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잊혀지다

창세기 강해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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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잊지만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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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셉이 잊혀지다.
(2018.9.2요코하마 온누리교회 주일예배-서 현 목사)
본문: 창40:16-23
주제: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
1. 서론-작은 일과 큰 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여러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중 어떤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은 큽니다. 어떤 일은 작습니다. 문제는, 이것을 정하는 기준이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중요하지 않고 작은 일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중요하고 큰일도 있습니다.
얼마 전, 한국 어느 신문기사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출판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는 첫 출근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출근 며칠 전, 연락이 왔습니다. 합격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당황했습니다. 출판사에 연락해서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만두기로 한 사람의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가 계속 일 하게 되어 당신의 합격을 취소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합격했던 사람은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의 합격을 취소하는 것이 작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에게는 인생에서 매우 크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우리는 자신의 문제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타인의 문제는 가볍게 생각합니다. 그 결과,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일도 일어납니다.
오늘 본문도 바로 이와 같은 일이 등장합니다. 요셉이 감옥에 갇힌 사람을 도와주었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석해줍니다. 그들이 복귀되면,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해결된 뒤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요셉에게는 크고 중요한 일이었지만, 그에게는 작고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요셉은 계속 감옥에 갇힌 상태로 2년의 시간을 더 보내게 됩니다.
2. 본문
1) 감옥에 들어온 두 사람.
창40:1-2 를 읽어 주십시오.
얼마 후 이집트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빵 굽는 관원장이 그 주인인 이집트 왕에게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바로는 그의 두 신하,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빵 굽는 관원장에게 진노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얼마 후’. 원어로는 ‘이 일들이 다 이뤄진 후’라는 의미입니다. 어떤 일이 이뤄졌습니까? 요셉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간수장이 감옥의 모든 일을 요셉에게 맡겼습니다. 창39:23 은 “하나님이 형통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있은 후, 왕의 음식을 담당한 사람들이 잘못하여 감옥에 옵니다. 왕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빵과 술은,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만일 누군가가 음식에 독을 넣어 왕을 죽이려고 하면 큰일입니다. 따라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은 왕과 가장 가까운 사람입니다. 왕의 신뢰를 받는 사람입니다. 왕의 생명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기록은 없습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왕이 무섭게 화를 낼 정도의 심각한 죄라는 사실입니다. 바로는 이들을 감옥에 가둡니다. 여기서 놀라운 일이 시작됩니다. 그들이 온 감옥이 바로 요셉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 감옥은 요셉의 영향력으로 가득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이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요셉이 만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높은 사람을 잘 안다” 그러나 대부분, 그 사람을 직접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간접적으로 압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친분이 있음을 과시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요셉과 만나는 이 두 사람은 왕의 바로 옆에 있던 사람입니다. 높은 지위의 사람들입니다. 노예이자 죄수, 그리고 이방인인 요셉은 만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감옥에 왔습니다. 그곳에서 요셉을 만납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입니다. 지금까지 왕의 신뢰를 얻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죄를 지었습니다. 이들이 요셉이 있는 감옥에 옵니다. 경호대장이, 요셉에게 이 두 사람을 시중들게 했습니다. 창40:4 를 읽어 주십시오.
경호 대장은 요셉에게 명령해서 두 신하를 시중들게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요셉은 몰랐지만, 하나님이 이들을 요셉에게 보내셨습니다. 요셉은 몰랐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습니다. 요셉은 몰랐지만, 지금 하나님의 일들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이 만남이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들이 요셉이 있는 감옥이 아니라 다른 감옥에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요셉이 간수장의 인정을 받기 전에 이들이 감옥에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요셉이 간수장의 인정을 받았어도, 이들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뤄가십니다. 둘째, 하나님 안에서의 만남은 우연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만남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사람을 만나며 하나님의 일이 성취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습니까? 기적을 경험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사람을 만나십시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치유되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만남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안에서의 만남은 작은 만남이라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 약한 사람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이 일어납니다.
2) 요셉이 꿈을 해석하다.
요셉이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요셉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신비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두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이것도 신비한 일입니다. 다음날 아침, 요셉이 그들을 보니 얼굴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물어봅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창40:7 를 읽어 주십시오.
요셉은 자기 주인의 집에 함께 갇혀 있는 바로의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오늘은 두 분의 얼굴빛이 왜 그리 안 좋으십니까?”
요셉은 이들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본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봤다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태를 보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주위의 사람을 그냥 보지 마십시오. 그들의 마음을 보십시오. 사람은 대화할 때 말보다 몸의 움직임, 표정이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합니다. 하나님을 만난 요셉은,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입니다.
