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의 고리를 끊으십시오.

창세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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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악의 고리를 끊으십시오.
(2018.2.18 요코하마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서 현 목사)
본문:
주제: 하나님의 은혜는 반복된다.
1. 서론-반복되는 잘못.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비슷한 일들이 반복됩니다. 새로운 일 보다는, 반복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일 같은 곳에 출근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운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과거에서 배우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우리는 실수에서 배운다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학생들은 틀린 문제를 또 틀립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의외로 똑똑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지혜롭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서 잘못된 일들을 반복합니다. 좋은 일을 반복하지 않습니다. 나쁜 일을 반복합니다. 그 결과, 죄가 습관처럼 우리 몸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한다고 기도합니다. 그 이후로 그 죄를 다시 안 짓습니까? 아닙니다. 같은 죄를 또 짓습니다. 같은 장소에서 또 넘어집니다. 죄 짓고 넘어지는 결과도 동일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한 번 회개하면, 다시는 같은 죄를 안 짓는 분 계십니까? 아마 안 계실 것입니다. 반복되는 죄와 회개 속에서, 마음이 굳어지지는 않았습니까? 반복되는 죄 속에 그것이 죄인 것조차 잊고 지내지는 않습니까? 죄의 영향 가운데 계속 지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버지가 잘못된 인생을 살았어.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아. 이렇게 결심하지만, 결국 나도 아버지처럼 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모두 잘못을 반복합니다.
오늘 말씀도 동일합니다. 아버지가 잘못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잘못을 반복합니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아들도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가정이지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의 잘못을 반복하는 이삭의 이야기입니다.
2. 본문
1) 같은 일이 반복되다.
이삭이 살고 있는 땅에,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도 있었던 일입니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경험하는 사람은 다릅니다. 아브라함이 기근을 경험했습니다. 이번에는 이삭입니다. 비슷한 상황이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이삭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브라함과 같은 반응을 보일까요? 다른 반응을 보일까요? 성경은 이것에 주목합니다.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비교하며 기록합니다. 를 읽어 주십시오.
아브라함 때 들었던 흉년이 다시 그 땅에 찾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그랄에 있는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찾아갔습니다.
흉년입니다. 이번이 첫 흉년은 아닙니다.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굳이 아브라함의 때 들었던 흉년이라고 표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비교합니다. 의도적으로 한 문장에 아브라함과 이삭을 같이 기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본문을 볼 때 두 사람을 비교해야 합니다. 어느 부분이 같고, 어느 부분이 다른지 살펴볼 때 본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때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은 “심한”기근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은 “무겁다”는 의미입니다. 아주 무거운 것이 누르면 힘듭니다. 흉년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매우 무겁게 눌렀습니다.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내려갑니다.
이와 같은 흉년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흉년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언제 흉년을 경험합니까? 하나님을 만난 직후입니다. 축복이 아닙니다. 기근입니다. 이삭은 어떻습니까? 이삭은 스스로 제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죽을 때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런 이삭에게 흉년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매 맞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십니다. 믿음의 선배들과 예수님에게도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유혹이 있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고통과 유혹이 있습니다. 한 번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같은 유혹과 고통이 반복해서 찾아옵니다. 내가 약한 부분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지. 약점만 공격합니다. 우리를 반복해서 괴롭힙니다. 여러분, 사탄은 착하지 않아요. 나빠요. 악마는 천사가 아닙니다. 나쁘니까 악마입니다. 악하고 잔인한 존재입니다. 악마는 우리를 철저히 넘어뜨리고 파괴할 때까지 쉬지 않습니다. 끈질기게 공격합니다. 같은 유혹이 반복되기에,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입니다.
심각한 흉년을 경험하게 된 이삭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는 그랄에 있는 블레셋 왕을 찾아갑니다. 음식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2) 인간은 어리석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일을 기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삭도 이집트로 갈까 걱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까지 내려갔습니다. 그곳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삭에게는 미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서 알려주십니다. “이집트로 가지 마라” 를 읽어 주십시오.
