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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뎀 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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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엘리야를 위로하듯 우리를 위로하신다

Notes & Transcripts
로뎀 나무 아래 에서...
할렐루야!
무더위에 지치지 아니하고 예배의 자리를 지키시는 귀한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분들과 이렇게 인사할까요? 하나님이 뜨거운 은혜를 주실 겁니다.
여러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위로가 절실히 필요할것 같아요.... 왜요? 세상이 너무 각박하고 힘드니까... 그렇지 않나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이전에 있던 교회에서 케냐의 지라니 합창단이 와서 공연을 한적이 있습니다.
그때 들었던 곡중에 지라니 어린이 합창단 아이들의 이야기인 잠보라는 곡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그 곡에서 이 어린이들이 하쿠나 마타타라는 단어를 신나게 고백합니다.
여기서 하쿠나 마타타의 뜻은 괜찮아 잘 될거야라는 뜻이죠...
그런데 이 곡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이유는 이 어린이들의 상황이 이 고백과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라니 합창단’은 아프리카 케냐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인 고르고쵸 지역에서 살고있는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쓰레기 더미를 뒤지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아이들을 2006년 한국 선교사님이 발견해 창단하게 된 어린이 합창단입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아무런 희망이 없이 살아가는 아이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괜찮아 잘 될거야....
그런데 그 고백이 큰 위로가 되는겁니다.
상황은 위로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그들의 노래를 통해 위로를 받았던 것입니다.
왜 위로를 받았던 것일까요?
그들이나 우리나 모두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마음으로 옆에 계신 분들과 한번 위로의 말한마디를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괜찮아 잘될것야"라고 위로의 말한마디를 나누어 볼까요?
시작~
"괜찮아 잘 될것야"
어떻습니까? 서로가 웃으며 위로의 말한마디를 나누어도 우리의 마음이 참 행복해 지지 않나요?.
물론 우리의 말한마디로 마음속 깊은곳 까지 어찌 위로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의 한마디로 인해 순간이나마 위로 받고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위로가 필요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우리가 너무나도 잘아는 엘리야 선지자 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떡과 고기를 먹이셨던 하나님의 사람,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죽은 아들을 살린 기적의 사람.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던 북이스라엘에 가뭄의 심판이 찾아왔을때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과 대결해서 이긴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
바로 이 위대한 엘리야에게도 위로가 필요했습니다.
위로를 해줬으면 해줬지 위로를 받는것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것같던 이 엘리야에게 왜 위로가 필요했을까요?
첫번째 이유는 지금 엘리야의 신세가 도망자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그 위대한 엘리야 선지자가 왜 갑자기 도망자의 신세가 된 것일까요?
그것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인일을 아합왕이 자신의 아내에게 다 일러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감당했던 엘리야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공포에 떨게했던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이 바로 아합왕의 아내 이세벨이었던 것입니다.
이세벨은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으며, 그녀가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아내가 되면서 아합이 바알을 섬기게 만들었고 사마리아에 바알을 위한 제단을 쌓았으며, 또 아세라 상을 만들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섬기게 하였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이세벨을 두려워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여인이 많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인 학살자 였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을 죽인 무자비한 이세벨... 그들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그녀....
그녀가 엘리야의 소식을 듣고 다른 선지자들 처럼 엘리야를 죽이겠노라고 선언을 하며 보낸 사신을 엘리야가 만났으니... 아무리 대단한 엘리야라도 공포에 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너무나 수치스럽게 자신의 생명을 위하여 도망을 치게 됩니다.
혹시 이세벨이 두려워 도망하고 있는 엘리야의 모습이 꼭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이세벨과 같이 나를 두렵게하는 존재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질이든, 권세이든, 질병이든....
그것이 어떤 모습이든 엘리야가 느끼는 두려움을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지요...
도망자 엘리야는 두려운 마음으로 광야의 로뎀 나무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도 홀로....
