증언 4권, 627.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 5:24-26

“아무도 십자가를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 십자가를 의지할 때에만 승리할 수 있다. 고통과 시련을 통해서 거룩한 능력이 우리 생애 가운데 역사할 수 있어서 그리스도의 사랑과 화평과 친절하심의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가려뽑은 기별 1권, 224.

B.     십자가에 달리는 경험은 승리를 약속한다.

                i.         요 3:14, 12:32-34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12:32-34)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십자가가 우리를 지고 감―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은 그들이 십자가를 질 때 오히려 십자가가 그들을 들어 올려서 그들에게 굳굳함과 용기를 주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가리켜 보인다는 사실이다(리뷰 1905. 7. 13).”(화잇주석, 마 16:24)

““그대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그의 학교에서 배운다면 그대는 난폭하거나 부정직하거나 불충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거룩하지 못한 모든 정욕과 습관의 뿌리를 잘라 버린다.” 내가 그를 알려 하여, 93.

“많은 이들은 십자가가 바로 그 길에 서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명백한 가르침에 저희들의 눈을 감아 버린다. 그들이 십자가를 지면 세상 사람의 눈에 동떨어지게 보이므로, 그들은 이 십자가를 피할 수 있는 어떤 구실을 찾으며 망설이고 의심한다. 사단은 항상 가까이 있으며, 왜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그럴 듯한 이유를 제시해 준다. 이러한 영혼들은 치명적인 기만을 당한다.” FW, 41.

C.     십자가의 보상은 무엇인가?

                i.         No Cross, No Crown.

               ii.         히 12:2 하나님의 보좌 우편

              iii.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서게 될 자들의 특성

              iv.         그 피로 옷을 빤 자들

6.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

A.     구레네 사람 시몬

                i.         마 27:32 그는 억지로 타의에 의해 십자가를 졌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축복하셨다.

“시몬이 억지로 지고 간 십자가는 그가 회심하는 수단이 되었다. 예수를 불쌍히 여기는 그의 동정심은 그의 심정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갈바리에 있었던 일들과 구주께서 하신 말씀들은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하였다” (원고 127, 연대 미상).

               ii.         시몬을 소개할 때 두 아들의 이름이 언급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아버지의 경험을 이야기 함으로서 그리스도의 훌륭한 제자가 됨

7.     세 개의 십자가

여러 종류의 십자가들: four forms of the cross: (1) simple (Lat. simplex), I ; (2) St. Andrew’s (decussata), X ; (3) St. Anthony’s (commissa),T ; (4) the Latin (immissa), +.

A.     용서가 있는 십자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것은 그의 십자가가 아니라 바라바를 위하여 준비된 십자가였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당신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졌어야 할 십자가였다.

““예수께서 빌라도의 법정문을 나설때에 바라바를 위하여 준비되었던 십자가가, 찢어져 피가 흐르는 그분의 어깨에 메워졌다. 바라바의 두 동료들도 예수님과 같은 시간에 죽음의 고통을 당해야만 했고 그들에게도 역시 십자가가 지워졌다. ”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을 위하여 드리신 그 기도는 온 세계를 포함한다. 그것은 이 세상이 시작한 때로부터 끝날 때까지 이 땅에 살았거나 앞으로 살게 될 모든 죄인을 포함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가 놓여 있다. 용서는 모든 사람에게 값 없이 제공되었다.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으며 영생을 유업으로 얻을 수 있다.”

B.     회개가 있는 십자가: 당신의 나라 임하실 때에 저를 기억하옵소서(회개한 강도의 십자가)

사람들의 회개의 이유

“우리는 흔히 우리의 악한 행실이 자신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슬퍼한다. 그러나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성령께서는 구주를 모욕하고 슬프시게 한 감사하지 아니한 마음을 드러내어 우리로 십자가 밑에서 통회하게 하신다. 모든 죄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다시 상처를 입으시는 바 우리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예수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뇌를 안겨 준 죄로 인하여 슬퍼하게 된다. 이러한 애통이 죄를 버리게 하는 것이다.” 시대의 소망, 300.

“우리는 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날 곧 죄와 부패로 가득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우리는 노아처럼 하나님께 기쁨이 될 수 있는 자로 살아야 하며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벧전 2:9)이신 주님께 찬송을 올려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바로 전에 하늘 아버지께 올린 기도 가운데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요 17:15)라고 하셨다.”(1기별, 90)

왜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가?

우리는 지금 대속죄 기간 중에 살고 있음

“우리는 자복과 회개로서 우리의 죄들이 먼저 심판을 받아야 할 대속죄 기간 중에 살고 있다.

1844년에 우리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조사 심판을 시작하셨다. 죽은 의인들의 생애가 하나님 앞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그 일이 끝나면 살아있는 자를 위한 심판이 집행될 것이다. 이 엄숙한 순간이야말로 얼마나 고귀하고 얼마나 중대한가! 우리들 각자의 심판 문제는 하늘 법정에서 미결 상태에 놓여 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육체 가운데 있을 때 행한 행위에 따라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

상징적인 성소 봉사에 있어서 대제사장이 지상 성소의 지성소에서 속죄하는 행사를 거행할 때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희 영혼을 스스로 괴롭혀야 하며 저희 죄가 대속을 받고 저희 죄들을 도말함 받기 위하여 자복하여야만 하였다.

하물며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탄원하고 계시며 최종적이고도 되풀이할 수 없는 판결을 각자에게 언도하게 되는 이 대속죄 기간에 처한 우리에게 향한 요구가 추호라도 덜할 수 있을까?

이 두렵고 엄숙한 때에 우리의 상태는 어떠한가? 아, 슬프다. 교만, 위선, 속임수, 의복에 대한 애착, 천박한 정신, 오락 및 으뜸이 되고자하는 욕망이 교회 안에서 용납되다니! 이러한 모든 죄들은 정신을 흐리게하여 영원한 사물들을 식별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현재 이 세계 역사의 어느 단계에 놓여 있는지 분명히 깨닫기 위하여 성경을 열심히 탐구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이 때에 우리들을 위하여 성취되고 있는 사업에 관하여, 이 속죄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죄인으로서 차지해야 할 위치에 대해서 좀더 밝히 깨달아야 할 것이 아닌가? 만일 우리가 자신의 영혼의 구원에 관하여 진정한 관심이 있다면 우리는 결정적인 변화를 일으켜야만 한다. 우리는 진정한 참회의 정신으로 주님을 찾아야 하며 깊은 회오(悔悟)의 태도로 죄들을 자복하고 죄 없이함을 받아야 한다.”(1기별, 124-125)

C.     심판이 있는 십자가: 우리를 구원하고 너를 구원하라(죄지은 강도의 십자가)

마 27:44 두 강도가 함께 욕을 함-그러나 한 강도는 즉시 회개

(히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8.     십자가위에서 하신 말씀(가상칠언)

A.     (눅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B.     (요 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C.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D.     (마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E.      (막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F.      (요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G.     (요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H.     (눅 23:46)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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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V NIV. New International Version

NRSV NRSV.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OT OT. Old Testament

NT NT. New Testa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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