그때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일러 주는 땅에서 살아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반복해서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다시 선포하십니다. 흉년이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살게 하십니다. 문제는, 이삭입니다. 이삭은 두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나는 거짓말을 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래 거주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이 그랄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다른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러나, 그랄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볼 때 거짓말을 했습니다. 리브가를 아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죽이고 리브가를 빼앗을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두려웠습니다. 두려우니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는 두려워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두려움은 진짜가 아닙니다. 두려움은 가짜입니다. 두려워하는 이유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상상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입니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능력입니다. 인간은 상상을 통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처럼, 인간도 상상하며 무엇인가를 만들어냅니다.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동참하도록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 상상을 잘못 사용하면 두려워합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내 머리로 생각합니다. 내가 상황을 만들어냅니다. 그 결과 잘못된 행동을 합니다. 잘못된 상상력으로, 이삭은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는 어떨까요? ‘내가 이렇게 말하면 상대방은 이렇게 반응하겠지?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누군가가 좋아할까? 싫어할까?’ 너무 많은 생각과 상상 속에서,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삭은 두려웠습니다. 그 결과 거짓말을 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똑같은 잘못을 합니다.
또한, 이삭은 그랄에 오래 살았습니다. 어느 정도 오래 지냈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머무른 날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가 거짓말을 했어도 곧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면, 그의 거짓말이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오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리브가에 대해 물어볼 때, 한두번 물어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시간이 오래 되었다면, 그는 몇 번이나 거짓말을 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이삭의 거짓말이 드러납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껴안고 있는 것을 아비멜렉이 봤습니다. 를 읽어 주십시오.
이삭이 그랄에서 오랫 동안 지냈습니다. 어느 날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창 밖을 내다보다 이삭이 자기 아내 리브가를 껴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껴안고 있다는 말은 ‘사하크’입니다. ‘웃다’는 뜻입니다. 이삭의 발음은 ‘이 사하크’입니다. 웃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이삭이 리브라와 있으며 웃고 있음을 기록합니다. 두 사람이 좋은 거예요. 그 모습을 아비멜렉이 봤기에 둘이 부부임을 알았습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부릅니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꾸짖습니다. “왜 거짓말을 했는가?!” 아브라함이 혼난 것처럼, 이삭이 혼납니다. 부끄럽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잘못하면, 세상 사람에게 혼납니다. 책망을 받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다릅니다. 그는 이집트로 가지 않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같습니다. 그는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왕에게 책망받습니다. 조금 나아진 것 같지만, 결국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아버지의 죄를 반복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을 반복합니다. 아버지의 어리석음이 반복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3) 하나님이 다시 구원하시다.
아비멜렉은, 이삭을 책망합니다. 동시에, 이삭을 지켜줍니다. 명령을 통해, 이삭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보호 때문입니다. 바로의 마음이 움직여 아브라함을 지켜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마음을 움직여 이삭을 지켜주십니다. 성경에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일 이후 등장하는 사건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흉년을 멈추십니다. 풍년을 주십니다. 를 읽어 주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 곡식을 심고 그 해에 100배를 거두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이삭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삭을 살리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구원하십니다. 그 해에 100배의 수확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물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농사를 짓습니다. 농사 지을 때 갑자기 100배나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많은 것을 주셨듯, 이삭에게도 많은 것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인간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잘못을 용서하고 고쳐주십니다. 인간은 죽음을 향해 나갑니다. 하나님은 죽음에서 살려주십니다. 인간은 거짓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드러내십니다. 인간은 잘못을 반복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반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반복하십니다. 우리의 죄악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도 반복됩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이 반복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혜로움도 반복됩니다. 이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반복해서 주어집니다. 우리의 믿음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한 번의 고백이 아니라,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매일 죄를 짓습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죄는 매일 반복됩니다. 내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짓는 죄는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같은 죄를 얼마나 많이 지으며 살고 있습니까? 죄에 중독되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것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죄를 반복해서 짓는 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당기십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것보다 더 많이, 하나님이 우리를 일으켜 주십니다. 죽음을 이기는 능력은 생명입니다. 저주를 이기는 힘은 용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수많은 저주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조롱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저주보다 더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들의 조롱보다 더 많이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도 그들을 위한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사랑의 힘이 저주의 힘을 이겼습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죽음을 이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입니다.
3. 결론-은혜로 성장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우리는 성장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변화되지 않는 모습에 좌절합니다. 하지만, 정말 성장이 멈췄습니까?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다른 사람의 아이는 금방 자라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아이는 성장이 늦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계속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같은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삭은 아브라함보다 조금 더 성장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라게 하십니다. 반복되는 죄를 용서하고 용서하시면서, 끝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혼자 걸을 때까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안심하고 하나님께 회개할 수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에 좌절하기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우리를 괴롭힌 사람을 저주하기 전에, 더 많은 용서와 축복을 쏟아부읍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신 것처럼, 서로를 대할 때, 하나님의 깊은 은혜를 더욱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죄악의 고리를 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용서를 깊이 경험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있는 죄의 고리를 끊습니다. 죄 짓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시고, 그것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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