그런데 여러분 로뎀나무의 현실을 알게되면 도망자 엘리야의 모습이 얼마나 처참한지 알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은 로뎀나무가 키가크고 잎이 넓어 광야의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에 너무나 좋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뎀나무는 콩과의 관목으로 높이가 2~3미터이고 잎은 바늘모양으로 적으며 사막의 구릉이나 암석지대에서 자랍니다.
그 모습을 보면 로뎀나무 자체만으로는 도무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나무 밑에 엘리야가 햇볕을 피해 있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니 우리의 인생에 로뎀나무라고 생각하고 피하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보십시오..
나를 보호해주고 위로해 줄 것 같지만... 그것을 가만히 보면 이것은 위로가 아니라 오히려 더 참담하기만 할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엘리야의 상황이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로뎀나무가 주지 못하는 참된 위로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위로가 필요한 두번째 이유는 엘리야가 자신의 생명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로뎀나무에 아래에 앉아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나이다"
모든 것을 다 이기고, 다 할수있을것 같은 엘리야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니, 차라리 하나님께서 나를 죽여 달라고, 진심으로 죽기 원해 기도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인생을 살면서 한번이라도 자살을 생각해 보신 분들이라면 엘리야의 이 마음을 이해 하실것입니다.
자살을 생각할때는 아무이유 없이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죠...
정말 희망이 안보일때...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점점 일이 꼬여져 갈때....
앞 뒤 좌 우 다 막혀서 깜깜할때...가지는 그 마음...
이런 마음은 당해보지 않으면 이해 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도 교회 다니기 전에는 이런 생각들을 참 많이 했습니다.
너무 힘이 드니까... 그냥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엘리야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엘리야가 오죽하면 하나님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기도를 할까....
그런데, 여러분, 이런 참담한 상황에 있는 엘리야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에서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 5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 볼까요?
"로뎀 나무 아래에 누어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 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 지라"
자신을 죽여달라고 애원하던 엘리야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잠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을 어루만지는 무엇인가를 느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천사가 로뎀 나무 아래에 나타나서 지친 엘리야를 어루 만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일으켜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먹게 하였습니다
그것을 다 먹고 엘리야는 다시 잠들게 되었고, 천사가 다시 나타나 그를 어루만지며 먹고 마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죽여달라는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측은히 여기시고 그를 어루 만져 주시고 그가 힘을 얻을수 있도록 먹을것 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진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자신의 자녀가 힘이들어 지쳐있을때... 위로해주시는분... 다시 힘을 얻을수 있도록 채워주시는분... 죽음의 길로 걸어가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 주신분....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도 엘리야와 같이 로뎀과 같은 곳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엘리야가 위로를 받은 그 로뎀은 우리에게 있어서 어디일까요?
여러 의미들을 부여해서 이곳이 로뎀나무 아래입니다.라고 할수있겠지만 저는 말씀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로뎀나무 두 곳들 나누고자 합니다.
첫번째는, 바로 여러 분이 도망하여 있는 그곳입니다.
죽고싶다고 다 포기해버리고 싶어 주저앉아있는 그곳이 바로 로뎀 나무 아래입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광야로 들어간 것은 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브엘세바까지 살기위해 도망한 엘리야는 더이상 희망이 없기에 사환을 그곳에 머물게 하고 혼자 광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제는 희망이 없다고 포기하고 광야로 들어간 것이죠...
더 이상 내 힘으로는 어떻게 할수 없는 상황을 맞이한 그 순간... 세상의 제일 밑바닦에서 아무 희망이 없는 것을 발견하는 그 순간.... 엘리야에게는 그 순간에 로뎀나무 아래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 아무 희망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의 밑바닦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바라볼수 없고 의지할 것 없을 때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 보십시오.
그곳이 로뎀 나무 아래입니다.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것이 쓰러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장 3~4절에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소망이 없는 우리를 바라보시며 위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저 앉아 있는 곳이 어느곳이든지 하나님은 찾아가시고 위로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두번째는, 바로 이곳입니다.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이 교회, 대산교회가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로뎀나무 입니다.
왜냐구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오게 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온갖 고초를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수있습니다.