요셉이 질문하자, 그들이 대답합니다. 꿈을 꾸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얼굴이 어두운 이유는, 꿈 내용을 해석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왕궁이라면 전문적으로 해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는 없습니다. 그들이 꾼 꿈이 분명히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해석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들이 근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꿈 하면 누가 떠오릅니까? 꿈 하면 누가 전문가입니까? 요셉입니다. 요셉의 별명을 기억하십니까?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꿈 꾸는 자가 온다” 요셉이 이집트로 온 것도, 감옥에 갇힌 것도, 모든 일의 시작은 꿈 때문입니다. 그런 요셉 앞에서 꿈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가장 잘 하는 것을 통해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특별히, 요셉의 말을 주의깊게 보십시오. 창40:8 입니다.
그들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꿈을 풀이해 줄 사람이 없구나.” 요셉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꿈을 풀이하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일이 아니겠습니까? 꿈꾸신 것을 제게 말씀해 보십시오.
요셉은 겸손하게 대답합니다. 요셉은 담대하게 대답합니다. 자신이 해석하는 것이 아니기에 겸손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해석하시는 것을 알기에 담대합니다. 이것이 요셉의 믿음입니다. 그는 형통하지 않아 보이는 환경이지만, 형통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석하신다! 이것이 그가 담대한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그 꿈은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술 맡은 사람은 포도나무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포도가 열렸습니다. 그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왕에게 드렸습니다. 빵 맡은 사람은, 빵 바구니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새들이 빵을 먹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날 꿈을 꾸었습니다. 그 내용은 반대입니다. 요셉은 이들의 꿈을 해석합니다. 술 맡은 사람은 3일 뒤에 감옥에서 나갑니다. 다시 바로의 옆에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으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요셉은 자신의 상황을 말합니다. 창40:14 를 읽어 주십시오.
“일이 잘 풀리면 저를 기억하시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제게 은혜를 베풀어 바로께 제 이야기를 하셔서 저를 이 감옥에서 내보내 주십시오.”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들을 만난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다. 이제 곧 하나님이 나를 감옥에서 나오게 하시겠구나!”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렵고 힘든 상황입니다. 그런데 도와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만나게 하셨습니다. 내가 그를 도와주면, 그도 나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할렐루야! 하면서 곧 문제가 풀릴 것이라 기대하지 않겠습니까?
요셉이 꿈을 해석합니다. 술 맡은 관원도 신기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감옥에서 꿈 해석하는 사람을 만날 것은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꿈 해석의 내용이 매우 좋은 내용입니다. 어떻게 요셉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3일 뒤, 바로는 잔치를 준비했습니다. 그의 생일이었습니다. 바로가 손님을 초대합니다. 음식을 준비합니다. 그때, 바로는 두 사람을 기억합니다. 두 사람이 감옥에서 나옵니다. 술 맡은 사람에게 다시 일을 맡깁니다. 하지만 빵 맡은 관원장은 처벌합니다. 요셉이 해석한 그대로 되었습니다.
3) 요셉을 잊다.
요셉이 해석한 대로 되었습니다.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흥분되었겠습니까? 이제 나갈 수 있다! 이제 자유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세기 40장은 충격적인 말로 끝납니다. 창40:23 를 읽어 주십시오.
하지만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살아났습니다. 요셉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요셉을 잊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이것이 인간입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잊을 수 있습니까? 잊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기억합니다. 불리한 것은 기억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만 기억합니다. 타인의 사정은 들어도 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랑이 없기 때문이예요. 죄인이기 때문이예요. 죄의 특징은, 자기 중심성입니다. 자기만 생각합니다. 자기만 사랑합니다. 우리는 누군가 나를 잊으면 분노합니다. “내가 너를 도와줬는데, 어떻게 나를 잊어?”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나에게 이럴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잊어버리는 것에는 관대합니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죄인인 우리의 모습입니다.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줘도, 처음에는 감사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면 ‘왜 더 많은 것을 주지 않습니까?’라며 불평합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자주 잊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은혜를 자주 잊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사랑을 자주 잊습니까? 감사가 사라지고 은혜가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 아닙니까? 새벽기도 나와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면 새벽기도 안 나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문제만 해결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3. 결론-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라
결국, 요셉은 감옥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냅니다. 왜 그렇습니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작은 일이었지만, 요셉에게는 큰 일이었습니다. 감옥에서 나갈 것을 기대했던 요셉은, 더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언제 연락이 올까 기다려도, 술 맡은 관원장에게서 연락이 없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좋은 일을 해도, 인정받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좌절합니다. 절망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도 누군가를 잊지는 않았습니까?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해준 사람을 기억합니까?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도와준 사람을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십니까? 성경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셉을 잊은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나는 너를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억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잊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하나님에게 있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있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기억하고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혹시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성장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서, 하나님을 잊은 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기억해야 합니까? 주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주님을 잊고 지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고 도와준 사람들을 잊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고, 가족의 사랑, 이웃의 사랑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며 사는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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