나 같이 미천한 자가 무엇이라고 독생자까지 주셔서 그의 보혈로 나를 구원해 주시는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날 진정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의 몸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의 극치인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드려지는 이 예배를 통해 위로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기 위하여 예배의 자리로 우리를 인도해 주셧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어루만져주시고 채워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예배를 결코 포기 할수 없습니다.
왜요? 삶에 지쳐있는 우리의 인생이 예배를 통해 다시금 위로받기 때문이고, 이 예배를 통해 앞으로의 일주일을 살수 있는 힘을 얻으수 있으니... 어찌 이 예배를 포기 할수있겠습니까?
그러나 많은 이들이 안타깝게도 이 예배를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집안 행사 때문에, 육신의 안락함 때문에, 여러 가지 이유로 이 예배를 포기해 버립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포기한 것은 단순히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를 포기한 것이요, 인생을 살아갈수 있는 힘을 포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배를 쉽게 포기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목숨걸고 이 예배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것이 우리가 위로받아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참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이 힘드시죠? 어떤 이들은 도망자의 심정으로 살아가고 계실것이고 어떤 이들은 목숨을 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로뎀나무는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허덕이고 있는 그곳... 모든 것을 포기하고, 더 이상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그곳... 그곳이 주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로뎀나무 아래 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곳.. 이 예배의 자리가 로뎀나무 아래인줄 믿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교회 본당에 들어서기만 해도 마음에 감동이 있다고,..... 찬양할 때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고....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너무 평안하다고...
여러분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위로의 손길이 우리의 영혼을 만지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의 영혼을 어루만지시고 위로하고 계시는줄 믿습니다.
아빠의 위로라는 간증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오다가 우리 가족은 큰 사고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사고로 나는 두 개의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보다는 덜했지만 아빠도 보조다리 없이는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사춘기를 보내며 죽고 싶을 정도의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내가 밥도 먹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울고 있을 때, 위안이 되어준 사람은 아빠였습니다.
아빠는 나와 꼭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아픔을 낱낱이 알고 있었습니다. 아빠의 사랑으로 나는 무사히 사춘기를 넘기고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입학식 날, 아빠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입학식을 끝내고 나올때였습니다.
눈앞에 아주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차도로 한 어린 꼬마가 뛰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 눈 앞에 믿을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빠가 보조다리도 없이 아이를 행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하며 아빠가 그 아이를 안고 인도로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빠?..... "나는 너무 놀라 소리쳤지만 아빠는 못 들은 척 보조다리를 양 팔에 끼고는 서둘러 가버렸습니다.
"엄마? 엄마도 봤지? 아빠 걷는거...." 하지만 엄마의 얼굴은 담담해 보였습니다.
“놀라지 말고 엄마 말 잘들어, 언젠가는 너도 알게 되리라 생각했어. 아빠는 사실 보조다리가 필요 없는 정상인이야. 그때 아빠는 팔만 다치셨어.
그런데 4년동안 보조다리를 짚고 다니신 거야. 같은 아픔을 가져야만 아픈 너를 위로할수있다고 말야.“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울지마... 아빠는 너를 위로할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얼마나 자랑스러워 하셨는데.... 오늘은 그 어린 것이 교통사고로 너처럼 될까봐서...”
앞서 걸어가는 아빠를 보고있는 나의 분홍색 파카 위로 눈물이 방울 방울 흘러내렸습니다. 마음이 아픈날이면 나는 늘 아빠 품에 안겨서 울었습니다.
그때마다 소리내어 운 것은 나였지만 눈물은 아빠 가슴 속으로 더많이 흘러 내렸습니다.
이 간증의 아빠의 마음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독생자 까지도 우릴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아시고 지금도 너무나 안타까워 하시며, 여러분을 위로하시길 원하십니다.
눈을 들어 위로의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이 저와 여러분을 일으키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함께 찬양합시다.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합심기도: 엘리야를 위로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들을 위로해 달라고 기도합시니다. 여러분의 솔직한 심정을 엘리야처럼 토로 하십시오.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너무 고통 스러워 목숨까지도 버리고 싶다고. 너무 힘들다고....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다고
이시간 주님 한번 간절히 찾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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